80~90년대 모델 vs 2010~20년대 모델 (5)

가정 폭력의 피해자들, 이혼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 결혼을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젊은이들, 부모의 이혼등을 어릴때 겼은 사람들…

이 사람들은 모델에 다다드리 못한 실패자들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의 삶의 내러티브를 살고 있는 참 소중한 사람들이다.

아, 물론 정말 나쁜 사람들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폭력을 제공하는 사람들, 이기적인 사람들, 자기 성찰이 없는 사람들, 결혼관계에 faithful하지 못한 사람들 등등.. 이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다. 회개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그런 깨어진 세상에서 나름대로 살아가고자 애쓰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다.

80~90년대 모델 vs 2010~20년대 모델 (4)

나는 가끔 (아니면 자주?) 이런 이야기를 한다.

지금은 성경적 가정을 이야기할때가 아니고…

예수님이 싱글이었고, 바울은 아마도 이혼당했을 가능성이 있고, 아브라함은 첩이 있었고, 요셉은 극심한 형제간의 갈등을 경험했고, 다윗은 바람을 폈고, 룻은 남자의 잠자리에 들어가 꼬셔서 재혼을 했고, 호세아의 부인은 창녀였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고.

80~90년대를 살아가던 문화에서는 건강한 가정이라는 기준과 가치 자체가 없었으므로 그것을 강조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지만,
지금은 알콩달콩 사랑하며 사는 가치가 교회 뿐 아니라 세상에도 이미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오히려 지금의 관심사는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쏟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멋진 모델에 따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 모델대로 살지 못하는 실패자들이다.

나는 복음과 교회가 그 실패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폭력적이지 않으면서 건강한 ‘모델’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80~90년대 모델 vs 2010~20년대 모델 (3)

내가 90년대 보스턴에 살때 출석했던 교회의 목사님이 곧 은퇴하신다고 한다.
이분은 정말 기독교적 모범생이다.
아주 좋은 신앙의 모범을 보여준 부모님의 양육을 받으며 자랐다.

공부도 잘 했고, 중고등학교때 교회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때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그후에도,
Wheaton college를 갔고, 그곳에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느껴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 부인과의 관계도 참 건강하고 좋다.
지금은 자녀들이 다 컸고, 건강하게 잘 키웠다. 이제는 손자손녀들도 있고.

이분이 개인적인 고뇌가 당연히 없지 않았겠지만, 정말 좋은 ‘모델’로 삼을만한 분이다.

….

지금 내가 2020년대 California에서 다니고 있는 교회의 목사님은 80년대생이다.
어릴때 아버지로부터 심하게 폭력적 학대를 경험했다.
그 형은 실제로 10대때 가출을 했고, 그 후에 범죄자가 되었다.
꽤 오랫동안 therapist를 만나야 했고, (아마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부족한 남편이라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

나는 보스턴교회의 목사님이 80~90년대의 좋은 모델중 한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참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렇지만 지금 이곳에서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모습이 된다고 생각한다.

80~90년대 모델 vs 2010~20년대 모델 (2)

80~90년대 복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성경적 가정’을 꾸미려 노력했던 사람들중 사실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건 그 사람들의 부족함이기도 했지만, 그 사람들이 자라온 환경, 그로부터 형성된 그 사람들의 인격형성등을 고려할때, 그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수 없는 목표이기도 했다.

좋은 모델이라는 것은 그것이 모델로서 작동할때 좋은 것이지,
모두가 따라야할 모범/규범으로 작동할때 그것자체가 폭력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모범과 규범으로 규정한 상황속에 놓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좌절감만을 안겨줄 수 있다.

‘성경적 가정’이라는 모델을 교회에서 강조하기 시작하면,
많은 경우 교회 내에 위선이 넘처나게 된다.
현실은 그렇지 못한데 나누어지는 규범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80~90년대 모델 vs 2010~20년대 모델 (1)

내가 복음을 받아들였던 80~90년대에는 ‘성경적 가정’이라는 말이 참 유행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성경적’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교회 내의 모델들이 소수 존재했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살도록 이끄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는 그것이 80~90년대에 유용했다고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존중에다한 기본적인 가치없이 가정 내에서도 dynamics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남편의 아내에대한 자세는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이 있지 않다하더라도 폭력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건강한 모델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접근이었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말해서 ‘성경적 가정’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지금은 자칫 시대착오적이거나 위험할 수 있다고 본다. ‘성경적’ 가정이라는 것이 어느 한가지 정형화된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또 다시 바쁜 가을학기

이번학기에는 아무래도 성경공부를 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 머뭇머뭇하다가…
그래도 물어봐오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꾸역꾸역 두 그룹을 하게 되었다.

새로 본문연구를 하면서 할만한 여유는 없을 것 같아 몇년전에 나름대로 좀 연구를 해보았던 빌립보서 본문으로 한 그룹,
그리고 책도 읽었을 뿐 아니라 내용으로 다른 곳에서 강의를 해본적도 있던 ‘조직신학 입문’ 한 그룹.
이렇게 두 그룹을 해보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했던 본문이니 쉽게 할 수 있으려니 했던 빌립보서를 다시 보니, 그 본문도 만만치 않고,
이미 강의를 이전에 한적이 있는 내용이지 쉽게 할 수 있으려니 했던 조직신학 입문도 역시 만만치 않다.

좀 덜 부담되게 해보려고 했었는데,
괜히 더 많이 부담되게 되었다.

그냥 내 간절한 바람은,
매우 자주 그랬던 것 같이,
이렇게 말씀과 씨름하면서 내 영혼이 조금 더 살아나게 되길.

믿음이 있는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

옆에서보면 아무리 봐도 아닌데,
자기는 믿음이 있다고 바득 바득 우기는 사람이 있다.
종교활동도 하고, 심지어는 교회에서 리더를 하기도 한다.

또,
옆에서보면 참 아름답고 멋진데,
늘 자신의 믿음이 많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도 대개 종교활동을 열심히 하고, 교회에서 리더를 하기도 한다.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만나거나,
어려움을 겪게 되거나,
아니면 매우 큰 행운을 얻게되는 등의 일을 만나면,
이런 사람들의 믿음이 실제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 제대로 드러난다.

작년에 갈라디아서를 공부하면서 나름 살짝 충격을 받았었다.
만일 내가 공부한 대로라면, 내가 과거에 그리스도인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매우 위험할만큼 믿음의 가장자리에 밀려나와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정말 정직하게 자꾸 내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나는 정말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가.
나는 정말 신자인가.

기도를 잘 하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는 기도를 잘 하지 못할때 늘 대는 단골 핑게들이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았다.
많이 바빴다.
다른 일로 마음이 빼앗겨 있었다…

지난 2~3주, 기도를 별로 잘 하지 못하고 있다.
내 자신을 성찰해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그만큼 주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강아지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때

예전에 블로그에서,
내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 요즘은 그렇게 문득 강아지를 키우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지 않은지 꽤 되었다.
내가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각과 마음과 기도를 써야할 곳들이 명확하게 있고,
그런 속에서 일은 줄어들지 않은데다,
내가 혼자서 엉뚱하게 벌린 성경공부등까지 겹쳐서 꽤 정신이 없다.

지난 주말에는 작정하고,
이번학기에 공부하는 빌립보서 본문연구를 하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빌립보서에서 만나는 바울은 정말 대단하다.
정말 복음에 사로잡혀 산다는건 저런거겠다 싶다.

그러면서 문득 든 생각.

바울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강아지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

내가 강아지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산다는건,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는 뜻이겠지만…
그게 그렇게 나쁜건 아닌것 같다

K Pop!

주말에 집 근처의 Target에 갔다.
그런데 거기 진열되어있는 ‘음반’의 절반 이상이 K-pop이었다!
테일러 스위프트같은 사람이 있었지만, 내가 이름을 잘 알지도 못하는 K-pop 그룹/싱어를 포함해서 많은 앨범들이 있었고, 그중 많은 것들은 다 팔려서 텅 비어 있었다.

산호세에 우리 팀이 사용하는 PCB를 만드는 회사가 있는데,
그 회사 옆에는 K-pop 관련된 물건들과 앨범을 파는 가게가 있는걸 발견했다.
거기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도 전혀 아닌데요.

Google의 로비나 근처의 식당, 쇼핑몰등에서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K-pop이 나오는 것을 듣는 것은 전혀 신기하지 않다.

그런데…
막상 나는 K pop을 잘 모른다. ㅠㅠ

참내… 이런 세상이 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