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직장 고민 (3)

나는 medical device를 만드는 일은 난생 처음이다.

음…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고등학교때 ‘생포자’였다. (생물포기자…)
내게는 유난히 생물(biology)이라는 과목이 그렇게 어려웠다!
나는 학력고사를 보지않는 학교에 들어갔으므로, 솔직히 말해서 생물을 잘 못해도 수학, 물리, 영어 같은거 잘하면 얼마든지 합격할 수 있었다.
어차피 학교 커트라인이라는게 총 800점인가 900점 만점에 대충 400점 수준이었으니 더더군다나 그랬다.

고등학교 2학년 이후로 지난 30여년간 나는 생물이라는걸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냈다!
그런데 지금은 영어로 이름도 복잡한 각종 의학용어들을 들으면서 살고 있다.
하루종일 인터넷 사전을 뒤적인다. 그걸 한국어로 번역한것도 무슨뜻인지 몰라 영어 설명을 다시 읽기도 하고…

그러니 얼마나 벅차겠나.
FDA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미국 식약청)에서 의료기기를 승인해주는 절차등도 거의 매일 완전 열심히 배우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분야를 계속 배울 수 있다는 것도 내겐 참 감사한 일이다.
지난 2년정도 그래도 많이 따라잡았다.
이제는 꽤 그럴듯하게 이쪽의 언어를 사용하는 수준이 되었다…

그런의미에서 나는 지난 2년 동안 내가 물론 회사에 많이 contribute 했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많이 배우기도 한 셈이다.

가령 내가… 3년쯤 전으로 돌아가서,
이렇게 새로운 분야를 엄청 배워가면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얻기 위해 어떤 희생을 감수할 수 있었을까?

페이컷? 긴 노동시간? 나쁜 근무 환경? 아니면…?

2018 직장 고민 (2)

내가 지금 있는 회사는 Verily라는 회사이다.
Google이 모회사인 Alphabet이 100% 출자를 해서 만든 start-up이다.
(그런데 말이 start-up이지, 정말 사방에 돈이 넘쳐난다. -.-; 나중에 이것도 좀 다루어보겠지만)

우리 회사에서 하는 일은 주로…
의료기기 (medical device)와 그 해당 infrastructure를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medical device를 통해서 많은 양의 data를 모으고, 그것을 통해서 병을 다루고 고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이다.

가령,
우리 회사에서 하는 여러가지 project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소위 ‘Google smart contact lens‘라고 알려진 것이다.
그중 하나는 눈물로부터 혈당을 체크하고 data를 cellphone이나 다른 device로 보내서 연속적으로 혈당을 측정하는 것이다.
Continuous Glucose Monitoring 이라고 부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contact lens 안에, 아주 작은 반도체 칩, 센서, 배터리, 안테나 등등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의료기기로 쓸만큼 안전하다고 검증되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은 주로 이런 hardware device를 만드는 일이다.
실제로 내가 요즘 제일 많이 하는 것은 몸속에 넣는 bioelectronics를 개발하는 일이다.

몸속에 작은 전자장비를 넣어서, 그 전자장비가 신경계에 전기적인 신호를 감지하기도 하고, 전기적인 신호를 주기도 해서, 여러가지의 질병을 manage하는 것이다.
이게 여러가지 형태로 발전하면, 옛날에 소위 ‘600만불의 사나이’처럼 장기를 전자장비로 바꾸거나 고치는 일들이 가능할 것이고, 약을 먹는 대신 전기 signal을 주어서 질병을 manage하게 될 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가려면 아직 멀었지만…)

나는 이런 작은 전자장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아주 초기의 idea들을 내어서 실제로 만들고 (prototyping)
그렇게 만든 장치들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test 하고,
test 결과가 좋으면 전 세계의 여러회사들과 협력해서 실제로 대량생산을 하는 supply chain을 만들고,
그 supply chain을 통해서 초기 생산을 하는 일까지를 cover하고 있다.

이런 일들이 재미있느냐?
하는 일 자체는 아주 cool~ 하다!
어디가서 이런거 만들어요..라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완전 신기해한다.

2018 직장 고민 (1)

나는 남들이 많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
이게… 내가 여기 오려고 막 찾았던게 아니고…
다니던 직장이 망해서 lay-off 되는 바람에 job을 찾고 있었는데, 어떻게 지금 직장이랑 연결이 되어서 지금 다니고 있다.

나는 Google 소속은 아니지만 ^^
Google의 hiring process에대해서 기술하는 여러 블로그 포스팅이나 기사등등을 찾아보면,
Google에 들어가기가 꽤 어렵다고 한다.

몇년된 자료이긴 하지만, 한 기사를 보니,
어떤 경우에는 하나의 position에 수천개의 resume가 들어오기도 하고…
지원한 사람의 0.01%~0.04% 정도가 offer를 받는다고 한다.
(지금은 이것보다는 더 높을 것 같긴 하다)

내가 일하는 Verily는 그렇게까지 높은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내 linkedin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job inquiry inmail이 들어온다.
하도 많이 그런 연락이 와서, 나는 나름대로 대답하는 일종의 template을 만들어 놓았다. -.-;
심하게 무례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수준에서 정보도 주면서도 더 이상 나를 귀찮게 하지 않게 만드는…

사람들이 이렇게 다들 오고싶어 하는 회사이지만,
나는 나름대로 불만도 많다. ^^

실제로 몇달전에는, 꽤 심각하게 이직을 고민하기도 했었다.
아주 재미있어 보이는 회사의 recruiter가 내게 연락을 해 왔고, 내 마음이 살짝 흔들렸었다.

앞으로 몇번의 글을 통해서,
내 나름대로 직장에서 하는 고민들을 좀 적어보려고 한다.

아주 고상한 그런 고민이라기 보다는 대부분… 내 욕심에 대한 이야기, 돈 이야기, 시기심이나 ambtion에 대한 이야기들일것 같다. ^^

한국말이 바뀌었군…

내가 한국에 출장을 가면,
어떤땐 한국의 특히 젊은 사람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다.

일반적으로 젊은 사람들의 말이 빨라서 그런건가… 싶었는데,
다음의 비디오를 보니, 내가 90년대 중반에 한국을 떠나온 이후, 한국사람들의 말투 자체가 많이 바뀌었다!

내가 지금은 한국말을 잘 못알아듣는 이유가 이건 아닐까.

똥 누는 것도 더 잘 하고 싶은….?

대학교 4학년 때였던가, 석사과정 1년차였을 때였던가…

그 동네의 연구소에 다니는 형이 한 사람 있었다. 나보다 학번이 하나 더 위였던 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형은 다른 동네에서 학부를 마치고 대덕연구단지의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취직해서 와 있었다.

그 형은 나이는 나보다 한살 위였지만, 신앙의 이력이 훨씬 앞서 있었다. 내가 보기엔 정말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형이었다.
그 형으로부터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그 형의 말투를 따라해보기도 하고, 그 형의 농담을 따라해보기도 했었다.
그 형과 성경공부도 같이 했고, 그 형처럼 기도해보려고 노력도 했었다.

언젠가 그 형을 포함해서 남자 몇명이서 함께 소그룹을 할때였다.
성경공부를 마치고 서로 기도요청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는데,
그 형은 아주 뜬금없이(?) ‘요즘 배변활동이 원활하지 않다’면서 ‘매일 아침 변을 잘 보면 좋겠다’고 기도요청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따로 그렇게 이야기할만한 것이 없어서 그냥 그렇게 말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나는 그 형이 그렇게 기도요청을 하는 것 조차도 정말 따라하고 싶었다.
아… 그래, 똥 주는 것도 잘 누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도 하고…. 참 좋아보인다…

실제로 그래서 나는 그로부터 한동안, 나와 주변 사람들의 ‘배변활동’을 위해 기도했었다. ^^

돌이켜보면 참 웃기지만…
젊은 시절 나는 그렇게 누구든지 그게 선배가 되었던 후배가 되었건…
신앙의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사람의 생각을 귀기울여 듣고 그것으로부터 무엇이든 배우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게 그냥 설렁설렁 노력한게 아니고…. 정말 미친듯이 노력했었다.

어떻게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사는 삶을 더 좀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내 온 삶과 온 몸과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말 제대로 찾아서 찐하게 그렇게 살고 싶었다.

요즘 자꾸만 그때 생각이 난다.
그리고….
나는 정말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기위해 몸부림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
하다못해 똥누는 것 조차도 좀 더 잘 해보고 싶을 만큼.

‘권리’는 과평가되어 있다!?

지난 몇달간 접한 article / 강의 들 중에서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 가운데 하나는
Stanley Hauerwas의 다음의 youtube 강의이다.
“What’s Wrong with Rights? Christian Perspectives Pro and Con”

아마도 이 강의의 내용은 다음의 논문에 publish한 것 같다.
HOW TO THINK THEOLOGICALLY ABOUT RIGHTS

Stanley Hauerwas는
‘권리(Rights)라는 언어로 정리된 윤리적 삶은, 자신의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서로에게 고함을 치는 사람들만을 양산해내게 된다’고 이야기 한다.

정말 맞는 말이다!

나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권리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로 불편하다.
그리고 권리라는 이름으로 약자들이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도 불편하다.
(이것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글을 쓴적이 있다.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좀 언급을 했었고…)

양도 불가능한 권리 (inalienable rights)라는 언어는 Stanley Hauerwas가 위의 강의에서 언급하듯이 현대에 일종의 종교가 되어버렸다.
현대에는, 신학자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debate을 해볼 수는 있어도, 양도 불가능한 권리에 대해 의심을 품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고

권리가 아닌 다른 언어로 사람의 사람됨이 정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그것이 무엇이냐고?

Hauerwas의 논문에서는 권리라는 언어가 가지는 장,단점들을 이야기하고 있지 그것에 대한 대안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 사랑, 은혜 같은 언어들이 그것에 대한 대안의 길을 제시해준다고 생각한다.

사도행전을 보며 절망하기

요즘 사도행전이 말씀 묵상 본문이다.
교회에서 좀 열심히 말씀 묵상을 격려하기 위해서 매일성경의 순서로 다 함께 성경을 보자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고,
목사님은 아주 부지런히 말씀 묵상한 내용을 이메일로 나누어주고 계시기도 하다.

그 분위기를 더 좀 잘 만들어보기 위해서…
나도 목사님의 말씀 묵상에 답글형식으로 언제 한번 내 묵상을 나누어보겠다고 살짝 결심을 하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아침에 사도행전 말씀을 읽으며 나는 깊이 깊이 절망하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 백성의 모임의 특성이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이 사도행전에 드러나 있는 것과….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 사이에 너무 간극이 커서 그렇다.

매일 사도행전을 보면서 답답한 마음에 공터에가서 고함이라도 한번 치고 싶다.

그래서 아직은 교회 분위기 잘 만들기 위해서 묵상 나누기를 못하고 있다.
내 묵상은 매일 매일 애가인데…. 이건… 나누어도 그냥 공허한 독백이 되어버리기만 하고, 분위기 싸~ 하게 만들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

어그러짐과 헌신

살고 있는 conext가 어그러져 있으면 있을 수록,
그것에 맞서는 헌신이 강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살고 있는 context가 어렵다고,
그래서 살고 있는 것이 힘드니까,
헌신을 타협하면 결국은 가장 소중하게 지켜야하는 것을 잃게 된다.

나는 신자유주의의 폭력에 거의 무자비하게 쓰러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본다. (나를 포함해서)
요즘의 삶은 10년전, 20년전만큼 녹록하지 않다는 것도 정말 인정한다.
특히 지금 청년들이 처한 상황이 정말 어렵다는 것도 인정한다.
또 내가 살고 있는 실리콘 밸리에서의 삶이 터프하기 때문에 아주 그저 아주 최소한의 ‘신앙생활’을 하는 것 조차도 벅차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어그러짐이 심해서 고통이 심하다고 해서….
거기서 헌신을 타협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결국 지켜야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역사적으로도,
진리의 불빛이 어두워지는 시대를 지날때마다…
그 고통의 터널 속에서 생명의 젖줄기를 지켜내게 하였던 것은,
그 어둠에 정면으로 맞서는 더 강력한 헌신이었다.

그 강력한 헌신은 독이 올라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매우 radical한 비폭력성,
자신의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는 희생,
비합리적 사랑같은 것을 동반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강력한 헌신의 key는,
외부의 적에대해 적개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혹은 우리 안의 죄에 대해 더 까다로운 기준으로 다루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헌신의 모습은 여러가지가 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일을 하는 것이 될수도 있고,
어떤 꿈을 포기하는 것이 될수도 있고,
경제적 희생이 될수도 있다.

만일 자신이 처한 상황이 유난히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그 속에서 움츠리지 말고, 더 강력한 헌신으로 그 상황을 돌파해 나가면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지키는 일들이 있어야한다.

하다못해 남들보다 잠을 덜 자거나,
옷을 덜 잘 입거나,
친구를 덜 사귀거나…
그냥 다른 상황이라면 당연히 내가 누릴 수 있는 어떤 선호나 기호를 포기하는 것이거나…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기독교에서 헌신의 핵심은 무엇을 하거나,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말로만 헌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헌신하면 좋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만 몇년째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비판을 헌신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그러진 열정과 헌신을 혼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헌신을 폭력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만하면 됐지 라고 너무 쉽게 바운더리를 그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연민에 빠져 있는 사람이 아니라,

좀 흔들리지 않는 꾸준한 헌신으로 사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정말 정말 너무나도 다른…

어제 하루종일 미팅을 해서 많이 피곤하긴 했지만, 참 재미있는 경험이기도 했다.
내가 지금 회사에와서 이렇게 extensive한 전략 미팅을 한건 처음이었는데…
예전에 내가 있었던 회사와 참 많이 비교가 되었다.

예전에 Apple은 상당히 hierarchy가 중요한 조직이었다.
대개 이런 미팅을 하면, 대부분의 시간은 그중 제일 높은 사람이 중요한 방향을 이야기하고, 그 밑에 있는 사람은 그 중요한 방향을 이루기 위한 실행방안을 보고하는 형식이었다.
결국 제일 높은 사람이 그걸 다 듣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이 그 meeting의 outcome이었다.

가령,
iPad의 screen의 어떤 특성을 결정하기위한 미팅이 있었는데…
내가 해야했던 일은, 여러가지 기술을 사용해서 몇가지 다른 재료와 공정을 사용한 다음 세대 iPad screen의 sample들과 그것을 설명하는 presentation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 들고 meeting 장소에 가서 높은 사람들에게 그걸 보여주고, technical presentation을 하고나면, 그 높은 사람이 “이걸로 하자” 면서 하나를 찍어주었다. 그러면 결국 그게 그 다음해에 나올 제품에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높은 사람에게 그렇게 보고를 하는것 까지가 내 일이었다.
내 일의 outcome 은 그러니까 보고였다.

어제 미팅은, 주로 내가 지난 1년동안 개발해왔던 어떤 특정한 technology를 우리 팀에서 어떻게 본격적으로 adopt해서 앞으로 진행할 것인가 하는 전략을 짜는 것이었다. 따라서 내가 준비했던 자료가 꽤 중요했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쪽 방향의 technology를 우리가 adopt해서 진행하려면 어떤 일들이 더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자신의 전문분야의 관점에서 제안하는 자리였다.

우리쪽 높은 사람이 물론 와서 계속 앉아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질문도 하고 토론도 했는데…
이 높은 사람이 무슨 이야기 하나를 하면, 사람들이 개떼처럼 달려들어서 그 이야기에대한 반론과 딴지를 거는 일들도 많이 있었다. 이 높은 사람이 어떤 point에서는 자신의 의견이 잘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답답해하기도 하였다.
그 높은 사람에게 보고를 하는 것이 이 모임의 중요한 activity가 아니고, 그 자리에 모인 전문가들끼리 토론을 하면서 방향을 조율하여 정하는 것이 중요한 activity였다. 거기서 높은 사람의 역할은 질문을 하고 딴지를 걸기도 하면서 토론을 중재하고 이끌어 가는 것이었다.

나중엔 이 높은 사람 vs. 전문가 두 사람 사이에 아주 뜨거운 토론이 이루어졌는데,
양쪽이 서로 지지않으려고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높은 사람과 의견이 같았는데… 괜히 그렇게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지켜보았었다.)

여기서 내 outcome은 보고가 아니었다. 실제로 내가 맡은 일이 되게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내 presentation은 그 discussion을 하기위한 자료였다.

둘중 어떤 하나가 더 우월하냐? 딱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Apple은 그 ‘높은 사람’이 똑똑하고 올바른 결정을 한다는 가정하에..
정말 효율이 엄청나게 높은 조직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거기 높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똑똑했다.)
짧은 시간내에 많은 결정을 제대로 해냈고, 그걸가지고 최대의 효율을 가지고 밀어붙였다.
그야말로 execution에 최적화된 조직이었다.

반면에… 내가 경험하는 Google/Alphabet은 효율이 그렇게 높지 않다. 때로는 쓸떼없는 discussion도 있고, 교통정리가 잘 되지않아 혼란스러울때도 있다. (그래서 나처럼 성격 급한 사람은 괜히 나서서 여기 저기 사람들 찾아다니며 정리하기도 한다…)
실제로 어떤 한 분야를 맡은 사람이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정말 구멍이 뻥~ 하고 나기도 한다.
대신 미친듯이 creative한 idea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다.
팀에서 정말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 있으면… 실제로 그 사람의 잘나고 똑똑한게 진짜로 확~ 드러나고, 그 덕을 많이 본다.
creativity에 최적화된 조직이 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어떤 조직에 더 맞는 사람일까?
솔직히 내가 아주 creative한 사람인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내가 execution을 아주 잘 하는 사람이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나 같이 어중간한 사람은, 어디에 가든지 그럭저럭 열심히 하면서 거기에 적응해서 살게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오늘은 그 workshop 둘째 날이다.
오늘도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

중요한 meetings

오늘부터 이틀동안 San Francisco에서 꽤 중요한 회사 meeting / workshop이 있다.

지금 하는 한 project의 key stake-holder들이 모여서 미팅을 하는데,
아마도 그 project의 방향을 잡는 중요한 point가 될 것 같다.

나는 이틀동안의 미팅을 위해서 100장이 넘는 slide를 준비했다. 지난주엔 이거 만드느라 완전 정신 없었다…. 쩝.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조금씩 시간을 내어서 자신의 perspective에서 project의 방향과 필요에 대해서 제안도 하고 토론도 하게 된다.

San Francisco에서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하는 바람에…
내겐 아침 6시에 집에서 나가서 밤 아주 늦게 집에 들어오는 일정이 될 것 같다.

한편 중요한 미팅이니까 열심히 해야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것에만 마음을 다 빼앗기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