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과 권리의식

책임감 (sense of responsibility) vs. 권리의식 (sense of entitlement)

어떤 사람이,
그 공동체에 어느정도 유익 혹은 해가 되는가 하는 것을 대충 수학적으로 한번 모델링을 해보았다.

B는 그 사람이 공동체에 미치는 net 영향력. B > 0 이면 긍정적인 영향력, B < 0 이면 부정적인 영향력
C1과 C2는 상수
R은 sense of responsibility (책임의식)
E는 sense of entitlement (권리의식)
n은 level n이 높을수록 더 리더이고, 전혀 리더십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n=1 이다.

여기에서 해석은 이렇다.
어떤 사람이 책임의식이 높을 수록 그 사람이 공동체에 끼치는 유익이 크고,
반대로 권리의식이 높을 수록 그 사람이 공동체에 끼치는 유익이 줄어든다.
그런데, 더 높은 리더가 될수록 즉 n이 클수록, 그 사람의 책임의식에 대한 impact는 작아지고, 반대로 그 사람의 권리의식에 대한 impact는 커진다.

그러므로 리더의 경우에는 그 사람이 공동체에 끼치는 영향이 긍정적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책임의식이 권리의식보다 많이 더 커야 한다.

어제 밤에 비몽사몽간에 한번 생각해 본 것인데,
몇가지 사례들을 좀 생각해보아가며 equation을 좀 고쳐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

독일 좀 다녀올래?

지난주 목요일쯤 이었던가.
몇사람과 미팅을 하고 나오고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아 참, B 프로젝트 때문에 독일에 있는 P 회사 manufacturing facility를 누군가가 가서 좀 보고와야 할 것 같은데, 너 가능하니?”
이렇게 물었다.

대충 보면,
우리중에 누가 간다면 나 밖에는 없을 것 같은데…
지난 몇개월간 가능하면 유럽쪽이랑은 엮이지 않으려고 노력을 좀 해왔건만…
(유럽이랑 엮이면 내 삶이 많이 고달퍼진다. 왜냐하면 아침 일찍 유럽이랑 conference call, 밤 늦게는 아시아쪽이랑 conference call. 하루가 엄~청~ 길어진다. -.-;)

에이씨…

그런데,
지난 주말에 민우랑 이런 저련 이야기를 하던중에,
민우 대학 입시 다 끝나면 한주정도 아빠-엄마랑 (엄마가 안되면 아빠랑) 여행을 좀 다녀오면 어떻겠느냐고 이야기를 했었다.
지금 내게 쌓여있는 어마어마한 마일리지도 한번 털어버릴겸, 과감하게 ‘해외’로.
그러면서 얼핏 내 머리에 떠오른건, 내가 출장으로 갔지만 막상 도시를 구경할 기회가 없었던 곳들이 생각났었다. 그중 한 option은 독일이었다.
음… 그거 비쌀텐데… 돈을 잘 톨톨 마련해서 민우랑 한번 여행을 갈까…?

주말에 민우랑 그런 얘기를 하면서는 어디든 여행을 가는 것에 대해 막 기대가 쌓였었다. ^^

아마도 독일쪽 출장은 가게 될 가능성이 많고,
민우랑 독일을 가는 것은 안 가게될 가능성이 많지만,

이렇게 누구랑, 무엇 때문에 여행을 가느냐 하는것에 따라 같은 곳을 가더라도 기분이 많이 다르구나… 싶었다. ^^

오지랖일까?

‘에이, 정말 신학교를 가야겠다’ 고 울컥했던 적이 여러번 있었다.
그럴때는 늘, 내가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어떤 사람(들)에게 개떡같은 설교가 주어지는 것을 볼 때였다.

내가 다니던 교회였을 때도 있고,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니던 교회였을 때도 있었다.

예전에도 이 블로그에 썼었지만,
나는 가끔 random으로 아무 설교나 들어볼때가 있다.
좀 고깝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말 ‘시대의 아픔’을 좀 느껴보고 싶어서 그렇다.

정말 그렇게 듣기에 고통스러운 설교를 한편 듣고나면,
정말 내 온 몸이 달아오른다.

예전에 정말 아끼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이상한 설교를 듣는 상황에 처해 있었을때,
나는 거의 매일 신학교 원서를 집었다 놨다 했었고,
나도 정말 부족하지만, 저 따위 설교를 한 사람이라도 덜 듣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 한몸 불살라야 하나… 뭐 그런 생각을 할때가 있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온 몸이 녹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 예레미야의 독백이 내게 현실로 느끼지기도 했었다.

그런 wave가 일어날때마다 난 늘…
‘이건 그냥 내가 오지랖이 넓은 것 뿐이다’
‘나라고 뭐 다르겠나’
‘나는 그렇게 설교를 잘 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중요하면서도 전략적으로 효과적인 위치이다’
등등의 생각으로 그것을 잠재우곤 했었다.
그리고 그건 대개 꽤 내게도 설득력이 있는 논리였었다. (지금도 물론 그렇고)

그런데,
지난 1-2년 동안 내가 참 존경하는 어떤 목사님이 아주 끊임없이 만날때마다 내게 신학교를 가라고 농담반 진담반 말씀을 하셔서…
에이… 목사님께서 사람 잘 못 보셨습니다.
그렇게 웃으며 계속 넘기다가,

최근에 완전 뚜껑 열리는 설교들을 몇편 듣고나선,
에이… 진짜… 하면서 어떤 신학교의 admission officer에게 이메일로 구체적인 것들을 좀 문의를 했다.
online으로 하면 몇년정도 하면 되냐,
최대 몇년이내게 끝내야 하냐,
혹시 시험봐서 기본 과목 몇개 pass시켜주는 program 같은 건 없냐… 등등

이번에도 역시 예전에 그랬듯이 흐지부지… 되어버리겠지만,
정말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오지랖이 넓기 때문일까…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은 좀 많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미국의 자칭 복음주의 교회도 그렇지만 한국의 주류 자칭 복음주의 교회는 더더욱…
지금보다 아직 한참 더 망하게 생겼다.

아직 최소 십여년은 더 개독교 소리를 들을 것 같고,
기독교는 계속해서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될것이고,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교회들이 무너지고,
정상적인 지각을 가진 사람들은 교회를 떠날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이 교회를 어떻게든 집단적으로 살려내려는 노력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건강하지도 않은 것 같다.

이것에 대해 무감각하게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혹은 이것에 대해 잘못된 방식으로 반응하는 사람들도,
후에 깊이 땅을치며 이를 갊이 있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이런 시대에 대한 깊은 아픔을 가지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고,
나도 역시 이에대해 충분히 더 많이 아파하고 싶다.

Ownership, 책임, 영적 리더십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Start-up company이다.
아… 물론… 진짜 start-up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이런얘기하면 뭐라고 하겠지만…
사실 start-up인건 맞다. 다만 자금이 아주 빵빵할 뿐이다.

나는 지금 다니는 직장을 빼면 사실상 start-up company 경험을 두번 했었다.
한번은 진짜 start-up을 해보려다 제대로 시작도 못했었고, 한번은 acquired start-up에 들어가서 역시 해보려다 잘 안되었었다.

내가 start-up company를 다니면서 경험했던 가장 귀한 경험은 ‘무거운 책임’이라는 경험이었다.

내게 주어진 job은 주어진 만큼의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많은 경우 그저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일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책임이 다 내게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내가 독일에서 중요한 production을 언제까지 끝내야 하는 것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그 원 재료는 일본에서 가야한다.
또한 독일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logistical한 일들이 있다.
하다못해 독일에서 그 장비를 돌리는 operator가 누구인가 하는 것까지 자세히 알아서 다 점검을 해야했다.
그러다가… 만일, 갑자기 일본에서 보낸 원 재료가 독일에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아서 독일에서의 production이 delay된다면?
아니면 독일의 장비 operator가 갑자기 사고가 나서 한주동안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면?

그럴때 나는 다음과 같이 보고 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다 잘 했는데, Fedex가 handle을 잘 못 하는 바람에 delay가 되었습니다.”

그럴때 나는 이렇게 보고해야 한다.
“제 책임 아래 있는 일인데, logistical issue 때문에 delay가 되었습니다. Fedex shipping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Fedex shipping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내 문제이고, 내 책임이기 때문에 내가 연관된 모든 일의 책임은 모두 내게 있는 것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독일에서 production을 돌리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든 독일에서 제 시간에 production이 나오도록 하는 모든 과정을 다 총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start-up 이라는 걸 겪어보면,
당연히 빵꾸도 많이 생기고,
어떤땐 빵꾸가 생길게 빤히 보이는데도 도저히 그걸 채워낼 역량(돈, 인력, 체력, 시간)등등이 부족해서 그냥 밀어붙이는 경우도 있고,
어떤땐 이대로 가면 분명히 안될걸 아는데도 일을 진행하면서 어떻게든 그 시간내에 빈 구멍을 채우겠다는 생각으로 진행을 시켜야 하는 경우도 있다.

누구 표현에 따르면,
낭떠러지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면서 어떻게든 벼랑에 다리가 놓여지길 바라며 가야 한다.

어떤땐 그 내가 죽어라고 달리면서 멀리서 나무와 돌을 던져가면서 벼랑에 다리를 놓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말도 안된다…)
어떤땐 어떻게든 누군가가 다리를 만들어주기를 바라며 그냥 뛰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ownership 이라는 것을 가지는 것은 대단히 무거운 일이다.
ownership을 가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문제의 책임을 돌리지 않고, 자신이 그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 책임이 불합리하거나 억울한 것이라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책임을 지는 일이 반복되면,
진심으로 ownership이 생기게 된다.

나는 리더십의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ownership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리더십 아래 있는 일들은 그저 모두 내 책임인 것이다. 그래서 비난도 내가 받고, 고생도 내가 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이 억울하고, 많이 서럽고, 많이 외롭고.

때로는 그런 리더십을 가지면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것 말고는 그 누구와도 마음의 고통을 털어놓을 수 없는 일들이 있게 되는 것이다.

정말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아는 리더를 만나는 일은 참 행복한 일이다.
그 책임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도외시하는 리더를 만나는 일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리더가 되는 일은 행복하지 않다.
많이 외롭고 서럽고 고통스럽지만 하나님과 대면하는 joy가 있다.

요 며칠 회사에서 무쟈게 일에 치이면서,
이런 생각들을 해 보았다.

내 강아지이기 때문에?

dsc_0020우리 집에서 키우는 개는,
적어도 두번이상 키우는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기록이 있다.
그래서 상처가 많은지 사람들을 많이 경계한다.

지금도 주인인 우리가 엉덩이 부분을 만지면,
많이 긴장하고 몸이 뻣뻣해진다.
그리고 들어서 품 안에 안는 것을 못하게 한다.
아마 많이 abuse를 당한 것 같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앞쪽 이가 다 빠져서…
다른 개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뼈다귀… 뭐 그런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 똑똑하지도 않아서,
불러도 잘 오지도 않고,
공을 던지면 주워온다던가 그런 재주를 피우는 것도 하나도 없다.

가끔은 집 안에서 실례를 할때도 있고,
유리창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라 짖기도 한다.

조금만 뛰면 금방 지쳐서 헥헥 거리고.

객관적으로…
스펙이 많이 떨어지는 잡종이다.

그래도 우리 민우는 우리 개가 참 좋은 모양이다.
그리고 하이디도 민우가 참 좋은 모양이다.
부족한대로 민우에 대해서 많이 사랑을 표시한다.

오늘은 어머니의 생신이다.
많이 부족한 아들이지만,
내 ‘스펙’에 관계 없이 나를 사랑해주시는 분.

참 감사하다.

예수를 믿고 가장 많이 후회했던 것

나는 87년 6월 항쟁이 있었을때 대학 1학년이었다.
87년 6월은 정말 대단했다.
나는 비롯 ‘지방 단과대’에 다니고 있었지만, 대전역 같은 곳도 민주화의 열기가 넘쳤었다.

그렇지만 나는 1학년때 시위같은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마 제일 큰 이유는 겁이 많아서 였던 것 같고,
그렇게 나를 투신할만큼 가치있는 것임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89년에 복음을 받아들이고나서,
내가 가장 크게 후회했던 것은 그 격동의 시기에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진리와 정의에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못하고 그저 ‘나’만을 생각했던 내 모습이 말로 다할 수 없이 부끄러웠었다.

복음으로 눈이 떠지고 나서야 비로소 정의, 인권, 민주, 자유, 평등 과 같은 것을에 함께 눈이 떠졌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인이시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비로소,
그 세상이 망가져 있다는 것이 큰 아픔으로 마음에 다가왔었다.

…..

2016년,
지금 내가 믿고 살아가고 있는 이 기독교가,
과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런 자극과 도전을 주고 있을까?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건강한 보수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정의와 인권과 같은 개념을 그냥 도외시하는 기독교의 일부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말로 다할 수 없이 힘들고 괴롭다.

시대정신에 저항하고, 그것에 맞서 싸우면서,
그렇기 때문에 치열하게 기도하고,
정의를 위해 금식하고…
정말 그런 일들이 이제는 유물이 되어버린 것 같다.
기독교가 그저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도구로 전락해버려…

내가 대학생이었던 때로부터 이제는 거의 30년이 지났으므로,
그때의 상황이 지금에 바로 적용되기는 쉽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세상을 뒤집는 가치인 복음이,
민중의 아편으로 전락해버린 이 현실은 어쩌면 좋을꼬…

전도서

전도서는 내게 매우 어려운 책가운데 하나였다.
지금도 물론 그렇다.

이게 논리적으로 분석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담겨 있는 글은 조금 더 차분하게 읽으며 한번 씹어야 하는데,
나는 마음이 급해서 그걸 잘 못한다.
게다가 삶과 신앙의 경험이 일천하니 쉽게 삶과 마음이 담긴 글을 풀어내는게 어렵게 느끼지곤 한다.

최근에,
성경을 통독하는 와중에 전도서를 읽었다.

우아… 세상에…
완전 눈이 확~ 크게 떠졌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져봤던 솔로몬의 인생론.
그렇기에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꼭 들려줘야하는 인생론.

전도서가 매우 relevant하게 다가왔다.

미련 곰팅이

작년 여름즈음 왼쪽 종아리에 부상이 있었다. 말하자면 근육파열 같은 것이었는데, 다행히 잘 회복되어서 이제는 괜찮다. (영어로는 pulling muscle 이라고 하는데… 근육파열 그러니까 엄청 큰 부상같이 들리네. ㅎㅎ)
그때는 내가 layoff 당하고 새 직장을 찾는 중간이어서 insurance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조심조심 운동안하고 쉬면서 회복했었다.

그 이후에 몇달 후에, 살짝 허리가 불편해졌다.
그러더니만 어떤 순간에는 꽤 허리가 아파졌다.
카이로프랙터를 만나서 물리치료 비슷한 것도 받고, 근육 강화운동(?) 그런 것도 배우고, 근육 stretch하는 것도 배우고, 마사지도 받고…
그랬더니만 좀 나아졌다.
그래도 늘 하던 운동을 하면 다시 허리가 좀 불편해졌다.
그래서… 역시 운동 안하고 쉬면서 조심조심 허리를 달랬다.

거의 일년 운동을 소홀히 했더니만, 체중이 엄청 불었다. -.-;

그래서 이번주 초부터는,
에이… 도저히 안되겠다. 허리를 좀 잘 달래가면서 운동을 좀 해야겠다. 결심하고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원래 하루에 4~5마일 달리던 것을 대폭 줄여서 하루 2마일 수준으로만 달렸다. 그것도 중간에 잠깐씩 걷기도 하면서.

허억~
그랬더니만…
이게 완전 좋다!
별로 허리나 관절에 큰 무리도 없고, 오히려 허리가 좀 더 편해지는 느낌이다.

이게…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내가 이제 하루에 한시간씩 죽어라도 달리는 운동은 하는건 무리인 모양이다. ^^
예전에 하루에 6~8마일씩 달리던 거 생각해서… 그래도 그 정도는 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운동량을 대폭 출이니 훨씬 더 살만한거다.

이련 미련 곰팅이.
내 몸이 더 이상 그렇게 혹독하게 매일 운동하는 것을 잘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었는데,
그걸 박박 끌고 다니며 혹사시키고는
다리 아프다 허리 아프다 그랬던 것이었군.

미련 곰팅이 같은 주인을 만나서,
내 몸은 고생이 많다. -.-;

마음 속의 이야기를 쓰기 어렵다

나는 이 블로그가 유명해지는 것을 그렇게 많이 원하지 않는다. ^^
이따시 블로그가 유명해질수 없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정말 깊이있는 마음 속의 이야기를 쓰기가 어려워질까 두려워서 그런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지금도 벌써 그렇다.

언젠가부터 이 블로그에 코스타 이야기를 쓰기가 어려워졌다.
전반적인 스피릿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옛날 추억에 대한 것, 혹은 코스타와 관련된 대단히 personal한 것들은 좀 쓸 수 있지만…
가령 코스타의 현안,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내 생각, 이런건 좀 개선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 뭐 그런 것들은 정말 쓰기가 어려워졌다.
왜냐하면 이 블로그를 읽는 ‘코스타 관계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간사들중 일부는 가끔씩 들어와서 읽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거기에다 대고 내가 detail하게 이렇게 저렇게 쓰면, 그냥 내가 쓴 글이 내 의사와 관계없이 그 후배들에게 부담이 될까 싶어 그렇게 쉽게 하지 못한다.
사실 하고 싶은 얘기도 많고, 내 나름대로의 생각도 정말 많은데… 정말 그런 얘기는 이 블로그를 포함해서 거의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다.

또,
이 블로그에 지역교회 이야기를 쓰기가 어려워졌다.
내가 다니는 작은 교회에서 이 블로그를 읽는 사람들이 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경우 그것이 읽는 사람에게, 특히 교회의 리더십에게 어떤 부담이 될까 싶어 참 글쓰기가 어렵다.
(참고로 나는 우리 교회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놀고 있다. ㅎㅎ 정말 완전 땡땡이 교인.)
사실 나는 교회에 대해 써보고 싶은 내용이 참 많다.
설교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고.
그렇지만, 내 생각을 썼을 경우 자칫 오해를 사지는 않을까 싶어… 언제가부터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쓰지 않게 되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고보니 애꿎은 직장 이야기만 많이 쓰여지게 되는 것 같다. ㅎㅎ

그럼에도 그냥 내 코스타나 교회에 대한 내 생각을 거침없이 써버리는게 좋을까?
아닌것 같다.
이렇게 많이 불편하게… 내 속 이야기 아무에게도 하지 못하면서 있는 것이 훨씬 더 여러 사람에게 좋은 것 같다.
여기에 무슨 글을 써대는 것은 자칫 매우 비겁한 행동이 될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 블로그는 그래서 점점 더…
내 깊은 생각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장이 되어버리는 것 같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