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지난 연말,
아버지께서 허리가 아프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이것 저것 검사를 하시다가,
척추 근처에서 ‘전이된 암’으로 보이는 조직이 발견되었다.

여러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그 후에 각종 검사를 하셨는데,
어제 비로소 그 최종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다행히도 암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난 한달여동안,
이 사건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아버지께서 이제 한국 나이로 79살 이시니까, 정말 아버지와 헤어지게될 때가 그저 까마득한 먼날은 아니겠구나… 뭐 그런 생각,
만일 아버지께서 조금더 심한 병이셔서 함께 이 땅에서 보낼 기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이라면… 나는 아버지께 무슨 말씀을 드리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게 여겨지게 될까… 그런 생각,
이제 40대 중반에 들어서는 아들로서, 아버지의 생애를 어떻게 정리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등등…

지난 한달동안,
정말 회사 일이 참 많아 많이 바빴었는데,
그 와중에 아버지 일로 참 마음이 모아지지 못했었다.

지난 주,
혼자 기도를 하다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만일 아버지와 조금 더 이 땅에서 보낼 수 있는 기간을 허락해 주신다면,
지금부터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멋지게 더 많이 develop 하면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씀들도 많이 나누면서, 그리고… 어쩌면… 조심스럽게 wrap-up 하면서… 알차게 보내겠습니다.
조금 더 허락해 주십시오…

2월 말, 아시아 출장을 다니는 중에, 한국에 며칠 있게 될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그 시간을 좀 특별히 허락해주신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다. 이번에 뵈면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가보고 싶다. 아마 35년쯤 전에 함께 가보고 못가본 것 같은데… 

그래 가자, 집으로 가자

그래 가자, 집으로 가자.
거기 우리 집에선 우리 아버지께서 기다리고 계실테고,
거기 우리 집에선 이런 서러움 따윈 없을꺼야…


한 6년 쯤 전에(-.-) 제가 제 이메일(?)의 시그니처로 썼던 문구 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유학 생활이 그렇게 힘드냐고…
뭔 시그니처가 그렇게도 서럽냐고 하더군요.

유학생활이 힘들기도 하거니와,
사실… 정말 ‘거기 우리집’ 이외에 정말 ‘서러움’ 없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가지 일로 눌리고 스트레스 받고 불안할 때,
역시 유일한 안식처는… ‘내 아버지’ 뿐이라는 생각이…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지네요.

이제야 조금씩 철이 드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