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의 잡담(?)

나는 아침에 직장에 가면,
그날 할 일을 분량과 범위를 대충 정해놓은 후에…
많은 경우 10분에서 15분 단위로 시간을 끊어서 계획을 세우고 일을 한다.

10시까지는 process meeting이 있고,
10시 15분까지는 sample number 5055-1-3-2-5 를 process 하고,
그 중 chamber가 자동으로 작동하는 약 8분 동안 potential investor에게 보내야하는 회사 관련 자료들을 정리해서 이메일을 보내고,
10시 30분까지는 sample을 꺼내서 annealing oven에 넣기 전에 inspection을 하고,
그로부터 2시간 동안 annealing이 되는 동안 sample number 5056 series를 processing 할 준비를 하고…
그 가운데 11시 부터 11시 15분까지는 아무개에게 써야할 이메일을 쓰고…

이런 식이다.
(물론 가끔은… 의도적으로 ‘땡땡이’ 치는 시간을 15분정도 계획에 미리 넣어둔다. 그렇게 하면 앞의 일정이 밀렸을 때 buffer 역할을 하기도 하고, 지쳤을 때 잠깐 쉬는 시간을 주기도 한다.)

물론 그 계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상 만사 모든 일이 뜻대로야 되겠소만.. ㅋㅋ)
하지만 나는 나름대로 그 계획에 충실하게 하려고 매우 노력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게 주어지는 회사에서의 일들을 다 처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내 스스로가 게을러지는 것을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예기치 않은 일들이 발생했을 경우이다.
갑자기 회사 동료중 누가 찾아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로 30분을 잡아먹고 나면,
내가 15분 간격으로 짜놓았던 계획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고 만다.
그냥 모두 15분 뒤로 미루어서 되는 일정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정말 그야말로 엉망이 된다.

그 회사 동료가 와서 이야기하는 것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꼭 필요한 일이라면 일정을 재조정하는 한이 있어도 그 사람과의 30분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 적절하겠지만,
와서 그야말로 잡담을 하는 경우라면… 정말 암담한 -.-; 경우가 많다.
혹은 요점만 이야기하면 될것을 여러가지 topic으로 digress 해서 그야말로 중구난방의 이야기가 되는 경우도 매우 힘들다.

이렇게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그렇게 와서 잡답을 걸어오는 회사 동료들을 경계하게 되고, 심지어는 미워하게 된다.
그 사람이 잡담을 하는 동안 내 머리 속에는 해야하는 일들을 재조정하는 계산이 몹시 바쁘게 돌아간다.
그 사람과의 대화는 빨리 끝내야하는 거추장스럽고 귀찮은 시간일 뿐 그 사람과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바른’ 회사 생활일까.

일을 많이 하는, 부지런히 하는 회사 생활이긴 할테지만…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해야하는 일들을 제대로 하는 신앙인의 모습은 아닌 것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반성을 해본다.

그러나… 내 dilemma 이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회사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다 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적어도 지금… 나는 내가 이렇게 회사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자,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고 믿고 있다.

순종과 사랑의 삶을 살고자 하다 보니…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는 모습.

역시 내 지혜가 아니고 하나님의 지혜로서,
바쁘지만(busy) 쫓기지 않는(not hurried)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정답이겠지….

그러나…

나는… 얼마나 열심히 일하나?

지난주 우리 그룹 사람들이 열심히 일한 것에 감동(?)을 받은 내 글에 답글을 적어주신 분의 comment에 encourage 되어서. work ethic에 관하여 조금 더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유학생’이던 시절,
생각해보면 나는 참 성실하지 못했다.

때로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내가 일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지도교수를 만족시켜서 졸업하는’ 것이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한주 한주 지도교수가 만족할만한 것들을 보여주어서 최소한의 일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는 것이었다.

어쩌다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는 것 처럼…
나도 그렇게 하다가 결과가 그럭저럭 나와서 졸업을 했다고 볼수도 있는데…

정말 내가 했던 일을 얼마나 ‘내것’으로 생각하면서 했는지,
그것을 위해서 ‘책임’을 지는 모습으로 일을 했는지 하는 것을 돌아보면 참 부끄럽기 짝이 없다.

길지 않지만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때 일했던 나의 모습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 일은 ‘회사일’ 이었고 나는 내가 해야하는 할당량만을 채우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실제로 내가 만났던 내 ‘동료 유학생들’, ‘동료 직장인들,’ ‘동료 대학원생들’이 주로 그랬다.

왜 그랬을까.

물론 여러가지가 있지만…
내가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 (물론 우리 회사에서 있는 모든 이들이 내가 존경할만한 방식으로 일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얹혀서 일종의 ‘free-ride’를 하는 사람도 많다.)이 철저하게 훈련받은 work ethic을 내가 훈련받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열심히 일한다고 하면…
회사를 위해서, 상사에게 잘보이기 위해서, 승진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것이 내 일이라는 생각으로 창의력을 동원해서 그 일에 애착을 가지고 하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한국에서 일하는 문화가 어떤 일을 그 사람의 일로 여기기 어렵게 되어 있다는 것을 어느정도는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곳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하다)

때로는 자신이 궁금한 것을 열심히 찾아서 공부하는 inquisitiveness와,
그러나 함께 이루어야 하는 목표를 위해 자신이 궁금해 하는 것은 잠깐 내려놓고 공동의 작업에 매달리는 balance를 찾는 것이라든지..

자신을 망가뜨리도록 일에 몰두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balance 라든지,

일 이외에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일을 성실하고도 꼼꼼하게 하는 balance…

이런 것들은 내가 이전에 갖지 못하던 것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work ethic을 길러 내는 것이,
개인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분명히 아닌 듯 하다.
그 개인이 속한 사회의 culture, 사람들이 가지는 가치관등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