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6)

건강한 신앙공동체가 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한가지를 뽑으라면 무엇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것은 본 회퍼가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정확한 quotation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누가 좀 찾아서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으로부터 반복해서 복음을 들어야한다.

공동체가 해야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은,
동료 그리스도인에게 반복해서 복음을 들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정말 그 기본적인 복음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고싶은 목마름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또한 실제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그 복음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으며 내가 정말 누구인가를 remind 해야하만 세상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흔히 공동체라고 하면,
어려운 일을 도와주고, 힘들때 말 동무가 되어주고, 바쁜 일이 있을때 서로의 빈 구석을 채워주고… 등등을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어려운 일을 도와주고, 자신의 속 얘기를 하고, 충고를 해주고, 경제적으로 서로 돕고… 등등이 참 좋은 일이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서로의 귀에 복음을 들려주는 일의 subset이 되어야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복음이란 총체적인것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좋은 일’들이 복음이라는 umbrella 아래에서 이루어지지 않을때 공동체는 pseudo-community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가슴이 먹먹할때는…

어제 잘 아는 한 동생으로부터,
최근 있었던 마음 무거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마음이 많이 아프고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걸 그냥 덤덤하게 말해주었다.

그 얼굴로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이 더 내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내가 뭔가 작심을 하고 힘을 내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무슨 지혜가 넘쳐나서 그 지혜를 흘려줄 수 있지도 않고,
아니면 내가 왕창 공감능력이 뛰어나기라도 해서 그걸 듣고 함께 많이 공감해주지도 못했다.

다만,
그 이야기는 내 마음을 많이, 많이, 많이, 많이, 무겁게 누르고만 있다.

이렇게 가슴이 먹먹할때는,
그리고 그 앞에서 내가 아무런 힘이나 도움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그 먹먹함을 그냥 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이 기도가 되기도 한다.
그걸 기도라는 format으로 담아내지 않고, 그 먹먹함을 마음에 하나 가득 담고 그 안으로 하나님을 초청하는 것만으로 기도가 되기도 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 마음 속의 부담을 기도라는 format으로 풀어낼 힘이 없다고 느껴진다고 이야기하는게 더 맞는 이야기일 것 같다.

Survived!

민우가 어제 고등학교 졸업을 했다!

민우는 고등학교 시절을 참 재미없어했다. 그리고 힘들게 보냈다.
옆에서 보기에도 정말 그래보였다.

숙제는 엄청나게 많고, peer pressure는 대단하고,
주변에는 소위 ‘선행학습’을 하고 온 애들도 많았고,
이 동네의 엄청난 교육열.

몇년전 이 동네의 어떤 교회에서 목사님께서 설교중에 하셨던 이야기가 정말 맞다.
이 동네의 Christian들은,
Silicon Valley에서 살면서 내 아이가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느냐 하는 것 보다는 Harvard에 갈 수 있느냐 하는 데 관심을 더 많이 살고 있다는 것.

어제 이렇게 졸업을 한다고 쭈욱~ 앉아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참 안됐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훨씬 더 활기 있을 수 있는 고등학교 시절을 그렇게 보낸 아이들.

그리고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민우에게 참 많이 미안했다.
아빠가 그런 속에 있는 민우에게 좀 더 든든한 방파제가 되어주지 못했다.
오히려 때로 ‘더 노력해라, 더 공부해라, 더 성실해라…’ 식의 이야기로 그 마음을 더 힘들게 했다.

감사한건,
민우가 1년동안 gap year를 하면서 1년 더 우리와 함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으로 여기고,
민우와 더 친하게 지내보려고 결심중이다.

민우는 Survive 했다!

널 사랑하지 않아

나는 새로운 한국 가요를 그렇게 열심히 듣는 편이 아니다.
특히 아이돌 중심의 가요판이 되면서 솔직히 한국 가요에 흥미를 많이 잃었다.

나는 술도 마시지 않았으나,
대학때는 기숙사에서 가요 책을 펴놓고 기타를 치면서 가요를 무쟈게 불러댔었다.
술을 안/못 마시는 애들하고 그렇게 같이 어울리면서 놀았다.

지난 봄에 한국에 출장을 갔다가 그 회사 직원의 차를 타고 이동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차에서 어반자카파의 “널 사랑하지 않아” 라는 노래가 나왔다.

가사가 참 희한했다. – 솔직히 말하면 별로였다. 널 사랑하지 않아…. 이거 말고는 다른 얘기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노래도 잘하고, 곡조도 좋고…

그러다가 어제 문득 youtube에서 그 노래가 suggestion으로 뜬걸 보고는 몇번 들어보았다.

대학때처럼 다시 기타가 치고 싶어졌다. ^^

Being Radical

Radical하다는 것을 급진적이라고 번역하곤 하는데,
webster 사전을 찾아보면

1 : of, relating to, or proceeding from a root: (근본적인이라고 번역할 수 있겠다.)

2 : of or relating to the origin : (이건 근원적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 같고)

3
a : very different from the usual or traditional : extreme
b : favoring extreme changes in existing views, habits, conditions, or institutions
c : associated with political views, practices, and policies of extreme change
d : advocating extreme measures to retain or restore a political state of affairs
(이게 급진적이라는 뜻일 것 같다.)

결국 Radical하다는 것은 근본적인, 근원적인 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어근을 생각해보더라도 Rad 라는 건 root과 연관이 있는 말이다.

신앙이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은 것은,
그 신앙이 충분히 근원적이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세상에 강력하게 저항하고 맞서는 신앙을 갖지 못하는 것은,
전략이 부족하거나 용기가 부족하거나 성품이 그렇지 못하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신앙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참으로 그 중심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근원적/근본적 신앙이 급진적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가장 clear한 예는 순교자들이다.

나는 Silicon Valley 같은 상황에서,
순교자의 신앙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relavant하다고 생각한다.

주말에 읽은 책 – The Benedict Option

이번 long weekend에는 작정을 하고 쉬었다. ^^

그러면서 책 한권을 거의 다 읽었는데, (한 85%쯤 읽었다. 막판에 좀 힘이 달려서 확~ 끝내버리지 못했다. -.-;)
The Benedict Option 이라는 책이었다.

American Conservative의 editor인 Rod Dreher 라는 사람이 쓴 책이다.
Dreher는 미국의 religious conservative 이다. 동성애 등에 대해서 나와는 다른 관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역사관에 대해서도 좀 다른 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Dreher의 분석에 격하게 공감하는 것은 이것이었다.

지금 미국 사회는 너무 심하게 비기독교적이 되어버려서, 그 문화로부터 전략적 철수 (strategic withdrawl)을 하지 않고는 기독교가 기독교로서 살아남는것 자체가 힘들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그 속에서 영성을 지키고 사는 것, 자녀를 키우는 것, 교회 공동체를 만드는 것, 커리어를 갖는 것, 정치적으로 참여하는 것 등등에 대해 꽤 급진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나는 당연히 그 기본적인 전제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것이 있으므로 약간 껄끄럽게 읽은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완전 속 시원~ 했다!

나는 이런게 정말 급진적 보수 신앙이구나… 싶었다.
신앙의 색깔이 보수적이든 개방적이든지 간에, 급진적인 면을 잃어버린다면 생명력을 잃게 되는 것 같다.

나는 현대 기독교인들이 세상 속에서 살면서 세상 문화로부터 독배를 받아 마시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좀 위험하게 세상 속에서 싸우면서 살아가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치명적인 독배를 마신다고 생각한다.

그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Therapeutic moralistic deism의 신앙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그 독을 허용하는 치명적인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의 박해 하에서 사자밥이 되어가고 있는 순교자를 바라보면서,
착하고 순한 얼굴을 하고 두 손을 앞으로 뺀채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부른다고 생각해보라.
나는 현대교회가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이 생각을 해보곤 한다…. 그리고 나는 그 교회문화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고 말이다.

옛날에 했던 게임들

삼국지, 수호지, Civilization, 대항해시대, Sim City, Ultima…
나는 이런 종류의 게임을 좋아했었다. 대학때 시간이 나면 이거 하느라 밤을 샌적도 있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Civilization은 요즘까지도 계속 새로운 버전이 나오는 듯.

수호지 같은 게임은 거의 아무런 생각하지 않고 play할 수 있는 게임이어서,
얼마전까지만해도 좀 잡념을 없애면서 있고 싶을때 한번씩 play 하기도 했었다.
대개는 그렇게 게임을 play 하면서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설교를 듣고나면 생각과 마음이 가벼워지곤 했었다.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최근에 나온 게임은 사서 할 엄두도 안나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는 거다.
새로운 게임을 배우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그런것을 보면 내가 그런 게임을 했던 것은,
적어도 게임 자체를 즐겼다기 보다는 게임을 하면서 음악을 듣거나 설교나 강의를 듣는 그것 자체를 즐겼던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번 long weekend에는,
옛날 게임 하나를 download 받아서 한번 play 해보고 싶기도 하다. 시간이 될른지… ^^

스스로에게 물어보다

배가 뽈록 나온 사람이 fitness program을 광고하는 것은 우스꽝 스러운 일이다.
영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영어 회화책을 광고할수는 없는 일이다.
여자가 수염깎는 전기 면도기를 들고, 써보니 좋더라 라고 이야기하면 그냥 피식~ 할 뿐이다. (남자가 생리대를 들고 써보니 좋더라 하는 것도 마찬가지겠고… ㅎㅎ)

내가 복음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데 얼마나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복음을 누리고 있다는 것은 여러가지 차원이 있겠다.
– 풍부한 지혜를 동반한 지식
– 가슴 뜨거운 감격
– 변화된 인격과 인품
– 세상을 보는 다른 눈 (세계관) 등등…

이중 무엇 하나 가지지 못한 사람이 스스로 ‘사역자’라고 자처하며 뭔가 나서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이 참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떤 시대에는,
정말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참된지 그렇지 아니한지를 따져보지 않아도 될만큼 사역자들에게 복음의 능력이 충만할때가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어떤 사역자가 하고 있는 것이, 그 사람의 개인기인지, 그렇지 않으면 복음의 힘인지 분간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나는 물론 전임사역자도 아니고, 그렇게 될 생각도 없지만…
나 스스로를 생각하며 자주 묻는다.
이렇게까지 엉터리로 믿고 있는데… 과연 내가 무슨 이야기를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참 흥미로운 것은,
내가 만난 (내가 보기에) 진실된 크리스천 중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하면서 회의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내가 본 (내가 보기에) 거짓된 크리스천 중에서는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아이러니컬하다.

(그렇다고 내가 진실된 크리스천이라는 말은 전혀 아니다. -.-;)

참 좋은 대화

요즘 교회의 한 동생이 내 말동무가 되어주고 있다. ^^
회사가 가까이에 있어서 점심에 불쑥 와서 점심을 함께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저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이 깊어질때,
그 목마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
깊은 목마름과 함께 깊은 외로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럴때 그 목마름을 share하고 있는 사람과 30분이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마음이 많이 풀어지는 경험을 한다.

어제는 내게,
나와는 다른 시각에서 볼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였고,
나에 대해서 지적도 해 주었다.
참 좋았다.

감사한 일이다.

하이디

하이디는 우리집 개 이름이다.
쉘터에서 입양을 해 왔는데, 데리고 왔을때부터 아래 앞쪽 이는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여러가지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주인인 우리와도 완전히 친해지는데 1년이 넘게 걸렸던 것 같다.

아마도 사람들에게, 특히 남자들에게 abuse를 많이 당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집에서 특히 나와 친해지는 것은 더 어렵고 오래 걸렸다. 어쩌나 모르는 남자가 오면 많이 긴장하고 짖는다.

지난달, 하이디 목욕을 시키고 쓰다듬다보니 배부분에 종기같이 보이는 것이 있었다.
뭔지 몰라서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두주 지나도 그게 없어지질 않았다.
그래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유선암(mammary cancer)이란다.

얘기 나이가 벌써 12살~13살 정도 되었으니 꽤 나이가 먹었는데,
게다가 신장도 좀 좋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유선암 이라니.

지난 금요일, 그 유선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꽤 큰 덩어리를 잘라내었다고 한다. 종양이 있는 곳 말고 떨어진곳 까지 다 잘라 도려냈다고.

지난 주말,
하이디는 밤에 잠을 자지못하고 끙끙 거리며 힘들어 했다.
지금도 아직 항생제와 진통제를 계속 먹고 있다.

다행인건 어제부터는 계단도 어느정도 오르내리고, 그래서 밖에 나가서 대소변을 보는 가벼운 산책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아직도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계속 약가운에 헤롱헤롱하기도 하고,
가끔은 cranky해지기도 한다.

하이디가 유선암이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때,
얘 나이도 있고 하니… 어쩌면 이게 마지막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수술을 받고 회복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아직은 우리 곁에 몇년 더 있어줄수 있는 건가 싶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