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말에 취한다는 것

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하는 말에 취하는 잘못을 범하곤 하는 것 같다.

아니, 꼭 말을 잘하는 사람일 필요도 없다.
자기가 말을 잘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같은 우를 범한다.

내가 얼마나 객관적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일까 하는 것에 대해…
쉽게 판단하기 두려운 마음이 늘 있지만…

아마도 말을 잘하는 사람이거나, 내가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중 하나인 듯 하다.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열정적으로 나누고 나서,
그것이 Christian setting 에서이건, academic / professional setting 에서 이건…
나는 늘 내가 한 말에 취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한 말이 마치 모두 내것인양 착각을 하기도 하고…
뭔가 확신이 없다가도 내가 그렇게 말을 하고나면 더 큰 확신과 신념을 가지게 되는 듯 하다.

나는 그래서 일반적으로 presentation을 매우 즐긴다.
그것이 qualifying 시험이건, 회사에서의 발표이건, 설교이건, 기독교 관련 강의이건, 학회의 발표이건 간에…

아주 심한 narcissism 이다.
정말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자꾸만 미끄러지는 나를 본다.

===
지난… 두주 반 정도동안…
강의/설교/메세지…에 해당하는 걸… 5개를 했어야 했다. (허걱… 무슨 설교 vending machine도 아니고…) 그 후에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터널을 지나며

내 아내가,
UCSF에서 제공하는 specialty program에 들어가기 위해 interview를 하러 왔다가… 오늘 새벽에 다시 보스턴으로 돌아갔다.

UCSF의 specialty program 외에도,
이 동네의 몇군데에 apply를 해 놓고 있는데…

이제 기나긴 터널의 끝이 보이고 있다.

터널을 지나고,
터널 밖에서 살 준비를 해야 할 때인 듯 하다.

DNC vs. RNC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나는 물론 투표권이 없지만…)

민주당과 공화당의 전당대회 연설들을 시간이 날때마다 들어보고 있다.

양당의 정,부통령 후보들의 연설들을 들으며 다시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은,
나는 도무지 공화당의 정책들에 환호를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중산층 백인 미국인들이 저런 정책을 가진 정당을 지지할 수 있을까… 싶다.

뭐… 하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한국의 서민들도 있는데… 뭐.
그것에 비하면 미국의 공화당은 양반이지.

추석

추석이다.

미국에서 맞는, 14번째의 추석이다.
한국에서… 큰아들 없이 추석을 14번씩이나 보내신 우리 부모님 생각에 마음이 참 아프다.
말씀은 안하셔도… 늘 허전하고 섭섭하고 그러실텐데.

나도 이렇게… 14년째,
마음이 무거운 추석을 보낸다.

Lordship

내가 80년대 90년대를 지내면서 받았던 신앙교육의 핵심은
이원론의 극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은 창조-타락-구속의 구조 속에서 이해되었다.

그러나…
정말 그 구조의 설명이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혹은 그 체제가 제공하는 시대정신에 휩쓸려 내려가고 있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대안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일까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크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의 상황을 제대로 address 하면서도,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개념일까.

나는 그것을 “LORDSHIP” 에서 찾는다.
아마도… 21세기 초반의 청년 그리스도인들에게….
discipleship의 핵심으로 이원론의 극복이 아닌 Lordship에의 강조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나름대로 지난 4-5년간의 묵상과 고찰을 통해서 내 나름대로는 정리를 해가고 있다.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자세히 정리해보아야 할 듯 하다.

네 부류의 사람들

어떤 이들은, 자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자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비해 자신만을 돋보이게 한다. 이는 그 사람의 의도와 관계 없이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높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 그러나 다른 이들을 그런 마음 없이 산다.

위의 두가지 분류를 종합하면 다음의 네가지 조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높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주변의 사람들을 돋보이게 하는 사람
(2)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높이겠다는 마음은 있으나 주변의 사람들을 돋보이게 하지 못하는 사람
(3)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높이겠다는 마음은 없는데 주변의 사람들을 돋보이게 하는 사람
(4)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높이겠나는 마음도 없고, 주변의 사람들을 돋보이게하지도 않는 사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4)번의 유형에 해당할 것이다.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깎아 내려서라도 자신이 높아지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죄된 본성의 자연스러운 증상일 것이다.

(3)번의 유형에 해당하는 사람도 이론적으로 가능할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런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

(2)번 유형의 사람은,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지고는 있으나, 막상 그 올바른 마음가짐을 제대로 이루면서 살아가는데 미숙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높이고자 하지만, 어떻게 하면 주변의 사람들을 진심으로 높일 수 있는 것일지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

(1)번 유형의 사람은, 매우 드물지만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오래 마음에 감동이 남는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아마도 2번과 4번의 중간쯤 되지 않을까.

특히,
내가 가끔 주변 사람을 높여주려고 마음을 먹고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도,
때로 나의 미숙함과 지혜롭지 못함으로 결국 다른 이들을 깎아내리게되는 잘못을 범하는 일들을 최근 많이 겪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더 성숙해져…
내 겸손도, 다른 이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과 배려와 존중도…
짜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되는 날이 내게도 올까.

사람에 대하여 포기하지 않기

내가 존경하는 어떤 형의 이야기.

이 형이 1년동안 자신이 살고 있는 지방을 떠나 다른 지방에서 지내야 할 일이 있었다.
이 형은 신문에 나거나 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학문의 세계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고, 그리스도인으로서도 알수 있는 사람에게는 알려진 정도의 사람이다.

이 형이 임시로 있어야하는 그 지방에 있는 어떤 대형교회에 1년동안 나가게 되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도, 이 형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는 아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 형이 1년동안 다닌 이 교회의 담임목사님께서 아주 치우친 번영신학의 message를 반복해서 이야기하였다.

처음 몇번은 그러려니 하면서 지나쳤는데,
나중에는 매우 힘들게 그 message들을 들었다고 한다.

이 형은 그 교회의 젊은 부목사님들과 대화하면서,
우선, 그 젊은 부목사님들이 그 번영신학의 message에 동의하는지 조심스럽게 여부를 물었다.
그리고 그 번영신학의 message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그 부목사님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만일, 당신이 그 목사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당신의 job security를 포기하고서라도 그 목사님에게 고언을 해야 합니다. 그 이야기를 그 목사님이 수용하고 수용하지 않고는 둘째 치고라도, 그 고언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당신은 후에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이 형은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에게 진정으로 사랑어린 충고를 결국은 하였다. 그 목사님을 얼마나 개인적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지, 그 목사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신앙의 도움을 학생때 받았는지 하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그러나 목사님의 현재 message가 치우쳐져 있다고. 목사님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전혀 변하지 않았으나 목사님의 message를 매우 안타깝게 들어왔다고.

이 형과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참 많은 것을 생각했다.

어떤 사람에 대하여 나는 너무 쉽게 포기하고 마는 듯 하다.
그냥 어떤 사람이 ‘이러이러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나는 그냥 거기서 멈추어 더 이상 어떤 노력을 하려 하지 않는 듯 하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한이 있어도,
그 사람이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사람의 변화를 위해 기도하고 고언하고 충고하는 그 형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부끄러웠다.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다는 것…

KOSTA에게 나는 무엇일까… KOSTA는 내게 무엇일까…

지난 주말의 KOSTA 간사 모임 이후,
여러가지 생각을 해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KOSTA가 내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은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난 주말 모임 이후,
내가 KOSTA에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그리 많이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사실은, 별로 그런 관점에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마치 ‘I am somebody’라는 교만한 생각이 될 것 같기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할 자신도 없었고,
또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두려웠다.

그러나, 이제… 조심스럽게 그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KOSTA에 과연 무엇일까.

중요한 이정표가 될 모임

KOSTA를 처음 ‘참석하는 사람’으로 알게 된지 이제 13년 째가 되어 갑니다. 그리고 ‘box 나르는 사람’으로 알게 된지 이제 10년째가 되어 가고요.

그동안 아마 저도 간사모임이라는걸… 20-30번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중 KOSTA 역사에 남을 이정표가 되는, 제가 경험했던, 간사모임들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어떤 것은 그 당시에도 “이것이 역사적인 모임이구나” 하는 것을 알기도 했고, 어떤 것은 그 당시에는 그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 모임인지 알지 못했지만 돌이켜 보면 KOSTA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저는,
이번 간사모임이, KOSTA의 24년 역사 속에서,
“한 획을 긋는” 모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지금으로부터 10년여 후에, 우리의 간사 후배들이,
“그때 메릴랜드에서 모였던 2009 kick-off 간사모임에 모였던 선배들” 이야기를 하면서 코스타 역사를 찾아서 presentation을 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간사님들을 뵈면서,
이렇게 하나님 나라에 순수하게 헌신하는 분들을 이렇게 모으셨는데, 우리 주님께 이 사람들을 봐서라도 KOSTA를 통해 시대와 역사를 움직이시길 간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현직 간사’로서 누리는 마지막 kick-off meeting이 었을텐데…
이렇게 멋진 모임이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수고하신 현지 간사님들,
모임을 기획하고 섬기신 윤여재-조한상-김동민 간사님들과 여러 task-force team 여러분들,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존경하는 간사님들,
빡빡한 일정, 불편한 잠자리에도 다 함께 참여해 주시고 열띤 논의도 해 주시고, 함께 기도해주시고… 그저 그 자리에 계셔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또 한해 이렇게 뛰어 봅시다!


KOSTA 간사보드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