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에 맞설수 있는 용기

나는 어머니로부터 신앙을 전수받았다.
20년이 넘도록 나는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신앙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대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것이 세상을 꿰뚫는, 세상을 뒤집는 진리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이 1989년이었다.

내가 대학교 1학년이었던 1987년은, 한국에서 철권통치가 막을 내렸던 역사적인 해였다.
물론 1987년이후에도 여전히 독재정권의 후예들이 정권을 잡았고, 진정한 의미의 민주정권이 등장한것은 그로부터 자그마치 10년 후였지만.

1989년, 하나님나라 라는 진리에 눈을뜨고 내가 아주 안타깝게 생각한것 가운데 하나는,
내가 철이 없는 대학교 1학년 시절에…
불의에 맞설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을 놓쳐버렸다는 것이었다.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거나 화염병을 던지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던것이 아니었다.
참으로 치욕스러운 불의가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그것에 대하여 분노조차도 제대로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부끄러웠다.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이 끝났다.
2002년 대통령 선거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했던 연설을 들으며,
21세기에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를 다시 생각해본다.

참고로,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나온 뉴스들…
이시대 대한민국 검사님들과 판사님들의 정치감각은 정말 뛰어나다. 예수님 시대의 헤롯의 정치감각이 느껴진다.

김경준 – BBK 건 유죄 판결
정몽준 – 뉴타운 허위사실 공표 건, 벌금 80만원형, 의원직 유지.
이건희 – 에버랜드 전환새차 발행건, 무죄 판결
촛불집회 강경진압에 반대한 전경에 2년 구형

Leaving Boston

지난 주말, 보스턴에 가서 짐싸고… 버릴 가구 해체해서 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줄 가구 실어서 보내고…
recycle 할것들 모아서 내놓고,
donation할 것들 모아서 donation 하고 하는 일들을 했다.

어제밤에는 이사짐 운반업에서 와서 짐들을 다 싣고 떠났다고 한다.
내가 없이 아내와 아이만 있는데 하게 되어서 영 마음이 쓰였는데…

드디어…
권오승-김수영-권민우 가족의 Boston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정확하게는… 뭐 아직은 거의 열흘 정도의 시간이 남았지만.

헌신에 관하여

지난 금요일에는 헌신에 관하여 KCF 학생들과 말씀을 나누었다.
대략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0. 인간은 누구나 헌신의 대상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헌신의 대상을 제대로 찾을때야 존재가치를 찾게된다.

1. 헌신의 대상은 자신보다 큰 것이어야 한다.
자신보다 작은 것은 헌신의 가치가 없다.
보통 성공, 행복등에 헌신을 하는데, 성공이나 행복은 나 자신보다 큰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에 헌신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보통 그것이 나 자신보다 큰 것이냐를 판별할 수 있는 판별식은, 내가 그 가치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느냐 하는 물음이 논리적이냐 하는 것이다.
가령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죽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행복은 자신을 채워주는 요소이지 자신을 지배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2. 헌신의 대상은 행동이 아닌 가치(value)여야한다.
심지어는 그 행동이 매우 고귀한 것이라하더라도.
가령 어린아이들을 복음으로 양육한다는 가치에 헌신하는 것은 적절한 일이지만, 무슨 무슨 교재를 사용해서 어린아이들을 양육한다는 방법론에 헌신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3. 복음을 사유화(privatize)하지 말아야 한다. 복음에 헌신한다고 했을때 흔히 사유화한 비뚤어진 복음에 헌신하는 경우가 많다. 거대담론(Meta Narrative, Grand Narrative)의 틀 안에서 개인화(personalized)된 복음을 가지고 상황을 보아야 한다. 사유화는 개인화와는 매우 다른 개념이다.
흔히 거대담론을 이해하지 못한채 헌신하려 하기 때문에 잘못된 헌신의 모습을 보이는 일들을 본다.

우리가 헌신할 궁극적 거대담론은, 결국 하나님 나라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도 졸지 않고 들어준 우리 형제 자매들이 대견하다. ^^

아직도 내 마음속의 대통령은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이 가졌던 가치를 내가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또 정치인 노무현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능력있는 정치인이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2002년 정치인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 마음의 대통령은 노무현이다.

한국의 조중동과 기득권 세력이 그렇게도 밟아죽이려고 했던 정치인,
경상도 민주 세력을 독재정권에 상납한 3당 합당을 거부한 정치인,
차떼기식의 금권정치를 거부한 정치인,
언론이 아닌 찌라시인 조중동에 정면으로 맞설 용기를 가졌던 정치인,
친일과 독재로 점철된 한국 정치역사를 바로잡으려 노력했던 정치인,
정당한 논리나 정책을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지역주의와 싸웠던 정치인,
부당한 기득권, 권력에 저항하여 권력을 잡았던, 대한민국 최초의 정치인,
남북관계, 대미관계를 자신의 정치적 수단으로 삼으려 했던 세력과 정면으로 맞섰던 정치인.

정치인 노무현은 결코 완벽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정치인 노무현의 ‘무능함’은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를 구현하는 일을 막았다.

그러나,
나는 2002년 대통령 선거의 상황이 다시 온다고 해도,
정치인 노무현을 다시 지지할 것이다.

나는 2002년 이후, 내 마음의 대한민국 대통령을 아직 바꾸지 않았다.
언젠가 한국의 정치 지형이 바뀌어서, 내 마음속의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을 마침내 떠나 보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도한다.

땜빵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내 헌신의 동기의 순수함을 지키는 것은, 가장 핵심적인 영적 싸움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스스로 순수한 동기의 헌신을 하면서 섬기고 살아가다가보면,
그 동기의 순수함을 위협하는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때로는 그 장애물로인해 생긴 불균형과 부족함을 감당하고 차선을 선택해야 하는 일들을 만나는데…

이상주의, 완벽주의와는 거리가 먼…
차선을 선택해야하는 이런 상황은… 순수함과 싸우도록 요구받는 사람들에게 큰 부담이자 아픔이 된다.

요즈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러한 사실들을 여러번 곱씹게 된다.

헌신의 특권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KOSTA 간사들이 간사 수양회를 할 장소를 물색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장소를 찾지 못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선배중 한분이, 큰 집을 소유하고 있는 어떤 분께 말씀을 드려서 자신의 집을 간사들 수양회 장소로 제공하도록 arrange 해 주셨다. (정말 어마어마한 저택이었다! 집 이쪽 끝 부터 저쪽 끝 까지 가는데 한참~이 걸리는)

그때 그 선배님은 그 집 주인에게…
“당신의 집에서 KOSTA 간사들이 수양회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참 황당한 접근이다!
아니… 자신의 집을 내어 놓는 희생과 헌신을 그렇게 ‘뻔뻔스럽게’ 요구하다니.

이 선배님은 주변에 돈이 많은 분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 돈을 가치있게 사용하도록 하는 일도 아주 멋지게 하신다.
KOSTA를 위해 헌금하도록 설득하면서… 헌금을 하는 것이 얼마나 그분에게 커다란 기쁨인지 하는 것을 말씀하신다.

헌신은 자신의 것을 억지로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가치에 자발적이고 기쁘게 하는 것이라는 당연한 원칙을 당당하고 떳떳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런 선배님과 함께 있다보면…
정말 나의 재물과, 시간과, 열정과, 재능과 땀을 드려 헌신하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복음은 세상을 뒤집는 가치

복음은 세상을 뒤집는 가치이다.
그러나 현대에 그 복음은 민중의 아편으로 전락해 버렸다.

자크엘룰의 이 말이 요즈음 더 뼈속 깊숙히 느껴진다.

복음을 아편으로만 여기며 생각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복음이 진정으로 세상을 뒤집는 가치임을 설득할수 있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마치 아편중독자들같이,
종교의 아편에 빠진 이들에게… 복음을 보여줄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사람을 세우는 것

사람을 세우고 양육하고 훈련시키는 일만큼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 또 있을까.
사람은… 참 잘 변하지 않는다.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틀을 깨고 그 이상으로 발전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정말 사람의 힘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사람을 세우고 양육하고 훈련시키는 것이외에 다른 무엇에서 소망을 찾을 수 있을까?
아무리 그 일이 나를 지치게 하더라도… 결코 그것을 포기할 수 없다.
그것 이외에,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게하는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

텅빈 집

새집으로 이사온지 거의 열흘이 되어간다.
아직도 우리 다람쥐 두마리가 들어오려면 한달가까이 더 있어야 한다.

내가 가지고 들어온 짐은 별로 되지 않기 때문에,
에이… 그냥 뭐 이렇게 대충 널어놓고 살다가 나중에 정리하지… 하면서 지저분하게 지내다가,
지난 수요일 저녁에는 마음먹고 자그마치 30분이나 들여 널어놓은 짐들을 다 정리했다.

정리하기 이전엔 그래도 꽤 짐이 많아보였는데 ^^
정리를 하고 나니… 집이 더 텅 비어보인다.

텅빈 이 집도, 텅빈 내 마음도, 늘 바쁘지만 텅빈 내 일상도,
채워질 날이 이제 불과 한달 남짓 남았다.

시간이 부족한가, 열정이 부족한가, 체력이 부족한가

요즈음,
내가 하고 있는 일 하나 하나에 정말 마음을 쏟아 하고 있지 못한다.

사람들을 말씀으로 섬기는 일이나, 회사에서 실험을 하는 일이나, 사람들을 대하는 일이나, 아주 단순한 노가다 까지도…
하나 하나에 마음을 쏟아 하지 못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전같으면 쉽게 그 이유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 으로 돌렸던 것 같다.
하는일이 많고, 시간이 없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건 아니다.
나에게는 여전히 빈둥거리며 그냥 지내는 많은 시간이 있고…
훨씬 더 시간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렇다면,
체력이 부족한걸까.
내가 체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꾸만 쉬어주어야 돌아가는 걸까.
글쎄, 그것도 딱 맞는 분석은 아닌 것 같다.
지치지 않은 상황에도 쉽게 게을러지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열정이 부족한걸까.
매우 정답에 가까운 분석인 것 같긴 하지만…
열정의 부족으로 모든 것을 덮어씌우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원인일까.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내가 많은 일들에 마음을 담아 할때와 그렇지 못할 때 큰 차이 가운데 하나는…
내 기도생활의 건강함이다.

내 기도생활이 삶의 모든 부분을 엮어 주는 힘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내 삶의 모든 부분이 잘 정리되고 엮여졌을때 기도가 잘 되는 것인지…
닭과 달걀의 argument인 것 같기도 하고…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