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욕

최근에 들은 이야기.

어느 교회에서, 예수 잘 믿는 부부가,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렇게 지냈다.

담임목사가, 그 부부를 견제하여, 교회에서 아무일도 못하게 만들더니,

결국은 그 부부보고 ‘이단’이라고 교회에서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그 성경공부 가지 말라고…

예수 잘 믿는 이 부부는,

이걸 황당하다고 받아들여야할지, 억울하다고 해야할지, 분통이 터진다고 해야할지…

정말…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듣고,

중학교때 이후로 하지 않았던 ‘쌍욕’을 혼자 막 퍼부었다.

이 씨x놈, 개x끼, X같은 새끼, 찢x 죽일놈.

그래도 성이 풀리질 않아,

하나님께 그 담임목사 X새끼에게 저주를 퍼부어 달라고 막 기도했다.

그런 새끼는, 

하나님도, 심판도, 죄도, 믿지 않는게 분명하다며…

정말 혼자 쌍욕을 퍼부었다.

참람한 (신성모독의) 죄를 지으면,

구약에서는 돌로 쳐서 죽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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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대하는 상대가 너무 악할때,

내 정당함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하는 상대가 너무 악하기 때문에,

내 악함이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런 쌍욕은 하지 않기로 했다.

씨x놈… 개x끼…

오늘까지만 욕을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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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저는 좀 화를 덜 낼테니,

주님께서 좀 화내어 주십시오.

또 다시 Dresden 출장

1.

이번주에는 또 다시 독일에 와 있다.

이번에는 지난번과는 다른 hotel에 묵었다.

그런데, 이쪽 동네도 정말 장.난.아.니.게. 예쁘다.

사진의 퀄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영 못마땅한 사진들이겠지만, 밤에, 전화기로 대충 찍은 사진이니… 

2.

이번 출장에는, 유난히… 정말 유난히 바쁘다.

점심 먹을 시간 찾기가 쉽지 않다.

낮에는 이쪽 일을 하고, 밤에는 미국 쪽 관련해서 conference call을 하고…

호텔 바로 앞쪽에도 한번도 나갈 기회도 찾지 못하고 있다.

아침 6시 반 아침 식사, 점심은 기회가 허락하면 간단히… 방문하고 있는 연구소에서 때우고, 저녁은 8-9시쯤 다시 호텔에서…

3.

게다가 이쪽에서의 일이 영 신통치 않게 잘 안된다.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겨서, 실험의 일부가 실패하게 될 것 같다.

음… 아주 마음이 무겁다.

4.

그저께, 아내와 전화를 했는데, 집의 water heater에 leak이 생긴 모양이다. 그래서 물도 세탁실 쪽으로 새고… 

아내도 많이 바쁜 와중에 그걸 처리하느라 힘이드는 것 같았다.

멀리서 무슨 도움이 될 수도 없고…

정말 답답하고 우울하고…

5. 

이런 와중에 처해있는 나를 가만히 보니…

나는 참 많이 불안해 한다.

일이 잘 안될까봐. 내 아내가 너무 많이 힘들어 할까봐. water heater 때문에 많이 고생할까봐…

그리고 그것의 해결책으로, 정말 extra energy를 내어서, “해결해야해!” 이렇게 반응하며 뺑뺑이를 돈다.

이런 mode가 작동되면,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데 방해가 되는 사람들은 모두 내게 ‘적’이 된다. -.-;

6.

때로 내가,

내 가족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끼는 후배들에게…

‘폭군’과 같이 대할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대개 내가 이렇게 ‘panic’해서 extra energy를 내고 있을 때인 것 같다.

얼른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모든 요소를 ‘제거’해야한다고 느끼고…

그러면서 그 사람들에게 ‘폭군’과 같이 대하는 것 같다.

7. 

재미 있는(?) 것은, 내가 당면한 과제가, 어떤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나 위로하는 것이라고 할 때에도, 그 사람을 도와주고 위로하는데 장애가 되는 그 사람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내 원래 동기와 정 반대의 행동을 하거나, 지혜롭지 못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8.

눈이 덮여있는 Dresden은 참 예쁘다.

구석 구석 예쁘게 꾸며진 거리도 있고, 멋진 오래된 건물들도 많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별로 예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으쌰 으쌰 하고 있는 내 모습도 그리 예쁘지 않다. -.-;

(두개의 시리즈 글들은 다음주 계속됩니다. ^^)

후배들 화이팅~ ^^

그래도 나름대로 KOSTA를 열심히 섬겼었다.

KOSTA 생각하며 기도도 많이 했고, 울기도 많이 울었고, 기쁨도 컸다.

KOSTA일 제대로 못해내는 악몽도 많이 꿨고 ^^

생각해보면,

나는 선배들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전수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후배들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 것 같다.

오늘부터,

후배들이 KOSTA 사역을 위한 모임을 갖는다.

뉴욕에 벌써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는 모양이다.

늘 후배들에겐 미안한 마음 하나 가득이다.

함께 하는 것도 미안하고, 함께 하지 못하는 것도 미안하고…

우리 섬기는 후배들을 생각하며,

가슴 찡~ 하지  않게 되는 때가 언겐가는 올까?

우리 후배 간사들 화이팅!

수양회 설교

참 오랜만에, ‘설교’를 하게 되었다.

이 전 직장에 다니면서 여러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서 그럴 기회에 적극적으로 involve 하지 않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신앙/신학적 고민이 나름대로 깊어, 마음을 담아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하는게 자신이 없던 터였다.


그런데, 이번 수양회 강사로 가는 이 교회로 부터는,

작년 수양회에 한번 초청을 받았다가 거절했는데,

이번에 또 한번 부탁을 받아 정말 딱 잘라 거절하기가 많이 어려웠다.


작년 11월에 부탁을 받고, 정말 많이 많이 망설이다가, 

순전히 ‘인간적으로 미안해서’ 가기로 약속을 했다.


이번 수양회 message를 준비하면서, 참 많이 힘들었다.

12월 마지막주말까지 설교 개요와 소그룹 성경공부 discussion 자료를 보내주기로 했는데, 결국 deadline을 넘겨야 했다.

어떻게,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아주 막막하게 느껴지는 기간이 아주 길었다.


결국, 복음의 개인적 차원, 복음의 거시적 차원 (하나님 나라),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에 헌신함 이렇게 세번의 message를 하기로 가닥을 잡고, 정말 막판까지 message 준비를 하고… 

이제 오늘 저녁 message를 시작으로 수양회를 시작한다.


가끔, 아주 자신있게 message를 준비하고 갔다가 그야말로 영~ 별로인 경험을 하기도 하고,

혹은 별로 자신없이 준비하고 갔다가 하나님께서특별히 함께 해 주셔서 사람들의 마음에 생명이 심겨지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참 오랜만에,

정말 자신없이… 설교하러 떠난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긍휼함을 베풀어 주시길…


(시리즈 글은 월요일에 계속됩니다. ^^)

My New Year’s Resolution: 근시안적 시각을 갖기

매년, 나름대로 New Year’s Resolution을 만들고, 그걸 지키려고 노력해왔다.

금년에는… 음….

그런거 없이 갈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New Year’s Resolution을 만들면서, 생각과 고민은 정말 많은데,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많이 하는데…

정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뭐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도,

매년 하던거 안하면 허전하니까… ^^

New Year’s Resolution은, 가장 New Year’s Resolution 갖지 않은 걸로.

“근시안적 시각을 갖기”

이다.

나는 늘 너무 지나치게, ‘General’한 설명을 찾으려고 노력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큰 그림에 집착하면서, 전체의 조망을 하지 못하면 지극히 답답해 하곤 한다.

운전을 할때도, 어떤 project를 할때도, 공부를 할때도… 심지어는 하나님을 믿는 것도.

이게 뭐 아주 나쁜건 아닌데,

문제는 이런 습관이 자꾸 몸에 배다보니,

전체의 로드맵을 ‘내것’으로 소유하고 싶어하는 욕심이 많이 생기곤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한걸음 한걸음 주님과 동행하며 걸어가는 삶을 사는 것을 깊이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최근 많이 깨달았다.

그래서,

새해엔, 근시안적 시각에 좀 더 만족하는 노력을 해보기로 했다.

내가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하더라도 그냥 그것에 만족하고 머무는 것.

하나님을 신뢰하고, 좀 맡겨 보는 것.

새해다!

성탄은 슬프다

어릴때, 크리스마스는 늘 기분 좋은 날이었다.

머리 맡에 ‘산타’가 가져다주는 선물도 좋았고,

크리스마스라고 거리에서 나오는 캐롤도 듣기 좋았고,

교회에서 성극 연습하며 노닥거리는 것도 좋았다.

좀더 철이들어 세상을 보니,

사람들은 심하게 어그러져 있고,

그 어그리진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은 더 심하게 망가져 있다.

젊은 시절에 꿈꾸었던 세상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무기력함도 몰려오고,

싸워야할 대상이 ‘저 나쁜놈’이 아니라,

내 이웃, 내 가족, 내 자신임을 발견하며 어쩔줄 몰라하게 된다.

어그러진 세상 속에서 ‘다른 소망’을 찾아 헤메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높고,

그 와중에 ‘참 소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사그러져 들어가는 듯 하다.

첫 성탄 역시 그렇게 슬펐다.

남자를 모르는 틴에이저 여자아이는 임신을 했고,

결국 돌보아주는 사람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총각 남편’밖에 없는 마굿간에서 애를 낳았다.

그 즈음에 당시 독재자는 아이들을 학살했고,

폭력으로 이스라엘을 되찾으려는 시도, 종교적 율법주의로 회복해보려는 시도 등등이 어지럽게 나돌고 있었다.

그때,

하층민 가운데 하층민이었던 목동에게,

새로운 소망이 있다는 소식이 들렸으나,

그것은 아무런 파급효과도 없었다.

30여년 뒤,

그 어린아이는 십자가 처형틀에서 잔인하게 처형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승리’의 이야기이다.

성탄이 슬프지 않다면,

아마 충분히 세상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성탄이 슬픔에만 머물러 있다면,

복음을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한때 나는,

세상을 모른채 복음을 안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는,

세상을 좀 더 알게 되었고… 정말 내가 복음을 제대로 알고는 있는걸까 싶을때가 많다.

안녕하지 못한 시대에, Merry Christmas

어제 설교에서,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예수의 삶이 이야기하는 것은,

누구나, 그 상태가 어떠하던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확한 quotation은 제대로 못받아 적었다. ^^)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설교자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설교후 기도 시간에 흐르는 눈물을 열심히 닦아낼 수 밖에 없었다.

겉으로 조금 흐르는 눈물 말고도, 내 마음 속에서는 더 많은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참, 안녕하지 못한 세상이다.

너무 심하게 깨어져 있어… 우리 안에 어떤 소망을 찾을 수 없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 속에,

예수께서는 가장 힘없는 어린아이로 오셨다.

Merry Christmas!

하나님의 인도? 하나님의 인도!

1.

나는 재료공학을 공부했다. 

그것도 박사까지 했다. 석사학위도 두개나 있고…
15살에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나는 늘 ‘이공계’ 학생, 직장인이었다.
이제 30년 넘게 이 바닥에 있게 된 것이다.
2.
대학교 3학년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기존의 모든 가치관이 붕괴되는 멘붕을 겪었다.
또한 새로운 세계가 열려 나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가치관의 변화와 혼란을 겪었다.
그러는 와중에, 나는 내 전공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갖게 되었다.
소위 기독교적 세계관이라는 관점으로 보아 내 전공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하는 의문도 있었고,
어쩌면 더 큰 것은… 내가… 기존에 내가 생각했던 것 만큼 이 전공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것이 컸다.
복음으로 나 자신을 좀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3.
스무살에, 나는 나름대로 많이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 몸에 맞지 않는 이 옷을 이렇게 평생 입고 갈까.
고민하던 끝에, 그냥 이대로 가기로 결심했다.
아직은 잘 모르지만, 내 삶을 내가 다 optimize해서 가지 않겠노라고, 하나님께 미래를 맡기겠노라고 하는 내 일종의 신앙의 표현이었다. 
4.
지난 25년여동안, 참 많은 사람들과 성경공부를 했다.
나랑 성경공부 하다가 목사가 된 친구들도 있다.
어떤 목사는, 20년전 나랑 일대일로 성경공부 한 것이 자신의 신앙의 base가 되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중 어떤 친구는, 참 목사되지 않아야 하는데… 목사가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자기가 기존에 하던 일이 잘 안되니까… 방황(?)하다가 에라 신학교 가자… 이렇게 결정하는 것도 봤다.
그때 내가 좀더 적극적으로 그 친구의 그런 결정을 막아야 했을까 하는 생각은 계속 나를 사로 잡는다.
그런데 그렇게 목사가 된 친구들이,
대부분 목사로서 잘 산다!
설교도 잘 하고, 성도들도 잘 섬기고… 물론, 예수도 잘 믿고. ^^
5.
내 나이 40이 되기 전까지,
나는 거의 매년 신학교를 가야하는게 아닐까 하는 고민을 했었다.
신학교 원서를 써놓고 보내지 않은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잘한 일이었다. ^^
6.
어떤 경우에는, 자기가 가고 있던 길을, 신앙 안에서 계속 가기로 결정할 수도 있고,
다른 경우에는, 자가가 가는 길을 과감하게 바꾸어서, 신앙 안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
나는 이 경우,
소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려는 자세보다,
내 의지와 생각과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내가 결정을 내리는 일이 그 사람을 매우 건강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런 결정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친밀하게 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는 것 같다.
7.
목사가 된 후배들, 엔지니어로 계속 살기로 한 나…
나는 그 결정의 결과보다, 그 결정의 과정이 더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결정의 과정을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8.
뭐 이 나이에 내가 새롭게 신학교에 간다거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지금 내가 있는 이 위치가 permanent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늘 인식하면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다.
9.
세상은 안녕치 못하고, 사람들을 분완전한데,
하나님께서는 통치하신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다. 평화의 왕. Merry Christmas!

Transition

이전 회사에 다닐때,

소위 ‘Vendor’에 많이 방문 했었다. – 한국식으로 하면 하청업체라고나 할까.

Vendor에 가면, 정말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회사의 CTO 정도랑 맞장을 떠서, 그 CTO 밑에 있는 사람들이 내 말을 듣도록 할수도 있었다.

기차 역에서 내리면, 그 Vendor의 project manager가 기차 역 바로 앞에서 차를 대고 기다렸다가 나를 픽업하기도 했다.

어떤 회의실에 들어가면, 나이 지긋한 분들이 모두 넥타이에 정장을 하고 있는데, 나 혼자 청바지에 티셔츠 입고 들어가서, 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어떻게 하라고 ‘지시’를 하기도 했다. 그럼 그 사람들은 모두 자기 노트에 내가 말한것을 적었다.

나는, 이런 환경 속에서, 자신이 뭐 대단한 사람인양 뻐기는 사람들을 참 많이 봤다.

이제 30대의 엔지니어가, 50이 넘은 다른 회사의 중역에게 고함을 치고, 무례하게 대하는 것도 봤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망가지지 말아야 겠다고 결심, 결심, 또 결심 했다.

=====

지난주는 독일에 있는 한 Vendor에 갔었고,

이번주는 미국 동부에 있는 한 Vendor에 왔다.

이 사람들은,

위에서 적은 것 같이 나를 그렇게 대접하지 않는다. ^^

기차역에서 ride를 주지도 않고, 모두들 넥타이 정장으로 나를 맞아주지도 않는다. 내가 이야기한 것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고, 내 말을 노트에 받아적지도 않는다. 


음…

그런데…

막상 이런 대접을 받는게 살짝 이상하다.

아니, 왜 이 사람들은 나를 막 대하지?

가만 생각해보면 그게 당연한건데.

지난 회사에서,

그렇게 망가지지 않겠다고 다짐, 다짐 또 다짐을 했음에도…

내 자세의 한 구석은 망가져 있었던 모양이다.

이번 성탄 묵상

최근 몇년간,

미국 성서 유니온에서 하는 The Essential Journey to Bethlehem 이라는 묵상 자료집으로 성탄 묵상을 해왔다.


참 신기한 것은,

매년 성탄 묵상을 할때, 약간씩 다른 관점에서 묵상을 하게되곤 했는데…

금년 내 성탄 묵상의 theme은, ‘평화의 왕’ 이다.

소위 ‘안녕하지 못한’ 세상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그 사람들의 한계에 제한되지 않는 평화를 주러 이땅에 오신 주님.

그 주님이 이미 세상에 오신 것이라면,

그 주님을 경험하고, 그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하고 당연한 것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