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ear’s Resolution (2)

왜 내 성장/성숙이 멈추어졌을까?

내 결론은, 내가 ‘존재’하지 않고 ‘기능’하며 지내왔기 때문인 것 같다. ㅠㅠ

나름대로 꽤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이들 하는 여러가지 social media도 하나도 하지 않고, 다들 많이 보는 TV 드라마나 netflix 드라마도 뭐 하나 제대로 본게 없다. 내가 TV 시리즈를 제대로 본건 3년전엔가 응답하라 1988이 가장 최근것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사는 이유는…
정말 시간이 없다. ㅠㅠ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해야할 것들이 1.5배쯤 많다고 늘 느끼면서 살다보니,
난 그냥 살면서 늘 쫓긴다.

그렇게 해야하는 일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좋은 그리스도인 되기’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부지런히 성경공부도 하고, 주말에 조금 이라도 시간 나면 TV 드라마 보는대신 책읽으며 공부하고… 그러는 거다.

그런데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을, 그것을 이루기위해 하는 일들로 쪼개어서 생각하고 행동하다보니,
나는 계속해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같다.

New Year’s Resolution (1)

매년 새해들어 내 새해 결심을 정리해서 이곳에 적어보았었는데,
금년에는 이제야 키보드 앞에서 새해 결심 정리를 하게 되었다.

내 새해 결심은,
“Grow up” 이다.

보통 다른 사람에게,
Grow up! 이렇게 이야기하면…
제발 좀 철좀 들어라. 혹은 나이갚 좀 해라. 그런 뜻으로 사용된다.

나는 복음을 이해해가는 깊이가 깊어지면서 나름대로 꽤 많이 성숙/성장하는 과정을 거렸었다.
매일, 매주 단위로 내 성숙과 성장이 그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1년 혹은 2~3년 단위로 끊어서 생각해보면 그래도 어떤 면에서라도 조금씩
‘아, 그래도 내가 이건 좀 성숙/성장 했구나’ 싶은 면들이 있었던 것 같다.

지난 3년여의 기간을 돌이켜보면 그런 성장이 매우 더디어졌거나 거의 멈춰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3년전 내 모습을 기억해서 떠올려보면 지금의 내 모습이 그때보다 더 성장/성숙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음… 이건 분명히 심각한 문제다!

그래서 새해 내 결심은 “Grow up”이다.

Paul and the Gift (5)

그리고 나서 실제로 이 책의 거의 절반 정도는 이렇게 설명한 은혜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은 앞의 내용보다도 이 뒤의 내용때문에 이 책을 살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지금 갈라디아서부분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하고 있는데… 음…
어렵다. ㅠㅠ

하루에 한시간 남짓 겨우 시간내어서 공부하는 것으로는 이게 영 진도도 잘 나가지 않고, 이해도 어렵다.
그래도 어쨌든 연말까지는 적어도 갈라디아서부분만이라도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중이다.

그리고 또한,
아직 정확하게 이 책이 어떻게 New Perspective를 박살내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을 하지 못했다.

전반적으로는,
New Perspective에서 유대교도 은혜의 종교로 보았기 때문에 바울이 경계한 것이 유대교 자체가 아니라 유대교의 율법주의적/자민족중심주의적 경향이라고 해석했는데,
그건 ‘은혜’라는 개념을 너무 획일적으로 하나도 보았기 때문에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것 정도 대충 이해를 했는데,
뭔가 착~ 달라붙게 이해가 덜 되고 있다.

갈라디아서 본문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실제로 보면 조금 더 이해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 이런 것도 누가 좀 잘 이해하고 공부한 사람이 나 같은 비전문가에게 쭈욱~ 설명해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만 간절하다. ㅠㅠ

Paul and the Gift (4)

그리고나서 저자는 아주 긴~ 부분을 할애해서,
2차 성전기의 주요 문서들에서 선물/은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알아본다.

The Wisdom of Solomon (솔로몬의 지혜서)
Philo of Alexandria (필론)
The Qumran Hodayot (쿰란 호다요트)
Liber Antiquitatum Biblicarum (성서고대사)
4 Ezra (에스라 4서)

음.. 이건 워낙 분량도 많고, 읽어도 잘 모르겠는 것도 많고…
뭐 그래도 내가 생각하기엔 앞에서 설명한 선물/은혜의 개념을 2차성전기 문서들에 적용하면서 읽어보는 일종의 ‘연습문제’쯤 되는 것 같이 느껴진다.

Paul and the Gift (3)

그 다음에 저자는 소위 “Perfection”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오는데…
한국말로는 이걸 ‘극대화’라고 번역을 한 듯 하다.

Perfection 이라는 말은…. 음… 그러니까… 좀 쉽게 설명하자면 (그래서 부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은혜/선물’에는 여러가지 다른 특성/측면들이 있는데, 각각의 측면이 강조하는 모습들쯤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1. Superabundance (초충만성)
    은혜는 대단한 것. 엄청난 선물
  2. Singularity (단일성)
    선물을 주는 사람이 순전한 선의를 가지고 주는 선물. (일종의 unversality를 함의할수도)
  3. Priority (우선성)
    선물을 받는 사람이 무엇을 하기 전에 선물을 주는 사람이 먼저 주는 것.
  4. Incongruity (비상응성)
    선물을 받는 사람이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주는 것
  5. Efficacy (효과성)
    선물이 목표한 바를 이루는 것. 선물을 줌으로써 받는 사람에게서 그 의도한 효과/변화/결과가 나타나는 것
  6. Non-circularity (비순환성)
    선물을 주고 그 댓가를 전혀 바라지 않는 것.

저자는 이 여섯가지의 perfection을 바탕으로 역사적으로 어거스틴, 루터, 캘빈, 칼 바르트, E P 샌더스 (New perspective) 등의 관점들이 각각 어떻게 다르게 은혜를 이해했는지를 설명한다.

여기서 특별히 흥미로운 것은
소위 Old Perspective와 New Perspective가 모두 다 Priority와 Incongruity를 강조하는데,
New Perspective에서는 Ethinc Incongruity를 강조하고, Old Perspective에서는 Moral Incongruity를 강조한다.

Paul and the Gift (2)

저자는 이 책에서 ‘Grace’ / 은혜라는 단어를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연구해서 바라보았다.
실제로 바울 당시에 은혜라는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여러가지 그 당시 문헌등을 사용해서 연구해보았다.

실제로 저자는 ‘선물’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그 당시에 이해되었는가를 찾아보면서 은혜의 개념을 정리했다.
우리는 흔히 선물이라고하면 특별히 댓가 없이 주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바울 당시에 그리고 고대시대에 선물은 선물을 주고 받는 두 당사자가 관계를 맺는 다는 것을 의미했다고 한다.
그러니 선물을 줄때는 아무에게나 주는 것도 아니고, 선물을 받는 것도 그냥 받고 감사합니다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쉽게 선물받고 ‘생까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 사회였다. 특히 저자는 바울 당시의 그래코-로만 사회에서 여러가지 예를 들면서 선물이 ‘관계’를 형성하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벌써 여기까지만 들어도, 음… 은혜가 그러니까 일종의 댓가를 요구하는 거라고?? 하는 생각이 확~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소위 값싼 은혜 cheap grace를 아주 학문적으로 자근자근 밟아버린다고 할 수도 있겠다.

Paul and the Gift (1)

요즘 ‘Paul and the Gift’라는 John Barclay 책을 공부하고 있다.
음… 정말 ‘공부하고’ 있다는 말이 딱 맞다.
빡쎈 공부다. ㅠㅠ

이게 대중적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고, 그야말로 학술서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완전 빡빡하게 이해하기 어렵고, 게다가 양도 많아서…

이 책에 대한 평가는 정말 화려하다. 20세기 이후 성서신학 분야 최고의 책이라는 평가도 있고, 이 책으로 New Perspective가 끝났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SBL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 성서학회)에서 John Barclay와 N T Wright이 공개적으로 토론이 붙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참석했던 사람들에 따르면 토론은 Baclay가 사실상 이긴 분위기 였다고 ㅋㅋ)

이제 대충… 아주 대충… Baclay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살짝 이해가 될 듯 하다.
살짝… 신박하다! ㅎㅎ

좀 새로운 개념을 접했으니 당분간 Barclay가 이야기하는 개념을 염두에두고 성경을 읽게되지 않을까 싶다. ^^

현재 계획으로는,
연말까지 Barclay가 이야기하는 갈라디아서를 이해하는데까지 이해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혹시 내가 어느정도 이해했다고 판단이 되면, 내년 봄에는 갈라디아서 성경공부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 싶다.
그러면서 아마 자연스럽게 이곳 블로그에서도 내가 공부한 것들도 조금씩 적게 되지 않을까.

참고로,
아주 아주 쉽게 설명한 한국어 강의
아주 아주 쉽게 설명한 영어 책 요약 <– 참고로 이 사람의 youtube channel은 구독추천!

하나님 나라 follow-up을 하면서 (5)

기존에 교회에서 듣던 이야기로 이들에게 충분하지 않았다.

내가 꽤 생각을 많이 해야하는 이야기를 그것도 꽤 빠른 속도로 쭈루룩~ 풀어놓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아주 흥미롭게 듣고 반응한다.

일부는 철학 이야기,
일부는 신학 이야기,
일부는 기독교 변증,
일부는 역사 이야기,
그리고 일부는 삶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데,

이런 얘기는 잘 들어본적이 없다. 뭔가 막혀있던 것이 풀린다…
이런 식의 반응을 꽤 자주 듣는다.

모두가 그렇게 듣는다고 이야기할수는 당연히 없겠지만,
적어도 내게 반응해오는 사람들중에 다수는 왜 이런 이야기를 들어볼 수 없었을까요..
라며 신기해 하기도 한다.

하나님 나라 follow-up을 하면서 (4)

음악이 매우 중요하다.

나름대로 여러가지 신학적 개념들을 설명하기도 하고,
역사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이후에도 대개 나눔은…

“오늘 나눈 이야기에 딱 맞는 찬양 한곡을 띄웁니다”… 이런 방식이다.

내가 20, 30대일때도 그랬나?
우리도 물론 사람들 모이면 기타치면서 찬양을 부르기도 했고,
우리 세대야말로 두란노 경배와 찬양이 처음 시작되는 것을 경험한 세대이니…
당연히 찬양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경향이 훨씬 더 한것 같다.

하나님 나라 follow-up을 하면서 (3)

지극히 신앙이 개인적이다.

20-30세대가 공정에 관심이 많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사회 정의에 관심이 많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게 신앙에 관한 discussion에 들어가면 결국은 다 그래서 ‘나’에 대한 질문들로 귀결된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잘 알 수 있는가
내가 기쁨을 유지할 수 있는가
내가 어떻게 더 성장할 수 있는가… 등등.

하나님 나라는 내가 들어가는 것이라기 보다는,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라는 이야기를 설명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이게 신앙에 열심이 있는 사람들의 특징인지, 아니면 일반적으로 20-30세대의 특징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내 생각엔 일반적인 특징인 것 같다.)
결국 그렇게 사회정의나 공정에 대한 관심도,
그 사회 속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살아남느냐 하는 것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비롯된것 같기도 하다.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는 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라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