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KOSTA 후기 (6)

나는,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내가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압박이 있다.
그건 나는 내가 다니는 회사보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에 이익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하긴 하겠지만, 내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그래서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KOSTA에서 뭔가를 하고싶다는 바람도, 해야한다는 압박도 없다.
나는 내가 KOSTA 언저리에서 뭔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긴 하지만,
정말 내가 KOSTA에 필요가 없게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기도 하다.
그런의미에서 내가 KOSTA 언저리에서 계속 머물고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이기적이지 않다.

내가 예전에 실무를 할때 아주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나는 KOSTA에 중요한 사람이다’를 강조하며 들이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
그때야 한국교회가 더 힘이 있었고, KOSTA name value를 가지고 덕을 보려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니…
그 모습들을 많이 보면서.. 아… 정말 추하다… 는 생각 참 많이 했다.

그래서 나는 KOSTA를 대하면서 늘 그게 조심스럽다. 혹시 내가 그렇게 남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일 염려되는 것이다.

이번 봄부터 나는 ‘금년 KOSTA 컨퍼런스에는 꼭 빠져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 첫번째 이유는, 지난 두해동안 이래저래 좀 눈에 뜨일만한 일을 맡아서 했기 때문이었다. – 저녁집회 기도
나는 그게 마음에 큰 부담이었다.
어떻게든 ‘내 스타일’이 ‘코스타 스타일’로 굳어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아예 컨퍼런스를 빠져야 혹시라도 저녁 집회 기도인도가 나중에 빵꾸가 나더라도 또 내가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KOSTA 세팅에서 잔치를 host하면서 드러나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그렇게 뭔가 앞에서 하는게 내 옷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이 느껴진다.

두번째 이유는, 금년초에 내가 간사수양회에서 3번이나 message를 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KOSTA의 execution을 담당하고 있는 간사들을 대상으로 ‘일방적으로’ 내가 그들에게 꽤 강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간사들에게 내가 영향을 줄만한 일을 벌써 했는데, 집회에 참석해서 또 간사들에게 내가 영향을 주는 일을 하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솔직히 내가 했던 message 때문에 간사들이 어떤 영향을 얼마나 받았는지는 잘 모른다. 사실 얼마나 받았겠나… 그런 허접한 message를 듣고서…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번에는 집회에 참석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이 execution은 간사들이 own해야한다고 생각했고,
간사들이 정말 자유롭게 이 사역을 own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2019년 KOSTA 후기 (5)

Execution을 보더라도 아주 impressive 했다.
나는 코스타에서 늘 잔치를 ‘host’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 있었다.
내가 늘 그렇게 hosting하는데 직접적으로 참여했느냐 하면 그건 꼭 아닌데…
솔직히 내가 실무간사를 그만둔지는 10년이 되었고, 그 이후 공동대표를 한동안 했으나 그것도 그만둔지 벌써 몇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코스타와 관련해서는 늘 ‘host’하는 입장에 섰다고 생각해 왔던 큰 이유는, 내가 우리 간사들과 나를 제일 많이 identify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간사들중에서는 나를 그냥 겨우 얼굴과 이름만 아는 은퇴간사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간사들을 보면서 정말 그 사람들이 ‘나’라고 자꾸 동일시하는 것 같다. ^^
그래서 그 사람들이 힘들어하면 나도 마음이 많이 힘들고, 그 사람들이 잘하면 나도 마음이 많이 뿌듯해왔다.

그런데…
금년에 간사들이 execution을 하는 것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혹시 다시 저 시절로 돌아가서…
저 일을 다시 한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이 사람들만큼 잘 할수는 없겠구나.

옆에서 보니 간사들이 정말 잘했다. 아주 많이 많이 훌륭하게 잘했다.
execution을 정말 간사들이 제대로 ‘own’했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물론 우리 간사들 늘 힘든거 잘 안다. 그거 생각하면 늘 내 마음 한 구석이 싸~ 하다.
그러나, 그 어려운 속에서도 진짜 이 사람들이 잘하는 거다!

이렇게 훌륭하게 execution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내가 이 사람들을 execution을 차원에서 함께 동일시하기에는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아주 묘한 여러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우선, 정말 뿌듯하고 감사했다. 자랑스러웠고, 정말 기뻤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뭔가 내게서 짐이 벗겨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게 느껴졌다.
내가 질 필요가 없는 짐을 내가 괜히 전전긍긍하며 도움도 못되면서 마음 속으로 그렇게 짐을 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확~ 자유로와졌다.

당연히 그래야지.

정말 많이, 아주 많이, 진짜 많이 감사했다.

2019년 KOSTA 후기 (4)

나는 어떤 이들에게는 더 힘을 내라, 용기를 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폭력에 가까운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압도적 상황 속에서 주눅이 들어 있는데, 그래서 한발자국 뗄 힘 조차도 얻지 못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고 힘을 내라고 하면 어쩌란 말인가.

그런 사람들에게는 당장 한 발자국 뗄 수 있도록 도와주는게 필요하다.
그 사람들이 함몰되어있는 현실로부터 눈을 돌려 초월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복음으로 세상을 바꾸라던가,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라던가, 기독교적 세계관 같은 이야기들이 전혀 자신과 무관한 이야기로 들린다.

나는 지금의 20-30대의 대부분은 바로 이런 현실에 처해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지금 다독여주고 초월만을 강조하는 것이 그 사람들이 다다라야할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그 대중 가운데 ‘리더’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더욱 더 혹독한(?) 헌신을 요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릎에 힘이 풀려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이야기해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 사람들을 보며 누군가가 많이 함께 울어주고, 그 현실로부터 눈을 떼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번 집회가 시작하면서…
이 두려움에 빠져있는 이 젊은 사람들을 만나는 강사들이,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오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랬었다.

너희들 뭐가 힘들다고 그래, 힘내. 믿음을 가져.
이렇게 이야기하는게 아니고,
그렇게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 옆에 함께 주저앉아 줄 수 있기를 정말 간절히 바랬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이번에 오신 강사들께서 정말 그렇게 많이 해 주셨다.
전체집회 강사들의 설교에서도 그런게 많이 느껴졌다.

나는 그분들이 눈물을 담아 이야기하는 그 메시지에 반응하여 눈물 그렁그렁 담는 젊은 사람들을 보며…
옆에서 나도 역시 마음에 눈물 가득 담는 시간이었다.

2019년 KOSTA 후기 (3)

코스타라는 세팅은 내게 늘, 내가 무언가를 contribute해야하는 장이었다.
막 기도하고, 묵상하고, 부지런히 이것 저것을 잘 채우고 준비해서 가장 효과적으로 그것을 쏟아 내어야 하는 일이 늘 있다고 느꼈다.

내가 실무간사의 역할을 떠난 것이 꽤 오래 전인데도, 그냥 늘 내겐 그런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으로 남고 싶다는 마음도 많이 있었다.
잔치 안에 들어가서 주목을 받으며 즐기는 사람보다는, 그 잔치를 베풀고 뒤에서 support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참 신기하게도 그렇게 나를 사용하시는 경험을 하곤 했다.

집회를 준비하면서 쏟아지는 여러 생각들과, 묵상의 결과들은…
대개 집회중에 만들어지는 음식을 위해 사용되는 재료가 되는 일이 많았다.
어떤때는 그렇게 사용되는 재로를 만들기 위해, 죽어라고 더 기도하고 묵상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노력해서 만들어놓은 재로는, 그냥 내 것이 되었다.
그런데 그냥 그 재료 상태 그대로 내것이 된 것이 아니라…
집회 중간 중간에 내 재료위에 여러가지 더 맛있는 것들이 올려져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그러나 더 멋진 음식이 만들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누구를 위해 그 음식을 주는 일도 별로 없었고… 그냥 내가 그 음식을 맛있게 즐겼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내 나름대로 가지고간 재료가 있었는데,
집회 도중에 보면 다른 사람들이 이미 그 재료를 잔치상에 올려놓은 것을 보기도 했다.
아… 내가 아주 엉뚱한것을 준비해온 것은 아니었구나.

2019년 KOSTA 후기 (2)

코스타에 참석하면서, 코스타를 섬기면서,
나는 늘 고질적인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코스타 컨퍼런스 기간 동안에, 내가 생각하는 것 만큼도 주제에 대해서 풀어내지 못한다는 목마름이었다.

나는 생각과 지식이 깊은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독교 사역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아닌데…
나 같은 사람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 만큼도 여러 설교나 강의 등에서 풀어내어지지 못한다는게 기가막힐때가 많았다.

그런 한계가 생기는 이유는,
여러 설교와 강의들을 제대로 코디네이트하지 못한 ‘주최측’의 문제도 늘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 더 큰 문제는 한국 교회 내에서 그런 주제를 대중성있게 이야기할 사람들이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코스타의 network 안에 있는 사람들 안에는 그랬다.)
그냥 한국 교회 (주류) 가 가지는 신학의 부재, 그것에 따른 컨텐츠의 빈약함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었다.

그런데 몇년전 부터는,
코스타 컨퍼런스에서 담아내는 내용에 정말 깊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 이 정도면 정말 주제가 다루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최근에 와서는 적어도 나 같은 사람이 머리 속에서 그릴 수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멋진 그림들이 그려지게 되었다.

집회의 저력이랄까 그런게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왜 그럴 수 있게 되었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고, 그중 어떤 것은 이 블로그에서 공개적으로 쓰기 어려운 것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깊이있는 내용을 다루어낼 수 있는 강사 pool이 잘 확보되었고,
그분들이 집회를 실행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이루게 되었고,
그것을 코디네이트하는 역량있는 핵심적인 사람들의 자율권이 잘 확보된 것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지금 60~70대가 되어 있는 한국 신복음주의 1세대들은 개척자들이긴 했지만 이들이 가진 컨텐츠가 빈약했는데,
이제 40~50대가 되어 있는 어떤 사람들로부터는 그 전 세대에서 쉽게 찾기 어려운 깊이있는 컨텐츠가 나오고 있다는 느낌도 최근에 많이 받는다.

이번에는 30대의 강사들도 꽤 있었는데, 그것도 대단히 고무적이었다.

2019년 KOSTA 후기 (1)

우선, 내가 처한 상황 부터.
6월 초에 내가 여태까지 하던 project가 사실상 취소되는 일이 있었다.
우리 회사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고, 내 회사에서의 입지(?)때문이기도하고… 하여간 복잡한 이유로, 내게는 약간 불안(?)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리저리 회사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회사 내에서 앞으로 얼마의 기간 동안 찾지 못하면 나는 다른 job을 알아봐야 할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회사 내에서 ‘cooking’하고 있었던 project는 잘만되면 꽤 커질 수 있는 project 였다. 그리고 잘만 되면 industry 자체에 꽤 큰 impact를 줄 수 있는 project였다.
그걸로 회사에 상당히 큰 액수의 돈을 벌어다줄 수 있는 것이기도 했고.

그래서 나로선 일종의 ‘도박’을 걸었다.
이것에 나름대로 확~ 몰빵을 하면서 달려들었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되면서 회사를 나가야하나 하는 그런 상황이 되어버린 거다.
(지금도 그게 다 정리가 되지는 않았는데, 현재도 다른 회사를 계속 알아보고 있기는 하고… 우리 회사 내에서는 다른 project의 일부 일을 아마 맡아서 하게될 것 같긴 하다. 당장 다른 job을 알아보아야하는 건 아닌데, 이왕 이렇게 된거 다른 job을 알아볼까? 하는 마음에 나름 조금씩 찔러보려고 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 KOSTA 후기 시리즈 이후에 조금 더 써볼 수 있을것 같다.)

나는 이런 회사 상황 말고도 나는 이번 KOSTA 집회에 참석해야할까 말까 하는 것으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 다른 이유는 역시 이 글타래에서 나중에 한번 다루어 보겠다.)

내 회사에서 이런 일이 터지고 나니, 당연히 마음이 많이 복잡한 상태였다.
솔직히 불안한 마음도 있었고. (‘두려움’이라고 표현을 해야할까?)

내 마음 속의 이런 복잡한 두려움의 상태때문에, 아이러니컬하게도, 나는 이번에 집회에 참석하기로 막판에 마음을 먹었다.
이런 상태라면 가서 ‘두려움과 믿음’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집회의 현장에 내가 좀 있고 싶다는 강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마일리지로 비행기표를 사고, 회사 휴가를 내고,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2019년 KOSTA 후기 (0)

이번에 KOSTA conference에 참석해서 살짝 놀란게 있다.
그건 내가 잘 예상하지 못했던 분들이 내 블로그를 보신다는 거였다. -.-;
내가 보기엔, 아니 저런분이 이런 허접한 글을 뭐 가치있다고 보시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그러다보니 여기 글쓰는게 살짝 더 부담스러워졌다.

뭐 그래도 하던 거니까, 이번 2019년 KOSTA conference 를 지내면서 내가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역시 허접하게 좀 적어보려고 한다.

월요일부터 제대로 써 볼 생각이지만,
너무 오래 블로그를 비워서 하루 일찍 프롤로그 차원에서 하나 올려본다.

20대, 30대의 목소리 (5)

이번에 출장을 가서, 한국의 신문기사나 TV program등을 보면서 든 생각이 하나 있다.
내가 20대일때, 한국에서 ‘옛날을 추억하는’ TV program들이 물론 있었지만… 그게 main stream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80-90년대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들이 너무 많이 보였다. TV program도 문화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나는 그렇게 된 것이…
지금 그 목소리를 주도하는 것이 여전히 40대이상 50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20,30대의 목소리가 묻혀버리는 것이다.

20-30대의 목소리는… 그들의 목소리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그들의 목소리를 해석하고 대변하는 방식으로 주로 들린다.

막상 20-30대가 그들의 목소리로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기가 참 쉽지 않다.

주눅들어 목소리를 내는 것 조차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목소리를 갖고 싶다는 의지 조차도 희박한 사람들에게,
그 목소리를 찾아주는 일은 참 쉽지 않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기독교의 초월성으로 가능할수 있다고 본다.
고아와 과부의 목소리에 천착했던 구약백성의 윤리가…. 지금 이 시대에 젊은 시대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해본다.

20대, 30대의 목소리 (4)

성경에서는, 특히 구약에서는, 공의를 많이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공의는 대개 힘없는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가 무시되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어쩌면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갖게 해주는 것이 공의인거다.

그래서 그 시대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갖기 힘든 고아, 과부, 나그네 등을 무시하지 말고 돌보라는 명령이 반복해서 나오는 거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만드는 사회가 이런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을 심각한 죄로 정죄하신다.

나는….
지금 20, 30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그런 관점에서 본다.
나는 이들을 일종의 시대적 약자로 보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잘 들리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20대 후반부터 쫓아다녔던 코스타에 아직도 마음을 쓰는 것에는 그런 마음이 있다.

지금 20대, 30대, 그리고 40대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정말 보고 싶다.
사회적으로 시대적으로 어쩔 수 없이 약자가 되어버린 세대에게 목소리를 주는 일이 일어나길 정말 바란다.

20대, 30대의 목소리 (3)

20, 30대가 그렇게 힘든건, 그 사람들의 잘못만으로 돌릴 수 없다.
이 사람들은 많이 노력해도 생존이 빡빡한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니 자꾸 위축되고, 더 생존에 목매달게 되어버린 거다.

사실 생각해보면, 소위 ‘성공’이라는 것을 하는건… 그 사람이 어떤 시대에 태어났느냐 하는 것에 깊게 관계가 되어있다.

물리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20세기 초반 유럽에 태어났어야 한다. 그래야 대박 성공이 가능하다. (아인쉬타인 등등)
사업가라면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태어났어야 한다. 그래야 대박 성공확률이 높다. (록펠러, 카네기 등등)
컴퓨터공학자라면 1950년대쯤 태어나면 좋다. 그래야 대박날 수 있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그리고 그 시대에 그렇게 뭔가 획기적인 것들이 열리는 일들이 있어야 그 흐름을 따라서 쉽게 밥벌어먹고 사는게 가능하다.

그 시대를 잘 못 맞추면,
많이 노력해도 생존 자체가 힘든거다.

나는 지금의 20, 30대가… 그리고 조금 더 보면 40대까지도 그렇게 생존이 어려운 시대에 태어난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