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ism

Deism이란 신(神)이 세상(우주, 천지)을 창조하고나서, 그 세계는 기계적 원리에의해 움직이도록 놓아둔채, 그 세계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신관/세계관을 의미한다.

나는, Deism이란 유행이 지난, 옛날의 지식인들이 생각했던 사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도 그렇게 Deistic한 관점에서 신앙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려는 시도들을 많이 접한다. (내 자신에게서도 물론.)

– 하나님을 자신이 생각하는 기계적 우주/원리/원칙에 가두어둔채, 하나님의 개입을 인정하지 않는 자세.

– 나 자신과 나 자신을 둘러싼 삶의 영역, 좀더 나아가서는 세상의 원칙들은 정해져 있다고 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데, 막상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구하지도 않고, expect 하지도 않는 자세.

–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사역의 열매를 input과 output이라는 관점으로만 제한하는 자세.

– 내 머리속으로 시뮬레이션이 되지 않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

소위, 자신을 신뢰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이런 관점에 함몰되면, 스스로 그 관점에 갖혀서 나오지 못하는 경우를 참 자주 본다.

복음의 영광도, 십자가의 은혜도, 하나님의 임재도…
자신의 framework에 가두어버리는…
심각한 reductionism(환원주의)라고 할 수 있다.

열정에 막혀있는 육체, 육체에 막혀있는 열정

끓어오르는 무한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 그 열정을 감당해내지 못할 육체(체력)을 가진 경우와,
끓어오르는 무한한 육체(체력)를 가졌으나 열정이 없어 그것을 발산하지 못하는 경우중,
어느쪽이 더 힘들까.

내가 어렸을때엔,
전자가 더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후엔, 후자가 더 힘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최근엔 다시,
전자가 더 힘든것이 아닌가 싶다.

다섯가지 사랑의 언어

인정, 함께함, 선물, 봉사, 육체적 접촉

내게 있어 순서는..

봉사 >> 인정 >> 육체적 접촉 > 함께함 >> 선물

이렇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이렇게 사랑의 언어를 이해하고 행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사랑의 척도도 이것으로 재단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

언제쯤 되면,
‘자아 중심성’이라는 유치함에서 좀 더 자유로와질 수 있을지…

수면부족

얼마전 내가 충분히 잠을 자면서 살지 못하는 것을 아는 한 친구가,
충분히 잠을 자지 않으면 수명이 짧아진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그 수명을 단축시키면서라도 지금 해야하는 중요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잠을 충분히 자지 않고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그러나,
요즘은 그저 효율적으로 살지 못해 잠을 충분히 자지못하고 사는 것 같다.

수면 시간을 늘려야 할 것 같다.

십자가가 없으면…

십자가가 없으면,
예수의 가르침은 도덕률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십자가가 있기에,
예수의 가르침은 세상을 뒤집는 능력이 된다.

십자가가 없으면,
예수의 가르침은 좋은 suggestion이 되고 만다.

그러나,
십자가가 있기에,
예수의 가르침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명령이 된다.

(어제 성경공부를 하면서 나누어진 생각들)

선거

나는 정치에 관한한 비전문가이지만,
이번 선거는 내가 미국에 와서 보아왔던 여러번의 선거중, 내가 여러가지 이슈에 대해 가장 많은 이해를 하면서 관람하고 있는 선거이다.

경제, 실업률, tea party movement, Obama healthcare 등등.

나는 미국에 살지만, 미국에 대한 많은 애정을 아직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만일 내가 미국에 좀 더 애정이 있었다면,
이번 선거판을 보면서 정말 복창이 터졌을 것 같다. -.-;

이런 민주적 선거를 통해,
공공의 이익이 아닌, 정의, 옳음, 희생, 공동체, 사랑 등의 가치가 구현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