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묵상 – 가상칠언 (4)

마태복음 27:46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라고 누가 썼다면, 이 노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그 첫 구절을 가지고 노래 전체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의 맨 끝자락에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대학 때 소위 ‘대동제’라는 곳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풍경도 생각이 나고,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부르는 clip으로 선거운동을 했던 것도 기억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노래의 첫 구절은 그 노래 전체를 떠올리게 하고, 그와 동시에 그 노래와 얽혀있는 여러가지 사건, 사상,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는 구절은 시편 22편의 첫 구절이다. 

시편 22편은 그 내용을 읽어보면 처절한 고통 속에 있는 시편 기자가 절규하는 내용,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내용, 그리고 궁극적으로 승리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 예수께서 이 시편의 첫 부분을 인용하셨던 것은, 지금 그 시편 22편의 첫부분 즉 극심한 고통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악(원수)에 대한 궁극적 심판이 곧 있게 될 것과, 예수께서 이루실 승리, 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이어지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함을 기억하며… 그리고 궁극적인 악에대한 심판과 승리를 곱씹을 수 있는 방법으로서는… 어쩌면 이렇게 시편 22편을 곱씹는 것 만큼 좋은 다른 방법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주변의 사람들은 이 예수의 외침을 듣고, 엘리야를 부른다고 이야기를 하는 등…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성경이 그리고 있다.

십자가의 예수는… 정말 그렇게 고통스럽게, 외롭게, 그러나 소망을 생각하며 십자가에서 바짝 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고난주간 묵상 – 가상칠언 (3)

요한복음 19:26 – 27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자,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마리아를 생각해보면, 정말 기구한 운명의 사람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10대 소녀일때, 결혼도 하기 전에 임신을 했고, 첫 아이를 타지에서 마굿간에서 낳아야 했다.

성령으로 잉태한 것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예수를 ‘사생아’라고 생각했고, 평생 마리아는 그 멍에를 지고 살아야만 했을 것이다.

아마도 일찍, 남편 요셉을 떠나 보내고 과부로 살았고, 그나마 아들이 ‘miracle worker’로 등장하며 요란스럽게 하더니면, 이제 그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숨을 헐떡거리고 있다.

땀흘려 일한 남편이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그날 수수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해 내어 남편과 나누고,
자녀들을 다복하게 낳아 길러서 후손들도 계속 더 보고,
때로는 동네 이웃과 수다도 떨고,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누고…
그렇게 가졌을 10대 소녀의 꿈은, 신적 개입 (divine intervention)으로 산산조각 부서져 버렸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께서 이렇게 십자가에서 처형 당하시고 돌아가신 이후에 부활하셨지만, 아들로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사실상 이걸로 끝이었을 것이다.

이런데도…
마리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복된 사람인 것일까?
그 삶이, 하나님의 광대한 계획으로 인해 완전히 쑥대밭이 되도록 망가졌는데.

아마 예수께서는 ‘엄마’ 마리아를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물론 이 처절한 고통의 끝에는 죽음과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고,
그로 인해 온 인류가 소망을 갖게 되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지만…
마리아라는 한 여자의 인생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그 고통을 느끼시면서…
그 마리아를 생각하며 많이 우시지 않았을까.

고난주간 묵상 – 가상칠언 (2)

누가복음 23:43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를 영접하기만 하면 즉각적으로 구원을 얻는’ 것을 설명할때 잘 사용하는 구절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본문에서… 예수께서 필사적으로(!!) 사람을 찾아 얻어내시는 모습을 보게된다.
다시 말하면,
그 처절한 고통 중에서도,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 고통을 통해 얻고자했던 것, 즉 사람을 얻는 일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보다, 그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절박함이 말로 다 할 수 없이 크다.
내가 그 진리의 빛을 깨닫지 못하던 때, 나를 바라보시며 그야말로 발을 동동 구르셨을 사랑 많으신 주님…
이제 내가 그 주님을 안다고 이야기하며 살지만, 여전히 그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우리 구주께서는…
내 눈을 바라보며….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는 말씀을 하고 싶어 애가 타시는데 말이다.

고난주간 묵상 – 가상칠언 (1)

누가복음 23:34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20여년전, 

처음 내가 이 말씀을 가슴으로 읽게 되었을때, 나는 정말 도무지 어쩔수 없는 전율로 무릎을 꿇고 울었다.

그야말로 통곡을 하듯, 그렇게 큰 소리로 울었다.

불과 며칠전, 호산나라고 외치며 예수께 환호했던 군중이 이제는 그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고 있는 장면.

나는 그 군중 속에서, 얼굴이 새빨개 져서 그 예수를 큰 소리로 조롱하며 비난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예수는, 이 말씀을 하실때, 그 군중속의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당연히 내 주(Lord)가 되셔야하는 창조주로부터 멀리 떠나있는 나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내 허물을 그렇게 자신의 온 몸을 던져 담당해주시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상태가 어떠한 것인지, 그 인간을 향한 그분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감수해야했던 하나님쪽에서의 cost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하는 것을 드러낸다.

20여년 전, 기숙사 방에서 혼자 무릎을 꿇었던 이후…
나는 이 말씀을 접할때마다 다시 무릎을 꿇어 흐느끼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떤 반응도 할수가 없다.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