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ting is over-rated

내가 좋아하는 pacifist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Voting is over-rated”

민주주의에서 투표가 가지는 의미는, 그 과정을 통해서 대화를 하도록 enforce하는 것이다.
그러나 50.1:49.9의 투표결과에 의해서 49.9 의 의견이 묵살되는 것은 옳지 않다.

최근 Trump가 친 여러개 사고 가운데 제일 큰것은 immigration ban이다.
미국 곳곳에서 시위를 하고, 반대 성명을 내고 난리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것은, 여론조사를 보면 대체적으로 Trump의 이 executive order를 지지하는 쪽이 높게 나온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이 이길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약자가 되는 것이 안전할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Trump를 지지한 사람들이나,
박근혜-이명박에 투표한 사람들…
정말 어쩌면 좋을꼬.

Smart watch

나는 비교적 사치스러운 편은 아니다. ^^
비싼 것을 후다닥 사기에는 대개 너무 새가슴이어서,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을 자유롭게 사는 내 spending limit은 대충 10~15불 정도쯤 된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는 가끔 한번씩 eBay에서 전자시계를 사는 사치를 누렸었다.
꼭 Casio 브랜드만 샀었고, 가격은 무조건 20불 미만이었다.
그렇게 사서 배터리가 다 되거나 심하게 scratch가 나거나 하면 또 10~20불 짜리 시계를 하나씩 사곤 했었는데, 그래서 내겐 그렇게 산 Casio 전자시계가 4개가 있다.

그런데 최근,
회사에서 smart watch를 차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 그도 그럴 것이 회사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는 그걸 주기 때문이다.
나도 그걸 주문해볼까 생각을 했는데, 정말 내가 일을 하는데 그게 필요하다는 justification이 약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몇달째 그냥 안사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연말, eBay에서 우연히 뒤져보니 Smartwatch가 무지 싸게 나온게 있었다. Asus의 Zenwatch2인데, 79불에 나왔다. refurbished version.
최근 모델보다 하나 더 전 모델이어서 재고 처리를 위해 가격을 내린게 아닌가 싶은데,
며칠을 망설이다가 하나 확~ 사버렸다. 허억.

지금까지 내가 써본 것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1) Smart watch is not yet for everybody.
아직은 smart watch가 할 수 있는게 많이 없다. 사실상 notification을 바로 볼 수 있다는게 거의 다 라고 할 수 있다.

(2) Too expensive
게다가 그런 단순한 기능을 위해서 300불 혹은 그 이상의 돈을 지불하는건 너무 비싼것 같다.

(3) It is for me!
그런데 써보니 내겐 정말 정말 유용하다! 이메일이랑 여러 연락이 multiple로 쏟아지는 와중에 미팅에 들어가 있으면, 미팅에 방해되지 않으면서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고, 특히 cleanroom 실험실에 들어가 있으면 더더욱 편리하다. 나는 몇가지 간단한 voice command를 통해서 앞으로 7분 이후에 알람을 울려줘. 뭐 이런 명령을 setup 해 놓는 일들을 자주 하는데, 그게 정말 한 5분 남짓 짜투리 시간이 남았을때 그 시간 낭비하지 않고 일하는데에도 도움을 준다.
그렇지만 역시 나라도 그것을 위해서 300불씩을 투자하지는 않을 것 같다. 100불 정도가 아마 내 생각엔 최대로 내가 지불할 액수일 것 같다.

어쨌든, 현재까지는 잘 쓰고 있다.
오랜만에 smart shopping을 한 기분이다. ^^

평신도 설교

우리 교회에서는 목사님과 평신도들이 함께 설교 내용을 상의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평신도들이 설교를 할때가 있다.
어제는 우리 교회의 리더중 한명이라고 할 수 있는 형제 한명이 또 설교를 했다.

지난 목요일 저녁에 잠깐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설교를 잘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많이 힘들었다고 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못한다고 목사님께 전화드리려고 했어요”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은,
언제든 힘들면 전화해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서 목사님은 주중에 그 형제의 설교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특별히 기도 응원 요청도 더 해주셨다.

또,
다음주도 또 또 다른 평신도가 설교를 하게되기 때문에 두주동안 설교를 안하신다고…
수련회 관련된 노가다를 자신이 담당하시겠노라고 나서셨다.

어제 설교를 한 형제와 다음주 설교를 하는 형제와 함께 설교 준비를 하시면서,
두 사람은 헌금도 하고, 설교도 하고, 참 수고가 많다 고 농담섞인 격려를 하셨다는 얘기도 들었다.

어제 정우 형제의 설교는 정말 좋았다. 나처럼 설교 까다롭게 듣는 사람에게도 깊이 마음을 울리는 설교였다.
이런 사람과 함께 교회에 있다는 건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다… 싶었다!
(우리 교회 podcast에 떴으니, 가능하신 분들은 꼭 들어보시라~) 직접 다운로드 링크는 여기

그런 평신도의 설교를 위해 목사님은 노가다를 자청하시고…
(그렇지만 어린이들을 위한 설교는 여전히 목사님께서 하신다. 설교를 완전 쉬시는건 아니다.)

좋은 평신도 설교를 위해,
평신도가 헌신하고,
목회자가 격려하며 support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건 참 흐뭇한 일이었다.

다음주 은규 형제 설교도 왕창 기대중.^^
아, 그리고 그 다음주에 우리 목사님 설교도 물론. ^^

학벌 (17)

나는 꽤 괜찮은 교육을 받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굴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 나름대로 성공해왔다.
결국 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학교들을 다녔고, 그 안에서 꽤 좋은 성적과 성과를 거두었다.

나는 나 같은 사람은,
엄밀하게 말해서 ‘학벌’에 대하여 정확하고 치우치지 않는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속에서 계속 성공을 해왔기 때문에 그렇지 않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고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솔직히 지금도 나는 ‘무능’과 ‘게으름’ 그리고 ‘악함’을 잘 구별해내지 못한다.

가령,
쉬운 비유를 들어서 내 친구가 어려운 수학문제를 숙제 제출 당일아침에 와서 내게 물어보면,
나는 당연히 이 친구가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 친구가 아주 열심히 했음에도 능력이 부족해서 숙제 제출 직전까지도 이걸 풀지 못한 것일수도 있는데 말이다. – 이걸 머리로는 아는데 실제로 정말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회사에서도, 누가 일을 제대로 못하면 나는 얼른 그 사람의 integrity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게으르거나 딴짓을 하고는 정직하지 못하다거나…
그렇지만 실제로 어떤 사람은 같은 양의 일을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릴수도 있다. 그것은 능력의 차이이지 integrity의 문제가 아니다.
이게… 정말 정말 나는 잘 이해가 안된다. – 머리론 아는데… 이게 정말 내겐 어렵다.

왜냐하면 내가 늘 성공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선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도 정말 어렵다.
(아마 이 시리즈의 글을 읽는 독자들도, 내게 이런 한계가 있다는 것을 catch하셨으리라 본다. 내가 앞에서 내 학창시절 공부한 이야기를 낮 뜨겁게 쓴 이유도, 이런 내 배경을 솔직하게 욕을 얻어먹도록 좀 열어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떤 사람의 학벌을 비롯한 성공의 경험은,
치명적인 영적/인격적 장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 사람의 노력으로 극복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대학을 들어가고, 좋은 대학을 다니고, 좋은 대학을 졸업하면,
그 사람은 평생 죽어라고 노력해도 극복하기 어려운 영적인 장애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민우를 대학에 보내면서 내가 했던 고민의 정점에는 이 문제가 있었다.

학벌 (16)

왜 사람들이 그렇게 좋은 학벌을 얻으려고 하는가?
높은 자리, 좋은 자리, 좋은 직장을 얻고 싶은 것이다.
나는 그런 욕망은 인간세상에서 어느정도 인정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요즘은 보면 그렇게 추구하는 성향이 정말 극단적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왜 그럴까?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고, 소위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이 어마어마해지는데 반해,
성공한 사람들의 비율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일단 빌게이츠가 되면 과거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성공이 주어지게 되지만, 그렇게 성공하는 사람의 비율은 정말 얼마되지 않는 것이다.

반면, 그렇게 극단적인 성공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미래에대한 불확실성과 상대적 박탈감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그래서 아주 극소수가 엄청난 부와 권력등을 소유하고, 더 많은 다수가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한편 아주 소수에게 주어지는 엄청난 성공을 바라보면서, 그 극소수에 들기위해 죽어라고 노력을 하게되고,
또한 그로부터 조금만 낙오하면 완전 낙오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떨어지지 않기위해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게 되는 것이다.

일단,
조금 낙오하더라도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 된다면,
일류대를 졸업하지 않더라도 소박한 집에서 아이들 키우면서 땀흘려 일하는 수준의 삶이 가능하게 된다면,
죽어라고 공부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기게 되고, 조금 더 제정신인 세상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사회적 다양성까지 더해지게 된다면,
수학을 잘 못하지만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과,
운동신경이 없지만 글쓰기를 잘하는 사람과,
사회성이 부족하지만 미적분을 풀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의 교육이, 그런 세상을 만들 꿈을 꾸는 사람들을 키워내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대학입학의 spec을 manufacture하는 세상 속에서는 정말 만들어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학벌 (15)

학벌위주의 사회를 비판하지만, 나는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령 서울대를 없애는 것으로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서울대가 없어지만 연-고대가 그 자리를 순식간에 차지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일류대 출신들을 선호해서 뽑는 것 역시 일방적으로 비난하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일류대 출신들중에서 더 똑똑하고 일 잘하는 사람들이 있을 확률이 대단히 더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실력보다 학벌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여기 미국에서도, 지금 내가 있는 직장에서 사람을 뽑을 때에도,
당연히 일류대에서 박사를 받으면 당장 더 resume가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좋은 학벌과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와서 잘 적응하고 실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미국같이 해고가 쉬운 사회에서도, 사람 한 사람 잘 못 뽑으면 그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productivity가 확~ 낮아지게 되고, 그 사람을 해고하기까지 꽤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한다.
하물며 한국같이 해고가 어려운 사회에서는 당연히 사람을 뽑는데 risk가 낮은 선택을 하고 싶어할 것이다.

나는 학벌위주의 세상이 변하려면,
– 다양성의 가치가 존중되어야 하고, (그것이 productivity나 심지어는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것을 이해해야하고)
– 빈익빈부익부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두가지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우선 다양성의 문제는 앞의 글에서 대충 언급을 했으니 빈익빈 부익부의 문제에 좀 더 무게를 두어서 생각해보자.

학벌 (14)

내가 생각하기에,
미국의 대부분의 top school들은 시대정신에 매우 합한 리더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시대정신에 매우 합한 리더들을 길러내고 있다고 본다. 또한… arguably 그런 리더가 될 사람들을 그래도 꽤 잘 뽑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리더상은, 창의적이고, 이해력과 논리력이 뛰어나고, (대체로 말해서 공부를 잘하고 -.-;) 그러면서도 적극적이고 진취적이고,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모험심이 강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해서 잘 만들어진 사람들이 현재 월스트릿이나 실리콘 밸리의 리더들이다.

나는 정말 진지하게 질문한다.
그런 리더들이 정말 세상을 바꾸는가? 그런 리더들이 꿈꾸는 그런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그런 리더들이 꿈꾸는 그런 세상에서 정말 살고 싶은가?

나는 그런 사람들이 정말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의 status quo를 잘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사람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이 리더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을때 그 사회는 정체되거나 퇴보하고,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특히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성공의 이데올로기 밖의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사회 속에서 marginalized되어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심지어는 그 사람들이 선의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렇다. 사고방식 자체가 그 사회의 marginal people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짜여벼리기 때문이다.)

학벌 (13)

내가 민우 대학을 보내면서 나름대로 연구도 해보니까…
미국의 top school들은 결국 ‘리더’가 될 사람을 뽑고 싶어한다. (학교마다 약간 차이가 있긴 하다.)

리더가 되는 것은 공부를 잘하는 것을 포함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위 extra curriculum activity (과외활동)을 많이 보되, 거기에서 protactive하게 리더십을 발휘했는가 하는 것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래서, 고등학교때 AP class 10개 들어서 모두 A 받고,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빈민 구제 활동 하고, 학생회 임원하고, 혼자서 coding을 해서 App store에 올려서 파는 일도 해보고…
정말 자신에게 주어진 바운더리를 넘어서는 활동을 보였느냐 하는걸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것 같다.

그래서 흔히 GPA 4.0에 perfect SAT score 받고 Ivy league 다 떨어졌다…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이유가 그것이 아닐까 싶다.
그냥 공부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내가 potentially 꽤 큰 리더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아… 물론 모든 top school들을 이런 애들로만 다 채우는것은 불가능하니까 GPA 4.0, perfect SAT score 가까이 받은 애들중에 leadership 경험이 조금 부족한 애들이 더 들어가긴 하겠지만 서두… ㅎㅎ

그런데…
요즘은 이게 일종의 ‘공식’처럼 되어 버려서…
성적 좋은 애들중에서 이런 profile을 ‘manufacture’하는 경우가 꽤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들리는 말로는, 미국의 top school의 학부생들이 스스로 자기에게 닥친 challenge를 handle하지 못하는 경우가 예전보다 더 많다고 한다. (얼마나 정확한 분석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그쪽분야 전문가가 아니므로)

나는 이런식으로 profile을 manufacture해서 대학을 가는건, 앞에서 내가 언급한 이유 때문에…
완전 재앙이라고 본다.
그건 공정한 게임이 아니고, 사회로 보아서도 좋지않고… 뭐 다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 아이를 죽이는 일이라고 본다.

미국에서 학교 tour도 해보고, 학교 설명회도 가보고, 또 여러가지로 자료와 정보도 모으다 보면,
꽤 좋은 학교들인데도… 학교에서
“우리는 우리 학교에 들어와서 우리의 커뮤니티의 일부가 되는 학생을 원한다. 그래서 다양한 background의 학생을 원하고, 함께 와서 학생의 4년이 인생에서 중요한 ‘경험’과 ‘과정’이 되길 바란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학교들이 있다.

성공이 보장된 아이들을 뽑거나, 심지어는 이미 성공한 아이들을 뽑기 보다는,
좀 더 함께 살아가면서 교육과 훈련을 받는 것을 지향하는 학교들…
나는 민우가 정말 그런 학교들에 가길 정말 간절히 바랬다.
그리고 나는 리더는 그렇게 길러지는 것이라고 완전히 믿고 있다. ^^
그리고 반드시 리더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것을 경험하며 critical thinking을 연마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바른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 그래서 궁극적으로 그 학교에 더 유익이 되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학벌 (12)

나는 기본적으로, 어떤 사람의 능력이 훈련을 통해 나아지기 매우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건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그렇다.
어떤 사람에게 주어진 능력치라는게 정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훈련에 따라서 그 능력치가 약간 더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것이 가능하기는 해도, 그 능력치의 레빌이 달라지는건 어렵다고 생각한다.

가령 내 능력치가 150이라고 하자.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노력을 하고 부지런히 skill을 익히면 그게 170정도가 될수도 있겠고, 그걸 게을리하면 70으로 떨어질수도 있겠다. 그래서 내 능력치가 대충 70~170 사이를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거다. 교육이나 훈련에 따라서.
그런데 정말 어떤 경우에는 능력치가 200인 사람이 진짜 있다. 그런 사람은 팽팽 놀면 능력치가 내 최저치와 그리 다르지 않을 수 있다. 70~80 정도. 그렇지만 이런 사람이 완전 맘잡고 하면 250이 나와버린다.
내가 죽어라고 해서 170정도가 나오는데, 어떤 사람은 슬슬 놀고도 180정도가 나오고 진짜 맘잡고 하면 250이 나와버리니… 내겐 정말 넘사벽이 되는 것이다.

이런경우 나는 교육을 통해서 내 친구의 최대치를 넘어설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난놈’이 그냥 있는 거다.

천재와 범재 사이에만 이런 차이가 존재하는건 아니다.
정말 좀 더 잘난놈과 좀 덜 잘난놈은 진짜 있다.

다음의 세 사람을 생각해보자.

A : 평균 능력치 100, 최저 50, 최고 130
B : 평균 능력치 130, 최저 60, 최고 150
C : 평균 능력치 200, 최저 80, 최고 300

그런데 가령… S대의 커트라인이 140 능력치일 수 있다.
그럼 B는 삑싸리내지 않고 노력하면 S대에 들어가고, C는 대충 놀아도 S대에 가고, A는 완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한 S대에 갈수 없다.

이때 A에게 과외를 엄청 시키고 엄마의 정보력을 완전 활용하고, 각종 봉사활동 일정 짜서 profile 관리하고… 이렇게 해서 겉보기 능력치는 145로 만들었다고 하자. 그러면 A는 S대에 들어갈 수 있게된다. (실제로 그렇게 대학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은 더 많고, 미국도 많다.)
나는 이런 사람은 정말 평생 불행해지게 된다고 본다.
평생 자기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어야 하고, 열등감에 시달려야 하고, 자신의 능력치에 맞지않는 기대치를 가지게 되어서 끊임없은 과욕을 갖게 된다.

B는 열심히 적절하게 노력하면 정상적으로 S대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S대의 커트라인이 자신의 평균 능력치보다 약간 더 높다 하더라도 가서 지적자극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다. 그리고 노력하면 가서 평균 이상으로 performance를 낼수도 있다.

그러나 C는, S대는 노력하지 않아도 들어갈수 있고, 학교를 들어가서도 노력하지 않아도 ‘짱’이 되니까 이 사람의 발전을 위해서는 S대보다 능력치 커트라인이 더 높은 곳이 적합하겠다.

내가 여기서 사람의 ‘점수’를 수능점수, GPA, SAT 점수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능력치라고 한 것은, 그런 시험점수들이 정말 그 사람의 능력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ideal하게는 대학에서는 정말 그 사람의 시험 점수가 아니라 ‘능력치’를 제대로 평가해서 입학 여부를 결정해야하는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