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신학이 신앙을 설명할 수 없을 때

나는 매우 자주,
‘건강한 신학’을 가진 분들과 이야기를 할 때, 답답함 혹은 안타까움을 느끼곤 한다.

그분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입장에 대부분 동의하기도 하고,
그분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에도 공감하는데…
그분이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 어떤 신앙의 개념들을 나누는 단계에 가면,
더 이상 대화가 쉽지 않음을 느끼곤 한다.

그러면,
그런 분들과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저 신학적 공감에 대한 것 뿐이다.

그런데,
어떤 분과는, 심지어는 구체적인 신학적 입장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깊이 있는 신앙의 대화가 가능하다.
그분이 경험하고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
은혜, 죄, 하나님 나라, 사랑, 세상 등등에 대하여 정말 가슴과 가슴을 오가는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있다.

그런의미에서 나는,
신학이 신앙을 설명해 내는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말 너무 자주…
신앙인들과, 동역자들과, 교회 식구들과, 신학적 대화만을 하곤 한다…..

또 다시 수양회

내일부터 주일까지는 North Carolina에 있는 어느 학생모임의 수양회에 참석한다.

나는 설교를 잘 하는 사람도 아니고, 목회자도 당연히 아니지만,
이렇게 학생 모임에서 message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꼭 가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다.

대개 그렇게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런 작은 학생 모임들은 대개 좋은 강사를 부르기에 힘들어 하곤 한다.
그래서 이리 저리 찾다가 강사가 없으면… 정말 완전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목사님을 강사로 모셔다가 수련회를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설교를 엄청 잘 해서 이 사람들을 확~ 뒤집어 놓겠다는 생각으로 가는게 당연히 아니고 (내가 그럴 능력도 없고)
정말 그런 이상한 사람을 강사라고 모셔와서 그걸 들어야하는 학생들을 생각해보면,
나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내게 이런 수양회 설교를 부탁하는 분들은 대개는 비교적 건강한 network을 가지신 분들이 많긴 하다.
그렇더라도 속한 교회의 어른 중에서 누가 이상한 분을 강사로 모시자고 하면 그걸 무시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사실 많기도 하다.

그리고 작은 학생 모임들의 경우에,
재정도 빠듯해서 강사 사례비나 교통비를 마련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작년에 갔던 어떤 학생 모임에서는… 돈이 부족해서 예배 후에 학생들 간식이나 식사를 교회에서 제공하는 것도 끊었다고 했다.
그런 모임으로부터 도저히 강사 사례비나 교통비를 받을 수는 없다. 내가 뭐 한보따리 싸 가지고 가지는 못할 망정…

다행히 나는 회사에서 월급 잘 받고 있으므로,
이렇게 ‘강사질’을 하러 가더라도 강사료나 여행 경비등은 받지 않는다.
초청하는 교회가 좀 커서 여유가 있을 경우, 초청교회에서 아주 강력하게 요구하시면 비행기값을 보조받을 경우가 가끔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수련회에서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message들은 비슷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학생 모임이 처해있는 상황들이 비슷하기도 하고,
학생들이 처해있는 상황들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도 지난 가을에 했던 설교들과 비슷한 내용의 설교들을 준비했다.
결국은 하나님, 죄, 십자가, 구원, 은혜, 사랑, 주되심 등의 이야기이다.

이런 내용의 설교를 할때에는,
내 마음이 촉촉하게 눈물로 적셔지는게 참 중요한것 같다.

내가 가서 망치지 말아야할텐데…

(내일 블로그는 쉽니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