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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뉴스

Observation from the Front download

  • Delta wave가 level-off 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심각.
  • COVID-19은 호흡기를 통해 전염된다. (당연한 거지만 한번 더 강조)
  • vaccine이 여전히 심한 증상을 방지하는데 유효하다. 그렇지만 vaccine의 효과가 떨어지고 있는건 분명하다. (booster 필요?) – 특히 mRNA vaccine에 대해서는 data가 모여지고 있다.
  • Booster를 해야 하나, 전세계 백신 공급을 더 해야하나? – booster를 안한다고 해서 전세계 백신 공급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
  • COVID-19으로 입원했던 사람들중 절반 정도는 1년후까지 증상이 있다.
  • Mask 꼭 써라!
  • 5-12세 어린이들 백신 승인은 늦가을 혹은 이른 겨울 정도나 되어야 될 듯.
  • Ivermectin (구충제) – 효과 없다!
  • J&J vaccine – booster하면 항체가 확~ 올라간다.
  • 전문가들이 대부분 COIVD-19이 endamic이 되어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결국은 다 expose될것. –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백신을 맞아서 빨리 보호받도록 해야함.

코로나 유감

한국과 일본에서는 COVID-19을 ‘코로나’라고 부르는 듯 하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쓰는 말이 좀 유감스럽다.

왜냐하면,
‘코로나’라는 것은 라틴어로 ‘왕관’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에,
코로나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상품이나 상호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존에 ‘코로나’라는 상표를 쓰고 있거나, 그런 상품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괜히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반면 영어로는 COVID-19 혹은 사람들이 그냥 줄여서 COVID라고 하는데, 이건 그 단어가 기존에 쓰이고 있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에 큰 피해가 없을 것 같다.

나야 뭐,
코로나라는 이름의 상품을 애용하고 있는게 없고,
어떤 경제적인 피해도 개인적으로는 없지만…
그냥 이 와중에 그렇게 피해를 입고 속상해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변화, 두려움, 기회

나 같이 겁이 많고 안정을 좋아하는 사람은 변화가 늘 두렵다. ㅠㅠ
그래서 가능하면 변화가 없는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쪽으로 삶의 선택을 할때가 많이 있다.

그러나,
어떤때는 정말 나름대로 기도하고 의지적으로 변화를 선택하는 신앙적 결단을 했던 적도 있었고…
어떤때는 내 의사와 관계없이 그냥 변화를 받아들여야하는 상황이 전개되기도 했었다.

변화는 어쨌든 그때까지의 상황의 근본을 흔드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변화가 나타날때 기존에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흔들리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빡빡하게 내것으로 채워져 있어서 움직일 공간이 없을때,
어떤 형태로든 삶의 변화는 하나님께서 그 내 삶의 공간에서 움직이실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게되는 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변화를 기회로 삼아 적극적인 자세로 달려드는 것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참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런 변화에대해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하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보는 것은 적어도 그분에게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나님에게 최소한 만큼이라도 예의 차리고 살고 싶은데, 나 같이 믿음이 체질에 맞지 않는 사람에겐 그것도 참 쉽지 않다. ㅎㅎ

크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크시다는 이야기를 할때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크시기 때문에 내 문제를 후다닥~ 해결해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크신 분이기 때문에, 나를 그 앞에 복종시켜 그분 앞에 엎드리게되는 분이라는 것이다.


성경공부를 준비한다던가,
무슨 설교 비슷한 것을 준비한다던가…
그럴때 내게 주어지는 참 큰 은혜는,
하나님께서 때로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참 괜찮은 생각들을 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게 어디 나를 위해서이겠는가.
그 성경공부나 그 설교를 듣고 참여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겠지.

My Language

팀에 industrial design을 하는 사람이 있다.
생긴건 그냥 꼭 나 같은 엔지니어 같이 생겼는데… ㅋㅋ
하는 일은 designer다.

그 친구가 하는 프레젠테이션을 보면, 벌써 그것부터 확~ 다르다.
폰트는 어디서 그렇게 또 멋진것을 가져다 쓰는지…
뭐 그림 하나를 넣어도 어찌 그렇게 멋지게 넣는지…

그냥 뭐 별것 아닌거 하나를 쓱 그려도 그 친구가 그리면 진짜 멋있다.

그야말로 멋진 디자인은 그 친구의 자연스러운 언어인 것이다.

그래서 나도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다른 이들에게 비추어지는 나의 언어는 무엇일까?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나를 표현할때 사용하는 자연스러운 나의 언어는 무엇일까?

‘공학’은 아닌 듯 한데…

COVID-19 뉴스

어제 나온 Observation from the Front (RMF)

  • 전반적으로 Delta surge가 약간 꺾이는 듯한 분위기. 아직은 더 올라가고 있긴 하지만 그 성장세가 좀 주춤
  • 흥미롭게도, Beta variant가 original Wuhan strain으로부터 가장 멀리 변이가 된 것. Delta variant는 Wuhan strain에 꽤 가깝고.
  • Delta variant에 관한한 vaccination이 꼭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은 듯

Your grace is enough

예배시간에 이 찬양을 불렀다.
Your grace is enough.

그런데 생각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충분하다고 느끼고 있는가?

가만 생각해보니 아니었다.

내게…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 충분하다고,
하나님의 은혜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시간들이 분명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느끼고 알고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깨달음.

아… 어떻게 다시 돌아가야 하나??????

신앙에서 일상이 중요하다고…

신앙에 있어 일상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신앙에 있어 일상이 중요하다는 말이, 신앙을 희석시켜 일상에 펼쳐놓으라는 말이 아니다.
혹은 신앙과 일상을 둘로 나누어, 일상 자체를 더 중요시하라는 말도 아니다.

신앙에 있어 일상이 중요하다는 말은,
일상을 신앙으로 제대로 해석할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일상에 신앙이 제대로 드러나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앙에서 일상이 중요하다면서,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활동,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일상 자체를 glorify하는 방식으로는
결국 그 중요한 일상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시편 63편

하나님,
주님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내가 주님을 애타게 찾습니다.
물기 없는 땅,
메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목이 마르고,
이 몸도 주님을애타게 그리워합니다.

내가 성소에서 주님을 뵙고
주님의 권능과
주님의 영광을 봅니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기에,
내 입술로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생명 다하도록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내가 손을 들어서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렵니다.

기름지고 맛깔진 음식을
배불리 먹은 듯이
내 영혼이 만족하니,
내가 기쁨에 가득 찬 입술로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주님만을 기억하고
밤을 새우면서도
주님만을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도우셨기에
나 이제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즐거이 노래하렵니다.

이 몸이 주님께 매달리니,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꼭 붙잡아 주십니다.

나를 죽이려고 노리는 자는
땅 아래 깊은 곳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들은 칼을 맞고 쓰러지고,
그 주검은 승냥이의 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왕은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사람들은
모두 왕을 칭송할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말문이 막힐 것이다.

===

시편을 읽을때 참 새로운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도대체 이런 시를 왜 ‘공동체’가 함께 노래로 만들어서 불렀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볼때이다.

물론 정확하게 역사적 배경이나 그런 것들을 잘 알기 어렵지만,
이 시 역시, 1절에서 나온 것 같이, 물기 없는 땅, 메마르고 황폐한 땅의 환경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을때 지어졌고,
이 시를 함께 외는 백성들도 아마도 역시 그런 상황 속에서 함께 이 시를 노래로 부르지 않았을까.

사막과 같은 상황 에서 목이 마른데…
그 속에서 주님을 찾아 목이 마르고, 주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거다.

그리고는 어쨌든 내 입술로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고, 손을 들어서 주님의 이름을 찬양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처해있는 상황이 어려울때 이런 찬양의 노래를 함께 부른다는 거다.

신앙이 가지는 힘은 이런 역설에 있다고 본다.
이런 역설을 자신의 신앙에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어쩌면 신앙이 없는 것일수도 있겠다.

어두움 속에서 손을 들어 주님을 찬양하는 역설,
바로 그것 때문에 신앙이 위대하다.

민우가 갔다

민우가 방학동안 집에 있다가 어제 다시 아틀란타로 돌아갔다. ㅠㅠ

방학이 되어 처음 집에 왔을 때는 뭔가 좀 잘 해줘야지 했는데,
사실 지난 한달여 동안은 내가 너무 정신없이 바빠서 민우 오가는데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때가 많았다.
계속 나는 컴퓨터 화면 앞에 바로 붙어 있어야 했고, 스트레스 만빵인 상태에서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도 몇번 하지 못했다.

아빠가 해주는 몇가지 좋아하는 음식들이 있는데, 그것도 몇번 해주지 못했다.

어제 내가 출근하는길에 공항에 민우를 drop-off 해주었는데,
10월에 4일짜리 break이 있는데 그때 또 집에 올까? 하고 물어본다.

딱 4일동안 오는 거라도 그렇게 집에 또 오고 싶은가 싶어 괜히 더 안쓰러웠다.

잘 가라고 보내기 전에 꼭 껴안고 한 학기 또 잘 보내게 해달라고 기도해주고,
민우는 그렇게 훅~ 떠났다.

마음이 허전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다른건 모르겠고,
민우가 정말 하나님과 함께 한학기 지내는 것을 깊게 경험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