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고민 (4)

이번 봄학기에 했던 성경공부에서는, 내가 조금 ‘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경험, 내가 묵상한 내용, 내 삶의 여정 속에서의 하나님 이야기를 조금 더 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참석한 사람들에게 각자의 삶 속에서 모두 그렇게 말씀을 가지고 좀 씨름하라고 격려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니, 몇분들은 자기 이야기를 조금 열어서 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번학기에는 특별히 참석한 사람들이 일종의 ‘친밀감’같은 것을 더 많이 느끼게 된 것 같다.

말하자면 성경공부가 조금 더 ‘감성적’이 되었다.

이건 정말 내게 많이 고민이 된다.

어떻게든 함께 성경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제대로 읽고 그것을 삶 속에서 가지고 들어가서 씨름하는 경험을 많이 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런 시도를 하다보니 이게 의도하지 않는 끈적끈적한 친밀감, 정서적 교감 등이 더 이루어지는 모임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 성경공부를 마치면서 어떤 분들은 그런 것을 더 많이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성경공부를 하는 것은 말하자면 내가 의도하고 계획한것과 매우 다른 것인데…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이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내가 조금 다른 자세로 접근해서 준비해야 할텐데….

성경공부 고민 (3)

내가 성경공부를 하면서 꼭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 있다.
이것이 무슨 ‘온라인 공동체’같이 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서로 끈끈하게 위해서 기도하고… 서로 삶을 열어서 나누고… 그런거 하지 않으려했다.
그건 온라인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성경공부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꽤 반복해서,
이것이 교회를 대신한다거나, 실제로 살고 있는 지역에서 하는 소그룹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실제로 참석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그런 의도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
사는 곳에서는 교회를 아예 나가지 않거나, offline에서의 다른 fellowship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이 성경공부가 그렇게 뭔가 ‘공동체’가 되길 원하기도 한다.
혹시라도 성경공부에서 살짝 자기 이야기를 나누면서 뭔가 살짝 끈끈함(?) 같은 것이 만들어지면, 그것 때문에 참 감사하고 좋아한다.

성경공부에서 유익을 얻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 성경공부를 일종의 ‘공동체’로 여기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참 여러가지고 고민이 많다.

그렇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이 성경공부는 그냥 ‘dry’한 본문 연구 모임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성경공부 고민 (2)

우선 제일 큰 고민은 내가 벅차다는 거다. ㅠㅠ

사실 회사일이 너무 많아서 힘이 들기도 하고,
금년부터는 주중에는 아예 성경공부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니 주말에 하게 되는데,
주중에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토요일 오전에 본문 연구하고, 주말 저녁에 성경공부로 시간을 쓰는게 그렇게 쉽지많은 한다.

이번학기에는 그래도 하루저녁은 좀 쉬어야 겠다 싶어서 토요일 저녁은 성경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금요일 저녁과 주일 저녁 이틀 두 그룹 성경공부를 해야 했고,
그 시간에는 대개는 꽤 몸이 많이 피곤한 상태여서 빠릿빠릿하게 잘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성경공부를 위해서 준비하고, 나름 본문 연구하는 시간 + 실제 성경공부 하는 시간을 모두 합하면 한주에 7-8시간 정도 성경공부를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셈인데,
이게 내 몸을 갈아넣어서 하고 있다는 생각이 살짝 들때도 있었다.

시간은 부족하고, 체력은 딸리고…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많다.

성경공부 고민 (1)

COVID-19기간을 지나면서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온라인에서 성경공부를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당시 다니던 교회 사람들 그룹 하나, KOSTA를 통해서 알게된 사람들 그룹 하나, 이렇게 두 그룹 성경공부를 2020년 가을부터 하기 시작했다.

나는 Covid가 금방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냥 몇달 이렇게 성경공부를 온라인에서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아직까지도 그걸 계속 하고 있다.

대단한 사명감이나 계획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도 그냥 되는대로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어태껏 해 왔는데…
오래 하다보니 여러가지 한계과 문제들도 있고, 여러가지 고민도 하게되었다.

매 학기 이메일로 안내를 보내고, 신청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는데,
그 이메일 안내를 받아보는 사람들이 104명이고,
지난 6년간 한번이라도 성경공부에 참석 한 사람들이 92명이다.
그중 한번만 참석하고는 다시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의 매학기 신청해서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학기에는 함께 한 사람들이 조금 적은 편이어서 15명 수준이었지만,
많이 할때는 한번에 40명 넘게 신청을 해서 3 그룹으로 해야했던 때도 있었다.

This week is fu**ing hard

요즘은 회사일이 한참 힘든 시즌이다.
나도 꽤 정신없이 지내고 있는데, 같이 일하는 junior 동료와 이야기를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게 무언가를 물어보았다. 그러면서 뭔가를 부탁해 왔는데, 내가 약간 난감해 하면서 시간이 나면 좀 해주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아마도 내가 좀 바빠서 힘든 것 같은 티를 냈던 모양이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This week is fu**ing hard…. This week is really hard for all of us…
라며 이야기를 하는 거다.

살짝 놀라기도 했지만, 살짝 웃음이 나왔다.
내가 좀 바빠서 정신없어 하니까, 자기도 이번주 많이 힘들다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다.

나는 그 친구의 참 그 험한 말이 정겹게 느껴졌다.
뭐랄까, 한편으론 내가 바빠하는 것에 공감해 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동지애같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다.

많이 힘든 세상을 살때, 그 세상을 멋지게 살아내는 사람은 그저 책에서 읽으면서 지혜를 배우면 된다.
그렇지만 많이 힘든 세상을 살때 정말 필요한 사람은 다소 거칠더라도 그 힘든 것을 함께 가는 동료들이다.

기도

1.
살다가 방이 너무 많이 지저분해지면,
그 방 청소를 대대적으로 한번 해서 깨끗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꺾이기도 한다.
말하자면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요즘 내 기도가 그렇다.

기도를 하다가 그 기도의 양과 무게가 너무 커져서,
기도 자체가 너무 어렵고 힘들다.

아침 시간에 쫓기듯 기도를 하게되어 기도시간을 자기 전으로 옮겨보았는데,
회사 일이 너무 늦게 끝나서 마치고 기도를 하려니 에너지가 너무 빠져서 밤에 기도를 하기가 어렵다.

2.
몇 달전,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일종의 그런 확신(?)을 갖게된지는 꽤 되었고, 어느정도 익숙해 지기도 했었는데…
Become new 라는 youtube channel을 나는 거의 매일 듣는데, 거기서는 기도 요청이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매일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그때 나는 그 youtube channel에 이메일을 보냈다.
꽤 긴 이메일이었다. 지금 내 상황이 어떻고, 내 가족의 상황, 내가 가진 문제들, 내가 섬기는 일들에 대한 것 등등.
며칠 후, 그 쪽에서 꽤 긴 이메일이 왔다.
그 팀에서 함께 한 기도의 내용을 길게 적어서 보내주었다.
기본적으로 내가 요청한 기도의 내용을 다시 기도문 형태로 적어준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참 감사했다.
그래도 전혀 모르는 사람인 나를 위해서 이렇게 기도해준다는 것이.
참 큰 힘이 되었고, 실제로 그때 요청했던 기도들이 응답되는 것도 일부 경험할 수 있었다.

3.
내 기도도 그렇게 누군가를 붙들어주는 것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고도,
그 사람을 위한 기도가 정말 그 사람에게 힘이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뭔가 기도를 하고나서 그 사람에게 ‘당신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라고 이야기는건…
괜히 생색내는 것 같고, 내 기도 자체로 하나님의 신비한 힘이 그 사람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하는 인간의 말로 그 사람을 위로하는 것인 것 같아…
그냥 나는 의도적으로 기도하고 있다는 생색을 잘 내지 않으려 하고 있기도 하다.

4.
지난 시간 기도에 대해서 나름 어떤 ‘경험’을 한 것들도 있고,
일종의 신비체험도 있었고,
여러가지 형태의 기도모임에도 따라다녀보기도 했었는데…
여전히 기도는 내게 힘들다.
기도에 관한한 나는 계속 어린아이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이성적 문제, 감성적 문제

복음을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논쟁할때, 흔히 그것이 얼마나 이성적이냐 하는 쪽으로 접근한다.
나도 그런 접근이 매우 유익이 크다고 생각하고 나 역시도 그로인해 큰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지난 고난주간에 생각하게 된 것.

십자가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어마어마한 희생을 하신 것이다.
인간과의 관계에서 신이 그렇게 희생을 감수하기까지 절실하게 그 관계의 회복을 원하신 것.

그런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그 바람과 초대를 거절하는 감성적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문제이기도 하지만,
깊게 감성적 문제이기도 하다.

부활절 예배

미국 교회의 부활절 예배를 참석하면서 느끼는 안타까움(?)은,
(적어도 내가 다녔던 비교적 건강한 미국 교회들의 예를 들자면)
대부분 부활절은 일종의 ‘전도 집회’이다.

부활절이라고 어쩌다 한번 교회 나오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을 대비해서 아예 부활절 메시지는 그야말로 전도 메시지를 한다.
또 부활절 다음주부터 혹시라도 그 중 어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로 시리즈 설교를 준비한다.

지난 주일에도 아주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그 사람들을 위한 설교라는 것을 명확하게 밟히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음주 부터는 이런 주제로 하니, 관심가지고 더 나와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고.

교회, 종교, 기독교에대하여 가지고 있을 부정적 감정들을 언급하고, 그것들에 공감하면서 하는 설교가 인상적이었다. 당신들을 설득하려고 하는게 아니다. 다만 present를 해보려고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전도 메시지를 풀어나갔다.

그 전도 메시지가 충분했을까…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어떻게든 부활절에 나온 cultural christian들을 조금 더 붙들어 보려는 노력은 참 감사했다.

예전 같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것이 좀 안타깝고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건 뭐 다른 기회에 따로 하면 되지 뭐.

그렇게 부활절과 성탄 예배를 매년 하는데, 그 효과가 잘 나타나고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런 노력을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담아 응원했다.

가족

토요일에 동네 목사님 사모님의 장례 예배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한동안 보지 못했던 많은 분들도 오셔서 볼 수 있었다.

한가지 참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교회 교인들이 참 헌신적으로 함께 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모님을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안타까워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 교회의 목사님, 사모님, 그리고 교인들의 특성 상, 목사님을 엄청난 어른으로 생각하고 그 목사님을 섬긴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가족의 한 사람이 당한 상에 다른 사람들이 함께 그렇게 돕고 함께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한편, 그 사모님이 참 좋은 분이었구나.. .하는 건 다시 한번 볼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교회는 참 좋은 교회구나 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목사님도 참 좋은 목사님이고.

그 목사님과 사모님이 함께 시간을 보낸 많은 사람들이 멀리서부터 와서 함께 울어주었고,
그중 어떤 그룹은 시끌벅적하게 그 목사님과 함께 그 그룹이 다함께 단체사진도 찍기도 했다.
뭐랄까 장례 예배와는 어찌보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보였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나도 손수건을 가지고 가서 혼자 앉아서 울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활절을 맞이하는 주말,
다른 소망을 마음에 가지게 되기도 했다.

부활절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죽음아,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를 드립니다. 

(고린도전서 15:54,55,57)

Christ is Risen, He is Risen ind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