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mptation of Ministry

지난 주말 Podcast에서 완전 찔리게 들은 설교가 youtube에도 올라와 있었다.

Tim Keller는 Martyn Lloyd Jones의 광팬(?)임이 분명하다.
Tim Keller 설교들중에서 매우 핵심적인 key는, 자주 Martyn Lloyd Jone에게서 가져오는 것 같다.

위의 설교에서도 역시 그렇다.

왜 현대 보수 기독교에서는 Martyn Lloyd Jones와 같이 설교하는 사람이 없는 걸까…

돌아와서 하는 생각들 (12)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에 헌신한 사람들이,
자신이 했던 헌신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면서 그 legacy를 지키려고 하는 것은 참 추한 일이다.
그렇게 헌신해서 뛰는 사람들도 자신의 헌신 자체에 취해서 그것을 영웅시 하는 것은 추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KOSTA 실무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사람들은,
그렇게 헌신하여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렇게 한때 헌신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죽어도 저렇게 헌신하지는 말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내 헌신을 영웅시하지도 말고, 그 헌신을 legacy로 만들지도 말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면서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것은,
절대로 KOSTA에 헌신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지 KOSTA에 헌신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언제든 KOSTA를 떠날 수 있고, KOSTA를 버릴 수 있고, KOSTA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평가해보건데,
처음 KOSTA를 섬기면서는 정말 KOSTA에 많이 헌신했었다.
그러나 적어도 총무간사로 섬기면서는 KOSTA 자체에 헌신하는 독소는 나로부터 많이 빠졌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기도 시간에, 혼자 숙소에 앉아서, 잠시 혼자 시간이 났을때…
나는 정말 내 헌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많이 많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내 헌신을 생각하며,
그보다 KOSTA에서 섬기는 많은 분들의 헌신을 생각하며,
무엇보다 우리 간사들의 헌신을 생각하며…
많이 울었다.

돌아와서 하는 생각들 (11)

KOSTA 실무를 섬기고 기획과 실행을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어른’이 없다는 것이었다.

눈치봐야 하는 어른들은 참 많았다.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 계신 어른 앞에서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서서 그 어른의 꾸지람을 한참 들어야 하는 일들도 있었다.
밤에 전화로 한참동안 KOSTA가 이래야 한다고 충고와 훈수를 두는 어른들도 많았다.
뭘 도와줄까, 뭐가 힘드니… 라도 묻는 어른들은 참 적었고, 꾸중과 훈수는 넘쳐났다.

총무간사를 할때 2/3 이상의 에너지는 그렇게 힘들게 하는 분들을 상대하는데 쓰였다.

그래서 나는 10여년전에 굳게 결심했었다.
나는 절대로 후배들을 힘들게하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겠다.
그리고 어떻게든 후배들이 이런데 에너지를 쓰지 않도록 만드는데 최선을 다 해야겠다.

KOSTA 실무를 떠난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공동대표를 그만둔지도 이제 꽤 되었다.

이번에 참석해서 느낀 것은,
나는 10년전의 그 결심을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 노력도 했는데…
나는 그저 후배들을 힘들게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고, 막상 후배들을 보호하고 지키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드러났다.

심한 자괴감이 정말 나를 눌렀다.

돌아와서 하는 생각들 (10)

나 혼자만의 생각일수도 있겠지만….
나는 KOSTA가 추구했던 가치가운데 하나로 ‘한 사람이 백 걸음 가는 것 보다 백 사람이 한 걸음 가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길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나 자신이 KOSTA에서 player로 뛸때 정말 그렇개 생각했었다.

한 사람이 백 걸음 가는 것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 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잘 감당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KOSTA의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KOSTA가 한 사람이 백 걸음 가는 것을 추구하게된다면, 그것은 사람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KOSTA 같은 세팅에서, 사람들이 눈에 밟히지만 않는다면… 이슈중심으로, 한 사람이 백 걸음 가자고 선택하는 것이 더 쉬운 선택일 수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힘든 설득과 인내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어진다.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참아낼 필요도 없고, 화나는 것을 화나는 대료 표현해버리면 된다.

그러나 그런 중에 잃어버리는 것은 ‘사람’이다.

금년에 시카고에서 수도 없이 이 생각을 다시 했었다.
그렇게 생각해 왔던 내 생각이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니었나?

돌아와서 하는 생각들 (9)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나그네된 백성’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는
‘미래적 하나님 나라’가 아닐까 싶다.

소위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중 다수는,
Already but Not Yet 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이중성을 이야기할때 흔히 Already, 즉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많이 강조하곤 한다.
나는 그것이 주는 유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최근 몇년 동안은 몇가지 이유로 ‘Not Yet’에 대한 강조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특히 하나님의 나그네된 백성이라는 주제를 제대로 다루어내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가 아직 완전하게 임하지 않았음을, 그래서 우리가 그 나라를 기다림을 더 많이 강조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번 주제구절을 따온 베드로전서를 가만히 보더라도,
미래적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강조가 훨씬 더 크다.
미래적 하나님의 나라, 지금은 하나님의 통치가 없는 것 같은 세상, 그 속에서 피동적으로 사는 삶…

그래서 어쩌면 하나님의 나그네된 백성의 삶을 찾아볼 수 있는 강조점으로 다음과 같은 믿음의 선배들도 생각해 보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꼭 conference에서 그걸 했으면 하는것이라기 보다는, 주제를 묵상하면서 내 자신이 조금 더 파 보았더라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순교자들
– 시한부 환자들
– 한국 교회 초기 신자들
– 가난하고 못배운 사람들의 신앙 (가난하고 못배운 사람들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돌아와서 하는 생각들 (8)

이번에는,
유난히 ‘강사’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접한다.

그게 늘 이랬는데 내가 이번에 집회 전후로 강사들과 communication하는 일이 조금 더 많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번이 정말 더 강사들에게 의미있는 집회였는지는 물론 확실하지 않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강사들과 접촉을 하는 경우가 많았던 예전의 경우와 비교해 볼때, 이번에는 그런 반응이 조금 더 강하게 느껴지고 있다.

그리고 일종의 ‘강사 자발성'(?) 이라고 해야할까…
하여간 강사들중 일부가 적어도 미국 KOSTA는 좀 더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들을 더 많이 접하고 있다.
가서 강의를 좀 더 해야겠다…는 식의 도움을 물론 포함하지만, 그런 도움을 넘어서 다른 여러가지 드러나는 드러나지 않는 support를 느낀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피부로 느끼는 참석자 청년-학생들의 반응이 예전보다 더 뜨겁다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반응이 더 차갑거나 나쁘다는건 아닌데, 강사들의 반응이 더 열광적인것과 같지는 않다는 말이다.

두가지 생각과 우려

1. 지금 KOSTA의 컨텐츠와 스타일은 지금 20-30대 학생들에게 더 맞기 보다는 40대 이후의 강사 그룹에게 더 맞는 건 아닌가?
2. 지금 나는 청년-학생들과의 접점을 현저하게 잃어버렸고, 강사들과의 접점만 가지고 있게된 것은 아닌가?

돌아와서 하는 생각들 (7)

내가 이번에 꼭 하고 싶었지만 못한 것들을 몇가지 쓰자면 다음과 같다.

– 기도를 도와주는 역할
기도실에 좀 짱박혀 있으면서,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의 기도를 도와주는 역할을 좀 해주고 싶었다.

– 책 장사
book table 앞에서 책을 추천/소개하고 파는 역할. – 그런데 이건 아땅님을 비롯해서 다른 분들이 워낙 잘 하셔서 내가 낄 자리가 없기도 했다. ^^

– 간사들 만나기
간사들과 일대일로 만나면서 이야기를 좀 듣고 싶었다. 당연히 KOSTA 일하면서 살기가 녹녹하지 않을텐데… 시간이 좀 아예 따로 내어서 그 시간에는 간사들중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과 일대일로 만나고 싶었다. 간사들이 그걸 원했을지는 모르지만. ^^
간사들이 다들 워낙 바쁘고, 나도 나름대로 바빠서… 이렇게 할 여유가 없었다.

– 외부 손님, 어르신들 상대하기
외부 손님이라고 할만한 분들이 많지 않았고, 그걸 황간사님이 완전 종횡무진 커버하시는 바람에 내가 할 일이 없었다.
다만, 황 간사님이 너무 애를 많이 쓰시는데 옆에서 도울 방법이 없다는게 많이 안타깝기는 했다.

– 새로운 강사들과의 대화, 집중 관리대상(?) 강사들 포섭
강사실에서 강사들과 대화를 하되, 특히 좀 끌어들여서 우리쪽(?)으로 포섭할 강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이건 그 시간에 학생들을 만나느냐 강사들을 만나느냐 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했다.
나는 학생들을 만나는걸 선택했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꼭 하지 않아야겠다고 굳게 마음 먹은게 있었다.
그건 ‘실무’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하다못해 간사들이 짐 나르는 것도 돕지 않았다.
중그룹 성경공부는 어쩌다보니 내가 일부 실무와 관련된 것에 연관이 되는 바람에 살짝 좀 했지만…
그리고 간사 모임에도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마지막날 밤 모임만 빼고는.

일부 ‘내부인’들은, 마지막날 했던 이야기 관련된 어떤 생각을 여기서 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기도 할텐데…
당연히 직접적으로 쓸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무슨 의견과 생각을 쓰는게 혹시 간사들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싶어 조심하는 중이다. -.-;

앞으로도 당분간 이 글타래를 더 풀어볼테니…
일부 생각이 살짝 삐져나오게 되긴 하겠다.

돌아와서 하는 생각들 (6)

학생들의 조 모임에 들어가서 나눈 대화들도 참 많았다.
어떤 조는 나를 데리고 가서는 밤 늦게까지 잠도 자지않고 완전 random에 가까운 것들을 쏟아부으며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조 모임을 끝내고나서도… 함께 나누었던 것을 가지고 새벽2시까지 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고 했다.

조 모임에서 내가 가장 열심히 설명하려고 노력했던 것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 비기독교적 언어로 하나님 믿는 것을 설명하기
– 비종교적 삶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격려하기 – 피상성을 탈피하기
–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우기
– 개인적인 영적 성숙에 힘쓰기

결혼해서 부부로 온 조에도 참석을 했었고,
이제 대학교 1-2학년 애들 (민우보다 한두살 더 많은 이이들) 과도 밤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조 모임에 끌려가서 2-3시간씩 시간을 보내고나면 완전 녹초가 되었었다.
나도 하루에 3-4시간씩 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했으므로…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로부터는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었던 몇가지의 생각들을 confirm받았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 생각보다 적어도 KOSTA에 참석하는 학생들이 post-modern하지 않다.
– 교회 경험이 오래된 사람들이 종교생활에 올인하는 것은 거의 병적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나는 어떤 조에 들어가서는 교회 덜 나가라고 교회 봉사 그만하라고 이야기해주기도 했었다. -.-;)
– 그렇지만 막상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던가, 복음이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던가 하는 아주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개념들에 대한 이해는 매우 약했다.
(아주 기본적인 기독교적 개념- 하나님, 속죄, 은혜, 성화 등등을 쉬운 언어로 설명해주면 다들 처음 듣는 이야기인것처럼 들었다. 막상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야기까지 가지고 가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하는 정말 많은 기초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와서 하는 생각들 (5)

그리고 이번에 가면서 내가 굳게 결심한 것은 어떻게든 학생 참석자들을 개인적으로 많이 만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식사때에 조모임에 들어가서 함께 식사를 하고, 낮 세미나 시간이면 가능하면 빡빡하게 상담을 했고, 밤에 집회가 끝나고 나서도 늦게까지 조 모임에 들어가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내가 이번에 가서 잘한 일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
이게 사실 완전 힘든일이긴 했다. 아침부터 아주 밤 늦게까지 쉴새가 없게 되기도 했지만… 밤에 간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거나… 혹은 전략적으로 만나서 대화를 더 나눌 강사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을 희생해야 했었다.

그렇지만 학생-청년 참석자들의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나는 상담의 기술 그런건 당연히 없고… 그냥 내 경험을 바탕으로 만난 하나님이 혹시라도 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만났었는데… 그렇게 만난 사람들은 모두 눈이 벌개지도록 울면서 session을 끝냈다. 내가 했던 말은 주로 이런거였다.

나는 솔직히 네 상황을 잘 모른다. 내가 도와줄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나는 상담의 기술도 없고 오히려 대화술도 부족하다. 게다가 공감능력 부족한 무식한 공돌이이다. 그렇지만, 나는 너도 나를 붙드셨던 하나님을 좀 바라보면 좋겠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든 하나님을 좀 붙들어봐라. 그 상황에서 어려움을 너무 쉽게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그 어려움을 하나님과 함께 지나가면 좋겠다. 하나님은 신뢰할만한 분이다. 적어도 내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진로나 신앙생활등의 이슈로 상담을 신청해온 사람들이 거의 100%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었다.

적어도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상담이 아니라 하나님었던 것 같았다.

돌아와서 하는 생각들 (4)

이번에는 또 새롭게 시작하는 중그룹 성경공부를 맡았었다.
기획 단계에서 늦었지만 참여해서 간사들을 좀 도왔고, 중그룹을 인도하시는 분들과 communication 하는 역할을 맡았다. 중그룹 인도자들이 아주 좋은 분들이 감사하게도 세워졌고, 그래서 그분들에게 많은 instruction이나 guideline을 드리기 보다는 그분들이 그냥 최대의 ‘개인기'(?)를 발휘하시도록 encourage 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처음 간사들이 내게 연락을 했을 때에는 나도 중그룹을 하나 인도하도록 부탁을 해왔지만…
어쩌다 보니 기획을 하는데 많이 involve하게 되었다.
적어도 내가 KOSTA를 섬기면서는 기획자(간사)와 presenter(강사)의 역할이 분리되는 것이 KOSTA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내가 기획에 참여했으니 인도자로는 섬기지 않겠다고 했었다.
다만, 결혼을 한 사람들이 혹시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비공식적’으로… 아이들도 데리고 들어올 수 있는 그룹을 하나 만들어서 그건 해보겠다고 했다.

이건 그런데 살짝 스텝이 좀 꼬였다.
원래는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각각 다른 그룹이 들어오게 되고, 목요일에는 화,수에 들어온 사람들중 원하는 사람들이 optional로 들어온다고 들었었는데…
화요일에 잘 마치고… 수요일에 떡 가보니 그 전날 오셨던 분들중 일부가 다시 들어와 계셨다!

원래 계획은 화,수에는 같은 본문을 하려고 했었는데… 그게 안되는 바람에 졸지에 수요일에 갑작스럽게 그 자리에서 본문을 바꾸어야 했다. 결국 jjKOSTA에서 사용한 본문을 가지고 성경공부를 했다. -.-;
완전 임기응변…

다만, 이번에 중그룹 성경공부 인도자들이 참 좋은 분들이어서, 그분들과 communication하는 일이 참 즐거운 일들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