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서 하는 생각들 (4)

이번에는 또 새롭게 시작하는 중그룹 성경공부를 맡았었다.
기획 단계에서 늦었지만 참여해서 간사들을 좀 도왔고, 중그룹을 인도하시는 분들과 communication 하는 역할을 맡았다. 중그룹 인도자들이 아주 좋은 분들이 감사하게도 세워졌고, 그래서 그분들에게 많은 instruction이나 guideline을 드리기 보다는 그분들이 그냥 최대의 ‘개인기'(?)를 발휘하시도록 encourage 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처음 간사들이 내게 연락을 했을 때에는 나도 중그룹을 하나 인도하도록 부탁을 해왔지만…
어쩌다 보니 기획을 하는데 많이 involve하게 되었다.
적어도 내가 KOSTA를 섬기면서는 기획자(간사)와 presenter(강사)의 역할이 분리되는 것이 KOSTA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내가 기획에 참여했으니 인도자로는 섬기지 않겠다고 했었다.
다만, 결혼을 한 사람들이 혹시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비공식적’으로… 아이들도 데리고 들어올 수 있는 그룹을 하나 만들어서 그건 해보겠다고 했다.

이건 그런데 살짝 스텝이 좀 꼬였다.
원래는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각각 다른 그룹이 들어오게 되고, 목요일에는 화,수에 들어온 사람들중 원하는 사람들이 optional로 들어온다고 들었었는데…
화요일에 잘 마치고… 수요일에 떡 가보니 그 전날 오셨던 분들중 일부가 다시 들어와 계셨다!

원래 계획은 화,수에는 같은 본문을 하려고 했었는데… 그게 안되는 바람에 졸지에 수요일에 갑작스럽게 그 자리에서 본문을 바꾸어야 했다. 결국 jjKOSTA에서 사용한 본문을 가지고 성경공부를 했다. -.-;
완전 임기응변…

다만, 이번에 중그룹 성경공부 인도자들이 참 좋은 분들이어서, 그분들과 communication하는 일이 참 즐거운 일들 중 하나였다.

돌아와서 하는 생각들 (3)

그외에도 jjKOSTA에서의 어떤 역할을 말하자면 약간 자원에 가깝게 부탁을 했었다.
jjKOSTA를 섬기는 간사가 우리 동네에 있어서… 혹시 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았고, 필요하면 KOSTA의 스피릿을 좀 present하는 역할을 해볼 수 있겠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래서 jjKOSTA에서 짧은 message를 하나 부탁받았다.
그걸 잘 했느냐… 글쎄…
게다가 그걸 통해서 KOSTA의 spirit을 잘 전달했다고 생각되지도 않고.

이게 여러가지로 communication이 좀 꼬이는 바람에 결국 내게 message를 해달라고 연락이 온것이 좀 많이 늦어졌다. 그래서 생각보다 준비할 시간이 좀 부족하긴 했다. 생각해보면 공식적으로 무슨 부탁이 오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하면서 대비를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또 jjKOSTA에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가운데 하나는 조장들과 좀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몇 사람도 좋으니 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여러가지 이유로 jjKOSTA 프로그램에 사실상 거의 참석하지 못했고 결국 조장들과 만나는 일은 거의 흐지부지 되어버리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jjKOSTA에서 개회 message를 맡았던건 살짝 패착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좀 들기도 한다. ^^

돌아와서 하는 생각들 (2)

이번에는 그래서 의도적으로 무슨 ‘순서’를 맡았다.
이게 그냥 설렁설렁하는게 아니고 다소 빡쎈 순서를 맡았다.
그리고 가서도 좀 별로 드러나지 않지만 간사들이 하지 않을만한 것들을 했었다.

우선 제일 큰 것은 저녁집회 이후 기도시간 인도였다.
이건 거의 내가 자원한 것에 가까웠다.
이런 순서를 자원해서 하는 것은 사실 내 스타일도 아닐 뿐더러 KOSTA 간사들의 스타일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맡았던 이유는 다음의 몇가지 였다.

우선, 코스타를 좀 아는 사람이 여러 강사들의 message를 전체집회에서 coherent하게 묶어주면서도 혹시라도 삑싸리가 나는 강사가 생길 경우 그걸 좀 make-up 하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다행히 금년에는 강사님들의 message가 주제와 align도 잘 되었고, 서로 연결도 아주 잘 되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두번째로, 전체집회가 마무리되는 방식에 대한 여러가지 다른 생각들과 feedback들이 있어 왔는데,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분들이 함께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집회 마무리를 하는 조정자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어느정도 다양한 의견과 discussion의 context를 아는 사람이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구원이나 헌신 초청 등에 대해서는 꽤 첨예한 관점의 대립이 있어왔다. 나는 나름대로 대립하는 관점을 모두 다 어느정도 포용하고 만족시키는 middle ground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세번째로, 전체집회 강사님들과 어느정도 접촉점을 찾고, 그분들과 대화하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특히 적절한 수준으로 미국 코스타가 처해있는 상황을 설명드리고 그분들의 마음을 얻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이 일들을 잘 했느냐…
글쎄…
그런데 분명한건, 이게 내가 얼핏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었다. ^^

그리고 전체집회 강사님들과 일부 살짝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 그리고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분들의 마음을 좀 얻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고 있다.

아주 만족스럽다고 할 수는 없더라도 어느정도 목표는 이룬것이 아닌가 싶다.

돌아와서 하는 생각들 (1)

지난주는 참 오랜만에 KOSTA 집회에 참석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쓸 수 있는 내용이 있고, 또 그렇지 못한 것들이 어쩌면 더 많이 있겠지만…

언제나 KOSTA를 참석하면서 스스로 ‘간사’로서 참석했었다.
공동대표를 할때도 결국은 ‘간사’를 대표하는 공동대표로 참석했었고,
공동대표를 그만 둔 후에도 참석하면서는 ‘간사’의 마인드로 참석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내가 ‘간사’로서 참석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렇게 한 이유는, 간사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KOSTA를 참석할때 내가 불편한 것 가운데 하나는,
‘어르신’들이 가끔은 나를 붙들고 KOSTA에 대한 각종 feedback과 잔소리를 하신다는것이다.
잔소리를 듣는거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또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간사들에게 전달해주는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욕을 먹는게 있으면 그냥 내가 욕먹고 간사들에게 전달 안해주면 된다. ^^
그러나 실무를 떠난지 10년이 되어가는 내게 실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는 이야기를 들으면 많이 불편하다.
내가 한 소리 들어서 불편한 것이 아니라, 내가 있기 때문에 간사들이 진짜 제 자리를 찾지 못하는것이 아닌가 싶어 불편하다.

그래도 그럴때 드는 생각은,
이렇게 땡볕에서 30분씩 서서 이런 저런 말씀을 해주시는 것을 듣는걸… 간사들 대신 내가 해서 다행이다…

내 기도

대학교 4학년 때였던가…
몇명의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 당시 우리에게 신앙의 본보기이자 큰 선배님으로 여겨졌던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다.
같은 학교에 계신 ㅈ모 교수님이나 ㅇ모 교수님 같은 분들도 있었고,
다른 학교에 계시지만 영향을 많이 끼치셨던 ㅅ교수님, ㅇ교수님, ㄱ교수님 등등…
그리고 같은 교회에서 만났던 ㅊ박사님 같은 분이나 나와 같은 직장에 계셨던 ㄱ박사님 같은 분들…

그 당시 그분들은 대부분 40대였다. (30대도 있었다.)
40대에 이미 후배들에게 따라야할 이정표같은 것으로 계셨던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불과 20년 후에 어쩌면 우리가 저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20년 뒤에는 저분들 같은 모습으로 서 있을 수 있을까?
이분들이 연세가 들어가시면서 우리가 금방 이분들의 빈자리를 채워야하는 세대인데, 과연 우리가 그럴 수 있겠나?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뭔가 화들짝 놀랐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정말 얼마 있지 않아서 우리가 한국 교회를 책임질 사람들이 될 수 있겠다.
정말 잘 준비하자.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의 생각이었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때 그 교수님들은 여전히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평신도들이고,
그때 20대 대학생들인 우리는 후배들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 / 해 주지 못하는 실패한 세대가 되어버리고 있다.

내가 코스타에 가서 하는 가장 간절한 기도는 이것이다.
하나님, 또 다시 10년, 20년을 실패한 세대만이 길러지는 시간을 보낼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할수는 없습니다.
이 사람들을 정말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정말 좀 세워주십시오.

내일이면 참 오랜만에 코스타 집회로 떠난다.
한 주 동안, 많이 울면서 기도할 생각이다.

(다음 한 주 블로그도 쉽니다. 다녀와서 뵙겠습니다. 꾸벅~)

힘든 것을 해결해버리는 종교

교회등의 기독교 모임에서 소위 ‘기도제목’이라는 것을 나눈다.
나는 ‘기도제목’을 나눈다고 하는 표현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서로 기도 요청을 한다, 서로 어려운 것을 나눈다, 내가 기도하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는 식의 표현을 써야하지 않을까 싶은데…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어쨌든 그렇게 기도제목을 나눌때 들어보면,
압도적 대다수가 자기 힘든거 해결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힘든게 없으면 기도할게 없다고 한다.

기독교인 다수가 어떤 기도를 하는가 하는 것을 보면 그 시대의 기독교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가를 볼 수 있다.
(혹은, 내가 어떤 기도를 하는가 하는 것을 보면 내가 어떤 영적 상태에 놓여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힘든일을 해결하고자하는 것에 모두 함몰되어있다는 것은,
현대 기독교가 힘든일을 해결하는 기독교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힘든일은 물론 해결해야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힘든 일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기회이다.
그리고 그 힘든 일을 통해서 내가 단련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힘든 일들은 정말 힘들다. 아프다.
그렇지만 그 힘든 일을 해결하려고만 노력하는 종교는,
기복종교의 모습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권리와 사랑

Stanley Hauerwas가 한 말에서 더 develop한 생각

우리는 권리를 성스러운 것으로 여기곤한다.
특히 인권에 대해서는 그렇다.
인권은 모든 도덕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여겨진다.

인권(Human Right) –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하는 권리이다.
그런데,
권리는 과연 윤리의 근본이 될 수 있을까?

요즘 세상에서는 목소리를 높여라, 네 권리를 주장해라, 네 목소리가 들려지게 해라… 는 이야기를 참 많이들한다.
나는 약자가 사회에서 보호되어야 하고, 그래서 그 목소리를 듣는 것이 매우 사회적으로 건강한 합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각자가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 과연 도덕의 기준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

예수님은 그 도덕의 기준으로 권리를 제시하지 않고 사랑을 제시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해라.

나는 권리가 도덕의 근본이 되는 세상보다는,
사랑이 도덕의 근본이 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언제 이것에 대해서도 한번 좀 더 생각을 풀어봐야겠다.

비장함?

참 오랜만에 다음주에는 KOSTA 집회에 참석한다.
금년에 참 오랜만에 참석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년에 또 참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도 보고,
좋은 이야기도 나누고,
또 깊이 따로 기도도 하고…
그런 시간을 가질 기대들이 참 많다.

그렇지만 반면,
이번엔 나름대로 마음과 자세가 비장하다. ^^

최근에,
만일 이번이 내가 마지막으로 참석하는 KOSTA 집회라면 나는 뭘 하고 싶은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그러면 이것도 좀 해야겠고, 저것도 해야겠고…
그런 생각을 머리속으로 막~ 하다가…
문득 헬렌켈러의 Three days to see 라는 짧은 글이 생각났다.

그리고는 나름대로 마음을 고쳐잡았다.
음악을 연주하는 player가 아니라 그 음악이 연주되는 것을 감상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하나님께서 소중한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을 더 많이 appreciate하겠다고.

다음주가 또 기대된다.
전투태세에 맞추어 어제 또 짧게 머리를 깎았다. ^^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15)

내가 공동체에 대해서 전문가도 아니고,
경험이 풍성한 것도 아니고,
연구를 나름대로 해본것도 아닌데…

정말 단편적인 생각들 몇개를 한번 적어보았다.
당연히 coherent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을것이다.

사실 적고 싶은 것들이 더 많이 있었지만…
어떤 것은 지금 내가 속해있는 교회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이야기일수도 있어서 그런 것은 여기 쓰는걸 좀 자제하기로 했다. ^^

이번주까지는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써보려고 원래 생각했고, 글도 몇개 더 써두었는데…
아무래도 sensitive한 이야기가 더 나올수도 있고, 오해나 상처를 유발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아,
일단 이 시리즈는 여기에서 한단락 지어보려고 한다.

나는 이런 공동체에 대한 고민이 다양한 세팅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지면 좋겠고,
비전문가들이 뛰어들어서 경험하며 나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솔직하고 열린 마음으로 토론하고 비판하는 일들도 자유롭게 이루어지면 좋겠다.

당장…
내가 속해 있는 교회에서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내가 공동체에 대해서 하고 있는 생각을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해볼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가져본다. ^^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14)

때로는 공동체 전체를 바꾸는데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정말 헌신된 2-3사람 심지어는 어떤 한 사람의 희생과 헌신으로 큰 공동체가 바뀔수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헌신된 소수의 희생보다 더 powerful한 것은,
전혀 가능성 없어 보였던(?) 사람의 변화이다.

정말 복음 때문에 변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은 감격스러울뿐 아니라 영광스럽다.
완전 농땡이이거나,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거나 조롱하는 사람들의 변화는 그저 그것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것 같은 감동을 받는다.

물론 어떤 사람의 회심의 변화가 가장 극적이고 감격스럽겠지만,
오래 교회를 다니던 사람이 눈이 열려 복음의 새로운 영역을 깨닫게 되는 일이라던지,
burn-out되어있거나 낙망해있는 리더가 상황이 변화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새 힘을 얻는 일들 역시 큰 감동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를 섬기는 사람 입장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을 꾸준히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애매한 대중 전체를 대상으로 대포를 뻥뻥 쏘아대는 것 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면서도 옳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