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3)

그저께 글에서 썼지만 어떤 사람이 공동체에 대하여 기대하는 수준은 대부분 그 사람이 경험한 공동체에의해 결정되는 것 같다.
경험했던 공동체가 그저 그렇다면, 기대하는 공동체 역시 그저 그런 수준까지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경험했던 공동체가 정말 깊은 것이었다면,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공동체는 늘 마음에 차지 않는다.

내가 유학생으로 공부할때,
한국의 내 친구는 이런 얘기를 내게 했었다.
돈 필요하면 얘기해라. 여기서 돈 모아서 보내줄께.

나는 대학때 그 친구가 선교여행을 간다고 했을때, 내 통장에 있는거 다 톨톨 털어서 그 친구에게 주고 한달 거지로 살았었다.

나는 그런 경험 때문에,
공동체가 어떻게 서로 재정적 필요를 채워주는가 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 –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사는건 전혀 아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이, 내 공동체의 모습이 늘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예전에 어떤 소그룹 성경공부를 할때,
어떤 친구가, 자기 여자친구에게 일어난 상당히 끔찍한 일을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는 그 친구와 여자친구를 위해서 눈물로 함께 기도했다. 그 둘은 그 후에 결혼하고 잘 산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만큼 끔찍하고 아픈 일을 그렇게 나누며 기도했던 기억 때문에 나는 웬만한 나눔으로는 마음에 차질 않는다. –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사는건 전혀 아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이, 내 공동체의 모습이 늘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다.

특히 공동체의 ‘리더그룹’이 경험했던 수준은 그 공동체의 기대수준을 정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 같다.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2)

어떤 공동체가 되었건 그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핵심이 있기 마련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관계’가 그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핵심이다.
사진 동호회는 ‘사진’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그 핵심에 있다.
학교라는 공동체는 ‘교육’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다.

그럼,
교회는 그 핵심에 무엇이 있을까?

이 질문이 얼마나 우스운가? 당연히 예수님 아닌가.

그런데,
실제 교회들에서 하고 있는걸 보면 그게 그렇게 우습지 않다.
교회에서 ‘공동체’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예수님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지 않아도 괜찮은 형식을 많이 취한다.

우리가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서로 마음을 열고 많이 대화하자,
우리가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서로 싸우지 말자,
우리가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함께 놀러가기도 하고 봉사도 하고 시간을 많이 보내자…

나는 이런것들이 무의미하다고 당연히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의 관계를 build-up 해나가는 것은 공동체 형성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 안에 예수님이 어디있는가 하는 것이 missing되어 있다면?

사진찍는 동호회에서는 궁극의 공통 관심사가 ‘사진’이어야 하듯이,
교회의 궁극의 공통 관심사는 ‘하나님, 예수님, 십자가, 복음, 하나님나라’이어야 한다.
그것 빼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방식으로 공동체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foundation 없이 집을 짓는 것과 같다는게 내 생각이다.

교회에서 함께 하는 끈끈한 것이 부족하다면,
일차적으로 점검해야하는 것은 관계를 개선시키는 테크닉이 아니라,
복음이 정말 풍성한가 하는 것이어야 하지는 않을까.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1)

내가 머리속으로만 꼭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미루어놓은 주제들이 몇가지 있다.
그중 어떤 것은 너무 scale이 커서 한번 시작했다하면 한달동안은 쓰게될 것 같고,
어떤 것은 생각이 다 정리되지 않아서 시작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공동체에 대한 생각은 주로 후자에 해당하는 것이다. 내 생각이 너무 설익어서 제대로 모든 내용을 잘 cover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래서 그냥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단편적인 생각 몇가지를 너무 길지 않게 한번 적어볼 생각이다.

나는 공동체에 대한 어떤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의 공동체 경험에 대단히 깊게 의존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개념에대한 이해가 경험에 의존하긴 하지만, 공동체에 대해서는 특히 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공동체에 대한 경험이 대단히 약하고 일천하다. 아주 단편적으로 건강한 공동체의 몇개의 단면들을 좀 경험해본 적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내가 여기에 쓸 수 있는 것 역시 대단히 근시안적이고 제한적일터…

가슴이 먹먹할때는…

어제 잘 아는 한 동생으로부터,
최근 있었던 마음 무거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마음이 많이 아프고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걸 그냥 덤덤하게 말해주었다.

그 얼굴로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이 더 내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내가 뭔가 작심을 하고 힘을 내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무슨 지혜가 넘쳐나서 그 지혜를 흘려줄 수 있지도 않고,
아니면 내가 왕창 공감능력이 뛰어나기라도 해서 그걸 듣고 함께 많이 공감해주지도 못했다.

다만,
그 이야기는 내 마음을 많이, 많이, 많이, 많이, 무겁게 누르고만 있다.

이렇게 가슴이 먹먹할때는,
그리고 그 앞에서 내가 아무런 힘이나 도움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그 먹먹함을 그냥 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이 기도가 되기도 한다.
그걸 기도라는 format으로 담아내지 않고, 그 먹먹함을 마음에 하나 가득 담고 그 안으로 하나님을 초청하는 것만으로 기도가 되기도 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 마음 속의 부담을 기도라는 format으로 풀어낼 힘이 없다고 느껴진다고 이야기하는게 더 맞는 이야기일 것 같다.

Survived!

민우가 어제 고등학교 졸업을 했다!

민우는 고등학교 시절을 참 재미없어했다. 그리고 힘들게 보냈다.
옆에서 보기에도 정말 그래보였다.

숙제는 엄청나게 많고, peer pressure는 대단하고,
주변에는 소위 ‘선행학습’을 하고 온 애들도 많았고,
이 동네의 엄청난 교육열.

몇년전 이 동네의 어떤 교회에서 목사님께서 설교중에 하셨던 이야기가 정말 맞다.
이 동네의 Christian들은,
Silicon Valley에서 살면서 내 아이가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느냐 하는 것 보다는 Harvard에 갈 수 있느냐 하는 데 관심을 더 많이 살고 있다는 것.

어제 이렇게 졸업을 한다고 쭈욱~ 앉아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참 안됐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훨씬 더 활기 있을 수 있는 고등학교 시절을 그렇게 보낸 아이들.

그리고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민우에게 참 많이 미안했다.
아빠가 그런 속에 있는 민우에게 좀 더 든든한 방파제가 되어주지 못했다.
오히려 때로 ‘더 노력해라, 더 공부해라, 더 성실해라…’ 식의 이야기로 그 마음을 더 힘들게 했다.

감사한건,
민우가 1년동안 gap year를 하면서 1년 더 우리와 함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으로 여기고,
민우와 더 친하게 지내보려고 결심중이다.

민우는 Survive 했다!

널 사랑하지 않아

나는 새로운 한국 가요를 그렇게 열심히 듣는 편이 아니다.
특히 아이돌 중심의 가요판이 되면서 솔직히 한국 가요에 흥미를 많이 잃었다.

나는 술도 마시지 않았으나,
대학때는 기숙사에서 가요 책을 펴놓고 기타를 치면서 가요를 무쟈게 불러댔었다.
술을 안/못 마시는 애들하고 그렇게 같이 어울리면서 놀았다.

지난 봄에 한국에 출장을 갔다가 그 회사 직원의 차를 타고 이동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차에서 어반자카파의 “널 사랑하지 않아” 라는 노래가 나왔다.

가사가 참 희한했다. – 솔직히 말하면 별로였다. 널 사랑하지 않아…. 이거 말고는 다른 얘기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노래도 잘하고, 곡조도 좋고…

그러다가 어제 문득 youtube에서 그 노래가 suggestion으로 뜬걸 보고는 몇번 들어보았다.

대학때처럼 다시 기타가 치고 싶어졌다. ^^

Being Radical

Radical하다는 것을 급진적이라고 번역하곤 하는데,
webster 사전을 찾아보면

1 : of, relating to, or proceeding from a root: (근본적인이라고 번역할 수 있겠다.)

2 : of or relating to the origin : (이건 근원적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 같고)

3
a : very different from the usual or traditional : extreme
b : favoring extreme changes in existing views, habits, conditions, or institutions
c : associated with political views, practices, and policies of extreme change
d : advocating extreme measures to retain or restore a political state of affairs
(이게 급진적이라는 뜻일 것 같다.)

결국 Radical하다는 것은 근본적인, 근원적인 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어근을 생각해보더라도 Rad 라는 건 root과 연관이 있는 말이다.

신앙이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은 것은,
그 신앙이 충분히 근원적이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세상에 강력하게 저항하고 맞서는 신앙을 갖지 못하는 것은,
전략이 부족하거나 용기가 부족하거나 성품이 그렇지 못하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신앙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참으로 그 중심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근원적/근본적 신앙이 급진적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가장 clear한 예는 순교자들이다.

나는 Silicon Valley 같은 상황에서,
순교자의 신앙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relavant하다고 생각한다.

주말에 읽은 책 – The Benedict Option

이번 long weekend에는 작정을 하고 쉬었다. ^^

그러면서 책 한권을 거의 다 읽었는데, (한 85%쯤 읽었다. 막판에 좀 힘이 달려서 확~ 끝내버리지 못했다. -.-;)
The Benedict Option 이라는 책이었다.

American Conservative의 editor인 Rod Dreher 라는 사람이 쓴 책이다.
Dreher는 미국의 religious conservative 이다. 동성애 등에 대해서 나와는 다른 관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역사관에 대해서도 좀 다른 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Dreher의 분석에 격하게 공감하는 것은 이것이었다.

지금 미국 사회는 너무 심하게 비기독교적이 되어버려서, 그 문화로부터 전략적 철수 (strategic withdrawl)을 하지 않고는 기독교가 기독교로서 살아남는것 자체가 힘들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그 속에서 영성을 지키고 사는 것, 자녀를 키우는 것, 교회 공동체를 만드는 것, 커리어를 갖는 것, 정치적으로 참여하는 것 등등에 대해 꽤 급진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나는 당연히 그 기본적인 전제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것이 있으므로 약간 껄끄럽게 읽은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완전 속 시원~ 했다!

나는 이런게 정말 급진적 보수 신앙이구나… 싶었다.
신앙의 색깔이 보수적이든 개방적이든지 간에, 급진적인 면을 잃어버린다면 생명력을 잃게 되는 것 같다.

나는 현대 기독교인들이 세상 속에서 살면서 세상 문화로부터 독배를 받아 마시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좀 위험하게 세상 속에서 싸우면서 살아가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치명적인 독배를 마신다고 생각한다.

그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Therapeutic moralistic deism의 신앙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그 독을 허용하는 치명적인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의 박해 하에서 사자밥이 되어가고 있는 순교자를 바라보면서,
착하고 순한 얼굴을 하고 두 손을 앞으로 뺀채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부른다고 생각해보라.
나는 현대교회가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이 생각을 해보곤 한다…. 그리고 나는 그 교회문화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고 말이다.

옛날에 했던 게임들

삼국지, 수호지, Civilization, 대항해시대, Sim City, Ultima…
나는 이런 종류의 게임을 좋아했었다. 대학때 시간이 나면 이거 하느라 밤을 샌적도 있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Civilization은 요즘까지도 계속 새로운 버전이 나오는 듯.

수호지 같은 게임은 거의 아무런 생각하지 않고 play할 수 있는 게임이어서,
얼마전까지만해도 좀 잡념을 없애면서 있고 싶을때 한번씩 play 하기도 했었다.
대개는 그렇게 게임을 play 하면서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설교를 듣고나면 생각과 마음이 가벼워지곤 했었다.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최근에 나온 게임은 사서 할 엄두도 안나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는 거다.
새로운 게임을 배우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그런것을 보면 내가 그런 게임을 했던 것은,
적어도 게임 자체를 즐겼다기 보다는 게임을 하면서 음악을 듣거나 설교나 강의를 듣는 그것 자체를 즐겼던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번 long weekend에는,
옛날 게임 하나를 download 받아서 한번 play 해보고 싶기도 하다. 시간이 될른지… ^^

스스로에게 물어보다

배가 뽈록 나온 사람이 fitness program을 광고하는 것은 우스꽝 스러운 일이다.
영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영어 회화책을 광고할수는 없는 일이다.
여자가 수염깎는 전기 면도기를 들고, 써보니 좋더라 라고 이야기하면 그냥 피식~ 할 뿐이다. (남자가 생리대를 들고 써보니 좋더라 하는 것도 마찬가지겠고… ㅎㅎ)

내가 복음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데 얼마나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복음을 누리고 있다는 것은 여러가지 차원이 있겠다.
– 풍부한 지혜를 동반한 지식
– 가슴 뜨거운 감격
– 변화된 인격과 인품
– 세상을 보는 다른 눈 (세계관) 등등…

이중 무엇 하나 가지지 못한 사람이 스스로 ‘사역자’라고 자처하며 뭔가 나서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이 참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떤 시대에는,
정말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참된지 그렇지 아니한지를 따져보지 않아도 될만큼 사역자들에게 복음의 능력이 충만할때가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어떤 사역자가 하고 있는 것이, 그 사람의 개인기인지, 그렇지 않으면 복음의 힘인지 분간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나는 물론 전임사역자도 아니고, 그렇게 될 생각도 없지만…
나 스스로를 생각하며 자주 묻는다.
이렇게까지 엉터리로 믿고 있는데… 과연 내가 무슨 이야기를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참 흥미로운 것은,
내가 만난 (내가 보기에) 진실된 크리스천 중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하면서 회의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내가 본 (내가 보기에) 거짓된 크리스천 중에서는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아이러니컬하다.

(그렇다고 내가 진실된 크리스천이라는 말은 전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