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TA/USA-2014 Chicago Conference 마친 단상들 (4)

뭐 하루 반짝 참석해놓고 이래저리 길게도 쓴다고 뭐라고 하실 분들이 계시겠지만서두,

뭐 내 블로그니까 내맘이다. ㅎㅎ

어제 글에 이어서…

이번에는 집회 자체는 거의 참석하지 못했고,

공동대표 모임, 간사 모임에 좀 참석했고, 몇분들과 이야기를 좀 나누었고, 그리고 중보기도실, 서점 등 다니면서 오랫만에 뵙는 분들 인사다닌게 전부였다.

코스타와 관계된 여러가지 기사들, 사건들, 그리고 facebook이나 다른 포스팅들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을 해 보았다.

집회 직전에,

문창극 총리후보를 support하는 성명서를 낸 어르신 목사님들도 그 자리에 계셨고,

그것을 보면서 저분들과는 도무지 함께 할 수 없다고 열받아하는 사람들도 그 자리에 계셨다.

그중 어떤 분은, 아예 설교 시간에 보수적 정치적 발언을 하시기도 하셨고,

그걸 보고 엄청 열받은 강사님도 계셨다.

그 두가지의 정치적 입장을 놓고 보았을때,

내가 나름대로 가지는 정치적 입장은 비교적 뚜렸하다.

한국 선거에 투표한 적이 많지는 않았지만, 내가 처음 선거권을 받은 이후 

92년 대선부터 최근 대선까지 늘 한쪽 후보만을 위해 투표했다.

이 블로그에서 자주 드러내고 쓰지만, 나는 어떤 특정 정치집단은 매우 싫어한다. (한국도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

그러나,

이런 세팅에서 이번에 더욱 많이 고민하게 되는 것은…

과연 이렇게 다른 정치적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복음’안에서 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하는 것이다.

내가가진 정치적 입장이,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유일한 신앙적 입장인 것 같아 보인다 하더라도 

(사실 나는 그런 입장을 갖는 것은 일종의 오만일 수 있다고 본다.)

적어도 반대의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신앙 자체를 일단 받아줄수는 없는 걸까? 

꼭 저 반대쪽 ‘빨갱이’ 혹은 ‘꼴통’을 쳐부수고 쓸어버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걸까?

적어도 코스타 세팅에서는,

양쪽의 분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한이 있더라도, 

양쪽의 분들을 다 모시고 우리가 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고백하도록 하는 시도를 해봐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것은 코스타 세팅에서 해잴 수 없는 무모한 시도일까?

정치적 입장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충분히 가질 수 있느 것이지만,

그런 정치적 입장은 신앙의 하위 개념으로서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똘레앙스를 갖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일까?

KOSTA/USA-2014 Chicago Conference 마친 단상들 (3)

딱 하루 있었는데도,

이런 저런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들이 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코스타의 대선배님과의 대화였다.

저녁집회 시간에, 저녁집회를 다 빼먹고, 그분과 열띤 대화를 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그것도 꼬박 서서 그분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선배님의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다.

지금 최근 코스타의 방향 대로라면, 지역교회의 보수적인 목회자들이 자신의 교인들을 거기에 보내는데 우려를 하는 수준이 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오는 어떤 어떤 강사를 보니, 내가 거기 갈 자리는 아니구나 하고 느낄만 하다. 적어도 일정부분의 balance가 필요하다. 적어도 지금은 balance가 많이 깨어진 것 같아 보인다.

내 항변을 정리하면 이렇다.

우선, 지금 방향과 강사 선택에 있어서 어느정도의 balance는 이미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기계적인 balance를 추구하려고 들다보면 운동성을 놓쳐버릴 가능성이 있다.

또한, 지금 소위 그 ‘보수적인 목회자 그룹’의 color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교회를 떠나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는 판국이다. 바로 그런 이유때문에 코스타운동에 함께 하지 않는 젊은 그룹도 있다.

적어도 지금 현재는, 보수적 목회자 그룹이나 개혁적 젊은 그룹 양쪽이 보기에 모두 다 불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 –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취해야만 하는 position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양쪽 중 어느 한쪽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보수적 목회자 그룹의 눈치만을 보거나, 개혁적 젊은 그룹의 눈치만을 보고 있자면 코스타만이 해 낼 수 있는 역할을 놓치게 된다.

가령 86년에 코스타를 시작할 당시, 그 당시 ‘보수적 어르신들’이라고 할 수 있었던 교단 정치 목사들을 코스타 운동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것은 그분들과의 balance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당시로서는 젊은 개혁그룹이였던 신복음주의자들이 이 운동을 시작했고 일으켰고 때로는 날카로운 날을 세워가며 목소리도 높였다.

왜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적용될 수 없다고 보시느냐?

음…

뭐 내 블로그이니까, 당연히 내 주장을 더 길게 썼다. ^^

그분의 말씀과 생각에도 물론 깊이 고려해보고 생각해볼 내용이 있었다.

나중에는 나도 약간 목소리가 커지고 톤이 높아지도록 열띠게 이야기를 했는데,

생각해보면 한참 선배님이신 그분께 버릇없지는 않았는지 후회와 반성이 된다.

그분과의 대화를 한지 3주가 지났는데도, 그 생각이 계속 내 머리에 남아있다.

코스타는 얼마나 ‘날카로움’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할까.

KOSTA/USA-2014 Chicago Conference 마친 단상들 (2)

코스타를 섬기는 사람들이 매년 100명 수준은 되지 않나 싶다.

강사, 찬양팀, 어린이코스타 교사, 간사 등등.

그중,

그 사람의 생일이 언제라는걸 알만큼 가까운 사람들은 대충 간사 + 일부 강사님들정도가 아닐까.

그 수를 따져보면 40명 수준?

매년 놀라는건데,

유난히 코스타 집회 기간에는 이 섬기는 사람들의 생일이 많다.

금년에도 따져보니…

적어도 3-4명 정도의 생일이 그 기간에 겹쳐있다.

확률적으로는 40명 중, 그 한주에 생일이 들어있는 사람이 0.8명 정도 있어야 한다. (40명 / 52주)

그런데 4명이라는건, 확률의  자그자치 다섯배나 되는 거다.

흠… 이건 참 흥미롭다. 매년 그렇다. 

그리고 그렇게 생일이 그 주에 끼어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10년 넘게 자기 생일을 코스타 집회기간중에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네 생일… 내가 더 많이 복되게 해줄께.

네 소중한 섬김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 정말 그건 네게 큰 선물이 될꺼야.

이 사람들의 섬김이 참 복되다.

….

개인적으로,

내 아내, 내 아버지, 내 동생의 생일이 모두 7월 첫째주에 몰려있다.

그래서 더더욱 이런 생각을 하게된지도 모르겠다. ^^

아, 물론 그렇다고 이 기간에 생일 있지 않은 사람은 별로 섬기는거 아니라는건 아니다. ㅎㅎ

이 기간에 생일 있는 사람이 더 섬기는 거라는 얘기도 아니고. ㅋㅋ

Getting back to…

장인어른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사셔서,

한국에 다니왔고, 아내는 오늘 미국으로 돌아온다.

너무 갑작스럽게 떠나셔서, 아직도 잘 믿어지지 않는다.

아내는, 참 많이 힘들텐데도, 이 과정을 잘 이겨내고 있다.

지금쯤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 있을 텐데…

참 좋은 분이셨다.

‘착한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 하는 것을 보기 원하면 우리 장인어른을 보면 되었다.

이제 다시 getting back to ordinary life 할때인가?

아마 그럻지 않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은, 그것을 털어버리고 getting back to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듯 하다.

그저 마음 속에 계속 그 횡함을 간직한채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 같다.

Getting back to 도 아니고, moving on도 아니고…

그저 bearing with 쯤 된다고 할 수 있을까.

오늘 아내가 돌아오면,

한국에서 여러가지로 수고한 아내 안마라도 해줘야 겠다.

지난 한주,

아내가 많이 보고 싶었다.

당분간 블로그를 쉽니다.

당분간 블로그를 쉽니다.

어제 저녁에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희 장인어른께서 갑자기 저희 곁을 떠나 하나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참 선한 분이셨습니다. 제 아내의 선한 성품은 저희 장인어른을 참 많이 닮았습니다. 

지난 봄에 저희 집에 잠깐 방문하시고 저희와 좋은 시간 보내셨는데,

갑자기 이렇게 저희 곁을 떠나실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저희도 몹시 당황스럽고, 믿을 수 없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아내는 어제 밤 울다 잠이 들었습니다. 

그 손을 잡고 저도 울었습니다.

오늘 한국으로 출발합니다.

KOSTA/USA-2014 Chicago Conference 마친 단상들 (1)

이번 Chicago conference는 수요일 하루만 갔다 왔으므로, 무슨 ‘후기’어쩌구 쓸만큼 충분히 conference를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후기’라고 시리즈를 달수는 없을 것 같고, 그저 ‘단상들’이라는 시리즈로 몇가지 생각들을 써보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전히 코스타만이 하고 있는 일들이 있다.

(나는 물론 다른나라 코스타는 잘 모르므로, 미국 코스타가 하고 있는 일들이다.)

1. Counter-cultural한 복음의 내용을 다루는 대중집회.

금년의 주제는 정말 완전히 그런 쪽으로 갈데까지 간 집회라고 할수 있을 것 같다.

‘약함’이라…

약함이라는 주제를 정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대중집회로 하는 다른 모임, 운동, 집회가 얼마나 있을까?

사실 생각해보면 정말 인기 없을 주제들을 코스타에서는 계속 다루어 왔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한, 인기없는 주제들을 계속 더 다룰 예정인 듯 하다. ^^

대중집회를 하면서 이렇게 하는건 정말 무리가 따르는 일이다. 대중이 별로 좋아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대중에게 잘 이해시키기도 여럽고, 게다가 이런 주제를 제대로 전달한 대중적 speaker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스타를 계속 이 무모한 일들을 하고 있다.

2. 복음주의 우파와 복음주의 좌파가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

한국사회는 정치적 이념에 따라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다. 그리고 그 분열은 한국 복음주의권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서로 상대를 ‘적’으로 생각하고 소멸시키려 달려들고 있다 

그런데 코스타에는 이 두 그룹이 다 온다. (적어도 내가 이해하기로는 그렇지만 코스타에서는 너무 양극단에 치우친 분들은 강사로 모시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물론 서로 불편해한다. ^^

그래도 그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인다는 것이 내게는 참 감동인다.

3. ‘고리타분’한 옛날식 고지식함이 순수함으로 남아 있다.

여전히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하게 섬기는 가치를 소중하게 여긴다.

여전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여러가지 자원을 ‘낭비’해가며 섬기는 일들을 당연하게 여긴다.

여전히 기도, 말씀, 그런게 다른 어떤 technique 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4. 평신도 사역에 대한 강조가 계속되고 있다.

대형교회는 대형교회대로, 중소교회는 중소교회대로… 점점 평신도들은 목회자들의 야망을 충종하기위한 도구가 되어버리고 있다.

소위 ‘목회비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야망을 채우려는 목회자의 도구 말이다.

정말 복음에 반응해서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사역의 주체가 되는 평신도를 보는 일이 참 쉽지 않다.

코스타에는 아직 그것이 살아있다.

5. 하나님 나라 복음에 대한 강조가 있다.

이분법적 이원론으로… 죽어서 천당가는 구원을 강조하는 그룹도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노력으로 점진적으로 이 땅을 유토피아를 만들어보자는 자유주의적 그룹도 아니다.

예수의 삶과 선포와 죽음과 부활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가져왔음을 믿고 선포하는 그룹이다.

사실 건강한 하나님 나라 신학에 바탕을 두고 이렇게 지속되는 운동이 얼마나 되는가.

그런데…

위의 다섯가지가 모두 동시에 이루어지는 집회, 운동이 코스타이다.

코스타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시점에서, 코스타는 유효하다.

그것을 위해 헌신할만하다.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의 고백

17년전, 

“사랑할 줄 모르는 어떤 사람”이, 

참 “착하고 예쁜 여학생”에게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그 “착한 여학생”은, 

그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의 고백을 받아주었습니다.

그 후,

그 “여학생”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과 사랑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참 많이 답답하고 힘들었을 겁니다. 

사랑을 잘 모르는 사람과 사랑을 하려니 말입니다.

그래도 그 “여학생”은, 

계속 옆에 있어 주었습니다. 

처음 사랑을 고백한 이후 17년이 더 지난 지금,

그 “여학생”은 여전히 “사랑을 배워나가는 그 사람”과 사랑하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여학생”의 생일입니다. 

“사랑을 배워나가는 그 사람”은,

오늘이 참 기쁩니다. 

하나님께 참 감사하는 날 입니다.

사랑하는 법을 더 빨리 잘 배워서,

그 “여학생”을 더 사랑해야겠다고 결심해 봅니다.

17년전(?),  당시 대학교 4학년이던 그 “여학생”의 모습입니다.
지금하고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ㅎㅎ

이거 정말 고문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facebook에 누가 update 안했나 보고,

간사들 카톡방에 한시간이면 100개 가까이 쏟아지는 메시지들을 확인해가며,

코스타 홈페이지에 update되는 사진들 보고…

아…

이제 정말 잔치가 시작되었구나.

지난번에 인디에 다녀와서, 이번에 시카고 못가는게 그리 많이 섭섭하지 않을 줄 알았다.

음.. 완전 예상을 빗나갔다.

모쪼록,

내가 그곳에 있지 않은 게 정말 많이 속쓰리도록 그렇게 멋진 잔치가 되길 기도한다.

마음이 끓는다!

시카고 간사들이 서로 communicate하는 카톡방에 나를 포함시켜주었다.

덕분에 주말동안, 간사들의 대화를 계속 볼 수 있었다.

나는,

이번에 인디를 다녀왔으므로, 시카고에 참석못하는게 덜 섭섭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아니다.

간사들의 카톡 대화를 보면서, facebook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면서…

마음이 끓는다.

나는 왜 이렇게 늘 간사들이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뛸까?

몇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우선, 내가 사역했던 생각이 참 많이 나서 그런 것 같다. 

코스타 간사로 섬기는 동안, 나는 여러가지로 참 풍족하지 못한 상태인 기간이 많았다. 

시간도 부족하고, 개인적인 여건도 여유롭지 않은 상태에서,

정말 눈물과 땀을 다 흘려가며 섬겼었다.

후배 간사들을 보면, 그때 내 모습이 보인다. 

많이 안쓰럽다. 그리고 많이 감사하다.

그리고 또한…

한국 교회,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 한국 복음주의는 참으로 난감할만큼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심하게 기울어져가는 배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헌신해서 섬기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다시 소망을 갖게끔 한다.

아직은 “망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사실 내가 간사 리더십으로 섬겼던 기간 동안,

정말 힘에 벅차게 느껴지는 순간이 정말 많이 있었다.

아… 이건… 이제 정말 이것보다 더 하지는 못하겠다… 싶을때, 그 위에 더 큰일이 터져서 그걸 메워야했던 경험들이 많이 있었다.

그럴때 그 고비를 견디며 버텨냈던 가장 큰 힘은, ‘간사들’이었다.

어떻게든 이렇게 헌신한 사람들의 헌신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었다.

어떻게든 이 헌신의 흐름을 support 해줘야 한다는 사명감이었다.

실제로,

어떤 순간에는 구체적으로 이제 더 이상 ‘미국 코스타’를 더하기는 어렵겠다고 느끼고, 문을 닫아야 하는게 아닌가하는 고민을 했던 적도 있었다. (뭐 아는 사람은 그때의 상황을 알지만…)

그때도, 어떻게든 간사들만은 지켜내야한다고 생각했었다.  간사들 생각하며 참 많이 울었었다.

오늘 오전까지 조장 수련회가 계속되고, 오늘 저녁부터 본 집회가 진행된다.

나는 화요일 밤에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로 날라가게 되지만, 이곳에서도 간사들의 카톡대화에 내 마음이 다 빼앗겨서 지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