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에의해 spoil 되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극소수 엘리트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최근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만나는 우리 팀 사람들은, 아마도 우리 분야에서 top 0.1% 내에 드는 극상의 엘리트들 일 것이다.

내가 성경공부를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도, 그리고 KOSTA를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신앙의 엘리트 들이다. 각 교회에서 속한 신앙 공동체에서 ‘날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엘리트들에 의해 spoil 된 듯 하다.
스스로 동기부여가되어 목표를 향해 돌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본다. 사실 이 땅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 동기부여 자체가 힘든 사람들일텐데 말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점점 현실감각을 상실해 버린,
비뚤어진 형태의 엘리트시즘에 빠져버린 건 아닌가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내가 다른 누구에게 role model이 될 수 있을까.

내 삶이 다른 어떤 이들에게 “message”가 될 수 있을까.
내 성공과 성취, 승리와 기쁨 뿐 아니라,
내 실패와 좌절, 패배와 슬픔 까지도

점점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내 삶의 모든 contents가 다른이들에게 “message”가 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내가 말로, 내 얄팍한 passion으로, 섬긴다고 돌아다닌다는 것이 그저 공허한 장난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정과 직장과 내 개인의 삶이 모두 건강하게 integrate되어 있지 않으면,
더 이상 내 말이 진실하지 않은 것임을 깨닫는다.

내 얄팍한 열정이 오히려 다른이들을 파괴하는 무기가 됨을 깨닫는다.
내 신앙의 피상성을 나도 참을 수가 없다!

전투력

권오승과 김수영이 한 침대에서 잘때,
이불은 김수영이 100% 뺏어감,
침대는 70% 정도 면적을 김수영이 차지하고 잠.
==> 김수영의 압승!

김수영과 권민우가 한 침대에서 잘때,
이불은 김수영이 90% 뺏어감.
침대는 85% 정도 면적을 권민우가 차지하고 잠.
그러나 권민우는 원래 이불을 거의 안덮고 잠.
==> 권민우의 판정승!

이로써,
우리 가족의 서열이 확실하게 정해진다.

권민우 > 김수영 >> 권오승

흑흑…
나도 나름대로는 카리스마 있는 사람인데… 쪼그만 다람쥐 두마리에게 눌려 살다니.

점점 매스컴은 타는데…

Economist에도 우리가 하는 일에 관한 기사가 났다.
점점 우리 그룹(HP Labs)  / 우리 회사(Phicot)이 하는 일이 소문이 나고… 매스컴도 타고 하는데..
점점 더 본격적인 게임에 돌입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딸깍 딸각 소리를 들어가며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기분이다. 


영적 리더가 되는 아픔

어제 영적 리더가 되는 기쁨에 대해 나누었는데,
오늘은 역시 지난 주말을 지내며 생각하게 되었던 영적 리더가 되는 아픔에 대하여 한번 정리해본다.

1. 후배들을 위해 해줄 수 없는 나를 보며 아파하게된다.
훌륭한 후배들을 만났는데,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줄 수 없을때만큼 내가 원망스러울 때가 또 있을까.
훌륭한 후배들을 만나면서 나의 한계를 더 뼈저리게 느끼고, 나 스스로의 성장과 성숙을 향한 타는 듯한 목마름을 느낀다.
때로 그 목마름은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 같은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듯 하다.

2. 후배들을 위해 해주지 못한 나를 보며 아파하게 된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그 소중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주지 못한 아픔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때는 나름대로 한다고 열심히 했는데, 잘못된 판단으로 엉뚱한 길을 내어놓았다면,
후배들은 그 잘못된 길을 바로잡기 위해 길을 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하는 경우도 있다.
그때 내가 좀 더 차분하게 생각해서 접근했더라면 이러이러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을텐데… 하는 후회는, 속을 쓰리게 한다.
지금부터 노력해도 그것을 되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3. 후배들을 위해 잘 해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What if I’m wrong?
과연 내가 내리는 이러한 결정이 후배들에게, follower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결정일까.
이것으로 전혀 잘못된 길로 이끌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들에게 최상의 것을 제공해주는 것일까.

지난 주말 KOSTA 간사 모임을 지내며 이런 생각들을 해보았다.

영적 리더가 되는 기쁨

리더가 되는 기쁨은 매우 풍성하지만,
지난 주말을 지내며 생각하게된 몇가지를 적어본다.

1.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어떤 경우에는 exclusive하게,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리더의 위치에 있으면, 섬기고 있는 일의 성격때문에 어쩔수 없이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때로 그러한 정보 가운에 어떤 것들은 다른이들과 나누기 어려운것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 정보를 다 수집해서 모아보면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인도하시고 일하심을 더 분명하게 보게되는 경우가 있다.
상황의 detail을 알지 못하면 그저 잘 되었네… 수준의 일인데, 상황의 detail을 알고 나면 감사의 눈물을 흘리거나, 온몸에 전율을 느끼거나, 할말을 잊게되는 수준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게된다.

2. 훌륭한 선배들을 더 가까이 겪게 된다.
많은 분들이, 어떤 조직이나 모임의 리더에게 소중한 조언과 안내를 해주신다. 그 가운데에는 물론 여러가지로 마음을 어렵게 하거나 방해가 되거나, 그저 시간낭비가 되는 일들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무릎을 치는 통찰을 얻게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선배들이 해주시는 조언이 리더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그 리더가 섬기고 있는 조직이나 모임을 위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더는 어부지리로 큰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다.

3. 훌륭한 후배들을 더 다양하게 만나게 된다.
리더로서 사람들들 더 많이 만나게 되고, 그러다보면, 미래에대하여 부푼 희망을 갖게하는 훌륭한 후배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들을 보는 것은 정말 가슴벅찬 일이다.
한때 나는, 내가 사람들을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에빠져 힘들어 한적이 있었다. 그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사람들은, 이러한 훌륭한 후배들이었다.

지난 주말,
또 한번의 KOSTA 간사모임을 마쳤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둔밤 마음에 잠겨 역사에 어둠 짙었을 때에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나라 여명이 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빛속에 새롭다
이 빛 삶속에 얽혀 이땅에 생명탑 놓아간다  

옥토에 뿌리는 깊어 하늘로 줄기 가지 솟을 때
가지 잎 억만을 헤어 그 열매 만민이 산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일꾼을 부른다
하늘 씨앗이 되어 역사의 생명을 이어가리  

맑은 샘줄기 용솟아 거치른 땅을 흘러 적실 때

기름진 푸른 벌판이 눈 앞에 활짝 트인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새하늘 새땅아
길이 꺼지지 않는 인류의 횃불되어 타거라

—–
96년에,
처음 KOSTA/USA 집회에 참석하여 이 찬송을 부르며 눈물을 펑펑 쏟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두운 시대, 소망을 잃어버린 시대 속에서,
나는 오늘 저녁에 만나게될 이들을 통해 소망을 본다.

벅찬 감격으로, 하나님께 감사한다.

고난에 관하여 (final)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너무나 당연하게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이 문장이,
초등학생이 가볍게 이야기해면 그저 ‘예쁜 이야기’에 그치지만,

깊은 고난을 통해 귀한 열매를 맺은 사람이 이야기하면 그 말 자체에 엄청난 은혜가 실리게 되는 듯 하다.

고난에 관하여 알지 못하는 내가,
감히 고난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다소 부끄러운일이 될수 있겠으나,
하나님의 선하심에 기대어, 내 사랑하는 이의 고난을 보며….
그와 내 자신에게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이렇게 한번 정리해 본다.

앞으로 몇년후에 이 글들을 다시 읽으며…
그때 내가 이해했던 것이 그렇게 천박한 수준밖에 되지 않았구나…
하며 얼굴을 붉히게 되기를 소망한다.

고난에 관하여 (8)

성혁아,

최근 네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같은 교회를 다니며 성장하던 시절의 너로만 너를 기억하는 나로서는, 네가 늘 그저 어린아이와 같기만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견디어 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 만으로도 난 참 네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너희 아버지가 예전에 그렇게도 판사가 되고 싶어 하셨는데, 정말 억울하게 판사가 될 기회를 놓쳐 개인 변호사로 개업하신 후 늘 그때 판사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을 가지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네가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제는 네가 정확하게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매우 억울하게 판사 임용 직전에 그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것도 엉뚱한 오해에 연루되어서.)
게다가 그런 상황 속에서 너희 아버지께서는 법조인의 세계를 잘 아시기 때문에 지금 네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더욱 많이 분개하고 계시다는 얘기도 들었다. 너를 통해 네 아버지께서는 대리만족도 많이 느끼고 계셨을텐데 말이야.

나는 소위 ‘가계에 흐르는 저주’ 뭐 그런 것은 전혀 믿지 않는 단다. 그런 argument는 성경적인 근거도 없고 미신에 가까운 것이지.
그러나 나는 모든 가족에는 그 가족이 짊어지고 대대로 물려주고 있는 악습, 잘못된 가풍, 가치관 등이 있다고 생각해.

혹시, 45년여 전에 너희 아버지에게 벌어졌던 일이 바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 네가 교회 소그룹이 끝난 후 친교실 구석에 앉아 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분노와 보상심리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을때, 나라도 그렇게 억울했겠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만일 그런 억울한 일들을 보상받는 방법이, 나 대신 자녀가 못다이룬 꿈을 이루는 것이라면 너무 shallow 한 것이 아닐까?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더 가지려는 꿈, 더 성취하려는 꿈은 자꾸만 커지게 마련이고, 대를 이어가면서 네 가족 안에서 계속해서 못다이룬 꿈을 그 자녀에게 이루게 하는 것이 이어진다면, 그것이야 말로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성취, 명예, 성공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풍에는 여러가지 순기능이 있지만, 그것에 따른 역기능이 역시 매우 크니까… 만일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강물처럼 흐르는 일이 있으려면 누군가는 그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할텐데 말이야…
대를 이어가면서 도무지 그것을 끊을 사람이 없어서 하나님께서 안타까워 하고 계신데 말이야.., 만일 하나님께서 드디어 그 엄청난 일을 이룰 한 사람을 어떤 가문에서 발견하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향해 어떤 일들을 하실까?

엄청난 사랑을 쏟아 부으시고, 모든 관심을 쏟으시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영향력을 받게 하시고, 훌륭한 훈련과 교욱도 공급하셔서… 정말 대를 이어온 그 폐습을 끊어 낼 수 있는 당신의 사람이 되게 하시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중에 그 일을 이룬 사람의 마음에, 성공와 명예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JOY를 허락하시지 않을까?

개인의 성취와 영예가 겨우 당대에 그치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어떤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만들어 가시는 선한 영향력은 개인의 수준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의 시간 scale을 넘어… 훨씬 더 많은 이들에게 시원한 생수와 같은 것이 되지 않니.

선교사로 나가 있는 네 형과 같이 믿음 좋은 사람도 있는데 왜 내가 그 일을 해야 하느냐는 생각을 네가 해볼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하나님께서는 널 그렇게 대단하게 보신다는 말이 아닐까. 너라면 이 일을 할 수 있어… 너라면 겨우 네 개인의 성공과 영예와 성취, 그리고 기껏해야 네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는 수준의 그런 삶의 scale을 벗어나서 훨씬 더 넓고 큰 scale의 삶을 살 수 있어 라고 그렇게 네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

너를 위해 기도할때마다… 처음 기도를 시작할때는 무겁고 힘든 마음이다가도 조금만 기도를 하면서 그분의 마음에 함께 마음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너를 향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 너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기대로 마음이 벅차진단다.

성혁아,
신앙의 성숙이란, 하나님에 대한 의존성을 높여가는 과정이란다.
신앙의 성숙이 깊어지면 깊어 질수록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게 되는 것이지.
나는, 하나님께서 너를 그 심오하고도 풍성한 세계로 이끌고 계심을 본단다.

넌 잘 해낼꺼야. I’m truly proud of you!

with Peace of Jesus,
승호형이

고난에 관하여 (7)

때로 고난의 기간은 짧을수 있지만,
자주 고난을 내면에서 process 하는 기간은 매우 길수도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을 통해 얻어진 열매가 무엇이다라고 쉽게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가벼운 행동이 아닐까 싶다.

마치 오래 뼈를 고와 곰탕을 끓여내는 과정과 같이,
좋은 한약을 오래 달이는 과정과 같이,
하나님께서 삶에 허락하신 어려움을 깊이 곱씹으며 성장과 성숙의 열매로 삼는 일이 필요한 것 같다.

때로 그런 과정중에 하나님께서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던 선물을 주시기도 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 성품의 진국이 오랜 시간에 걸쳐 흘러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