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xt와 Text

가끔 훌륭한 선배나 어른들의 걸어온 길들 듣게되면 여러가지로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때로는 그분들의 어떤 특정한 생각들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일들을 겪게되기도 한다.

그런 이유는 물론 내 생각의 틀이 부족해서 그분들의 사상을 다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분들이 살아오신 context 속에서 그분들이 내린 결론이 더이상 새로운 context에 잘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기 때문인 경우도 있다.

내가 매우 존경하는 신앙의 선배들 가운데,
아직도 1980년대 1990년대의 context에서 세워진 그분들의 신앙의 논리로 2000년대의 context에 적용하려는 분들을 만난다.

이분들의 순수한 마음과 열정 그리고 새로운 세대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깊은 감동을 받지만, 때로는 이 어른들이 새롭게 도래한 context에 대한 이해없이 논리를 펴기시 때문에 (정확하게 말하면 이전 context에서 개발된 논리를 다시 수정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세대에게 해답을 주지 못하는 일들을 만난다.

내가 어른이 되어도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시적인 관점에의 헌신을 이야기할 수 없는 세대

지난주에는 산타 바바라에 살고 있는 한 동역자가 직장일로 우리 동네를 찾았다. 함께 저녁을 먹고 우리 집에서 하루 밤을 지내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더이상 요즘 젊은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같은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헌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서정적인 신앙만이 강조되기 때문에 신앙도, 헌신도 모두 개인화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둘 다 깊이 동의하며 안타까워 했다.

신앙과 학문의 통합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나는 코스타등에서 함께 동역할 수 있는 사람들을 연결시켜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런데 그 동역자의 말은, 자신도 10년전의 network밖에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좀 더 update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후 바로 이어진 대화는… 지난 10년정도 동안 과연 새로운 network이 형성될 정도로 학생운동 / 신앙운동의 infrastructure가 성장하고 성숙했느냐 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경험했던 80-90년대가, 한국의 복음주의 학생운동이 정점에 있었던 시기였던 것이 아니었겠느냐. 이제는 계속해서 decline 해가는 상황에 처해 있는 현실이 아니겠느냐…
따라서 10년전의 network이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상의 network이 아니겠느냐…
하는 다소 비관적인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우리의 생각의 나눔이 철저하게 틀렸길 바란다.

그후…
여러가지 생각들이 마음에서 떠돈다.
정말 이제는 하나님 나라와 같은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헌신을 이야기할 수 없는 세대를 맞이하게 된 것일까.

포스트모던 세대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매우 모더니즘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다.

소위 ‘신세대’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특징은 포스트모던적이고.

오랬동안,
나는 내 모더니즘식 접근법이 ‘정공법’이고
포스트모던적 접근법은 ‘꽁수’라는 생각을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복음을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tool은 모더니즘식 논리라고 여겼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