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대…

정말 좋은 말인데, 
이 멋진 말을 예전에 한국에서… 엉뚱한 사람이 사용하면서 완전히 좋은 말을 버려놓았었다.
이번에 간사모임에 다녀오면서,
그 멋진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가 열릴 것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많이 갖게 되었다.

지난주말에…

지난 주말에, 

KOSTA 간사들중 몇명이 모이는 모임에 참석했었다.
아…
이제 나는 적어도 ‘간사’로서의 역할은 정말 끝났구나…
이제 기쁘게 그 짐을 내려놓아도 되겠구나…
아니, 오히려 내가 그 자리에 있다면 이들에게 짐이 되겠구나…
이 사람들 사이에 살아있는 스피릿,
운동 자체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주인의식,
그것을 현명하고 지혜롭게 다루고자 하는 신중함,
함께 하는 ‘공동체’가 되는 기쁨…
—-
반면,
나는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질문’ 했어야 했는데,
너무 많이 말하고, 너무 많이 ‘주장’했던 것 같다.
더 많이 appreciate 하고, 더 많이 thankful 했어야 했는데,
너무 많이 analytical했던 것 같다.

‘선배’로서 이들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있다는/못했다는 무거운 자책을 느꼈다.
이제라도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하겠지만…

돌아와보니,
아내는 감기에 걸려 지쳐있고,
이곳의 날씨도 왠지 무겁다.
정작, 내가 괜히 갔던 것은 아니었던가…

갑자기 비행기를 타고..

가겠다는 생각을 하고있지 않았는데,

ㄱㄷㅇ 간사님의 강력한 권유/명령으로 이번 주말에 KOSTA 간사 모임으로 뉴욕에 가게 되었다.
KOSTA 간사들이 몇가지를 마음에 두었으면 하는 생각들을 최근 하고 있는데…
(뭐 KOSTA 간사들이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이라기 보다는, 내가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이겠지만서도…)
– 무엇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보다는, 무엇을 위하여 전진하는 방향을 잡으면 좋겠다는 것.
지난 거의 10여년 동안, KOSTA의 간사진은, 늘 무엇에 대항하여 싸우거나, 무엇을 거스르거나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그 당시 처한 상황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좀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반대하느냐(what we are against) 하는 것 보다 우리가 무엇을 위하느냐(what we are for) 하는 것을 제시해야할 책임이 커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후자는 전자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 KOSTA 라는 framework 밖에서 KOSTA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우리 안에서 더 develop 되었으면 하는 것.
KOSTA의 운동성은 KOSTA 내부의 필요에의해 나오지 않고, KOSTA 외부의 필요에의해 세워져야 한다. 그러므로, KOSTA 라는 framework 밖에서 KOSTA를 바라볼 수 있지 않으면, 영적인 narcissism에 빠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 계승 발전시켜야할 내용들을 좀 더 명확히 define 했으면 하는 것.
가끔 젊은 간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예전에 선배들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여겼던 것들을 전혀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때가 있다.
get the things done에 초첨을 맞추지 말고, (물론 그런 task가… 거의 daunting 하다고 느껴질만큼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value, spirit에 좀 더 초점을 맞추었으면 좋겠다.
– 선배들의 발자취에 너무 매이지 않았으면 하는 것.
바로 앞에 쓴 내용과는 상치되는 이야기인 것 같아 보일수도 있으나,
때로 역시 젊은 간사들이… 소위 ‘선배 간사들’을 지나치게 높게평가하고, 그들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struggle과 부족한 것들은 자꾸만 무시되고, 그들의 ‘전설’만이 크게 남게 되는 것 같은데…
(물론 운동은 그런 선배들의 ‘이야기’가 계속 전수되면서 spirit과 value가 유지 발전된다고는 하지만…)
선배들의 발자취가 소중하게 지켜야할 가치로 인식되는 것은 중요하겠으나, 따라야할 모범으로 인식되는 것은 좀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만일 KOSTA가 무너진다면(^^) 그것은 간사들이 무너졌기 때문일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함께 공유하게 되었으면 하는 것.
만일 KOSTA가 문을 닫게 된다면, 그것은 외부의 공격(?)이나, 신학적 지식의 부족이나, resource의 고갈등에 의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간사들이, 지켜야할 spirit과 value와 운동성을 지켜내는데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런 절박함이 많이 줄어든 것은 아닌가 하는… 전형적인 “노인네의 생각”을 하게 된다.
……
이런 생각들 이외에, 며칠에 걸쳐 글을 나누어 쓸 만큼 많은 생각들이 있으나….
복잡한 머리속의 생각으로 나를 채우기 보다,
소중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기쁨으로 나를 채우고 동부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려고 한다.

간사훈련

요즘 한참 KOSTA 간사훈련을 진행중이다.
나는 요즘은 성서신학 파트를 맡아서 하고 있는데…

간사 훈련을 진행하다보면,
시속 300마일로 달릴 수 있는 대단한 자동차에,
연료를 주입하고 있는 것과 같은 나를 발견한다.

그런 일로 섬길 수 있는 것은,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는 특권이다.

지난 KOSTA 간사 수양회 설교

지난 KOSTA 간사 수양회 설교는,
나름대로 내가 준비해 간 것이 있었다.

오천명 먹이신 사건과 사천명 먹이신 사건 (마가복음 본문들)을 중심으로 제자들을 양육하시는 예수님의 관심에 주목하고, 우리 간사들도 결국 functional body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로서 존재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이야기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출발하는 날 아침 부터 왠지 그 말씀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 이유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차를 타고 요세미티로 향하던 중에도 그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고민하면서 가고 있었다.
첫날 밤을 지내고, 둘째날 아침 QT sharing을 하면서 간사님들의 생각을 들어볼 기회가 좀 있었다. 그리고 또 둘째날 몇명의 간사님들과 등산을 하면서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대화들을 나누면서, 하나님께서 다른 message를 하기 원하실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다음날 아침, 한준이의 아침 설교를 들으면서 결국 설교를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에 쐐기를 박게 되었다.
한준이의 설교의 모멘텀을 어떻게든 이어야 겠다는 부담감이 몹시 심하게 밀려 들어 왔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시간은 반나절도 되지 않았다. -.-;
그제서야 부랴부랴 요한복음 17장 본문 묵상 다시 하고, 놀면서도 머리 속으로 plot 짜고… 결국 마지막 조활동으로 요세미티 밸리 돌아보는 것은 join 하지 못한 채… 막판 초치기를 해야 했다.

그렇게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서 이야기한 것이 잘한 것이었을까.
하나님께서는 정말 그렇게 인도하셔서 방향을 바꾸게 한 것이었을까.

개인적으로,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따르는 훈련과 연습을 해보려고 하는 와중에…
혹시 덜 익힌 밥을 간사님들에게 드리게 된 것은 아닌가… 고민이 되었다.

다들 피곤하던 시간인데도 다들 졸지 않고, 어려운 개념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설교를 들어준 간사님들이 참 고마웠다.

설레는 주말…

이제 내일부터 KOSTA 간사 수양회가 시작된다.

이번 수양회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15년 가까이 내게 익숙해져온 KOSTA를,
문득 낮설게 바라보는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건강한 섬김도, 그리스도를 닮은 낮아짐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순수함도 담보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이다.

그저 우리 ‘간사들’이라는 사람들을 마음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뛰며 눈물이 핑 도는데…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내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선물이다.

KOSTA/USA-2010 conference를 마치고 (1)

96년부터 참석하기 시작했으니,
질릴만도 한데…
도무지 질리질 않는다.

아니, 질리긴 커녕 매년 배우는 정도가 커진다.

금년에도 역시, 말로 다 기술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배웠다.
아니, 금년에는 다른 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앞으로 몇번의 글을 통해서 내가 KOSTA/USA-2010을 통해서 (단지 conference뿐 아니라 지난 1년동안 계속되어온 모든 일들을 통해서) 배우고 깨닫게 된 것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러나… 정말 제대로 다 정리해 낼 수 있을까.

KOSTA/USA-2010 conference

이제 내일 새벽이면 또 다시 KOSTA conference를 위해 비행기를 탄다.
한편 말로 다 할 수 없을만큼 무겁고 부담되는 마음과…
다른 한편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있다.

도피하고 싶을만큼 무거운 영적 부담감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하나님을 더 붙들어야 겠다는 절박함도 있다.

정직하게 스스로 물어야할 질문들을 묻지 못했다는 자책이 크지만,
형편없는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싶다는 목마름 역시 크다.

사람에 대한 깊은 절망들로 마음이 무겁기도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말로 다 할수 없는 소망으로 가슴이 뛰기도 한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가르쳐 주실까.
어떤 당신의 모습을 매리우드와 휘튼에서 나타내 보여주실까.

우리가 이렇게 모이는 것이
한달후, 1년후, 5년후, 10년후, 20년후 …

저 굶어죽어가는 북한의 동포에게,
소망을 잃어버린 한국의 학생들에게,
촛점없는 눈으로 구걸하는 San Francisco의 homeless 들에게,
복음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오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해버린 인본주의의 우상에 눌려있는 캠퍼스의 학생들에게,
돈을 위해 영혼을 팔고 있는 수 많은 직장인들에게,

어떤 소망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묻고 싶은 나의 기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