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키고/만들고 싶은 우리 회사의 가치(value)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Engineering(공학)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세상에 물건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소비자가 물건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발명(invention)하고, 연구(research)하고, 개발(development)하는 일은, 결국 시장(marketplace)에 새로운 물건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고, 그것이 공학이 하는 가장 가치있는 일이다.
(이는, 공학자로서 하나님의 창조섭리에 동참한다는 성경적 가치와 통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flexible display를 세상에 만드시기 위해서는, 나와같은 공학자의 손을 통해서 만들어 내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학자는 세상에 새로운 발명품을 내어놓는 소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2. 기술을 바탕으로하는 회사는, 그 회사에서 기술/공학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고집스러움이 있어야 한다. 실험장비를 만지고, 컴퓨터 앞에서 software를 개발하는 등 ‘손을 더럽히는'(get hands dirty)것을 가치있게 여기는 분위기(atmosphere)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nerds/geeks의 문화는 어떤 의미에서 참 소중하다.
(이는, 복음으로 회복된 세상에서, 노동이 저주가 아닌 신성한 가치가 되는 성경적 가치와 통하는 것이다. 땀흘려 일하는 것이 가치있는 것으로 우대받는 것은 건강한 일이다.)
3.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이 결국 그 돈을 ‘굴려서’ 다시 큰 돈을 벌게되는 경제적 구조, 단 기간에 회사를 10배, 100배 뻥튀겨서 팔아 ‘대박’을 터뜨리는 ‘벤처회사(start-up company)’의 일반적인 기대 등은 건강하지 못한 것이다. 단기간에 땀흘리지 않는 사람이 큰 돈을 버는 왜곡은, 다른 사람이 그로인한 피해를 겪게되는 일을 초래할 수 있다. 계속해서 땀흘리지 않으면서, 자기 화장실의 수도꼭지를 금으로 바꾸고, 가격이 10만불에 육박하는/넘는 자동차를 타는, 그리고 40대에 은퇴를 하여 골프를 치며 삶을 즐기는 ‘대박의 꿈’은, 그것이 단순히 사회/경제적 구조를 이용(take advantage)하려는 건강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단기간에 대박을 터뜨려 부자가되려는 일을 하려 하지도 않고, 또 그런 입장으로 접근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일도 가능하면 피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이도 역시, 노동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는 가치, 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성경적 가치와 통하는 것이다. 구약 선지서등에 흔히 경고하는 대로 측량용 잣대를 조작하는 것이라는가, 계량용 저울을 몰래 바꾸는 일 같은 것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4.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회사가 활용하는 ‘인적자원(human resource)’가 아니라 회사 자체이다. 현대에 Wall street에의해서 운영되는 경제체제 속에서는, 회사가 감원을 하면 일반적으로 주가가 오르고, 투자자들은 기뻐하고, CEO는 상을 받는다. 그것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자원으로 보고, 그 자원에 따르는 책임(liability)을 줄이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감원이나 해고가 무조건 나쁘다는, 왜곡된 이상주의적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은 appreciate되어야 하고, value 되어야 하고, 또 그들이 함께하고 있는 것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일하는 환경 내에서도,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문화는 매우 중요하다. 일을 효율적으로 해내는 것 보다, 사람들을 품고 가는 것이 더 높은 가치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잠깐 더 느려보일 수 있어도 궁극적으로 더 효과적인(effective) 방향이다.
이는 회사 내부적으로만 적용될 가치는 아니다. 대외적으로 일을 하면서도, 다른이들을 밟고 일어나거나, 다른이들을 이용해먹는(take advantage)것은 잘못된 것이다. 함께 하는 것이 더 큰 성공이다.
(일이나 돈보다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것. 예수님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시지 않았을까. ^^)
5. 이 모든 일을 할때, integrity를 포기하지 않는다. 각종 business transaction을 할때에도, golden rule을 벗어나지 않도록 한다. 거짓말 하지 않고, 결과를 뻥튀기지도 않는다. 물론 이것이 naive하게, 회사의 기밀도 없고, 모든 것을 공개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략적으로 우리가 보호해야하는 정보나 기술은 share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없는 것을 있다고 이야기하거나, 더 좋은 면만을 포장해서 이야기함으로써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려는 일은 하지 않는다.
integrity를 포기하는 일은, 결국 자신을 망가뜨린다.
(당연히… 이것은 복음적인 가치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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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땅님이 내 글에 덧글을 달아 이런 가치들에대해 물어보셔서 급하게 몇가지 정리를 해보긴 했는데….
분명히 빠진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는대로 더 첨부해야 할 것 같다.
감사합니다. 읽으면서 아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졸개님으로부터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또 제 스스로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질문을 여쭙습니다.
1번의 가치를 읽으면서….
공학자의 발명은 하나님의 소명이라 불릴만큼 늘 선한 것인가요? (하나님의 소명이 선하지 않을리 없으니…–; ) 모든 창조는 아름다운 것인가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시장(marketplace)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인데…. 혹시 시장이 원하는 것을 창조하는 것이 때로 선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요? (창조 자체는 선한 것인데, 사용에서 악할 수 있는 것인가요? 예전에 줏어 들은 것인데…. 가스실을 개발한 나치시대의 공학자들을 생각해 보면… 음 그들의 창조는 선한데 (혹은 가치중립적인데), 사용에서 악이 있는 것인가요? 나의 창조가 나의 의도와 관계없이 악하게 쓰일수 있지 않나요? 그것은 공학자(장조자)의 손을 떠난, 사용자의 문제인가요?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데 도데체 질문조차도 정리가 안돼서 일단 정리 안된 상태로 졸개님께 던집니다. –; )
아…네… 참 좋은 point 이십니다.
제가 생각하는 ‘세계관’은 이렇습니다.
창조주의 창조는 ‘선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창조주께는 그 선한것으로부터 망가져버린 피조세계를 다시 선한 것으로 회복시키시는 일을 하셨는데 그것이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 이지요.
그 예수의 선포를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회복된 세상이 회복된 것을 우리의 삶으로 선포하면서 살도록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이고요.
이런 맥락에서,
처음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서 이루어진 창조를 살펴보면요,
과연 하나님께서 그때 만드신 나무(tree)는 선한것이었느냐… 이런 argument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선한 것이었지요.
그런데 그 나무가 목재로 사용되어서 십자가로 만들어져 예수를 죽이는데 사용되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예수를 십자가에 죽인 것은 타락한 세상이 하나님의 선한 창조를 왜곡해서 사용하였기 때문이지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잘못이 아닌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하는 활동들, 창조적인 작업들, 문화활동등은,
그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연장선 상에서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망가진 세상에 의해 잘못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또 함께 노력해야할 부분이겠지만요.
그런의미에서,
공학자에게 주신 공학자로서의 일차적 사명은,
공학이라는 tool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선한창조활동을 이어가는 것이고,
그것이 악하게 사용되지 말도록 하는 것은 그것과는 별개의 노력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칫 공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악용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떤 경우에는 application 자체가 바로 악한 의도로 진행되는 공학활동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권유린을 위한 도구를 만드는 일이라던가, 비윤리적 활동을 promote하는 도구를 만드는 일이라던가 하는 등.
그렇지만 많은 경우에는 그 경계가 매우 모호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이 제가 이해하고 정리하고 있는 수준에서의 defense 입니다. ^^
감사합니다.
특히 나무와 십자가 비유, 설명의 큰그림을 이해하는데 정말 도움이 되었습니다.
주신 대답 더 생각해보고 또 궁금한게 있으면 질문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