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벌어 먹고 살기 (9)

나는 현대 기독교에서 ‘직업’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높여졌다고 생각한다.
직업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 직업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고, 직업을 통해서 자아를 실현하고, 직업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

그래서, 직업을 위해서, 커리어를 위해서 더 소중한 것을 버리는 것을 너무 쉽게 정당화 해버린다.

직업을 위해서 정직이라는 가치를 버리기도 하고,
직업을 위해서 경건이라는 자세를 버리기도 하고,
직업을 위해서 사랑하는 가족의 희생을 강요하기도 하고,
직업을 위해서 자신의 영혼을 가꾸는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더 잘보이고 싶은 탐욕,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하는 탐욕,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자 하는 탐욕… 등등을 ‘하나님의 뜻인 직업’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쉽게 포장해 버린다.

나는 직업을 de-glorify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직업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기위해 가족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죄다.
직업의 성공을 위해서 정직을 잠시라도 포기하는 것은 죄다.
더 연봉을 위해서 자신의 영혼을 가꾸는 일을 포기하는 것은 완전 바보짓이다.

이런 얘기를 좀 더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내 안에 있는 헛되고 왜곡된 자아실현의 욕망을 죄로 인정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직업은 밥벌어 먹는 도구로서 자리잡는게 적당하다.

요한복음

1.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어떤 형이 있었다. 그 형은 나와 스타일이 많이 달랐다. 나는 이성적으로 성경공부하고 책 읽고 그러는걸 더 좋아하는 반면, 그 형은 신비체험이 많고, 환상을 보고, 귀신을 쫓고 그런걸 하는 형이었다. 그렇지만 20대 초반의 내게 그 형은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형이 어느날 뜬금없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던 적이 있다.
“너는 요한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 의미를 그때 잘 이해하지 못했다.

2.
N T Wright이 요한복음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요한복음은 내 아내와 같습니다. 나는 요한복음도, 내 아내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다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나는 요한복음에 대한 N T Wright의 이 말을 완전 공감한다. ^^

3.
요한복음을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다보면 당황스러울 정도록 불친절(?)하다.
뭐 좀 논리적 흐름을 따라 노력하다 보면 그게 뚝 끊기고 그냥 선언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서술적이고 논리적이기 보다는 선언적이고 직관적인 책이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이해하기 더 어려운 것 같다.

4.
그런데 요한복음은 그 직관적인 성격 때문에 다른 책에서 담아내지 못하는 뉘앙스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훨씬 더 통시적이고, 초월적이다.
나는 그래서 요한복음이 post-modern generation에게 훨씬 더 잘 맞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선언적이고 직관적이고 통시적이고 초월적인 성격을 잘 활용한다면 말이다.
불행하게도 요한복음의 그 선언적, 직관적, 통시적, 초월적 성격을 잘 드러내어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그리 많이 만나지 못한다.
그런 관점에서 요한복음 연구를 좀 더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만 몇년째 하고 있는 중이다. -.-;

5.
새해들어 계속해서 요한복음을 묵상하고 있다. (우리 교회에서 함께 매일성경 본문으로 QT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요한복음을 보면서 깨닫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요한복음이 애가(lamentation)으로 읽힌다.
요한복음 1장에, 왕이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 백성이 알아보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 theme이 요한복음에 계속 반복되고 있다.
요한복음을 예수님의 sign을 중심으로 읽으려는 사람들도 있고, “에고 에이미” (나는 ~ 이다)라는 예수님의 선언들을 중심으로 읽으려는 사람들도 있는데, 적어도 나는 이번에 요한복음이 애가로 읽힌다.

6.
예전에 그 형이 내게 ‘요한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 것을 다시 생각해본다.
그 형이 내게 이야기 했던 것은, 요한복음에 조금 더 강조해서 나와 있는 ‘주님을 사랑함’에 대한 측면이 아닌가 싶다.
나는 meta narrative도 물론 좋고, 조직신학적 분석도 물론 좋은데…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core 가운데 하나는 주님이 나를/우리를/세상을 그냥 사랑하셨다는 것과, 우리가 그분을 그냥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이 내가 정말 깊은 곳에서 신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고 가지고 있는 것 같다.

7.
사랑의 이야기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좋아하면서도 그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이해되지 않는 요한복음을 사랑하며 묵상하는 내 모습도 역시 역설적이다.

또, 평신도 설교

어제는 은규 형제가 설교를 했다.
평신도 신학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내용이었다.

어제 설교의 첫 부분은,
사실 내가 언제 기회가 되면 이 블로그에서 좀 썰을 더 풀어보겠다고 생각했던 내용과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즉, 자신의 inner being의 voice에 충실하는 것이 참되다는 낭만주의적 현대의 자아 인식의 문제를 이야기했다.

은규 형제가 한번 질렀으니, 나도 조금 더 생각을 가다듬어서 한번 follow-up을 이 블로그에서 해봐야겠다.

그리고 또한 인상적이 었던 것은,
N T Wright의 신학을 가지고 Ego-centric한 현대의 culture를 완전 까는 것이었다.
적어도 나는 N T Wright의 신학이 그런식으로 Ego-centricity를 직접적으로 깐다고 연결시키지는 못했던 것 같은데, 그걸 자신의 어릴적 이야기를 들어가며 멋지게 설명을 해 주었다.

정우 형제나 은규 형제 같은 사람들이 물론 참 똑똑하고 신실하고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조금만 교회가 불필요한 장벽들을 제거하기만 한다면, 목회자들로부터 나오기 어려운 이런 이야기들이 평신도의 입을 통해서 멋지게 나오는 일들이 더 많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 보았다.

다들 돈 벌고, 애 키우고… 빡빡하게 살면서… 설교 한번 준비한다는게 그리 쉽지 않았겠지만,
오히려 그렇게 빡빡하게 사는 환경에 있기 때문에만 가능한 진주들이 이렇게 나오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관심있는 분들, ‘하나의 씨앗교회’ podcast에서 지난 주일 설교를 들어보시라! ^^

Voting is over-rated

내가 좋아하는 pacifist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Voting is over-rated”

민주주의에서 투표가 가지는 의미는, 그 과정을 통해서 대화를 하도록 enforce하는 것이다.
그러나 50.1:49.9의 투표결과에 의해서 49.9 의 의견이 묵살되는 것은 옳지 않다.

최근 Trump가 친 여러개 사고 가운데 제일 큰것은 immigration ban이다.
미국 곳곳에서 시위를 하고, 반대 성명을 내고 난리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것은, 여론조사를 보면 대체적으로 Trump의 이 executive order를 지지하는 쪽이 높게 나온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이 이길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약자가 되는 것이 안전할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Trump를 지지한 사람들이나,
박근혜-이명박에 투표한 사람들…
정말 어쩌면 좋을꼬.

Smart watch

나는 비교적 사치스러운 편은 아니다. ^^
비싼 것을 후다닥 사기에는 대개 너무 새가슴이어서,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을 자유롭게 사는 내 spending limit은 대충 10~15불 정도쯤 된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는 가끔 한번씩 eBay에서 전자시계를 사는 사치를 누렸었다.
꼭 Casio 브랜드만 샀었고, 가격은 무조건 20불 미만이었다.
그렇게 사서 배터리가 다 되거나 심하게 scratch가 나거나 하면 또 10~20불 짜리 시계를 하나씩 사곤 했었는데, 그래서 내겐 그렇게 산 Casio 전자시계가 4개가 있다.

그런데 최근,
회사에서 smart watch를 차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 그도 그럴 것이 회사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는 그걸 주기 때문이다.
나도 그걸 주문해볼까 생각을 했는데, 정말 내가 일을 하는데 그게 필요하다는 justification이 약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몇달째 그냥 안사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연말, eBay에서 우연히 뒤져보니 Smartwatch가 무지 싸게 나온게 있었다. Asus의 Zenwatch2인데, 79불에 나왔다. refurbished version.
최근 모델보다 하나 더 전 모델이어서 재고 처리를 위해 가격을 내린게 아닌가 싶은데,
며칠을 망설이다가 하나 확~ 사버렸다. 허억.

지금까지 내가 써본 것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1) Smart watch is not yet for everybody.
아직은 smart watch가 할 수 있는게 많이 없다. 사실상 notification을 바로 볼 수 있다는게 거의 다 라고 할 수 있다.

(2) Too expensive
게다가 그런 단순한 기능을 위해서 300불 혹은 그 이상의 돈을 지불하는건 너무 비싼것 같다.

(3) It is for me!
그런데 써보니 내겐 정말 정말 유용하다! 이메일이랑 여러 연락이 multiple로 쏟아지는 와중에 미팅에 들어가 있으면, 미팅에 방해되지 않으면서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고, 특히 cleanroom 실험실에 들어가 있으면 더더욱 편리하다. 나는 몇가지 간단한 voice command를 통해서 앞으로 7분 이후에 알람을 울려줘. 뭐 이런 명령을 setup 해 놓는 일들을 자주 하는데, 그게 정말 한 5분 남짓 짜투리 시간이 남았을때 그 시간 낭비하지 않고 일하는데에도 도움을 준다.
그렇지만 역시 나라도 그것을 위해서 300불씩을 투자하지는 않을 것 같다. 100불 정도가 아마 내 생각엔 최대로 내가 지불할 액수일 것 같다.

어쨌든, 현재까지는 잘 쓰고 있다.
오랜만에 smart shopping을 한 기분이다. ^^

평신도 설교

우리 교회에서는 목사님과 평신도들이 함께 설교 내용을 상의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평신도들이 설교를 할때가 있다.
어제는 우리 교회의 리더중 한명이라고 할 수 있는 형제 한명이 또 설교를 했다.

지난 목요일 저녁에 잠깐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설교를 잘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많이 힘들었다고 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못한다고 목사님께 전화드리려고 했어요”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은,
언제든 힘들면 전화해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서 목사님은 주중에 그 형제의 설교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특별히 기도 응원 요청도 더 해주셨다.

또,
다음주도 또 또 다른 평신도가 설교를 하게되기 때문에 두주동안 설교를 안하신다고…
수련회 관련된 노가다를 자신이 담당하시겠노라고 나서셨다.

어제 설교를 한 형제와 다음주 설교를 하는 형제와 함께 설교 준비를 하시면서,
두 사람은 헌금도 하고, 설교도 하고, 참 수고가 많다 고 농담섞인 격려를 하셨다는 얘기도 들었다.

어제 정우 형제의 설교는 정말 좋았다. 나처럼 설교 까다롭게 듣는 사람에게도 깊이 마음을 울리는 설교였다.
이런 사람과 함께 교회에 있다는 건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다… 싶었다!
(우리 교회 podcast에 떴으니, 가능하신 분들은 꼭 들어보시라~) 직접 다운로드 링크는 여기

그런 평신도의 설교를 위해 목사님은 노가다를 자청하시고…
(그렇지만 어린이들을 위한 설교는 여전히 목사님께서 하신다. 설교를 완전 쉬시는건 아니다.)

좋은 평신도 설교를 위해,
평신도가 헌신하고,
목회자가 격려하며 support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건 참 흐뭇한 일이었다.

다음주 은규 형제 설교도 왕창 기대중.^^
아, 그리고 그 다음주에 우리 목사님 설교도 물론. ^^

또 다시 마음이 흔들리다 (3)

먹고사는게 물론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는 해도,
믿음의 사람의 중요한 특징은 먹고 사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이 직장에 존재함으로써,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먹고 살게 되고, 무엇보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잘 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입장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출세를 하는 것이라던가, 내가 더 돈을 많이 받는 것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바라보면서,
정말 내게 그것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필요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승진도 하고 출세도하고 해야할 일이겠지만,
정말 출세를 위한 출세, 성공을 위한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을 망가뜨리는 아주 치명적인 ‘독’이 된다.

그래서,
필요에 대한 것들을 많이 생각해보고, 사람에 대한 책임의식 같은 것을 많이 생각해보고, 그리고 나서야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비전 같은 것을 논의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적절한 순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해 보았을때,
일단은 지금 이 직장에 최소한 조금 더 있을 예정이다. ^^

어제도 Carl이 내게 text도 해오고… 괜히 text로 뜬금없는 소리를 하면서…
내년 초에는 어쨌든 오랜만에 Carl이랑 점심이라도 한번 먹어야겠다.

(새해를 맞이하는 마당에 급하게 좀 정리해본다. ㅎㅎ)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저는 1월 3일에 뵙겠습니다. 꾸벅~

또 다시 마음이 흔들리다 (2)

어쨌든 내가 요즘 하는 가장 중요한 생각은,
직장생활이… 세상을 변혁시키는 수단이라던가, 자아를 실현하는 수단이라던가.. 뭐 그런 것 보다도
우선 일차적으로 먹고살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건 소위 ‘기독교 세계관’ 그런거 이야기하는 분들이 듣는다면 화들짝 뭐라고 할 이야기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 그렇다.

아… 직장생활을 통해서 세상을 변혁한다거나 자아를 실현한다거나 전도를 한다거나 하는 등등의 일들이 무의미하거나 그것에 반대하는건 전혀 아니다. 모두 가치있는 일이고 (비록 이런 생각의 일부는 내 개인적으로 약간 skeptical하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including myself)

그렇지만,
일차적으로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먹을것과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기독교인들의 직장윤리가 괜히 이상하게 꼬이게된 큰 이유가운데 하나는,
직장을 밥먹고 사는 중요한 도구로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도구로 생각하는 것을 덜 강조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그것이 결국 직장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본질이고,
그 본질을 본질로 집중할때에야 비로소 어그러진 개인의 야망/욕망을 유사-기독교적 가치로 포장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또 다시 마음이 흔들리다 (1)

두주에 예전에 내 boss였던 사람이 또 연락을 해왔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의 이름을 대면서 이 사람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자기 밑으로 뽑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고.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약간 농담삼아서 “아… 거기 써있는 IMD나 CAD관련된 qualification만 내가 더 있다면 나머지는 나도 다 할 수 있는 건데… ”
이렇게 이야기했더니만,
“너라면 그런거 못한다고 해도 내가 무조건 데리고 오지! 그런데 지금 네가 하고 있는거 재미있어 보이는데 여기에 오라고 할수가 있겠니” 라고 이야기하는 거다.

솔직히 말하면 그쪽의 opening은 지금의 내 자리보다도 더 높은 position이고,
여태껏 내가 함께 일하면서 가장 chemistry가 잘 맞았던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이고,
게다가 job description 자체도 꽤 재미있어 보이는데…

이제 이 직장 온 지 1년되었는데 그렇다고 후다닥 옮기는 건 너무 이르고,
그래도 지금 이 직장에서 어느정도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또 다시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이렇게 Carl하고 조금만 더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언젠가는 내가 후딱 넘어갈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그래서 과연 내가 직장을 찾고 옮기는 기준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좀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