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와 사랑

Stanley Hauerwas가 한 말에서 더 develop한 생각

우리는 권리를 성스러운 것으로 여기곤한다.
특히 인권에 대해서는 그렇다.
인권은 모든 도덕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여겨진다.

인권(Human Right) –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하는 권리이다.
그런데,
권리는 과연 윤리의 근본이 될 수 있을까?

요즘 세상에서는 목소리를 높여라, 네 권리를 주장해라, 네 목소리가 들려지게 해라… 는 이야기를 참 많이들한다.
나는 약자가 사회에서 보호되어야 하고, 그래서 그 목소리를 듣는 것이 매우 사회적으로 건강한 합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각자가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 과연 도덕의 기준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

예수님은 그 도덕의 기준으로 권리를 제시하지 않고 사랑을 제시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해라.

나는 권리가 도덕의 근본이 되는 세상보다는,
사랑이 도덕의 근본이 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언제 이것에 대해서도 한번 좀 더 생각을 풀어봐야겠다.

비장함?

참 오랜만에 다음주에는 KOSTA 집회에 참석한다.
금년에 참 오랜만에 참석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년에 또 참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도 보고,
좋은 이야기도 나누고,
또 깊이 따로 기도도 하고…
그런 시간을 가질 기대들이 참 많다.

그렇지만 반면,
이번엔 나름대로 마음과 자세가 비장하다. ^^

최근에,
만일 이번이 내가 마지막으로 참석하는 KOSTA 집회라면 나는 뭘 하고 싶은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그러면 이것도 좀 해야겠고, 저것도 해야겠고…
그런 생각을 머리속으로 막~ 하다가…
문득 헬렌켈러의 Three days to see 라는 짧은 글이 생각났다.

그리고는 나름대로 마음을 고쳐잡았다.
음악을 연주하는 player가 아니라 그 음악이 연주되는 것을 감상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하나님께서 소중한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을 더 많이 appreciate하겠다고.

다음주가 또 기대된다.
전투태세에 맞추어 어제 또 짧게 머리를 깎았다. ^^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14)

때로는 공동체 전체를 바꾸는데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정말 헌신된 2-3사람 심지어는 어떤 한 사람의 희생과 헌신으로 큰 공동체가 바뀔수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헌신된 소수의 희생보다 더 powerful한 것은,
전혀 가능성 없어 보였던(?) 사람의 변화이다.

정말 복음 때문에 변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은 감격스러울뿐 아니라 영광스럽다.
완전 농땡이이거나,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거나 조롱하는 사람들의 변화는 그저 그것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것 같은 감동을 받는다.

물론 어떤 사람의 회심의 변화가 가장 극적이고 감격스럽겠지만,
오래 교회를 다니던 사람이 눈이 열려 복음의 새로운 영역을 깨닫게 되는 일이라던지,
burn-out되어있거나 낙망해있는 리더가 상황이 변화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새 힘을 얻는 일들 역시 큰 감동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를 섬기는 사람 입장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을 꾸준히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애매한 대중 전체를 대상으로 대포를 뻥뻥 쏘아대는 것 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면서도 옳은 일이다.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12)

어떤 공동체가 스스로를 identify하는 것에는 두 종류의 description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우리 공동체는 이러이러한 공동체이다’ 라는 positive description이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 공동체는 이러이러한 공동체가 아니다’ 라는 negative description이다.

positive description은 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을 정확하게 해놓지 않으면 많은 왜곡이 생길 수 있고, 무엇이 일차적이고 무엇이 부차적인가 하는 것을 define하게 된다.

반면
negative description은 모든 경우에 다 필요하거나 요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그 공동체의 지향을 더 명확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적절한 negative description이 없을 경우 그 공동체는 방향성을 잡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negative description을 너무 남발하면 그 공동체의 입지 자체를 너무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흔히 ‘대안 공동체’라고 이야기를 할때 ‘대안 (alternative)’라는 말은,
negative description을 함의한다.

status quo에 대한 대안,
시대정신에 대한 대안,
세속에 대한 대안 등등은… 각각 status quo, 시대정신, 세속의 어떤 측면을 반대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negative description은 공격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기 쉽다. 그래서 더더욱 조심해서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공동체의 지향을 명확하게 한다.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11)

공동체는 그 공동체가 믿고 있는 것, 그 공동체가 따르고 있는 것등을 반복해서 공유해야한다.
기독교 공동체는 더더욱 그렇다.

공동체 리더가 흔히 빠지는 착각 가운데 하나는,
내가 이러이러한 것은 벌써 공동체에게 이야기했으니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라는 식의 생각이다.

공동체에서는 매우 자주,
아주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것에대해 over-communication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라면,
십자가, 하나님 나라, 구원, 죄 등등에 대한 것을 아주 많이 반복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리더(설교자, 목회자를 포함한)들이 몇번 설명한것으로 공동체의 구성원이 중요한 것들을 다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면 안된다.

그래서 그것이 충분히 반복되어서,
그 기본적인 스피릿과 연관된 공동체만의 스토리가 이루어지도록 해야한다.
일단 그렇게 공동체만의 스토리가 기본적인 스피릿과 연관되어서 만들어지고 나면, 그건 많은 공동체가 다다르지 못하는 한단계 높은 수준에 도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복, over-communication은 정말 중요하다.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9)

개인의 영적 성숙을 공동체에 떠넘기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매우 활동적인 개인 영적 성숙이 일어나고 있다고 가정할때,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공동체이다.

어떤 사람이 새로 복음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복음 안에서 성숙해가는 과정 속에서…
자신보다 조금 더 영적 성숙의 여정에서 앞서 있는 사람과의 인격적인 대화는 대단히 powerful한 효과가 있다.

몇년동안 책을 읽고,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하고… 하면서 얻어져야 할 것이,
어떤 사람과의 진솔한 한번의 대화를 통해서 얻어질수도 있다.

만일 어떤 공동체에 다양한 분야의 성숙함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 공동체에 속해서 그 많은 자양분을 받으며 자라는 것은 대단히 흥분되는 일이다.

그래서 어떤 공동체에 자신이 배울 수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는 어떻게든 많고도 깊은 대화를 통해 뽕을 뽑아야 한다. ^^
그 사람이 귀찮아 할꺼야, 그 사람이 바쁘니까… 그럴게 아니다.

어떤 공동체에서, 자신이 어떤 면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의 영적성숙을 도울 수 있는 면이 있다면…
그 사람은 죽어라고 자신의 시간을 다른사람을 위해서 써야 한다.
그게 그 사람에게 그 자리에서 맡겨진 소명이다.

바람직하기로는,
한 공동체 안에 가능하면 다양한 분야의 성숙함이 공존하는 것이 더 좋다.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7)

나는 현대 교회에서 공동체를 만드는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는 ‘nice함’ 이라고 생각한다.
공감, 이해, 예의, 친절함 등등의 이름으로 사람들은 서로에게 매우 nice 하다.
이건 소위 ‘배운 사람들’ 사이에서 더 심하다.

그런데 서로 nice하게 대하기 때문에,
정말 꼭 해줘야하는 이야기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복해서 잘 못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그거 아니라고 이야기해줘야 하는데… 그게 nice한 문화에서는 잘 안된다.

나는 이렇게 ‘nice함’이 교회 내에 넘쳐나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죄’를 가볍게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어떤 사람이 하나님보다 커리어를, 돈을, 성공을 더 사랑하고 있다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매 순간 그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정말 심각하면서도 대단히 위험한 세계관과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날카로운 송곳으로 자신을 계속 찌르면서 자해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의 얼굴을 주먹을 날리는 한이 있어도 그 습관을 그치도록 해야하지 않는가.

돈을, 섹스를, 권력을, 세상을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왜 그런 마음이 없단 말인가.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6)

건강한 신앙공동체가 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한가지를 뽑으라면 무엇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것은 본 회퍼가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정확한 quotation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누가 좀 찾아서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으로부터 반복해서 복음을 들어야한다.

공동체가 해야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은,
동료 그리스도인에게 반복해서 복음을 들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정말 그 기본적인 복음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고싶은 목마름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또한 실제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그 복음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으며 내가 정말 누구인가를 remind 해야하만 세상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흔히 공동체라고 하면,
어려운 일을 도와주고, 힘들때 말 동무가 되어주고, 바쁜 일이 있을때 서로의 빈 구석을 채워주고… 등등을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어려운 일을 도와주고, 자신의 속 얘기를 하고, 충고를 해주고, 경제적으로 서로 돕고… 등등이 참 좋은 일이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서로의 귀에 복음을 들려주는 일의 subset이 되어야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복음이란 총체적인것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좋은 일’들이 복음이라는 umbrella 아래에서 이루어지지 않을때 공동체는 pseudo-community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가슴이 먹먹할때는…

어제 잘 아는 한 동생으로부터,
최근 있었던 마음 무거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마음이 많이 아프고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걸 그냥 덤덤하게 말해주었다.

그 얼굴로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이 더 내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내가 뭔가 작심을 하고 힘을 내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무슨 지혜가 넘쳐나서 그 지혜를 흘려줄 수 있지도 않고,
아니면 내가 왕창 공감능력이 뛰어나기라도 해서 그걸 듣고 함께 많이 공감해주지도 못했다.

다만,
그 이야기는 내 마음을 많이, 많이, 많이, 많이, 무겁게 누르고만 있다.

이렇게 가슴이 먹먹할때는,
그리고 그 앞에서 내가 아무런 힘이나 도움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그 먹먹함을 그냥 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이 기도가 되기도 한다.
그걸 기도라는 format으로 담아내지 않고, 그 먹먹함을 마음에 하나 가득 담고 그 안으로 하나님을 초청하는 것만으로 기도가 되기도 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 마음 속의 부담을 기도라는 format으로 풀어낼 힘이 없다고 느껴진다고 이야기하는게 더 맞는 이야기일 것 같다.

Survived!

민우가 어제 고등학교 졸업을 했다!

민우는 고등학교 시절을 참 재미없어했다. 그리고 힘들게 보냈다.
옆에서 보기에도 정말 그래보였다.

숙제는 엄청나게 많고, peer pressure는 대단하고,
주변에는 소위 ‘선행학습’을 하고 온 애들도 많았고,
이 동네의 엄청난 교육열.

몇년전 이 동네의 어떤 교회에서 목사님께서 설교중에 하셨던 이야기가 정말 맞다.
이 동네의 Christian들은,
Silicon Valley에서 살면서 내 아이가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느냐 하는 것 보다는 Harvard에 갈 수 있느냐 하는 데 관심을 더 많이 살고 있다는 것.

어제 이렇게 졸업을 한다고 쭈욱~ 앉아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참 안됐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훨씬 더 활기 있을 수 있는 고등학교 시절을 그렇게 보낸 아이들.

그리고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민우에게 참 많이 미안했다.
아빠가 그런 속에 있는 민우에게 좀 더 든든한 방파제가 되어주지 못했다.
오히려 때로 ‘더 노력해라, 더 공부해라, 더 성실해라…’ 식의 이야기로 그 마음을 더 힘들게 했다.

감사한건,
민우가 1년동안 gap year를 하면서 1년 더 우리와 함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으로 여기고,
민우와 더 친하게 지내보려고 결심중이다.

민우는 Survive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