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조업

재작년이었던가, Tim Cook이 NBC의 Brian Williams와의 인터뷰를 했었다.
Brian Williams가, 왜 apple의 제품을 미국에서 만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Tim Cook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충 내용이 이랬다.)

manufacturing을 하는 것은 그냥 공장을 지어놓으면 되는게 아니다.
언젠가부터, 미국에서는 manufacturing을 하는 infrastructure 자체가 없어져버렸다.

…….

manufacturing을 하는데에는,
계획을 잘 하고, 그 계획에 맞추어서 실행을 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
특별히 supply chain이 복잡할수록, planning과 execution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실제로 ‘제조업’이 살아 있는 나라들 – 한국, 중국, 일본, 대만, 그리고 유럽 쪽에서는 독일… – 의 회사들과 일을 해보면, 이 사람들은 그걸 잘 아는 것 같다.
계획을 정확하게 세우고, 그 계획에 맞추어 실행을 하는 체질이 잘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미국 회사들은…

“그 샘플 언제까지 몇개 보내줄건가요?”
“한 두어주 후에 몇개 보내드리죠. (I’ll send you a few in a couple of weeks)”
아니, 그러지 말고, 정확하게 며칠날 몇개를 보내준다고 얘기를 해주셔야죠.
“하는데까지 해보죠, (I’ll see what I can do)”

이런 식이다.

나는 정말 완전히 분통이 터지고…

반면, 위에서 말한 나라들에서는 대충 이렇게 온다.

“그 샘플 언제 되나요”?”
“ETA @ San Jose, 10/23, 2 sheets/ condition. 12 conditions”
“각각의 condition을 보내주실 수 있는지요?”
“지금 막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excel sheet 확인하십시오. 세번째 tab이 이번에 실행한 실험에 대한 구체적 결과이고, 네번째 tab에는 분석결과가 들어 있습니다.”

완전히 다르다.

Tim Cook이 한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유연한 힌두교인, 경직된 기독교인(?)

내 보스는, 인도사람이다.

전반적으로 상당히 Americanize되어서, 고기도 잘 먹고…

그 아내도 인도 사람이 아니라 Chinese Cambodian이다.

깊이 이야기를 해볼 기회는 아직 없었지만,

이 사람은 그렇지만, 소위 ‘Hindi Philosophy’ 스터디 모임에도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등…

나름대로 다소 ‘liberal한(?)’ 힌두교인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최근에,

내가 다루는 회사 하나가 약속을 잘 지키지않고, 거짓말을 하고, accountability를 보여주지 않아서, 내가 좀 심하게 upset한 경우가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조목조목 그 사람들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해가며 매일 체크를 하고, date review를 해 가면서 그 사람들이 가지는 논리적 오류들을 지적해내었다.

그런데,

최근에 그 conference call에 내 boss가 들어오더니만, 그 사람들을 많이 도닥여주고, ‘인정’해주었다.

나는 다소 열이 받았다. 그래서 내 boss와 언쟁을 벌였다. -.-;

음… 그런데…


논리적인 정확함과 치밀함, fact에 근거한 argument는, 당연히 내가 앞섰다.

그렇지만, 상대방의 상황을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려는 자세는 내 내 보스가 훨씬 뛰어났다.


논리적 치밀함을 통해서 결론에 도달하려는, 분석적 방법이 내 접근이었다면,

논리적 치밀함을 포기하더라도, 심지어는 누가 옳고 그른가를 가리는 일을 포기하더라도, 결국 상생하며 그 사람을 이해하고, 궁극적으로는 일이 되게하는 것이 내 보스의 접근법이었다.


그 사람의 그런 접근법이, 그 사람의 힌두교적 세계관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심지어는 그 사람이 자신의 힌두교적 세계관과 자신의 일을 ‘통합’ (삶과 신앙의 통합!)을 하려는 시도를 얼마나 하고 있는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경직된 그리스도인인 나와,

유연한 힌두교인인 내 보스를 대비시켜 생각해보며,

내가 추구하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특정 방식에 대한 반성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좀 하게 되었다.



실력과 정직성

회사 일의 특성 상, 

대단히 많은 회사들과 technical 혹은 business discussion을 하게된다.

지난 두주동안 내가 cover했던 회사들을 대충 따져 보아도…

8개국의 15여개의 다른 회사들과 각종 discussion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나라별, 대륙별, 지역별 사람들의 문화와 특징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게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대개 실력이 모자르는 회사들의 경우에, 훨씬 덜 정직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대충 이렇다.

실력이 모자르면, 대개는 원하신 기간 내에 약속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여러가지 business discussion을 할때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그걸 막기 위해서, 그런 회사들은, 사실을 왜곡, 과장해서 이야기하거나, 심지어는 데이타를 조작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이런 상황을 만날때마다,

나는 참 복잡한 생각들을 많이 한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으로부터, 저런 X들은 제대로 본때를 보여줘야해… 뭐 그런 생각 까지.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해야만 살아남는 이 적자생존의 세상에서는,

약자들이 부정직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약자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정직을 compromise 해서라도 살아남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아, 물론 나는 결코 부정직함을 옹호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다만 그런 상황이 몹시 속쓰리게 느껴진다는 것 뿐…

한국이 망하면….

내가 대학생일때였던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었다.

고려는 불교 때문에 망했고,

조선은 유교 때문에 망했다.

만일 한국이 망한다면, 그것은 기독교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300명 가까이 몰살 당했는데, 정치권은 몇달째 아무것도 안하고 있고,

검찰은 정의, 공의 이런거 다 포기 무시하고 정치활동만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고,

경제정의 그런건 개나 줘버려 하는 분위기이고,

사람들은 소망을 잃고 목을 메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청년들은 직장이 없어 노예와 같은 알바라도 하겠다고 달려들고 있고,

집권을 한 사람들은 거짓과 불의를 행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군대를 간 20대 초반의 아이들이 어이 없이 맞아 죽는 일들이 생기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하게, 부자는 더 부자가 되는 세상에 대해 아무도 뭐라 말을 못하고 있고,

미래를 책임져야할 아이들은, 그저 입시, 입시, 입시에 목을 메어 밤 늦게까지 점수 올리는 훈련만을 받고 있고,

교회는 성적 도덕적 타락의 상징이 되어버렸고,

기독교는 개독교라고 일컬어 지는게 이제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처절한 상황의 북한에 대하여 비전을 가지고 체계적 전략적 접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해져 버리고 있고,

아니… 이제는 서북청년단도 구성했다고… 허 참…. 그 사람들 죽창으로 빨갱이들 찔럭 죽이겠다고 나서겠군.

이래도 한국이 망한거 아니라고?

이거 다…. 기독교 때문이다.

나, 기독교인이다.

한없이, 한없이,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하나님에 대해, 세상에 대해… 정말 죄송하다.

기복신앙와 번영신학

최근에 지난번 시카고 집회 강의 mp3들을 듣는 중에,

김도현 교수님께서 기복신앙과 번영신학에 대해 구별해서 설명하신 것이 인상적이었다.

김도현 교수님에 따르면,

기복신앙은, 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혔던 것인데,

예수믿으면 복 받아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신앙이었다.

그러나, 번영신앙/번영신학은, 주로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에게 먹히는 것인데,

예수믿으면 번영을 누리게 된다는 것으로, 부의 축적=하나님의 blessing이라고 이야기하는 신앙이다.

참 좋은 설명이라고 느껴졌다.

거기에 내 생각을 조금 더 보태어 보자면,

기복신앙은, 그 천박합(shallow)이 문제라면,

번영신앙은, 그 탑욕스러움(greedy)이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번영신앙은, 기복신앙보다 훨씬 더 죄질이 나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지난 주말

지난 금요일 밤 11시 반경,

text가 하나 왔다.

뭐 이런거다. 

Hi Ohseung, are you still awake? Got a question about plasma damage

음….

결국 내가 전화를 했고, 내용인 즉슨, 우리가 internal customer에게 보낸 sample의 대부분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자정이 다 된 그 시간까지 아직 사람들이 실험실에서 끙끙거리며 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러 실험을 통해서, 문제가 우리가 사용하는 ‘plasma treatment’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밝혀 냈는데,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사실 나는 박사학위를 plasma로 받았으므로, 굳이 말하자면… 나는 그쪽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쩝…)

그 밤에 전화로 한참 이런 저런 discussion을 하고, 

토요일 아침에 실험실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토요일 새벽에 팅~ 하고 날라온 또 하나의 text.

토요일 아침 일찍 급하게 conference call을 해야 한다고. 대만에서 온 연락이었다.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사고가 하나 대만에서 터졌다.)

으윽….  이 인간들이…

결국 토요일 아침 일찍 conference call을 하나 하고,

회사로 나갔다.

문제가 생긴 sample들을 여러가지로 관찰해보고, 현미경으로 조사도 해보니, 무엇이 문제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process condition을 바꾸도록 거기에 나와 있는 사람들에게 suggest를 하고는 집에 왔다. 

계속 이메일로 연락이 오고, 뭐 몸이 집에 와있긴 했지만 계속 process condition에 대해서 discussion을 해야 했다.

결국 밤 8시가 다 되어서야….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sample들을 internal customer들에게 보낼 수 있었다.

주일 예배를 드리고 나서 집에 와서 민우와 점심 식사.

그리고 주일 오후가 되니,

아시아 쪽에서는 다시 이메일과 text가 들어온다. -.-;

독촉, 부탁, 요청, 질문….

아,

주말이 날라갔다. -.-;

나는 다른 사람을 막 대할 권리가 없다.

회사 일로 많이 stress가 쌓여 있을 때에는,

(뭐 회사일이 아니어도 좋다. 내 개인적인 일이 될수도 있고, 심지어는 Christian ministry일수도 있겠다.)

자연히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내 뜻에 잘 맞추어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공격적이 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특히 그 대상이 ‘만만한’ 사람이면 더욱 그렇다. 

내가 막 대해도 내게 크게 피해가 오지 않을 사람이라면…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사람을 막 대할 권리가 없다.

그 사람은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소중한 피조물이다.

신경이 날카로와진 (혹은 많이 upset 되어 있는) 내 상태가,

다른 사람에대한 무례함을 보장해준다는 착각은…

무엇보다도 나를 파괴시키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은 이기적이다. 대.단.히.

내가 회사에서 절.대.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몇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credit을 빼앗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 일인 경우, 그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했다고 credit을 양보한다.

가령,

내가 A 라는 사람과 대충 50:50 의 일을 한 경우에, 나는 “A가 대부분의 일을 했고 내가 약간 도왔다.” 라고 이야기한다.

A가 20, 내가 80정도의 일을 한 경우, “우리가 함께 일했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다’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분명히 50:50 일을 했고, 나는 그것의 credit을 더 많이 그 사람에게 돌리는데… 그 사람은 실제로 자기가 더 많은 일을 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건, 그 사람들이 뭐 악의를 가지고, 자기가 더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자기가 더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이 더 크고 많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눈에 보기에 공정하게 평가를 하면, 실제로는 자신에게 대단히 유리하게 평가를 하게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이기적이다. 대.단.히.

높은 이상과 건강한 현실

높은 이상을 갖는 다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사실 이상이 형편없이 낮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정말 복창이 터지게 답답한 일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늘 이상과의 간극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높은 이상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래서… 높은 이상에 다다르지 못하는 현실을 더 improve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건강하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현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포기하거나 모두 무가치한 것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매우 건강하지 못한 일이 아닌가 싶다.

가령, 부부 관계 속에서…

이상적인 부부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높은 이상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 이상에 도다르지 못했다고 해서 그 부부관계 자체가 모두 잘못이라고 포기해버리는 것은 매우 큰 잘못이다.

건강한 이상과 현실 인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높은 이상적 부부관계에 도달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지만,

또한 지금 그 이상에 도달하지 못한 현재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현재상태를 appreciate하고, 누릴 줄 알아야한다.

때로 높은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 현실의 벽을 만났을때 너무 쉽게 이건 아니야 이건 안되는 거야 라는 식으로 포기해버리는 것을 보는데…

그것은 결코 건강한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Return of the King

이번주 설교는 Eschatology에 대한 것이었다.

결국 궁극적으로 어떤 일이 있게될 것인가, 그것과 관련된 우리의 소망은 무엇인가.

보통 나는 설교 시간에 노트를 하면서, 

그 내용을 담아보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데,

어제는 노트를 할 수 없었다. 

그저 그 설교에 몰입하며 끝까지 들었다.

Tim Keller가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설교를 정말 제대로 하면, 처음 설교를 할때 노트를 하던 사람도 펜을 놓고 몰입해서 듣게 된다고.

내가 딱 그랬다.

몸과 마음이 다 무겁고 힘든 상태에서 참석한 얘베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선물이 아니었다 싶다.

좋은 설교를 듣고 나면, 당연히 설교자에게 감사해야할 일이겠지만, (그리고 많이 감사하지만…^^)

또한 그 설교를 함께 들었던 사람들이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