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book의 압박

Facebook에 account만 만들어 놓고 있다가
마누라랑 딸내미하고만 친구 맺어놓고 있었는데,

몇달전엔가 계속 ‘친구요청’을 하는 사람들의 요청을 받아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요즘엔, 그렇게 요청하는 사람들중 내가 직접 아는 사람들이면 다들 친구로 받아주고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최근 1-2주동안 부쩍 친구요청들이 들어왔다.
대충 정신없이 yes yes yes를 해주고는,
역시 들여다보지도 않고 있었는데…

어제 그 페이지에 들어가서 여기 저기 뒤져보니 작년에 내게 쪽지(?)를 보내놓은 사람도 있고,
가끔 내 페이지에도 누가 와서 끄적이고 간 흔적들이 있었다.

허걱…

그러나,
난 아무리 생각하고 따져봐도,
facebook을 manage할 만한 extra energy가 없다.
가끔 아내나 딸내미가 내 대신 내 page에 들어가서 이것 저것 관리도 해주고 그러는 모양이던데…

최근 KOSTA fan page 같은 것이 생기면서…
facebook을 뭔가 좀 해야하나 하는 압박을 더 느끼게 된건 사실이긴 하다.
이러다 넘어갈지도…

어찌 되었건 간에 포인트는,
이 블로그의 이 글을 보는 분들만이라도 다음과 같은 내용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제 facebook에 뭐 남기거나… 쪽지 보내거나 뭐 그러면
몇달뒤에나 제가 그거 확인하게 될거고요,
그나마 확인하는 과정에서 발견 될 확률이 10% 정도쯤 됩니다.
제 황무지 facebook은 그냥 계속 황무지일 것 같습니다. 갑자기 제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

참… 오랫만이었다.

지난 토요일 저녁,
우리 집에서 어른 7, 아이 3명이 모여 함께 조촐한 식사를 나누었다.
서로 자신의 삶에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다소 추하고 부족한 모습도 이야기하고…
찡~하고 마음을 울리는 감동도 있었고, 뭔가 주먹을 불끈쥐게하는 결심도 있었다.

2005년 이었던가,
‘우리집’에서 이렇게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성경공부 모임을 가졌던 것이.
나와 아내가 나란히 앉아서, 내가 주책없이 떠드는걸 아내가 보며 옆구리를 찔렀던 것이.
(이번엔 어깨를 툭 쳤지만.^^)

참, 오랫만이었다.
뭐랄까…
아내와 민우가 California로 이사온지 1년이 벌써 훌쩍 넘었는데,
우리가 사는 집에 생명의 물줄기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우리 집이…
한결 더 따뜻해졌다.

아, Scranton!

뒤늦게,
Scranton conference에서 나누어졌던 message들과 강의등 contents를 살펴보고 있다.

아…
알짜배기는 Scranton에 있었던 것이었구나!

정말…
깊,은. 감동이다…..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던 것이 정말 아쉬웠다.

1930년대에 내가 20대였다면…

작년 봄 부터였던가,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상황을 곱씹어 보면서,
만일 내가 그 시대에 한참 피 끓는 20-30대 였다면,
거의 틀림없이 공산주의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 공산주의자의 역사인식이,
소위 보수적이었던 그리고 친일적이었던 우익보다는 훨씬 더 건강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70-80년이 지난 이후에 그 당시 상황을 역사로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공산주의의 한계랄까 그런 것이 더 잘 드러나는데…
그 당시의 상황에 함몰되어 있었다면 그것을 보기 참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다.

지난 KOSTA 시카고 집회에서,
홍정길 목사님이 이와 거의 비슷한 말씀을 하셨었다.
그분이 하신 말씀중 내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당시 뜻 있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의 매력에 빠지지 않기 어려웠을 거라는 말씀은 참 공감이 되었었다.
그리고 그 공산주의의 매력에 빠지지 않았던 지성인들은 결국 기독지성인이었다는 것.

지금 내가 옳다고 믿고있는 것은 과연 역사 속에서 얼마나 옳은 것으로 드러나게 될까.
지금 내 판단으로 최선의 길을 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훗날 잘못된 길로 드러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바로 그런 이유로,
작년 봄 즈음 부터는,
몹시 매력적으로 보이는 사상이나 생각, 이론이나 주장등에대해 너무 쉽게 흥분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나로서는 그리 쉽지 않을때가 많지만…)

그러한 자세와 생각의 근저에는,
결국 역사의 주관자가 이성이나 계몽주의적 낙관론에 경도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생각이 있다.

Barmen Declaration

나찌의 폭압정치 아래서,
독일의 고백교회(German Confessional Church)가 했던 선언인 Barmen theological declaration.

지난 KOSTA/USA-2010을 지내면서,
이 Barmen theological declaration에 주목하게 되었었는데…

집에와서 들어보니,
jjKOSTA 수양회에서 황집사님이 이 Barmen 신학선언을 언급하셔서 반가웠다.

곱씹어보면 볼수록,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그런 선언이 아닌가 싶다.

예전에 나찌의 폭압정치, 자유주의 신학 등이 그 배경이었다면,
이제는 신자유주의, 배금주의, 세속주의, 번영신학등이 그 배경이 되지 않을까.

Karl Barth에 대해 더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고 있는데…
공부할 것은 점점 많아지고, 능력은 딸리고…. -.-;

괜히 센티멘탈…

매년 이 시즌이면,
한해의 코스타 운동을 개인적으로 정리하고 그 다음해의 코스타 운동으로 넘어가는 transition을 겪는다.

어제,
KOSTA/USA-2010과 관련해서 communicate했던, 약 6천개 정도의 이메일을 ‘previous-2010’ folder로 옮겼다.

많이… 많이…
emotional해졌다.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이번주 화요일에,
우리 그룹의 어떤 한 사람이 내게 이야기도 하지 않고 내 실험하는 내용을 마음대로 바꾸었다.

예전에도 이 사람이 그런 적이 있었는데,
나는 나름대로 마음을 가다듬고 가서 차근차근 얘기하리라 다짐을 하고 그 사람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오히려 내가 잘못한 것이라면서 바락바락 우기는 것이었다.
나는 금새 control을 잃고 그 사람의 argument를 조목조목 따지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논리로 내게 이야기하기보다는 거의 억지의 수준에서 물고늘어졌다.

그때 마침 그 옆을 지나던 우리 그룹의 매니저가 와서는,
말하자면… 조심스럽게 내 손을 들어줬다.

결국 그 사람은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내게 이야기했고 (그러나 결국 미안하다는 등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상황은 대충 종료되었다.

그날 밤에 성경공부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마음에 평안이 없었다.

그래,
그 사람과 그렇게 논리싸움을 해서 이겨서 속이 시원하냐…
그 사람보다 네가 잘났다고 그렇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었냐.

나는 그래서,
오늘 오전까지…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그 사람을 치켜세워주고 칭찬해주는 일을 대대적으로(?) 했다.

그 사람이 최근 주장해온 어떤 주장에 대해서도,
평소같으면 논리적이지 않은 것을 내세워서 많이 따지거나, 최소한 무시했을 텐데…
많이 긍정해주고, 그 사람에게 도움도 요청하면서,
말하자면 그 사람을 많이 높여줬다.

금방 그 사람은 마음이 많이 풀렸고,
어제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그래… 앞으로 잘해봐… 뭐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흠… 좀 황당하긴 했다. -.-;

일반적으로 나는 비논리적으로 박박 우기는 사람을 참 잘 견디지 못한다.
나 스스로도 직관적이지만, 그 직관이 논리의 뒷받침을 얻지 못하는 경우 그저 우기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런 사람과 대화를 하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그런 사람을 멸시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그저 피하기도 한다.

지난 며칠은,
내게있어 그런 사람을 수용하고, 용서하고, 인정해주고, 심지어는 그 사람의 종이되는 작은 훈련을 하는 기간이었다.
미묘한 argument에서 내가 논리적으로 그 사람을 반박하는 것 보다, 그 사람이 이런 과정을 통해서 더 존중받고 그 사람의 재능과 경험들이 의미있는 방식으로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런 것은, 내가 그 사람과의 싸움에서 이김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종이 됨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내게 대단히 손해가 난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내 자존심과, 나의 ‘의로움’을 드러내고자 하는 고약한 심보를 자제하고,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을 진심으로 위하고 높이고 섬기는 그런 사람이 되는 약간의 훈련이,
이렇게 내가 블로그에 쓸 껀수가 되는 것을 보면…

아직도 난 갈길이 먼 것이 분명하다.

동물원 3집

예전에 한국에서 대학때 많이 들었던 동물원 3집을 최근에 다시 구해서 들을 수 있었다.
참 옛 생각 많이 났는데,

그중,
유리로 만든 배, 표정, 글쎄 그걸 어떻게 말하나 등은
한편 지금도 공감이 많이 되는 것들이긴 한데,
그 당시 그 노래들을 좋아했던 내 모습이 투영되는 듯 해서 반가웠다.

막 그리스도인이 되어,
심한 가치관의 혼란의 열병을 앓고 있을 때 였는데…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그 노래들에 공감하고 있는 내가 한편 신기하기도 하다.

호세아

요즘,
KCF 리더들과 말씀을 나누면서 호세아를 함께 보고 있는데…

내 마음이 호세아서에 함몰되었다.

음란한 아내와도 같은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역설,
벌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는 회복이 없다는 역설,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모녀 ^^

어제밤에 나는 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한참을 자다가 새벽녘에 깨어 옆을 보니,
헉, 마누라가 없다!

아니 어디 갔을까?
거실에도 없고, 화장실에도 없고…

한참을 보니, 마누라가 민우의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민우 침대에서 아주 편하게…
아니 그럼 민우는?

거실에도 없고, 화장실에도 없고…

역시 다시 찾아보니, guest room에서 자고 있었다.

흐흐…
엄마가 민우 예쁘다고 민우 옆에 누워있다가 잠이 들었고,
좁은 침대에서 불편한 민우는 깨어서 guest room에 간 것이 분명했다.

잠자리를 바꾸어서 자고 있는 모녀가 하도 귀엽고 재미있어서
한밤중에, 한참을 웃었다.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귀여운 모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