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ving the Big A (2)

처음 apple에 들어갈 때 내 상황은 대충 이랬다.

열정을 가지고, 나름대로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셨다고 생각했던 start-up company가 사실상 망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고민과 생각을 참 많이 했었는데, 여러 생각 가운데 하나는 이것이었다. : 내가 정말 marketplace의 language를 제대로 잘 모른채 start-up company를 하겠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마침, apple에서 연락이 왔다. 혹시 apple에서 일해볼 생각 없느냐고.

나는 나름대로 고민하다가, 그렇게 가기로 결심했다.

세상에서 제일 잘 나가는 회사에서, 딱 1-2년만 일 제대로 한번 해보자.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허락해 주시면, 이 start-up으로 다시 돌아와서 다시 한번 해보리라. 그것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면서, 제대로 한번 배워보자.

나는 apple에 가면서도, 거기서 뭔가를 제대로 잘 해보겠다는 자세로 임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기서 일하는 와중에도, 조금씩 짬(?)을 내어서, 나는 하던 start-up company의 business direction에 관한 conference call에도 (일주일에 3번씩) 계속 참여 했었고, 그 start-up company를 살려보기 위해서 이 동네의 다른 회사 사람을 만나기도 했었다. – 그러나 그 start-up company는 결국 작년 7월 말경에 최종적으로(?) 끝났다. 뭐 좀 더 엄격하게 말하자면, 그 회사 자체는 아직 살아있기는 한데, 사실상 그 불씨를 다시 살리기는 이제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참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여러가지 생각과 감정 등등을 제대로 추스리기 어려울 만큼 힘들었다.


apple에 일하면서 나는 어떤 의미에서 한번도 제대로 ‘apple 사람’이 된적이 없었다.

apple을 떠나는 것이 어렵지 않았던 것은, 그런 이유가 크지 않았을까 싶다.

Leaving the Big A (1)

So, are you really serious about leaving Apple?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on-site interview를 할때, 

한 executive director가 물어본 질문이었다.

내가 이렇게 직장을 바꾼 것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했던 사람은, 지금 내 boss 뿐만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도, 왜 그러는데? 라며 신기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apple을 그만두고 나온지 이제 한달이 조금 더 지났다.

apple에 다니면서 참 많은 것을 깨달았고, 많은 것을 배웠지만, 

나는 apple을 떠나서 정말 기쁘다! ^^

사실 apple을 떠나게된 경위, 그러면서 내가 느낀 것들을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은 계속 하고 있었는데,

이걸 어떻게 정리헤야 할지 자신이 없었다.

자칫 사람을 blame 하는 것과 같이 되기도 쉽고,

내 자랑(?) 같이 글이 쓰여지기도 쉽고…

앞으로 몇번에 걸쳐서, 내가 apple을 떠나게 된 경위, 그 과정 속에서 깨닫고 반성한 것들 등등을 한번 정리해보려고 한다.

매일 이 시리즈의 글만을 올리지 못할지도 모르겠으나,

가능하면 내 생각들을 빠짐없이 정리해보고 싶다.

사람이 우상된 교회 (7)

뭐 대단히 거창하게 지난주에 글을 시작했는데,

막상 써놓고 나니 꽤 아직 생각이 빈약하다.

그럼에도 3번 정도 쓰겠다고 한걸 6회에 나누어서 쓰게 되었네. -.-;

그렇지만,

최근 몇달동안,

나는 내가 이렇게 행동하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깊이 회개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예전에…

내가 ‘독성이 있는 사람’ 같다는 식의 표현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사람을 우상만드는 내 성향과 행동이 그 ‘독성’의 주요 요소 가운데 하나였음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우상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

또 다른 누구를 우상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

여전히,  많이 내 안에서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제는 그 결판이 조금씩 나고 있지 않나 싶다…

사람이 우상된 교회 (6)

몇가지 사례들

1.

K 집회를 하다보면,

유명한 설교가들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아이돌’ 가수를 향해 열광하는 사람들과 같아 보일때가 있다.

신앙과 인생의 선배로서 그분의 삶과 신앙과 인격을 바라보며 존경을 표하기 보다는,

유명 연예인과 인증샷 찍는 것과 같은 상기된 얼굴로 사진 찍고, facebook에 올리고…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는…

그 유명한 아이돌 설교자들과 사진을 찍었다는 것에 묘한 영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까지도 심심치않게 보게 된다.

2.

유명한, 존경을 많이 받는 A선배와 오래동안 성경공부를 배웠던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누던 중,

A 선배의 생각에 내가 동의하기 어려운 점들을 풀어놓았다.

그러자 그 친구는, 버럭 화를 내면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핏대를 올렸다.

나도 그 A선배를 존경하지만, 그 선배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말했을 뿐인데, 그 친구는 그 A 선배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3.

B 목사님의 연락처가 알고 싶어서, 어느 후배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만… 엄청 오바를 해가며…

B 목사님의 연락처는 이러이러하고, 지금쯤 어디 계실 거고, 연락이 안되면 자신에게 다시 이야기를 하면 연락이 닿도록 해보겠다고… 

B 목사님의 ‘일정’을 꿰고 있다는 것이, 마치 어떤 영적 계급의 상징이라도 되는냥 행세하는 모습을 보았다.

B 목사님은 나도 존경하는 분이고, 존경받을 만한 분이긴 하지만… 그분의 연락처를 아는게 뭐 그렇게 유세를 부릴 일일까.

사람이 우상된 교회 (5)

사람은, 기본적으로 신뢰의 근거로 삼을만한 존재가 아니다.

(신뢰의 관계 자체를 부정하는 의미가 아니다. 죄로 인해 어그러진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을 우상으로 만들어 놓으면, 그 우상은 언젠가는 실망을 줄 수 밖에 없다.

그런의미에서…

나는 한국이든 미국이든…

유명한 목회자, 설교가, 저술가의 facebook, blog 등등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며 무서워질때가 있다.

아… 

이렇게 사람을 높여 놓으면….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자리가 없어지는데…

혹시라도 이 사람이 무너지고 실패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무너지게 될까.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퍼맨을 만들어 넣고,

그 수펴맨이 제대로 못하면 그 수퍼맨을 비난하는 악한(그리고 연약한) 대중.

그리고 그 악한 대중의 그 flattering에 취해서 기뻐하는 영적 지도자들.

대단히 위험한 구조이다.

사람이 우상된 교회 (4)

다른 이를 우상으로 만들면,

자신은 막중한 부담/책임으로부터 빠져나올 구실을 만들게 된다.

우선,

영적 부담, 책임, 권위를 그 우상에게 돌려버리기 때문에,

자신이 져야하는 부담, 책임, 권위를 피할 수 있다.

혹시 다른이들로부터 비난받을 일이 생기더라도 그 수퍼맨이 이렇게 하셨다…는 식으로 돌려댈 수 있으니 매우 편한 피할길이 생기는 셈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영웅이니까…

그렇지만 나는 그런 영웅은 아니야. 그러니까 난 못해…

이렇게 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정당화된다.

물론,

특별히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어떤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이들을 ‘다른 기능을 가진 지체’로 보지 않고,

‘영웅’으로 만들어 버리면…

사람들이 그 흐름 속에서 하나님과 대면할 chance를 놓쳐버리게 되고,

지도자는 타락하고,

사람들은 성장을 멈춘다.

결국… 그저 지도자에 종속되는 second-class-citizen이 양산된다.

사람이 우상된 교회 (3)

어제 쓴 글에서,

누구 하나를 수퍼맨으로 만들어놓고 그 권위를 이용해 먹으려는 시도는,

단지 local 공동체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가령,

기독교 변증을 잘 하는 사람을 하나 찾아내면,

그 사람의 논리를 잘 앵무새와 같이 따라하면서… 그 논리를 숙지한다.

그리고 그 변증가를 우상화한다.

그 후에,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눌때… 그 우상화한 변증가가 위대하다고 추켜세워가며,

앵무새와 같이 숙지한 그 논리를 쭈루룩 펼쳐낸다.

이것은 사람을 너무 높여내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앵무새와 같이 논리를 읖조려내는 사람에게 깊은 damage를 준다.

그 사람의 신앙이 대단히 superficial, 혹은 shallow 해지는 것이다.

많은 책을 읽고 지식을 풀어놓는 사람들 -그리고 그 지식의 압박으로 논쟁에서 이기기 좋아하는 사람들 – 은,

그야말로 자기가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한 채,

멋진 이야기를 하는 자신을 (마음 속에서) 어느새 그 원저자의 수준에 올려놓는 우를 범한다.

그러면서, 더 이상 깊어지지 못하고… superficial한, 혹은 shallow한 지식을 쌓는 수준에 머무르게 된다.

하나님과의 대면을 통해서만 깊어질 수 있는 기회를…

‘다른 사람 영웅만들기’ 작업을 하는 바람에,

놓쳐버리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우상된 교회 (2)

현대의 복음주의는,

‘영웅’ 만들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위대한 사상가, 신학자, 설교가등에 열광한다.

누가 무슨 얘기를 했다더라 하면 그 책/강연/설교에 대중이 몰린다.

나는 그런 현상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부족하게 지켜내고 있는 신념을, 매우 강력한 방법으로 살아내거나 선포하는 사람들에게,

뭔가 묘한 흥분과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보면서… (물론, 여기에 나도 포함된다,.)

음….

뭔가 어그러져 있다고 느껴진다.

자신이 잘 못하는 것을 잘 해내는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일수도 있고,

자신이 해내지 못하는 것을 해내는 모습을 통해, 일종의 확신을 얻고싶어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자신이 그렇게 우뚝 서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하는 것일수도 있다.

…

흔히,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산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은 것이 많다.

“아, 그 A선배 있잖아. 그 선배 참 대단해. 어떻게 그렇게 헌신해서 사시는지. 지난 15년간 성경공부 인도 한번도 안빠지셨대잖아. 하루에 매일 2시간씩 말씀 묵상 하시고. 그렇게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도 그 많은 사역들 어떻게 다 해내시는지 몰라. 책도 많이 읽으시고, 게다가 지역교회도 섬기시잖아. 이메일로 뭐 여쭈어보면 거의 그 즉시 답변해주시더라. 꼼꼼하게 일처리도 잘하시고. 정말 그렇게 헌신한 모습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니까.”

이런식으로 분위기를 만들어가면,

후배들로 하여금, 자, 저기 저 선배를 봐라. 저렇게 하는거다. 하면서 이끌어가기엔 참 편하고 좋다.

누구 하나를 우상화해 놓으면, 그 대상에게 많은 영적인 짐을 지우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거다.

내가 참 즐겨썼던 방법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것은 참 비겁한 방법이다.

사람의 진정한 변화를, 

예쁘게 치장한 쇼 윈도우의 마네킹을 따라하라면서 이루어보려는 것과도 같다. (너무 비유가 심한가.)

내가 속한 선교단체, 지역교회에 이렇게 멋진 사람이 있으니,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그러니 너희는 내 말 잘 들어라…

사람이 우상된 교회 (1)

꽤 오랫동안 미루어온 주제로 3-4번으로 나누어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이것은, 다른이를 향한 비판의 글이라기보다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나 자신에 대한 회개와 반성의 글이다.

‘모델’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일

사실 모델을 만들면 참 편하다.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모델은 추상적인 개념을 축소시키는 위험을 또한 가지고 있다. 좀더 나아가면 환원주의에 빠질 우려도 있다.

현대의 복음주의는,

(그리고, 그곳에 속한 나는)

모델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다.

새로운 신학적 개념을 펼쳐나가는 지역교회의 모델.

기독교적 세계관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평신도의 모델.

하나님 나라가 이땅에서 승리해가는 것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모델…

우선,

이렇게 모델을 만드는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가 선포되는 것일까 하는 것에 대해…

최근 나는 깊은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

모델을 만드는 방식 자체가 전면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델을 만드는 방식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 선포의 매우 제한적인 보조자료이지, ‘몸통’이 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모델은… 본질을 추구할때 나타나게되는 부산물이지, 그것이 목표가 되면 안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본질에 뿌리박은 부산물로서의 모델만이, 역설적으로, 진정한 모델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생각도.

그.런.데…

적어도 내가 접하는 복음주의 지성인들중 너무 많은 사람들은, (물론 나를 포함해서…)

‘모델’을 만들어 내는 일이 답답한 현실을 타개해내는 돌파구가 된다고 믿고 노력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면서… 모델을 만들어내는 작업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정작 본질을 도외시하는 경향도 보인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물론 

그래도 내가 뭐 좀 중요한 contribution하나는 해야지… 하는 명예욕이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다.

내가 무엇을 함으로써 내 significance를 확보하려는…

이런 내 모습을 보며, 내 동지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겁다.

Emergence

개미는,

한마리 한마리를 두고 보면 그야말로 매우 ‘멍청’하지만,

개미가 떼를 이루어 사는 개미의 집단을 보면 매우 놀라운 일을 해낸다.

놀라운 건축물을 만들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을 돌보고, 질서있는 전투를 하고, 번식을 해 내가고, social order도 만들어 낸다. 

인간의 뇌를 보면,

뉴론이라고 불리우는 unit으로 되어 있다.

각각의 뉴론은 일종의 전기 신호를 주고 받으면서 머리 속에서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 내는데,

각각의 뉴론 하나 하나를 떼어놓고 보면 그야말로 전류 signal을 매개하는 작은 unit일 뿐인데, 

이 ‘멍청한’ 뉴론들이 모여서, 인간의 Brain을 만든다. 그리고 인간의 Brian  매우 복잡하고 위대한 생각을 해 낼 수 있다.

인간사회에도 이것은 적용될 수 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주, 인간 개인보다 함께 만들어내는 인간의 사회/집단은 개인보다 더 현명하다.

또 재미있는 것은,

어떤 한 개인에게 소 100마리의 무게를 추측해봐라 라고 하면 대단히 늘쭉날쭉이라도 한다.

그런데, 100명쯤 되는 사람에게 소 100마리의 무게를 추측해모라고 한 후, 그 추측값의 평균을 구하면, 실제 값과 대단히 비슷하게 나온다고 한다.

이와 같이 능력이 없는 작은 unit이 많이 모여서,

매우 능력있는 큰 unit (집단, 모임)을 만들어 내는 것을 Emergence라고 한다.

나는 일반적으로,

일반은총 속에 나타난 법칙 같은 것을 무리하게 ‘영적 원리’로 삼아 여기 저기 apply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Emergence 라고 불리우는 이런 현상은,

혹시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관련해서 어떤 것을 시사해주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요즘 많이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