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e Responsibility, More Joy?

최근,
회사에서의 일이 확~ 더 많아졌다.

보통 영어로 hot seat에 앉아있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내가 deliver 해야하는 부분이 더 중요해지기도 했고, 더 많아지기도 했다.
to do list에 priority가 밀려있는 일들이 나를 향해 고함을 치고 있는 느낌이다.
2가지 multi-tasking mode로 살다가 요즘은 3-4가지 multi-tasking mode로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더 많은 중압감이랄까 이런 상태가 되니…
묘한 기쁨이 있다.

내 significance를 찾는다는 이기적인 기쁨일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동참한다는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건강한 즐거움일까.

내 마음의 상태를 잘 살펴보아야 할 듯 하다.

아파도 가고 싶어

어제의 글에 이어서,
최근 두주 연속 수양회를 다녀오면서 골골~ 아팠다. -.-;

왠만하면 수양회 이후에 아프거나 그러지 않는데,
이번엔 첫번째 수양회 직전에 잠깐 무리를 했던 것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두번째 수양회때에는 거의 약기운에 찬양하고 설교하고 그랬는데…
(그래서 찬양 하면서 그렇게 방방 뛸 수 있었나. ㅋㅋ)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어제 내가 글에쓴 그 선배님은 언제나 수양회를 다녀오면 하루 이틀씩 몸져 누웠다고 했다.
gpKOSTA에 한번 다녀오면 회사를 꼭 하루는 빠져야 했었다고.

그러면서도 그분은 gpKOSTA라면 가고싶어 못견뎌하는 모습을 늘 보여 오셨다.

나야… 평소에 늘 체력으로 버티는 족속이니 그런 어려움을 잘 이해하지 못했으나,
이번에 골골하며 수양회를 다녀오고 나니, 그렇게 아프면서도 굳이 가서 학생들과 함께 맨바닥에서 침낭깔고 자고, 몸이 힘든데 밤 늦게까지 학생들 상담해주고 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시는 열정이 더 귀하게 생각되었다.

드러나는, 그러나 가벼운 열정 vs. 드러나지 않는, 그러나 힘있는 열정

최근, 섬기는 어떤 사역과 관련해서 매우 길고 심각한 이메일 글타래들이 진행되고 있다.

늘 그렇듯이 나는 다소 passionate 하게, 그리고 도전적이면서 자극적으로 글을 써서 돌리고 있는데…
선배중 한분이 아주 점잖은(?) tone으로 성급하게 움직이지 말것을 advice 해주셨다.

그분은…
나처럼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것을 좋아하시지도 않고,
참 많이 따지시고 (^^), 논리적이시고, 흥분도 쉽게 안하시는 것 같아 보인다.
말하자면 열정이나 뜨거운 가슴보다는, 차가운 이성과 판단이 지배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이쯤되면 알만한 사람은 알수도 있겠다. ㅋㅋ 슈쥬의 멤버중 문제를 일으킨 멤버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의 이름에 한글자만 중간에 끼워 넣으면 되는 바로 그분. 물론 스타일이나 이미지는 아~주~ 다르지만. ㅎㅎ)

그런데,
그분의 말에는 늘 설득력이 있고, 한참 곱씹어 보면 마치 사골 국물과 같이 우러나는 힘이 있음을 경험한다.
가볍게 결정하지 않고 감정을 절제할줄 아신다.

어쩌면 나와같이 드러나는 열정은 그 깊이가 shallow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그 선배와 같이 드러나지 않는 열정은 그 깊이가 deep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KCF 리더 수양회

KCF 리더 수양회가 끝났다.
졸지에 기타 둘러메고 찬양인도를 하고, 그리고 나서 설교하고…
뭐 어줍잖게 했는데…

밤 2시가 되도록 추위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
기도 속에서 소망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등이 내겐 소중한 것들이었다.

나름대로 말씀을 준비하면서 생각한 것들을 다 나눌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웠지만,
말로 하지 말고 섬김으로 하라는 것이 요즘 내게 주어지는 theme인 듯 하여….
굳이 그것들을 말로 표현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다행인 듯 하다.
수련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비몽사몽간에…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의 타래들은, 수련회 자체보다도 훨씬 내게 더 값진 것인 것 같이 느껴진다.

섬김을 ‘보여주겠다’고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genuine하게 정말 섬기는 일이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인 것 같다.

problem solver가 되려는 사람들은 많으나 problem을 embrace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고,
경기에서 훈수를 두려는 사람은 많으나, 플레이어가 되려는 사람은 많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경험으로 다른이들에게 도움이 되겠다고 달려드는 사람은 많으나, 다른이들의 미숙함과 부족함으로부터도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제자가 되는 것은…
exciting한 일이다!
(심지어는 내게 영혼의 가시가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지난 KOSTA 간사 수양회 설교

지난 KOSTA 간사 수양회 설교는,
나름대로 내가 준비해 간 것이 있었다.

오천명 먹이신 사건과 사천명 먹이신 사건 (마가복음 본문들)을 중심으로 제자들을 양육하시는 예수님의 관심에 주목하고, 우리 간사들도 결국 functional body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로서 존재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이야기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출발하는 날 아침 부터 왠지 그 말씀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 이유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차를 타고 요세미티로 향하던 중에도 그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고민하면서 가고 있었다.
첫날 밤을 지내고, 둘째날 아침 QT sharing을 하면서 간사님들의 생각을 들어볼 기회가 좀 있었다. 그리고 또 둘째날 몇명의 간사님들과 등산을 하면서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대화들을 나누면서, 하나님께서 다른 message를 하기 원하실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다음날 아침, 한준이의 아침 설교를 들으면서 결국 설교를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에 쐐기를 박게 되었다.
한준이의 설교의 모멘텀을 어떻게든 이어야 겠다는 부담감이 몹시 심하게 밀려 들어 왔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시간은 반나절도 되지 않았다. -.-;
그제서야 부랴부랴 요한복음 17장 본문 묵상 다시 하고, 놀면서도 머리 속으로 plot 짜고… 결국 마지막 조활동으로 요세미티 밸리 돌아보는 것은 join 하지 못한 채… 막판 초치기를 해야 했다.

그렇게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서 이야기한 것이 잘한 것이었을까.
하나님께서는 정말 그렇게 인도하셔서 방향을 바꾸게 한 것이었을까.

개인적으로,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따르는 훈련과 연습을 해보려고 하는 와중에…
혹시 덜 익힌 밥을 간사님들에게 드리게 된 것은 아닌가… 고민이 되었다.

다들 피곤하던 시간인데도 다들 졸지 않고, 어려운 개념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설교를 들어준 간사님들이 참 고마웠다.

세사람만…

주변 사람들에게 하도 많이 이야기해서,
이제는 사람들이 질린다고 할만한 이야기…

내 평생,
적어도 나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 3사람을 키워낼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 (허술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시대가 지날 수록 그 수준이 더 높아져 가야 하므로, 적어도 나보다 훌륭한 사람 한 사람을 길러내야 최소한 이 땅에 사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고,

그러나, 본전치기만 할 수는 없으므로 적어도 한명은 더 있어야 ‘남는 장사’를 한 셈이므로 한 사람이 더 필요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세상의 사람이 많아지므로, 그 인구 증가를 compensate한다는 차원에서 또 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 사람들을 길러내고 싶은 것이…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간절한 소망이다.

나 자신의 수준이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shallow한데,
그런 내 수준으로부터 유익을 얻는 수준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만을 오래 만나다 보면…
정말 내가 꿈꾸는 그런 3사람을 내게 하나님께서 정말 주시긴 하실까… 그런 회의가 들기도 한다.

이미 내 수준을 뛰어넘는 후배들이 물론 많이 있지만,
내가 그런 사람을 키워내고 길러내고 싶다는 매우 이기적인 욕심이라고나 할까.

이미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내가 통찰이 부족하여 보고있지 못할수도 있겠고,
내가 욕심은 그렇게 가져보지만 그렇게 사람을 키워낼만한 깜냥이 되지 않는 사람일수도 있겠으나…

세월이 지날수록,
그 목마름은 커져만 간다.

지난 주말…

지난 주말은,

바쁘고, 기쁘고, 감사하고, 반갑고, 즐겁고, 피곤하고, 벅차고, 마음이 무거워 지고, 부담이 스럽고, 사랑이 느껴지고, 맛있고, 목마르고, 눈물이 나고, 혼란스럽고, 희망적이고, 비관적이고, 따뜻하고…

위의 느낌을 한꺼번에, 아주 복합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그런 주말이었다.

내가 가슴 벅차도록 사랑하는 이들과,
눈이 빨개지도록 놀고, 이야기하고, 산에 오르고, 먹고, 울고, 기도하고, 고민했던…

설레는 주말…

이제 내일부터 KOSTA 간사 수양회가 시작된다.

이번 수양회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15년 가까이 내게 익숙해져온 KOSTA를,
문득 낮설게 바라보는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건강한 섬김도, 그리스도를 닮은 낮아짐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순수함도 담보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이다.

그저 우리 ‘간사들’이라는 사람들을 마음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뛰며 눈물이 핑 도는데…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내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