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결심

오늘은 설날이다.
뭐 여기 미국에서야, 설날 이야기를 한국 신문에서나 읽고 넘어가기에, 별로 기분도 나지도 않고, 내지도 않지만…

연초가 되면, 보통 blog에 거창하게,
새해의 결심들을 써놓곤 했었는데…

올해에는 다소 조용하게 그냥 몇가지 시도들을 하고 있다.
새해가 된지 거의 한달이 다 되어서, 뭔가 좀 퇴색된 감이 있지만…
그래도 설날 기념으로 대충 정리해본다.

1. 성경을 가슴으로 읽는 시간을 갖기
2. 개인 성경연구 시간, 성경 통독 시간을 늘이기
3. 다른 사람을 판단/정죄하려는 마음이 들때마다 ‘은혜’를 묵상하기
4. Short-tempered 여서 감정 조절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을 ‘passion’으로 포장하지 않기
5. 회사에서 내 시간을 희생해서 다른이들을 돕기
6. 잡담(!!!)을 생활화 하기 (특히 아내, 민우와)
7. 가능하면 수면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 적어도 6시간 반 이상 자기
8.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덜 드러내기
9. 너무 오지랖 넓게 살지 말기 -.-; (마치 나 혼자서 우주의 평화를 지키려는 듯 살지 말기)
10. 좋은 사람이 되기

내 탓이오

한국에서 내가 대학때, (대학원 때였던가?)
천주교에서 ‘내 탓이오’ 라는 스티커를 배포했던 적이 있었다.

내 생각이 어린 때여서,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스티커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가슴이 터지도록 답답한 것들을 많이 본다.
정치가 답답하고, 교육이 답답하고, 청소년이 답답하고, 무엇보다 교회가 답답하다.

(나를 포함해서)
그것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상당히 cool 해 보인다.

가령, 무상급식의 예를 들어보자.
가난한 어린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야한다는 논리,
무상급식이 사람을 spoil 시키는 복지를 만들어낸다는 논리 등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것이 이렇게 큰 이슈가 되었는가?
이제는 ‘선진국’ 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한국에서 왜 식사를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에 대한 것이 이토록 뜨거운 이슈가 되어야 하는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우리가… 내가… 우리 사회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던가.
양육강식을 정당하게 여기고, 약자를 배려할줄 모르고, 다른사람에게 손해를 입히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정당화 하며.. 심지어는 교회도, 그리스도인들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우리 사회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 논리와 생각이 모두 고스란히… ‘내 안에’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청소년들이 자살을 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가 청소년들을 그렇게 키웠다. 공부만 잘해, 친구들 배려할 필요 없어, 좋은대학만 가… 라고 우리가, 내가, 우리 사회가, 심지어는 교회도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가르쳤으니… 우리가 우리 사회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 논리와 생각이 모두 고스란히… ‘내 안에’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 사회의 리더로 여겨지는 이들의 integrity 문제,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어쩌면, 바로 내 안에 있는 그 논리와 생각을 발견해내는 일이 매우 중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웃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단순히 이웃의 문제가 아니고,
그 이웃과 엮여져 있는 우리의 문제이고, 나의 문제이다.
그 이웃을 고통으로 밀어넣고 있는 그 논리와 생각이 고스란히 내 안에 있다.

이웃, 또 다른 우리.

Generosity

헌금을 하거나, 주변에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가진 것을 나누는 것, 좋은 동기로 일하는 단체들을 돕는 일등은 참 좋은 일이다. ^^

Generosity 라고 표현하는 것을 어떻게 한국어로 바꾸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단순이 내가 더 ‘높은’ 혹은 ‘가진’ 입장이 되어서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돕는것만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가끔…
내가 생각하기에, 나보다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유익이 가도록 내가 경제적 희생을 감수했는데,
알고보니 그 사람이 나보다 훨씬 더 ‘즐기며’ 사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상한다.

우리는 어렵게 절약해서, 5-6불 짜리 점심 사먹는것도 아까워서 도시락 꼭꼭 싸가면서… 그렇게 아껴서 경제적으로 나누었는데, 그 사람은 우리가 일년에 한두번 겨우 가는 것을 생각해볼만한 고급 음식점에서 늘 풍요로운 식사를 즐긴다던가…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차를 탄다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규모있게 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만일 내 딸이 후에 분가를 해서 나가서 사는데,
내가 점심 사먹지 않고 샌드위치 도시락 싸먹으며 절약한 돈으로 그 아이가 가끔 한번씩 좋은 음식점에서 식사한다면… 그것도 그렇게 속이 쓰릴까?

물론,
책임감없이 사는 사람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는 것은 그 사람을 망치는 일이긴 하지만,
너무 쉽게 단순비교를 하면서 나보다 어떤 면에서 더 풍요를 누리는 것 같아 보이는 모습 하나 하나에 속쓰려 하는 것은,
여전히 내가 더 높은/더 가진 위치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돕는 구도로만 generosity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이웃, 또 다른 우리.

 

Moneyball

최근, Moneyball 이라는 책을 끝냈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Major League Baseball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돈으로 결과를 사는… 매우 공정하지 못한 게임을 하면서, 그 속에서 적은 돈으로, 더 smart하게 경쟁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다.

summary를 하자면,
관행, 감, 돈으로 운영되고 있던 mlb에 과학적이고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방법을 도입해서 경쟁자들을 ‘out-smart’ 한다는 내용이다.

야구 선수를 평가하고 팀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통계자료와, 그 통계자료의 파생 변수들 (derivatives)를 사용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최적화를 하는 것이다.

이런 모델을, 지금 내가 연관을 맺고 있는 여러 영역 가운데 적용을 한다면 어떤 영역일까?
여전히,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방법보다는, 관행, 감, 혹은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아직 시대에 뒤떨어지게 하고 있는 영역은?

아마도…
교회, KOSTA 가 아닐까 싶다. 

Long Weekend

반가운 얼굴들을 참 많이 보았다!
소중한 사람들이기에 정말 반갑고 좋았다.
함께 모여있는 것을 보는 것이 기쁨이었다.

그중 어떤 사람들은, 반갑게 얼굴보며 인사를 했지만, 그 사람이 가지고 있을 무거운 마음을 생각하면 그렇게 마음 깊이 밝게 웃을수 많은 없었다.
기도시간에, 그 사람들을 생각하며 많이 울었다.
깨어진 세상 속에서, 그 깨어진 세상을 온몸으로 살고 있는 이들이… 그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기를… 

김도현 교수님이 따로 할일이 없으신 바람에,
나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따로 얻게된 보너스였다.
New Perspective, Emerging Church, KOSTA, 젊은이, 미국내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 한국교회, 포스트모더니즘 등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주일 오후-저녁, 우리 집에는 어림잡아 총 25-30명 정도의 손님이 다녀갔다.
그저 한 10명 남짓 오려나 생각하고 한가하고 할 일 없는 사람들 오라고 했더니…
정말 많이 왔다!
우리 집에서 다 함께 떡국을 끓여먹고, 둘러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아… 한국교회와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의 다음 세대의 소망이 바로 우리 집을 가득 채우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마음이 뜨거워 졌다.

오진이가 오랜만에 우리집에 와서 하루 묵고 갔다.
별 얘기 나눈건 없었지만, 오랜만에 동생과 함께 저녁먹었다는것… 그리고 내 동생이 우리 집에서 하루 잤다는것이 내 마음을 풍성하게 했다.

내 마음 속에도,
지난 며칠동안 생긴 무거운 기도의 내용이 있었는데…
소망을 가득히 바라보다보니,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소망을 되새기게 되었다.

아내와 민우는,
하루저녁, Half-Moon Bay에 가서 호텔에서 묵었다. ^^
둘다 시험준비와 project관련해서 할 것이 많아, 노는 시간을 뺄 수 없는 상황이어서,
우리 집에서 북적 거리는 것을 피해 피신을 갔던 것이었다.
둘다 호텔방에 처박혀서 내내 공부/숙제만 했다고 한다.
(불쌍한… 쩝…)

월요일 오후, 나는 내내 해롱해롱 하면서 원기를 회복하려 애썼으나,
낮잠 한번 푹 자는 것으로 금새 회복되지 않는 것을 경험하며…
체력관리에 더 많이 힘을 써야 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했다. ㅋㅋ

KOSTA 간사 모임

이번주말에는,
우리 지역에서 KOSTA ‘전국 간사 모임’을 갖는다. ^^

얼마전에,
이번 간사모임에서 기도를 맡은 한 형제가…
혹시 함께 기도했으면 하는것이 있느냐고 이메일을 해왔다.

하루정도 깊이 고민하면서…
요즘 내가 KOSTA와 간사들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내용들을 짧게 적어서 보내주었다.
그런데… 그 기도의 내용을 적어내려가면서 (엄밀하게는 타이핑해가면서)…
어찌나 내 마음이 뜨거워지던지!

전국 간사모임이라고 해봐야 겨우 10명 이내 모일까 말까했던 시절로부터 시작해서,
벌써 십몇년째 간사모임에 참석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끼워주는 후배들이 고맙다. ㅎㅎ)

어제부터 하나 둘씩 모여들고 있는 간사들의 동정을 facebook에서 읽으면서 슬슬 마음이 달아오른다. ^^

우리 사랑스러운 간사들을 보는 것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질리질 않는다. ^^ 

Do I Believe in Tebow?

Denver Broncos의 quarterback인 Tim Tebow에 대해서 여러가지 말이 많다.
NFL (미국 미식축구 리그)에 친숙하지 않는 분들을 위해 Tebow 열풍을 대충 정리하자면 이렇다.

Denver Broncos에 Tim Tebow라는 쿼더백이 있다. (쿼터백인 미식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이다. ^^)
그런데 Tebow는, 순전히 기록상으로는 그렇게 훌륭한 선수가 아니다. Quarterback Rating 이라는 것으로 점수를 매기는데, Tom Brady와 같은 최상의 쿼터백들에 비하면 그 급이 많이 떨어진다.
그런데, Tebow는, 팀이 궁지에 몰렸을때, 어떻게 이상하게 꼭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곤 한다. 이게 한두번이 아니고 여러번 계속 반복되니… Tebow의 마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Tebow가 아주 대놓고 신앙고백을 하는 크리스찬이라는 사실이다.
자기 얼굴에다 성경구절을 크게 써놓고 경기를 하질 않나, NFL 경기장에서 공개적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인터뷰 할때도 예수님 때문에 이겼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게 꽤 거슬리는 것 같다. 한 신문에서 다음과 같은 만화를 본적도 있다.
 
 
지난주말에, Tim Tebow가 이끄는 Denver Broncos가, 훨씬 더 잘하는 팀이라고 생각되었던 Pittsburgh Steelers 를 연장전에서 극적으로 이기는 이변을 연출했다.
당연히 인터넷에서는 난리가 났다.

Tim Tebow를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공개적으로 신앙고백을 하는것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다른이들에게 공격적인 형태로 하기도 하지만, Tebow는 그런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NFL 경기에서의 승리를 신앙과 연결시켜서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내 마음을 꽤 많이 불편하게 한다.
그래서, 다음 경기에서는 이런 장면을 보고 싶다.

Tim Tebow가 이끄는 Denver Broncos가, 아주 박빙의 경기를 펼치며 잘 싸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깝게 패했으면 좋겠다.
그리고나서… Tebow가,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을  보고 싶다.
인터뷰의 기회가 왔을때, 자신은 비록 경기는 졌지만 열심히 뛰었다고, 최선을 다했지만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해 팬들에게 미안하다고. 비록 이기진 못했지만 건강하고 재미있는 경기를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내 신앙은 경기의 승리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싶다.

승리주의라는 독약에 도취되어 있는 미국 복음주의자들에게….
승리주의를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한번쯤 보고 싶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나는 정말 Tim Tebow의 fan이 될 것 같다.

아, 다음 경기에 Broncos가 졌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다음 경기 상대가… 내가 응원하는 팀인 Patriots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ㅎㅎ

내가, 나꼼수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유

이전 글에서, 
나꼼수 편을 드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투로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은 내가 나꼼수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짧게 써보려한다.
(엄격하게 말하면 나꼼수 자체가 불편하다기 보다는, 나꼼수에 열광하고 올인하는 나꼼수 현상에 불편한 것이다.)

우선, 나는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으나, 전반적으로는 진보적인 입장을 가지는 것으로 생각할수도 있음을 밝힌다. (이 복잡한 formula를 어찌 이해해야 할지… 쩝.)
하여간, 나는 미국 상황에서는 거의 80-90% 민주당 편이고, 한국 상황에서는, 99% 반 한나라당이다. ㅎㅎ

그런 내가 나꼼수에 대해서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것이다.

결국 진보진영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궁극적으로 만들고자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하는 것에 대한 담론이 아닌,
어떻게 진보진영이 집권할 것인지… 그것도 상당히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다루고 있는데,
그것이 정치적인 대화를 주도하고 있다.

정말 한국의 진보진영이 꿈꾸는 세상은 무엇인지..
FTA를 그렇게 반대했는데, 그것은 그 꿈꾸는 세상을 어떻게 가로막고 있기 때문인지,
이명박 정권이 꿈꾸는 세상과는 어떻게 다른지…
하는 그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물론, 그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정권을 찾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겠지만…
그리고 정권을 차지하기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정당과 정파의 목표이므로 그렇게 해야겠지만…
여전히 가치가 실종된 채 방법론만을 다루고 있는 상황이… 나는 답답하다.
뭐 그걸 꼭 나꼼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니다. 그 나꼼수에 열광하여 본질을 놓치고 있는 군중들을 원망한다고나 해야 할까… 

바쁘기 때문에 게을러진다.

나이가 들고, 할 일이 많아지고, 더 바빠지다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 보다, 내가 해야하는 일이 늘 더 많아지게 된다.

물론, 해가 갈수록  삶의 효율성이나 내가 일을 하는 능력, 지식 등이 향상되므로 정해진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의 양은 늘어난다.
박사과정 시절, 정말 시간이 없어서 허덕거리며 세상에서 내가 제일 바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참 빈 수레가 요란한 것이었다. ^^

그런데,
할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속도보다, 해야하는 일이 많아지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 -.-;
그래서, 하지 못하고 포기하게되는 일이 더 많아지는데… 

그러다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 혹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위주로 더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점점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더 못하게 되고, 그것을 계발할 기회는 점점 잃어버리게 된다.
자기 계발, 성장, 성숙의 중요한 부분은, 하기 싫거나 잘 하지 못하는 일을 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일텐데…

점점 나이가 들수록, 바쁘기 때문에 게을러진다. 

하나님의 사랑

지난주 교회 예배에서 들었던 말.

“하나님께서는, 내 몸의 질병을 사용하셔서, 내가 그분에게 관심을 갖도록 해 주셨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정말 “전쟁과 같은 사랑 “이 아니겠는가.
깨어진 세상 속에서, 깨어진 사람들에게 쏟으시는 그분의 사랑.

일차원적으로 그 사랑을 이해하고 고통의 문제를 보면, 그것은 파라독스 혹은 문제거리이지만,
다차원적으로 그 사랑을 이해하고 고통의 문제를 보면, 그것은 신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