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신앙

나는 참 겸손하지 못하다.

뭐 내가 부족한게 그거 하나는 아니겠지만서두,

특히 겸손에 관한 한, 나는 참 겸손할 수 밖에 없다. ^^

도대체 왜 이렇게 나는 겸손이 어려운걸까…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왔던 지난 25년간의 주된 숙제였다.

지난 주말,

교회의 visioning 모임(?)을 했다.

교회가 무슨 생각과 소망을 가져야 하겠느냐 하는 것에 대한 대화의 모임이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눈 중,

특히 나는 함께 모인 사람들이 ‘겸손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3주전, 목사님의 영어 설교(!)에서도 나왔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가만히 생각해보면,

‘복음주의’라는 단어가주는 여러가지 ‘이미지’ 가운데,

‘겸손함’은 포함되지 못하는 것 같다.

미디어에서 그냥 떠들어대는 ‘복음주의’가 아니라,

나름대로 학문적으로 잘 define된, 정말 제대로된 ‘복음주의’를 떠올려도 역시 그렇다.

겸손한 복음주의라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는 기존에 복음주의가 가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겸손하지 못한 내게는,

여려모로 머리와 가슴 모두를 무겁게 만드는 생각들이다.

Not Being Excellent (5)

지난주 였던가,

아마 그 전 주 였던 것 같다.

한참 열심히 일하면서, 스트레스 팍팍 받고,

마치 내가 우리 팀 전체를 구원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문득 자각하게 되었다.

뭐,

일이 워낙 많으니…

바쁘게 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와중에 하나님께 결과를 의탁하고, 

평안함을 유지하는 것이 참 중요할텐데,

도무지 내 마음에 평안이 없었다.


정말 쫓겨서 살고 있었다.


내가 내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하나님을 잘 신뢰하지 못하나봐”


내 아내는,

조용히 내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40대 중반에,

‘성장통’이라는 표현을 하는게 영 이상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해서 자라나는 존재라는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생각할 때,

지금 내가 이렇게 겪고 있는 것도 일종의 ‘성장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런 과정을 거쳐가면서,

좀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면 좋으련만…

Not Being Excellent (4)

탁월함 중독에 걸리고 나면,

모든 것을 ‘효율’로 판단하게 된다.
효율에 거의 강박증이 있을 정도로.
탁월함 = 효율적 = 선
열등함 = 비효율적 = 악
의 등식을 부지불식간에 갖게 된다.
꼭 선,악의 개념까지 가지 않더라도,
어떤 경우에는, 효율성을 추구해야할때가 물론 있다.
그런데,
그런 효율성 강박증을 조금은 풀어도 될만한 상황에서도,
그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라던가,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낼때에도…
그 시간이 효율적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렇게 효율적이지 못한 사람을 무시하거나 불편해하다 못해… 
‘악하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악한’ 것으로 여겨진 사람은 쉽게 마음 속에서 용서를 하지 못하고…
(왜냐하면, 탁월함 중독, 효율성 강박이라는 frame을 버리지 않은채 judge를 하는 것이므로)
아, 세상엔 왜 이렇게 악당이 많지?
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수퍼히어로가 된듯이 행동하려고 하기도 한다.
이 모두…
내게서 자주 발견되었던, 그리고 지금도 발견되고 있는 모습이다.

Grounded

요 몇주 무리를 많이 한데다,

지난 주말 결정적으로 엄청 무리를 하고 나니.

허걱.

감기몸살에 걸렸다.

오랜만에, 나이퀼 먹고 잤더니만,

허걱,

눈을 뜨고 나서도 해롱해롱하다.

잠을 많이 자고, 쉬고나면 그래도 어느정도 functional 할 줄 알았는데,

허걱,

여전히 몸이 무겁다.

나이가 들긴 든 모양이다. ^^

사람에 담겨져 있는 history

지난 주말에,

KOSTA 전현직 총무간사들이 모두 덴버의 황간사님 댁에 모였다.

그리고, KOSTA visioning 작업에 관여하고 있는 김중안 목사님, 오진이도 함께 했다.

indy KOSTA에 헌신해서 오래 자리를 지켜오신 안상현 목사님도 오셨다.

황간사님 댁에서,

아주 분에 넘치는 대접을 해 주셨다.

90년대 중반부터 지난 20년 가까운 시간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20대, 30대부터 섬기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40대, 50대가 되어버린 분들을 보면서,

아, 이들의 삶의 여정에는 ‘역사(history)’가 담겨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 감사했다.

세월을 지내면서, 변질되지 않은 순수함과 겸손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계속 볼 수 있다는 것이.

KOSTA 관련된 모임이 늘 그랬듯이,

밤을 꼴닥 새우고, 나는 새벽 비행기를 타고 다시 집으로 복귀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웃고,

섬기는 세상과 사람들을 생각하며 울고,

함께 섬기는 사람들을 통해 끊임없이 도전과 격려를 받는 것이,

이 땅에서 나그네된 (diaspora) 백성의 삶의 패턴인 듯 하다.

다른 이들은 모를거다…

토요일 밤에서 주일로 넘어오는 밤을 꼬박 지새웠다.

잠깐 비행기 안에서 두어시간 눈을 붙이고, SFO에 도착했다.

목사님과 함께 아침에 커피와 함께 pastry로 아침을 먹었다.

정말 무진장 피곤했다. ㅎㅎ

이제는 이렇게 하는거 정말 무리구나 싶었다.

그 와중에,

목사님과… 우리가 사랑하는 그래서 많이 걱정하고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부터 1시간 후,

절대 수면부족의 목사님과,

절대 수면부족의 나는,

함께 예배의 자리에 앉았다.

피곤해서, 몸이 막 쑤셨다.

이대로 설교를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

설교를 듣는동안, 그러나, 나는 전혀 졸 수 없었다.

설교가 얼마나 탁월했는지 하는 ‘평가’는 할 수 없었다.

설교가 결코 ‘객관화’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설교 안에, 우리가 위해서 많이 걱정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향한 간절한 소망과 기대가 담겨 있었다.

설교를 마칠 무렵,

나는 내가 울고 있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무리 기도를 하는 설교자의 음성이 떨렸다.

다른 이들은 모를거다.

내가 왜 그렇게 눈물을 그칠 수 없었는지.

다른 이들은 모를거다.

목사님의 음성이 왜 살짝 흔들렸는지.

공동체적 설교에서만,

공동체적 예배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