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 In The Shell

Thanksgiving 휴가 전에 민우가 매우 ‘열받아서’ 이야기한 내용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Ghost in the shell 이라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holywood에서 영화로 만들고 있는데 그 주인공을 Starlet Johansson이 맡는다는 것이었다.
Ghost in the shell의 주인공은 일본인인데 그걸 금발의 백인이 하면 되느냐고, holywood에서 Asian의 representation이 너무 없다면서 막 열받아서 이야기했다.
아마 자기의 다른 Asian 친구들이 다들 그렇게 많이 열받은 모양이었다.

나는 Ghost in the shell 이라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본적이 없었지만, 민우와 이야기한 Scarlet Johansson casting과 관련된 논의를 인터넷에서 잠깐 본적이 있어서 그 애니메이션이 과연 뭐길래… 하고 많이 궁금해졌다.
인터넷으로 뒤져보니 이게 아주 대단한 작품인 것 같았다. 1995년에 나왔는데도 대단히 획기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고, 철학적인 고민을 할만한 주제들도 담았고, 과학기술의 이슈, 진화와 생명 등등 다양한 내용을 cover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거기에서 나오는 중요한 포인트들을 Matrix같은 영화에서 차용해서 사용하기도 했다고.

음…
완전 관심… 관심… 과연 무슨 내용이 어떻게 담겼기에…

그래서,
Thanksgiving break중간에 결국 그걸 한편 인터넷에서 찾아서 보고야 말았다.

완전 대단하다!
내년에 영화가 나오면 영화도 봐야겠다고 마음을 확 먹어버렸다. ^^

나는 20년도 전에 나온 이런 명작을 여태껏 안보고 뭐했단 말인가….

얼마나 프로인지 볼까

직장에서 어떤 중요하게 생각하는 project를 위해서 중요한 사람과 대화를 하려고 할때,
조금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대화 상대방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까 하는 것에 따라서 다양한 대응방법을 미리 마련한다.

또,
내가 중요한 presentation을 해서 사람들을 설득시켜야할때,
예상되는 중요한 반응이나 질문들을 생각하고 그것에 효과적으로 미리 대응하는 방법을 미리 생각해둔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쭈루룩~ 뱉어버리고 어떻게 되는지 보자… 이건 직장생활 1년차들이라면 허용되는 일이지만…
약간이라도 ‘프로’의 세계에서 뛰어본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제 박근혜의 담화를 누가 써 줬는지는 모르지만 꽤 영리한 한수였다.
어쨌든 아주 코너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한숨 돌리게 만드는 수였다.

이런 악하고 꾀 많은 집단과 정치적으로 상대하는 ‘프로’라면,
당연히 이런 반응에 대해서 미리 생각하고 있었어야 했고,
이런 반응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contingency plan도 있어야 한다.

그런 정도의 정치력도 없다면, 사실 수권능력 자체가 의심된다고 할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그런 정도의 정치력이 없다면 조중동이나 친일독재당의 이런 식의 변칙공격에 계속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노무현 정권을 보면 결국 그런 정치력의 부재가 치명적이 아니었던가.

야당이 정말 프로인지 한번 지켜볼 일이다.

그리고,
국민은 정말 프로인지 한번 지켜볼 일이다.

히틀러를 겪은 독일

예전에 독일에 출장을 갔을때,
오전에 실험을 하고 거기 엔지니어들과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뜬금없이 이런걸 물어봤었다.
“독일 문화에서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터부(taboo)는 뭐가 있습니까?”

뭐 대단히 깊이있는 질문은 아니었고, 그냥 점심 먹으면서 하는 가벼운 대화 수준이었다.

그랬는데…
그중 한 사람이 갑자기 얼굴이 굳어지면서
“히틀러입니다. 히틀러를 찬양하거나 히틀러를 가지고 독일을 희화화 하는 것입니다.”

음…
갑자기 가벼운 대화에서 확~ 대화가 무거워졌다.

그후에 알게된 것은,
대부분의 정상적인 독일 사람들은,
히틀러의 존재를 자신의 치욕/수치로 여긴다.
그래서 그걸 들추어내면 자신의 수치를 들추어내는 것이므로 그게 웃을일이 아닌 것이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어떤 트럼프 지지자들이 Heil Trump 라고 외치며 나찌식의 경례를 하는 동영상을 보았다.
완전 미친새끼들이다.
수치가 무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몇년전 한국에서는,
18년동안 인권을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한 독재자를 그리워하며
그 딸을 대통령으로 당선 시켰다.
완전 미친짓이다.
수치가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결국 역사가 바로 서려면,
공주마마 한 사람 쫓아내고 감옥 보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우리 나라의 수치’로 남을때에야 비로소 해결된다.
이명박이나 박근혜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을 정도의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수치로 인정할때에야 비로소 한걸음을 뗄 수 있게 된다.

감사절

1.
한국말로 Thanksgiving day를 ‘추수 감사절’ 이라고 번역을 하지만,
사실 그 단어를 직역하면 그냥 ‘감사절’이라고 해야 맞을 듯 하다.

감사절이라…

2.
사실 감사절을 맞는데 가장 난감한 사람은 별로 감사한 일이 없거나,
현재 많이 어려운 상황 속에 있거나,
깊은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3.
내가 국민학교 1~2학년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뜬금없이 ‘가훈’이 무엇인지를 조사했었다.
나는 어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어머니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그때 범사가 뭔지도 몰랐고, 뭐 그냥 좋은 뜻이려니…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후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건 어머니께서 급하게(?) 지으신것이 분명했다. ^^
왜냐하면 어머니께서 깊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계시긴 했지만 아버지는 기독교인이 아니셨고, 집안이 대대로 기독교와는 거리가 꽤 멀었기 때문에 가훈이 ‘범사에 감사하라’일것 같지는 않다. ㅎㅎ

4.
그런데 어쨌든 그게 졸지에 우리집의 가훈이 되었다.
고등학교때 대학교때.. 나는 그 가훈이 그리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좀 더 진취적이고 뭔가 행동강령을 이야기해주는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기독교적 클리쉐를 사용한 것 같아 뭐 별로 뽀대가 안난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내가 실제로 기독교 신앙을 내것으로 받아들인 후에도 그랬다.

5.
점점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신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나는 감사라는게 과연 무엇일까.
감사는 무엇에 근거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지금도 감사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내가 생각한 진정한 감사는 상황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박국에 나오는 것 같이,
무화과 나무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고 무리에 양떼가 없고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어도…
‘여호와를 인해’ 감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감사의 핵심이자 근원이자 포인트라는 것을 더 많이 깨닫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건 그 여호와께서 내 일을 잘 풀어주시기 때문에 감사한게 아니다.
그냥 여호와로 인해서 감사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이 감사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되신다는 것이 감사한 것이고,
그 하나님의 나의,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이 감사한 것이다.

6.
인터넷에서 최순실이 강남의 대형교회에 출석하면서 감사헌금을 하고 거기에 감사한 이유를 적은 내용이 주보에 실린 것을 보았다.
정말 쪽팔려서 죽을뻔 했다.

7.
그.런.데.
사실 대부분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접하는 감사가 사실 최순실의 감사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대부분 경험하고 아는 여호와가 최순실의 여호와와 다르지 않다.
소위 ‘기도제목’이라는 것을 나누면, 다들 최순실의 기도를 나누고,
서로 최순실의 기도를 해주고,
그 최순실의 기도가 응답된 것을 감사한다.
정말 쪽팔려 죽을 일이다.

8.
감사절에…
세상이 뒤숭숭한 이 금년의 감사절에…
과연 여호와로 인해 감사한 것이 무엇인가를 좀 잠잠히 한두시간만이라도 마음에 담아보고자 한다.
혹시 허락된다면 조용하게 혼자서 낙엽을 밟으며 그 감사를 곱씹어보고자 한다.

(다음 월요일까지 블로그를 쉽니다. 모두들 Happy Thanksgiving!)

잠깐 마음이 흔들리다

지난주 이틀동안 산호세에서 있는 학회에 다녀왔다.
나는 가서 뭐 논문 발표하는걸 듣거나 그럴 생각은 없었고, 가서 함께 일할 수 있는 회사들을 좀 찾아보기 위해서 갔었다.

그런데 거기 가서 보니, 내 옛 직장동료들이 많이 와 있었다. (hp 시절의 동료들)
대부분 흩어져서 있지만, 아직도 가끔씩 서로 연락도 하고 가끔 만나기도 하는 가까운 친구들이다.

그중,
내 보스였던 사람이 Amazon의 lab 126라는 Amazon의 hardware 연구소에 가 있다. 그리고 그 사람밑에 내 옛 직장동료가 있다.
말하자면 그렇게 둘은 옛날에 함께 일했던 것 처럼 보스와 부하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셈이다.

거기서 그 옛 동료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친구가 나보고 자기쪽에 와서 일하자고 꼬신다. -.-;
옛날 처럼 함께 같이 일해보자고.
얘기를 들어보니 하는 일도 꽤 재미있을 것 같이 들리기도 한다.
게다가 함께 죽이 잘 맞았던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된다는 장점도 있고.

사실 지금 내가 있는 이 직장에서 나는 비교적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 정말 잠깐 마음이 흔들렸었다.

이 직장에 온지 이제 갓 1년이 되었는데 지금 직장을 옮길 가능성이 별로 없기는 하지만 서두…

재미있는 경험

지난달, 갑자기 영어가 잘 안되었다.
그래도 회사에서 이런 저런 일로 토론할때 영어 때문에 내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못하는 일은 별로 없는 편인데…
이상하게 지난달에는 영어가 잘 안되었다.
말 하려고 하면 단어가 생각이 안나기도 하고, 문법이 틀리는 말을 자꾸만 하고… everybody are happy 뭐 이런 식으로.

아니 내가 왜 이러지.
갑자기 왜 영어가 안되지?
이상했다.

그러던중 내가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내가 지난 여름부터 몇달동안 KOSTA 집회에서 녹음된 강의와 설교들을 많이 들었고, 운전하거나 운동하면서 듣는 podcast등도 한국어로된 것들을 많이 들었다. (특히 최근에 발견한 어떤 강의와 podcast 몇개가 재미있어서 그걸 진짜 많이 들었다. 종교와 철학에 대한 살짝 깊은 내용의 강의들이 좀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이렇게 한국어로 된 것을 계속해서 집중적으로 많이 들었던 것은 미국에 오기 전이었던 것 같다.
혹시 그래서 내가 갑자기 영어가 이렇게 안되는 건가?

해서,
운전하거나 운동할때, 집에서 시간이 남을때 듣는 강의자료나 podcast 등등을 대폭 영어로 바꾸었다.

그랬더니만…
그렇게한지 두주정도 지나니 영어가 다시 된다!
허걱… 이것 참 신기하네.

철학이나 종교등에 대한 살짝 심도있는 논리전개와 토론등등을 듣다보니,
아무래도 내가 생각을 더 한국어로 많이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아마 내가 주로 많이 보고 들었던 것이 한국의 음악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이었다면 어땠을까?

대신 이렇게 되니,
한국 회사와 conference call을 할때에도 핵심 단어들은 주로 영어로 이야기하게 되고, 한국어 문장을 하는데도 완전 영어문장 번역체로 많이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나는 내 스스로를 bilingaual이라고 당연히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실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나를 ‘미국에서 자랐다’고 여기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런걸보면 그 사람들이 느끼기에 내 영어가 아주 많이 서툴지는 않은 수준은 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이렇게 약간 환경을 바꾸어서 금방 내 언어의 ‘mode’가 전환되는 것을 보면, 여전히 내게 영어는 많이 노력해야 유지되는 skill인 듯 하다.

재미있는 경험.

자랑스러운 역사

나는 95년에 미국에 왔다.
대학원으로 유학을 왔는데, 첫 학기에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영어수업을 들었다.
나는 영어를 잘 못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내가 약간 수준이 더 높은 ‘고급’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말도 잘 못하고 맨날 버벅대고… 왕 고생했다.

자신이 모국에서 겪었던 ‘역사적 사건’에 대해 발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내가 대학교 1학년때 한국에서 시민들의 봉기로 인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영어가 잘 안되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표현과 단어를 써가면서 그걸 했다. 정말 떠듬떠듬…

그런데 참 재미있었던 것은 내가 발표했던 내용이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반에는 독재정권이 있는 남미에서 왔거나, 천안문 사태를 몇년전에 치른 중국에서 온 친구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특히 그중 중국에서 온 어떤 친구는 내가 했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나는 정말 영어를 잘 못해서 그 친구와 더 깊이있는 토론등을 하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그 친구나 그 친구가 아는 사람들이 천안문 사태와 연관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실패한 민주항쟁.

나는 그때야 깨달았다.
시민의 힘으로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루어진 일은 세계에서 참 보기 드문 일이라고. 실제로 세계의 많은 지성인들은 그런 일이 자기 나라에서도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그것이 그저 바람으로만 그치고 있다고.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한편 참으로 부끄럽지만… (박근혜-새누리를 찍은 사람들은 회개할진저)
한편으로는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결코 지워지지 않는 민주의식과 자부심을 심어주게되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기대를 해본다.

참으로 부끄럽고, 화나고, 욕 나오고, 답답한 상황이지만,
이것이 어떤 소중한 열매로 맺히도록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

Romans 13 – Stanley Hauerwas

나는, 한국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목소리를 좀 더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 지금 이런 정치적 chaos의 상황에서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그저 어떤 특정 정치세력이 이야기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참담한 상황이다.

공정한 경쟁?

1.
어제 밤 뉴스를 보니 한국에선 수능 시험이 치루어졌다.

2.
내가 대학을 갈때엔 하실 ‘학력고사’라는 걸 봐서 그 한번 시험이 모든걸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학을 했었다.
(아… 그나마 나는 그 학력고사도 보지를 않았지만서두… 쩝.)
필기시험 320점에 체력장 20점 점수를 가지고… 순전히 그것만 비교해서 학생들이 대학을 갔었다.

3.
아주 편협하고도 비정상적인 방식이었다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로 모든 수험생에게 ‘공정하게’ 주어지는 시험의 기회였다.
게다가 우리 때는 학력고사가 꽤 어려워서 만점자가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가… 아니면 한두번 나왔던가… 뭐 그런 수준이었다.
그리고 나때는 사실 과외 금지 시대여서, 돈 많다고 과외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사실 그래서 나는 과외라는걸 한번도 받아본적이 없다. 참 감사한 일이다. ^^)
그러니 어찌보면 더 공정한 경쟁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실제로 언젠가 인터넷에서,
학력고사 (혹은 수능)이 돌이켜보면 내가 일생을 살아오면서 공정하게 경쟁했던 단 한번의 기회였다고 회상하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글을 쓴 사람은 자신이 공부를 잘 못했던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했었다. 비록 자신은 공부를 못해서 학력고사 점수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경쟁은 공정했었다고.

4.
사실 그렇다. 사실 세상을 살다보면 경쟁이 결코 그렇게 공정하지 않다. 많이 억울하기도 하고 많이 불합리하기도 한 것을 견디어가며 경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학력고사로 경쟁하는 것이 다시 돌아가서 추구해야할 모습일까. 공정한 경쟁… 이것이 해결해야하는 모습일까.
흙수저, 금수저 이런 이야기 나오는 것도 결국 경쟁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비판하는 말이므로… 경쟁이 공정하기라도 하면 좋겠다고… 정말 세상이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외치는 소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5.
그러나 또 한편…
그렇게 ‘공정한 경쟁’을 이야기하는 세상은…. 그 자신의 삶의 무게를 그 ‘개인’이 짊어지도록 하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 공정한 경쟁에서 낙오하거나 패배하면 그 쓴 열매 혹은 부담을 그 개인이 져야한다고 이야기하는 세상이다.
글쎄… 나는 그런 세상이 정말 좋은 세상일까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이 많다.

공정한 경쟁은 사회정의의 이슈이므로 잘 갖추고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겠으나,
공정한 경쟁이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보는 것은 약자의 무거움을 그 약자 개인에게 모두 감당하게 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6.
나는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의 짐을 나누어지는 것이 복음이 이야기하는 중요한 가치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Obama가 늘 많이 이야기하는 것 처럼, I am my brother’s keeper, I am my sister’s keeper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름답고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공정한 경쟁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7.
공정한 경쟁의 그림자에 생기는 문제를 사랑이 해결해줄 수 있다.
그러나 공정한 경쟁이 해결해주어야하는 사랑의 그림자는 없다.
그러므로, 더 깊이 추구하고 바래야하는 가치는 공정한 경쟁보다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8.
한국의 고3들..
그리고 지금 미국에서 대입을 치루고 있는 우리 민우를 마음에두고,
문득 이런 공정한 경쟁과 사랑을 생각해본다.

교회 자랑 하나 더

내가 기억하기론 3년만에 처음으로 목사님께서 휴가로 주일을 비우셨다.
당연히 아무일도 없으리라 생각하고 목사님 잘 다녀오세요~ 하고 보내드렸는데,
가시고나서 바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폭탄이 터졌다. ^^

이걸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완전 멘붕 상황.

이럴때 교회에서 함께 우리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런 걸 좀 얘기라도 해봐야 하는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교회의 리더 형제 자매들이 뚝딱뚝딱 하더니만 예배시간에 함께 낭독할 내용을 함께 정리해서 만들고,
기도도 상황에 맞게 오버하지 않으면서도 침착하게 잘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었다.

사실 목사님께 연락을 드리고 상의를 드릴 수도 있었겠지만,
목사님께서 ‘휴가’이시니까, 확실히 쉬시도록 해드렸던게 잘한 일이었지.

그리고,
뭐 하나의 씨앗교회의 ‘흔한’ 평신도 한 사람이 이번주에 설교했다. ^^
지준형제는 늘 그렇듯, 야구모자 쓰고 약간 면도 안한듯한 수염을 한 얼굴로 앞에 서서 설교를 했다.
참… 참…. 참…. 좋은 설교 였다.
http://www.podbbang.com/ch/6931

목사님 안 계실때 너무 교회가 잘 돌아가면 목사님께서 섭섭해하시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긴 했지만
목사님도 이런 교회를 자랑스러워하시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