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하지는 않은 business trip

지금은 31일 새벽 2시가 조금 넘은 시간.

어제 11시에 SFO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안에서 일도 좀 하고 잠도 잤지만, 영화를 볼 시간은 없었다.
잠을 쌈빡하게 좀 잘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한 4시간쯤 잔것 같다.

그런데, 착륙하자마자 전화에서 불이 났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얼른 office에 갔다.
점심도 못먹고 (사실 내리기 전에 뭘 먹어서 딱 배고프지는 않았다.) 사람들 모아서 일좀 하다가…
좀 일찍 마치고 집으로 왔다. 집에 오니 4시가 좀 넘었다.

내가 웬만하면 시차 잘 견디는 편인데…
잠이 쏟아졌다.
잠깐만 눈을 붙여야지…
5시쯤 누웠는데, 눈을 떠보니 지금이다. (잘 잔 셈이다!)

이번 business trip에서는 주말에 부모님과 시간을 좀 보낼 수도 있었고,
일본에서 내가 가보고 싶었던 라면집에도 가 볼 수 있었다.

일만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일만하지 않고 시간 잘 보냈다. ^^

다만 너무 먹어서, 지난 두주 동안 살이 후다닥 쪘다! -.-;

9월중에는 아직 잡혀있는 출장 일정은 없다.
9월 말경에 동부의 어느 청년부 모밍 수양회 가는 것 말고는.

이번 business trip에서 일만 하지 말고…. (5)

이번에는 뭔가 전반적으로 일정이 그리 smooth하지 못하다.
일이 좀 터지는 것들이 계속 있고, California home office에서도 급하게 해야하는 일이 터져서… 약간 좀 step이 꼬이고 있는 중이다.

이런 것을 경험할때마다 내가 느끼는 것은,
나는 multi-tasking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음…
사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내가 multi-tasking을 잘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내가 그렇게 multi-tasking을 잘 하는 것 처럼 보이는 이유는,
내가 multi-tasking을 많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좀 자세히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나는 일이 와장창 마구 떨어지는 상황을 참 많이 불편해 한다.
multi-tasking을 해야하는 상황이 그래서 나는 참 힘들다.
그래서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몸과 마음을 무리해가며 그것을 처리하곤 한다.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그렇게 하다보면,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더 열을내서 일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훠~월씬 더 빨리 후다닥 일을 처리해버린다.
그러니 옆에선 내가 multi-tasking을 잘 하는 것 같이 보일때가 있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출장 다니는 것을 불편해하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출장 중에는 그 multi-tasking의 끝판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출장을 왔다고 해서 home office의 일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므로,
시간이 날때마다 떨어지는 일을 잔뜩 긴장을 해가며 처리해야하는 부담이 있다.

사실 이번 일정을 빡빡하지 않게 잡았는데,
결론적으로 생각했던 것 만큼 널럴하게 진행되질 못했다. ^^

보통 내가 회사에서 일을 하는 방식을 그래서,
일하는 동안 무지하게 집중해서 온힘을 다 해서 죽어라고 일을 해 치운다.
그런데 출장을 오면 내가 그렇게 control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이 벌어지기 때문에 그게 잘 안되는 거다.
그러면 해야할 일들과 이메일도 밀리고… 그럼 더 multi-tasking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고…

그럼,
이런 내가 이렇게 출장을 와서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결국은 안달하는 내 이 성향이 문제인건데…

이번 business trip에서 일만 하지 말고…. (4)

일본에서 한국회사 사람들과 함께 여러 일본회사를 다니면서 여러 meeting들을 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의 A 회사가 우리 제품의 중요한 부품을 만들게 되는데,
일본의 B,C,D,E 회사들에서 재료를 받아서 만드는 그림이다.

그래서 내가 그동안 연락하면서 관계를 만들어온, 그리고 technical development를 해 온 일본의 B,C,D,E 회사들을 A회사에 소개시켜주고, 함께 만나서 나누어야할 문제들을 discussion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시간으로 어제 (목요일)에는 미팅들이 일찍 끝나고 시간이 좀 남았다.
그런데 한국의 A 회사 사람들이 그걸 알고는 자기들의 비행기 시간 일정을 바꾸서 나와 함께 있겠다고 하는 거다! -.-;

아…니….
나는 그냥 혼자서 좀 쉬기도 하고, 밀린 home office 일도 하고, 그래도 시간 남으면 가까운 라면집에 걸어가서 라면 한그릇 먹고… 그러고 싶었는데…

덕분에 섭씨 34도가 넘는 완전 더운 날씨에 그 사람들과 함께 걸어다니며 ‘관광’을 하고,
피곤하고 더운데 밤 9시가 넘도록 이자카야에 가서 비싼 식사를 해야 했다. (그래도 뭐 일인당 4000엔 수준이니까 아주 황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지만 또 좋았던 것은,
어제 블로그에 썼던 ‘개인’이야기들을 생각보다 정말 많이 할 수 있었다. ^^
회사에서 일하는 이야기, 대학생 시절에 시위했던 이야기, 돈에 대한 이야기, 정치 이야기, 그리고 심지어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약간 할 수 있었다.
오후에 둘어보았던 곳중 하나가 일본불교 사찰이었기 때문에 껀수를 잡아서 그런 이야기를 좀 해 볼 수 있었다.

당연히(?) 내가 이야기했던 사람들은 다들 종교가 없었지만,
그 사람들이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사랑과 정의와 선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는 것이 참 흥미로웠다.

예전같으면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이 복음을 알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내 관심사의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은 정말 그런 대화를 통해서 기독교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더 배워나가는 것이 큰 기쁨이 되기도 한다.

나중에 식사시간 끝 무렵에 이 사람들이 이야기를 했지만,
이 사람들의 일차적 관심은 물론 우리 회사의 ‘inside information’ 혹은 내가 자기회사와 함께 일하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것을 더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당연히 그렇겠지만.)

솔직히 어제 저녁 대화에서 내 더 큰 관심은 그 사람들이었고,
그 사람들의 더 큰 관심은 내가 하는 일 이었다.

그래서 자꾸만 자신들이 더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에서 빠져나가 딴 소리를 하는 내가 그 사람들에게는 불편했을지도 모르겠다… ^^

이번 business trip에서 일만 하지 말고…. (3)

출장에 가서 밤 늦게까지 일을 하다보면 대개 그 현지의 사람들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기회들이 생긴다.
살면서 무슨 걱정들이 있는지, 자녀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지, 일 하면서 뭐가 제일 힘든지… 이런 것들을 나누다가… 조금 더 대화가 깊어지면 삶의 의미를 어떻게 두고 사는지, 정의라는 것은 어떻게 정의하는지,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등등의 조금 더 깊은 이야기들도 나누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회사에 와서는,
내가 주로 ‘높은 사람들’만을 많이 만나게 되고,
실제로 밤 늦게는 호텔방에 들어와서 혼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밤에 그 나라 사람과 야식을 함께 하면서 사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런 대화들을 나누면,
대개는 그 사람들이 business 상대로 여겨기지 보다는,
그냥 ‘이웃 사람’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내가 ‘갑질’을 하지 않도록 나를 지켜주는 중요한 key가 되기도 한다.

여기 일본 사람들과는 그럴 기회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에서 오셔서 여기서 만나는 분들과는 어쩌면 그래볼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으나…
별로 그렇게 못하고 있는 듯…

이번 business trip에서 일만 하지 말고…. (2)

일본에서는 지난번에도 묵었던 호텔에 또 묵게 되었다.
왠만하면 다른 곳에 묵어보려고 했는데 (교통이 살짝 불편해서…)
동경역 아주 가깝게 가면 그야말로 코딱지 만한 방이 하루밤에 300불, 심지어는 500불이 넘기도 해서… (후덜덜)
그렇게까지 지르지 못하고 동경역에서 약간 떨어진 곳 중에서 괜찮은 곳을 고르다보니 예전에 묵었던 호텔이 되었다.

이번에 일본에서는 주로 재료회사 (material supplier)들을 만나게 되는데,
한국의 모 회사가 그 재료들을 받아서 제품을 만들도록 내가 그 사람들을 서로 연결도 해주고, 함께 technical한 것들을 논의하기도 위해서 가는 것이다.

한국의 그 회사에서는 매일 점심, 저녁 먹을 일정까지도 다 짜서 내게 보내주었다. -.-;
그 회사의 일본 지사에서 그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 다니면서 일본말 통역도 다 해준단다. (나 그거 없어도 survive 할 수 있는데…)
게다가 내가 묵는 호텔에 그분들도 다 묵도록 arrange를 한 것 같다.
덕분에 나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식사까지 그분들에게 꼼짝없이 붙잡히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이번에 가서는,
내가 한번도 가보지 않은 유명한 라면집이라던가… 뭐 그런 좀 싸게 먹을 수 있는 곳들을 몇군데 가보려고 했었는데…
보나마나 이분들이 비싼데 가자고 할게 분명하다.

현재로서는,
도착하는 날 (화요일) 저녁식사와 일본을 떠나는 날 (금요일) 점심식사가 따로 약속이 없기 때문에 그때는 뭔가 좀 자유롭게(?) 싼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뭘 먹을까 고민중이다.
현재로선 이찌란 라면집이 유명하다고 해서 거긴 한번 가볼 생각이다. (내가 묵는 호텔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하나 있다!)
빅뱅의 GD도 거기 갔었다고 하고, 세븐틴도 거기 갔던 것 같고… (내가 일본어가 딸려서 그 website나 나와 있는 유명한 사람들을 다 읽을 수는 없다. )

이번 business trip에서 일만 하지 말고…. (1)

이번에는 United를 계속 타고 다닌다.
우리 회사에서는 business trip을 갈때 늘 business class를 탈 수 있게 해주지는 않는데,
나는 여러가지 조정을 좀 잘 해서 business class를 타고 갈 수 있게 되었다. ^^

우선,
첫번째 leg은 San Francisco부터 일본 Narita까지 가는 united 777-300ER인데,
이게 최근에 Polaris business class 라는 걸로 upgrade가 되었다.

요즘은 여러 항공사들이 business class seat을 어떻게 더 잘 design하느냐를 가지고 전쟁을 하고 있는 듯하다.
예전엔 그저 자리 좀 더 좋은 것으로 충분 했는데,
요즘은 완전히 누울 수 있는 건 기본이고, 그 외에도 많은 기능들을 더 추가해서 business class seat를 계속 새롭게 개발해서 발표하고 있다.

마지막 돌아오는 leg는,
한국에서 San Francisco까지 오는 united 747-400 이다.
뉴스에 따르면 United는 금년말까지만 747을 운행하고 다 retire 시킨다고 한다. 많은 것들은 dreamliner 787로 바꾼다고.

747의 upper deck (2층)은 작은 공간이고,
United는 2층을 business seat 20개 정도만을 배치해서 쓰고 있다.
따라서 비교적 조용하고, 음식 service도 빨리 해주고…. 나는 747의 2층을 좋아했었다.

새로 나오는 항공기들이 워낙 연료효율도 좋고 잘 만드는데다,
많은 경우 큰 항공기를 움직이는 것 보다는 조금 더 작은 항공기를 움직이는 system으로 가는 것이 대부분의 항공사들 수지에 더 맞는 것 같다.
그래서 747를 전반적으로 다 줄여가는 추세인데…
아마도 이번에 내가 747를 타는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술 (12)

나는 월요일 부터는 또 다시 무지하게 비행기를 타면서 두주 가까운 시간 아시아 여기저기를 다니게 된다.

비행기나 라운지에서 주는 와인이나 맥주를 한번쯤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때가 많이 있었다.
특히 비지니스 클래스를 탈때면 꽤 좋은 샴페인이나 와인이나 기타 다른 술들을 마구 주는 항공사들도 있는데… 그럴때면 뭔가 내가 같은 돈 내고 다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때도 있다.

20대 초반,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을 내 신앙의 경계표지로 삼았었다. 그것 때문에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이 많이 힘들기도 했고, 불이익도 당했었다.
이제 나는 술을 마시는 것을 더 이상 그렇게 정죄하지 않는다. 실제로 내가 아주 좋아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는 직장에서 술을 잘 즐기면서 사람들과 친구로 지내는 친구들도 있다.

그렇지만 아직 나는, 적어도 한국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내 20대의 결심을 그렇게 쉽게 버리기 어렵다. 아직도 그것이 내게는 일종의 색 바랜 경계표지로 남아있는 듯 하다.

특히 다음주부터 한국 사람들과 식사를 하게되는 자리들이 있을때면,
나는 또 여전히 술 마시는 것 가지고 씨름하고 내 자신을 설명하고… 그 어색하면서 싫은 일들을 해야한다.
참 싫다. 불편하고.
그래도 그렇게 아직 더 지키려 한다.

그렇지만,
다음주 일본의 어느 호텔방에서,
나 혼자서 그 근처 작은 편의점에서 사온 일본술과 안주를 try해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공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내게 아직은 중요한 경계표지이긴 하지만, 술을 마시는 것이 죄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

술 (11)

경계표지는 신앙에 있어서 절대적 기준으로 삼을만한 것은 아니지만,
신앙에 있어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을 믿는다.
바울이 정죄한 ‘할례당’은 나도 여전히 정죄한다. ^^

그렇지만,
나는 한때 술이라는 경계표지를 가지고 세상에서 불이익을 당하면서 신앙을 지켰던 사람들의 그 신앙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를 진지하게 찾아보고 있다.
아니, 이제 술이 더 이상 relavant한 경계표지가 아니라면 그럼 지금 이 시대의 경계표지는 무엇이냐는 것을 진지하게 묻고 있다.

세상에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세상에서 잘 작동하고 fit하는 것만을 생각하기 보다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다른 왕을 섬기고 있음을 드러내는 그 경계표지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경계표지가 universal하거나 영원할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공동체마다 다른 경계표지가 있을 수도 있다.
어떤 교회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으로, 어떤 직장 성경공부 모임에서는 하청업체에게 깍듯하게 존대하는 것으로, 어떤 캠퍼스 모임에서는 특정 과목의 특정 project를 다 함께 boycott 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한 10년 술을 마시지 않는 것으로 경계표지를 삼았다가, 더 이상 그것이 relavant하지 않다고 느껴지면 그때부터는 R rated movie를 보지 않는 것이라던가… 그런 식으로 바꿀 수 있다.

그렇지만,
경계표지 자체를 너무 쉽게 포기하거나 내가 불편하다고 휙 집어던져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 공동체에 속하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다.

술 (10)

만일 경게표지가 그렇게 인위적이거나 심지어는 임의적인(arbitrary) 것이라면…
그런 경계표지를 그렇게까지 목숨걸고 지킬 필요가 있겠나.
마카베오하에 나오는 것 같이, 돼지고기 먹는걸 가지고 자신의 일곱자녀에게 꿋꿋하게 믿음을 지키면서 죽으라고 용기를 주는게 어머니가 할 일인가.

과연 어떤 경우에는 경계표지를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지키고, 어떤 경우에는 경계표지를 우상시하지 말고 유연성을 가져야하는 것일까.

그 기준을 생각할때 다음과 같은 것들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그 경계표지가 identity를 결정하고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안티오쿠스가 그 유대인 어머니와 일곱 자녀에게 돼지고기를 강요한것은, 양돈농가를 돕기위해 돼지고기를 소비해라… 와 같은 이유가 아니었다. 그 돼지고기를 먹는것 자체가 신앙고백의 문제가 되어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것을 강요하는 입장에는 그렇게 심하게 강요하는 이유가 그 신앙 본질, 신앙적 identity를 건드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내가 이것을 먹는 것이 내가 누구인가와 연관된 것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경계표지가 되어서 내가 이것을 먹느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을 보면 내가 어느쪽에 속해있느냐 하는 것이 드러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다.
혹은 술한잔 받으라고 강요하는 직장상사가 술을 거부하는 20년 후배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지금 이 직장에서는 네 신앙보다 내 권위가 우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술을 받지 않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다.

2. 그 경계표지가 잘못된 형태로 추앙되어있지 않은지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인지라… 경계표지 자체의 원래 주어진 역할을 오해하거나 그것에 경계표지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때가 있다.
가령 바울서신에서 나오는 할례가 그랬다.
할례는 경계표지였다. 할례를 받으면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이라면 당연히 할례를 받아야한다는 것이다.
할례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할례는 하나님 백성이 되고 나면 자신이 하나님 백성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일종의 뱃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술 마시면 구원 못 얻는다는 식의 이야기는 옳지 않은 것이다. 경계표지를 지킴으로써 그 경계에 속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 경계에 속한 일종의 표식으로써 경계표지를 지키는 것이다.

술 (9)

경계표지를 그럼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것과 같은 이슈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즉 구약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지만, 술은 일종의 공동체적 규약이기 때문에 그것을 어긴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나는…
구약의 text를 그런식으로 읽지는 않는다.
나는 구약의 율법이 신적권위를 갖는다고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또한 공동체적 신앙고백이자 공동체적 합의/규약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어설프게 쓰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이정도 선까지만 일단 여기서 언급하는 게 좋을 것 같다. – 다음에 기회가 되면 조금 더 자세히 한번 풀어볼수 있을지도… ^^)

그래서 구약의 율법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도록 하는 경계표지나, 다니엘서에 나오는 것 같이 왕의 식탁에서 오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하는 경계표지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경계표지는 심지어는 다소 인위적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그것을 지키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 공동체의 membership에 속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게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