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2)

일단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술 마시는 자리나 술 마시는 분위기는 내게 대개는 불편한 자리였다.

내가 처음 술을 마신 것은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였다.
고등학교 선배들이 마련해준 신입생 환영회 였는데,
짬뽕국물을 안주삼아 맥주잔에 소주를 마시는 것이었다.

소주는 진짜 맛이 없었다. -.-;
게다가 몸에도 잘 받지 않으니까, 토하고 온몸 가렵고 힘들긴 했는데… 막상 정신이 알딸딸해진다거나 그런건 별로 없었다.
그냥 괴롭기만 했다.

그 후에도 대학때 연극을 하면서 술을 마시기도 했고,
괜히 객기에 술을 마시고 학교 내의 아스팔트 바닥에 친구들이랑 누워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해 보았다.
하지만 내 문제는… 옆 사람들은 다 취해서 그짓을 하는데, 나는 그 친구들 분위기 맞춰주느라 맨 정신에 그렇게 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웬만해선 술을 잘 마시지 않으니까,
미국의 다른 직장 동료들이 가끔은 내게 놀린다.
너 정말 한국 사람 맞냐고. ^^

그러면 나는 그 친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준다.
나는 술을 잘 못마셔서 한국에서 추방당했다고…

술 (1)

나는 술을 못 마신다.
음… 진짜로 못 마신다.

술을 마시면 physically 괴롭다.
온 몸이 다 빨개지고, 코를 비롯한 얼굴이 부어서 숨 쉬는게 답답해지고, 온 몸이 가렵고…
거기서 조금 더 마시면 다 토해버린다.

그러니 나는 술이 땡긴다거나, 술자리를 찾는다거나 하는 일도 없고,
술친구고 없고,
정말 술 마시고 취해서 기분좋아본 적이 한번도 없다.

예전에 소주 3병인가를 마시기까지 해 봤는데,
왕창 괴롭기만 하고 정신은 멀쩡하고 그러다가 다 토하고…

직장에서 사람들하고 함께 식사를 한다거나,
혹은 출장을 가서 business dinner를 함께 하는 자리에서도 나는 양해를 구하고 술을 마시지 않는다.

왜 갑자기 술 얘기나고?
요즘 가끔은 나도 술취하는 경험을 한번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

비겁함은 비난받을 태도일까?

비겁한 사람들을 찾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다.
내게는 특히 그렇다. 왜냐하면 내가 상당히 비겁하기 때문이다. ^^

비겁함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비겁함은 결국 겁이 많은 성격으로부터 나오게 되고, 그래서 비굴하게되는 태도가 아닐까.

나는 겁이 많은 것은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 자신이 엄청한 겁보로서, 나는 겁 많은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싶다.

그러면 비굴하다는 것은 비난할 수 있는 것일까?
possibly.

그렇지만 겁이 많은 사람이 겁나게 하는 상황을 만났을때 취할 수 있는 option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그 상황을 피하는 것이다. – 그것 자체가 비굴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 상황을 피하고나면 그 상황 속에서 비굴함을 유지하지는 않아도 된다.

두번째는 그래도 이를 악 물고 그 상황을 마주하는 것이다. 이건 그야말로… 조금 더 힘을 내!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게….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사실 진짜 겁보들은 조금 더 힘을 내어서 그게 잘 안된다. 완전히 죽을만큼 힘을 내어도 그걸 마주할 수 있을까 말까 한다.

그리고 세번째는 그 상황 속에 그래도 머물러 있으면서… 그 움츠려드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비겁한 자세가 나온다.

그런데… 만일 회피가 대단히 어려운 선택인 상황이고, 그렇다고 더 용기를 내는 것도 너무 벅찬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하나?
그냥 비굴해 지는 것이다.

능력이 부족한 가장이 윗 상사들의 폭력적인 강압에 장단을 맞추면서 돈을 벌어오는 것. 비굴하다.
노점상을 하는 사람이 동네 깡패들이 와서 돈을 뜯어가면 그 사람들에게 웃어가며 돈은 주는 것. 비굴하다.

많은 경우 정말 비겁함에대한 다른 대안이 없다. 오히려 비겁함이 그 삶에 대한 애착을 갖는 방식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내는 방식일 수 있다.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좋지만,
그리고 용기를 더 내도록 바뀌어 가면 좋겠지만…
어떤 사람의 성품을 가지고 그 사람을 비난할 수 없다면,
겁이 많아서 비겁함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비난할 수 없다.
모든 비겁함이 다 비난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어떤 비겁함은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겁함이 비난받을만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비겁한 사람들은 자신의 비겁함으로 인해서 많이 아파해야하고,
하나님으로부터의 용기를 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상, 비겁한 사람의 자기변명.

The Temptation of Ministry

지난 주말 Podcast에서 완전 찔리게 들은 설교가 youtube에도 올라와 있었다.

Tim Keller는 Martyn Lloyd Jones의 광팬(?)임이 분명하다.
Tim Keller 설교들중에서 매우 핵심적인 key는, 자주 Martyn Lloyd Jone에게서 가져오는 것 같다.

위의 설교에서도 역시 그렇다.

왜 현대 보수 기독교에서는 Martyn Lloyd Jones와 같이 설교하는 사람이 없는 걸까…

돌아와서 하는 생각들 (12)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에 헌신한 사람들이,
자신이 했던 헌신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면서 그 legacy를 지키려고 하는 것은 참 추한 일이다.
그렇게 헌신해서 뛰는 사람들도 자신의 헌신 자체에 취해서 그것을 영웅시 하는 것은 추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KOSTA 실무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사람들은,
그렇게 헌신하여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렇게 한때 헌신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죽어도 저렇게 헌신하지는 말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내 헌신을 영웅시하지도 말고, 그 헌신을 legacy로 만들지도 말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면서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것은,
절대로 KOSTA에 헌신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지 KOSTA에 헌신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언제든 KOSTA를 떠날 수 있고, KOSTA를 버릴 수 있고, KOSTA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평가해보건데,
처음 KOSTA를 섬기면서는 정말 KOSTA에 많이 헌신했었다.
그러나 적어도 총무간사로 섬기면서는 KOSTA 자체에 헌신하는 독소는 나로부터 많이 빠졌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기도 시간에, 혼자 숙소에 앉아서, 잠시 혼자 시간이 났을때…
나는 정말 내 헌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많이 많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내 헌신을 생각하며,
그보다 KOSTA에서 섬기는 많은 분들의 헌신을 생각하며,
무엇보다 우리 간사들의 헌신을 생각하며…
많이 울었다.

돌아와서 하는 생각들 (11)

KOSTA 실무를 섬기고 기획과 실행을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어른’이 없다는 것이었다.

눈치봐야 하는 어른들은 참 많았다.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 계신 어른 앞에서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서서 그 어른의 꾸지람을 한참 들어야 하는 일들도 있었다.
밤에 전화로 한참동안 KOSTA가 이래야 한다고 충고와 훈수를 두는 어른들도 많았다.
뭘 도와줄까, 뭐가 힘드니… 라도 묻는 어른들은 참 적었고, 꾸중과 훈수는 넘쳐났다.

총무간사를 할때 2/3 이상의 에너지는 그렇게 힘들게 하는 분들을 상대하는데 쓰였다.

그래서 나는 10여년전에 굳게 결심했었다.
나는 절대로 후배들을 힘들게하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겠다.
그리고 어떻게든 후배들이 이런데 에너지를 쓰지 않도록 만드는데 최선을 다 해야겠다.

KOSTA 실무를 떠난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공동대표를 그만둔지도 이제 꽤 되었다.

이번에 참석해서 느낀 것은,
나는 10년전의 그 결심을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 노력도 했는데…
나는 그저 후배들을 힘들게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고, 막상 후배들을 보호하고 지키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드러났다.

심한 자괴감이 정말 나를 눌렀다.

돌아와서 하는 생각들 (10)

나 혼자만의 생각일수도 있겠지만….
나는 KOSTA가 추구했던 가치가운데 하나로 ‘한 사람이 백 걸음 가는 것 보다 백 사람이 한 걸음 가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길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나 자신이 KOSTA에서 player로 뛸때 정말 그렇개 생각했었다.

한 사람이 백 걸음 가는 것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 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잘 감당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KOSTA의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KOSTA가 한 사람이 백 걸음 가는 것을 추구하게된다면, 그것은 사람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KOSTA 같은 세팅에서, 사람들이 눈에 밟히지만 않는다면… 이슈중심으로, 한 사람이 백 걸음 가자고 선택하는 것이 더 쉬운 선택일 수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힘든 설득과 인내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어진다.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참아낼 필요도 없고, 화나는 것을 화나는 대료 표현해버리면 된다.

그러나 그런 중에 잃어버리는 것은 ‘사람’이다.

금년에 시카고에서 수도 없이 이 생각을 다시 했었다.
그렇게 생각해 왔던 내 생각이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니었나?

돌아와서 하는 생각들 (9)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나그네된 백성’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는
‘미래적 하나님 나라’가 아닐까 싶다.

소위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중 다수는,
Already but Not Yet 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이중성을 이야기할때 흔히 Already, 즉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많이 강조하곤 한다.
나는 그것이 주는 유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최근 몇년 동안은 몇가지 이유로 ‘Not Yet’에 대한 강조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특히 하나님의 나그네된 백성이라는 주제를 제대로 다루어내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가 아직 완전하게 임하지 않았음을, 그래서 우리가 그 나라를 기다림을 더 많이 강조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번 주제구절을 따온 베드로전서를 가만히 보더라도,
미래적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강조가 훨씬 더 크다.
미래적 하나님의 나라, 지금은 하나님의 통치가 없는 것 같은 세상, 그 속에서 피동적으로 사는 삶…

그래서 어쩌면 하나님의 나그네된 백성의 삶을 찾아볼 수 있는 강조점으로 다음과 같은 믿음의 선배들도 생각해 보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꼭 conference에서 그걸 했으면 하는것이라기 보다는, 주제를 묵상하면서 내 자신이 조금 더 파 보았더라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순교자들
– 시한부 환자들
– 한국 교회 초기 신자들
– 가난하고 못배운 사람들의 신앙 (가난하고 못배운 사람들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돌아와서 하는 생각들 (8)

이번에는,
유난히 ‘강사’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접한다.

그게 늘 이랬는데 내가 이번에 집회 전후로 강사들과 communication하는 일이 조금 더 많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번이 정말 더 강사들에게 의미있는 집회였는지는 물론 확실하지 않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강사들과 접촉을 하는 경우가 많았던 예전의 경우와 비교해 볼때, 이번에는 그런 반응이 조금 더 강하게 느껴지고 있다.

그리고 일종의 ‘강사 자발성'(?) 이라고 해야할까…
하여간 강사들중 일부가 적어도 미국 KOSTA는 좀 더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들을 더 많이 접하고 있다.
가서 강의를 좀 더 해야겠다…는 식의 도움을 물론 포함하지만, 그런 도움을 넘어서 다른 여러가지 드러나는 드러나지 않는 support를 느낀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피부로 느끼는 참석자 청년-학생들의 반응이 예전보다 더 뜨겁다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반응이 더 차갑거나 나쁘다는건 아닌데, 강사들의 반응이 더 열광적인것과 같지는 않다는 말이다.

두가지 생각과 우려

1. 지금 KOSTA의 컨텐츠와 스타일은 지금 20-30대 학생들에게 더 맞기 보다는 40대 이후의 강사 그룹에게 더 맞는 건 아닌가?
2. 지금 나는 청년-학생들과의 접점을 현저하게 잃어버렸고, 강사들과의 접점만 가지고 있게된 것은 아닌가?

돌아와서 하는 생각들 (7)

내가 이번에 꼭 하고 싶었지만 못한 것들을 몇가지 쓰자면 다음과 같다.

– 기도를 도와주는 역할
기도실에 좀 짱박혀 있으면서,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의 기도를 도와주는 역할을 좀 해주고 싶었다.

– 책 장사
book table 앞에서 책을 추천/소개하고 파는 역할. – 그런데 이건 아땅님을 비롯해서 다른 분들이 워낙 잘 하셔서 내가 낄 자리가 없기도 했다. ^^

– 간사들 만나기
간사들과 일대일로 만나면서 이야기를 좀 듣고 싶었다. 당연히 KOSTA 일하면서 살기가 녹녹하지 않을텐데… 시간이 좀 아예 따로 내어서 그 시간에는 간사들중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과 일대일로 만나고 싶었다. 간사들이 그걸 원했을지는 모르지만. ^^
간사들이 다들 워낙 바쁘고, 나도 나름대로 바빠서… 이렇게 할 여유가 없었다.

– 외부 손님, 어르신들 상대하기
외부 손님이라고 할만한 분들이 많지 않았고, 그걸 황간사님이 완전 종횡무진 커버하시는 바람에 내가 할 일이 없었다.
다만, 황 간사님이 너무 애를 많이 쓰시는데 옆에서 도울 방법이 없다는게 많이 안타깝기는 했다.

– 새로운 강사들과의 대화, 집중 관리대상(?) 강사들 포섭
강사실에서 강사들과 대화를 하되, 특히 좀 끌어들여서 우리쪽(?)으로 포섭할 강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이건 그 시간에 학생들을 만나느냐 강사들을 만나느냐 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했다.
나는 학생들을 만나는걸 선택했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꼭 하지 않아야겠다고 굳게 마음 먹은게 있었다.
그건 ‘실무’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하다못해 간사들이 짐 나르는 것도 돕지 않았다.
중그룹 성경공부는 어쩌다보니 내가 일부 실무와 관련된 것에 연관이 되는 바람에 살짝 좀 했지만…
그리고 간사 모임에도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마지막날 밤 모임만 빼고는.

일부 ‘내부인’들은, 마지막날 했던 이야기 관련된 어떤 생각을 여기서 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기도 할텐데…
당연히 직접적으로 쓸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무슨 의견과 생각을 쓰는게 혹시 간사들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싶어 조심하는 중이다. -.-;

앞으로도 당분간 이 글타래를 더 풀어볼테니…
일부 생각이 살짝 삐져나오게 되긴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