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성찰

자기성찰이라는 것이 기독교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개념인 것은 사실이다.
자신을 잘 알아야 하나님과의 관계도 건강하게 설정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내가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이 수긍하는 편이다.
나도 역시 자기성찰을 많이 하는 편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것이 내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대부분 건강한 순기능을 제공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기독교의 본질은 자기성찰이 아니라 계시라고 생각한다.
Extra Nos, 즉 우리 밖으로부터 은혜와 계시가 우리에게 invade(침략)해오는 것이 적절한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을 할 능력이 없는 피조세계와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다는 것이 기독교 복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때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성찰이라는 명목 하에, 자신만의 세계에 자신을 가두어버린 채, 명백한 계시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볼때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내면의 목소리, 내면의 모습을 찾는 노력보다,
어쩌면 하나님으로부터의 계시에 주목하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내면의 목소리를 찾는 노력 조차도, 전적타자이신 절대자의 선포와 계시와 은혜를 받아들이는 수단으로 활용되도록 제한하는 것이 건강하지 않을까… 

사자 곁에 있는 고양이

어쩌다가,
고양이 새끼 한마리가 사자와 친구가 되었다.

사자의 용맹스러운 모습에 고양이는 매료되었고, 금새 그 사자와 같이 되고 싶어했다.
사자는 친절하게 그 고양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주었다.

사자와 함께 하면서 고양이는, 늘 사자가 사냥해오는 짐승의 고기 살점을 조금씩 뜯어먹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양이는 자신이 사자가 아닌 고양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었다.
사자가 물어온 짐승의 고기를, 잔뜩 폼을 잡고 물어 뜯으며 마치 자신이 그 사냥을 한 것같이 행동했다.

사자가 사냥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마치 그렇게 사냥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을 했다.
사자에게, 자주.. 함께 힘을 합쳐 사냥 계획을 짜자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나 사냥에 관한한, 고양이는 그저 고양이었다. 겨우 다람쥐 정도를 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사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고양이는 자신이 사자인양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나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자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사자는 일찍, 고양이에게… “너는 사자가 아니야”라고 일러주었어야 했다.

리더쉽은 때로,
자신을 따르는 사람에게, 자신과 같이 되지 말도록 권유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