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Job Transition (27)

난생 처음 ‘연봉협상’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중이다.
벌써 offer를 받는 것이 4번째 (엄격하게 말하면 5번째이군. hp에 있을때, 중간에 한번 ‘소속’을 옮긴 적이 있었으니까)인데,
매번 offer를 그냥 accept 했었다.

그 이유는,
내가 생각하기에 이미 그 offer가 충분히 내게 generous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매번 직장을 옮길때마다 그래도 조금씩 더 받았고.

그런데,
이번에 직장을 옮기면서는, 말하자면 base 연봉이 살짝 더 낮아졌다.
이 회사 리크루터는, 대신 주식을 더 많이 주니까 총 연봉은 더 높다면서, 상당히 잘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도 어쨌든,
base가 깎이니… 당장 매달 ‘현금’으로 들어오는 것이 줄어들게되니,
처음 주식을 받을때까지 1년동안은 현금이 부족하게된다.
그러니 그 차액만큼 미리 내게 sign-on bonus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이 회사는 sign-on bonus도 안준다면서 원래 offer package에는 sign-on bonus도 없었다.)

그것 때문에,
회사 시작하는 날짜도 다시 조정중이고,
offer에 아직 sign도 못한 상태이다.

Salary negotiation에 대해서도,
당연히 나는 인터넷을 뒤져서 공부도 하고, 나름대로 여러 강의(?)같은 것들도 찾아서 들어보았다. (꽤 많이. ㅋㅋ)

그중, 아주 기본적인 것을 잘 다루었다고 생각하는 강의 하나를 여기 덧붙인다.

신앙이 깊은 사람들은 더 깊어지고?

Christianity Today에서 아주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내었다.
http://www.christianitytoday.com/gleanings/2015/november/pew-rich-in-faith-get-richer-2015-religious-landscape-study.html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던 것은,
1. 2007년과 2014년을 비교했을때, 전반적으로 종교적 affiliation을 가지는 비율이 그리 크게 감소하지는 않았다는 것.
2.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그 종교적 practice를 하는 사람의 비율은 오히려 늘었다는 것. (성경읽기, 기도하기, 전도 등)
3. 개인적으로 종교적 체험을 하는 비율도 높아졌고(거의 모든 age group에서)

그리고 또 주목해볼만한 것은,
낙태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은 그리 변하지 않았는데,
동성애를 받아들이자는 의견은 크게 증가하였다.

이것은,
적어도 지난번에 내가 이 블로그에서 포스팅한, 한국의 청년-학생들의 현황에대한 연구조사와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그 연구 조사에서는, 크리스찬의 비율이 줄어든것과 함께, 헌신된 크리스찬의 비율의 감소가 더 두드러진다는 것이 큰 특징이었다.

한국과 미국의 변화는 좀 다른 양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적어도 이 두 연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이 너를 주목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1.
토니 캠폴로가 신학교에 다닐때였다.
설교학 실습 시간이었는데, 학생들이 각자 자기가 준비한 설교를 하고 교수가 그것을 평가해주는 시간이었다.

토니 캠폴로는 아주 훌륭하게 설교를 해 내었다. (아는 사람을 알지만, 토니 캠폴로는 아주 뛰어난 설교가이다.)
다른 학생들의 반응도 좋았고, 토니 캠폴로는 스스로도 만족스러워했다.

그런데, 그 교수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너를 주목하면서 동시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설교가 훌륭하긴 했는데, (훌륭한 말솜씨, 적절한 예화, 정확한 본문 분석 등등) 너무 ‘훌륭한 설교자’가 드러났다는 것이었다.

2.
내 스스로를 판단해 보건데,
나는 다른이들로부터 칭찬과 칭송을 많이 받는 편이다.
(실제로 내가 괜찮은 수준보다 더 많이 받는다.)

그리고 또 큰 문제는, 내가 그것을 매우 즐긴다는 것이다.
나는 대표적인 people-pleaser이다. 다른 이들이 나를 그렇게 인정해주는 것을 매우 줄기는 사람이다.

3.
내가 예수님을 믿고 살아왔던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내가 늘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에만 목매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깊이 복음의 감격에 빠져 있을 때에는, 오히려,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했고, 나도 내가 주목받게되는 것을 몹시 불편해하면서 피했었다.
심지어는 그것이 객관적으로 ‘좋은 일’ 인것같아 보이더라도,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보다 내가 드러나는 것 같으면 그냥 그 ‘좋은 일’하는 것을 포기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마음들이 많이 무너지고, 사람들로부터의 인정, 나 자신을 높이는 것이 자꾸만 다시 올라왔다.
사역의 need가 크니까, 내가 좀 드러나더라도 일단은 이걸 좀 해야하지 않겠나.
내가 이걸 지금 하지 않으면 다른 누가 하기가 어려운데, 일단은 눈을 질끈 감고 내가 드러나는 일을 해야하지 않겠나.

그러면서 점점 내 자신도 ‘내가 드러남’에 대해 둔감해졌고. 어느순간 내가 드러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실제로 사람들이 내게 ‘칭찬’을 할때에도, 내가 한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드러나셨는가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내가 얼마나 말을 잘했나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4.
고린도전서 말씀이 나를 깊이 찌르고 있다.
내가 드러나는 것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함께 갈 수는 없다.

찬 바람이 부니 연극이 보고 싶다

우리 동네도 이제 꽤 쌀쌀해졌다.
아침 저녁으로는 난방도 잠깐씩 하고 있다. 게다가 민우가 초저녁에 자고 밤 늦게 공부하는 패턴을 최근 유지하고 있어서, 밤에 난방을 하는 것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

늘상 바쁘게 지낼 때라면야… 그냥 조금 더 도톰한 외투를 꺼내 입고는 하던 일 열심히 하면서 지내겠지만,
요즘 그러질 않으니, 찬 바람이 실제로 느껴진다.
아… 여기도 가울/겨울 시즌으로 접어드는구나 하는 것도 인식하게 되고.

그런데,
이 찬바람에, 꽤 뜬금없이 연극이 보고싶다.
사실 내가 한국을 떠나온지 20년도 더 되었고, 한국에서 연극을 본것도 역시 그 이상 되었는데…
한국의 작은 소극장에서 그 당시 학생으로서는 그래도 꽤 비싼 연극표를 사서 보았던 기억이 새삼난다.

그나저나, 요즘 민우가 연극연습이 한참이다.
이 바쁜 와중에, 하루에 4시간씩 시간을 들여가며 연극연습을 하고 있다.
이번 오늘부터 학교 강당에서 연극공연을 한단다.

민우가 이번이 벌써 4번째 공연인건가.
연극을 그토록 즐기면서 재미있어하는건 참 나를 닮았다. 참 신기하다. 나는 민우에게 연극에 대해서 한번도 이야기해본적도 없는데 말이다.

한국의 작은 소극장에서 하는 연극을 좀 보고 싶긴 하지만,
내 사랑하는 딸내미가 하는 연극이니, 그걸 보면서 내 연극관람 충동욕구를 좀 채워봐야할 듯 하다.

수염

한동안 수염을 길렀었다.
아마 본격적으로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던 것이 2012년에서 2013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이었던 것 같다.
그 이전에도 휴가기간 동안 수염을 깎지 않고 지저분하게 놔두었다가 휴가 끝날 때 깎곤 했었는데…

거의 매년,
여름에는 더워서 수염을 깎고 살다가,
겨울에는 thanksgiving 휴가를 지내면서 기르기 시작해서 다시 여름철까지 기르곤 했었다.

아내가 여자친구가 보통 수염을 기르겠다고 박박 우기는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한다.
“당신은 조인성이 멋있어, 김흥국이 멋있어?”

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조인성같이 멋있는 사람은 당연히 아니고,
그렇다고 김흥국 같이 들이대는 스타일의 사람도 아니니…
내가 수염을 깎는다고 조인성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수염을 기른다고 김흥국이 되는 것도 아닐것.

내가 수염을 기르는 이유들을 들자면…
– 약간 더 나이 들어보이는 효과가 있다.
– 머리 숱이 적어지면서 어떻게든 얼굴에 붙어있는 털의 총수를 유지한다는 위안이 된다.
– 무엇보다도, 매일 면도를 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나는 수염을 기르더라도 깔끔하게 단장을 한다거나 수염을 잘 길러서 멋을 내기 보다는,좀 지저분하게 보일때가 많이 있다.
지금 수염을 기르지 않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job interview를 할때 좀 더 깔끔하게 보이고 싶어서 이다. ^^

혹시 조만간 job을 찾게된다면, 이번 thanksgiving에는 다시 게으름을 피워볼까 생각중이다.
음… 다시 곧 수염을 좀 길러볼 수 있으려나….

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의로부터 얻어졌으면 하는 것들

나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한다.
하지만, 이 사태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일들이 좀 일어나면 좋겠다.

1. 더 이상 ‘속지 말기’ 결심을 좀 하면 좋겠다.

나는, 김대중-노무현이 비판받았던 것과, 이명박-박근혜가 비판받는 것을 좀 잘 비교해보면 좋겠다.

김대중-노무현은, 그들이 취하고 있는 스탠스를 속이지 않았다. 물론 김대중은 DJP 연합을 통해서 노무현은 후보단일화를 통해서 보수층을 안심시키려는 시도를 하긴 했지만, 대북정책, 경제정책등에대해 계속 일관된 스탠스를 유지했다.
말하자면, 김대중-노무현에대해 대중이 비판하게 된 것은, 나는 노란 옷을 사면 좋을 줄 알았는데, 막상 입어보니 생각했던 것 만큼 좋지 않네…
뭐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 물론 일부 진보진영에서는, 샛노란 색인줄 알았는데 막상 보니 색이 좀 흐릿하다고 비판을 했었다.

반면,
이명박-박근혜는, 자신이 취하고 있는 스탠스를 속였다.
마치 중도인 것 같이 포장을 하고 실용, 혹은 국민 통합을 할 수 있을 것 같이 이야기를 했다.
그렇지만, 결국 집권을 하고나서는 본인의 원래 모습을 드러내었다.
말하자면, 나는 노란 옷인줄 알고 샀는데, 사고보니 파란색이네… 뭐 그런 것이다.

대북정책에 대해 강경책이 더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비록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경제에 대해서도, 신자유주의적 노선이외에 대안이 없다고 이야기할수도 있다. (비록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면, 정말 그렇게 자신의 노선을 밝히고, 그것을 가지고 건강하게 토론하고 논쟁하여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일들이 좀 있으면 좋겠다.

이상돈, 김종인 등등이, 나 이럴줄 몰랐어… 라고 이야기 하는데,
정말 몰랐을까?
이럴줄 알았지만, 그냥 한자리 기대하고 지지했는데 그냥 팽당한건 아닐까.

2. 제대로 된 논의와 토론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면 좋겠다.

나는, 미국의 오바마 케어를 비판적으로 지지했었다. (뭐 나는 미국에서 투표권이 없으므로 내가 지지하느냐 하는 것은 아무런 영향이 없지만.)
그런데, 오바마 케어를 도입할 당시, 미국의 대중적 지지는 그리 높지 않았다.
오히려 오바마 케어를 지지했던 민주당 의원들이 그 다음 선거에서 대거 낙선을 했고, 민주당은 의회 의석을 많이 잃었다.
그렇지만, 오바마는 “이것이 내가 대통령이 된 이유다” 라고 주장이라도 하듯, 끊임없이 밀어붙였고, 장렬한 민주당 의원 전사자들을 남긴 채 결국 입법하는데 성공하였다.

나는 박근혜 정부가, 비록 지금 국정화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높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내가 대통령이 된 이유다” 라고 생각하고 한국 역사교육의 틀을 돌려놓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화라는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다만, 정말 그렇다면, 미국에서 오바마 케어가 도입될 때 했던 것 같이, 대통령을 포함해서 그 행정부의 추진세력이 광범위하게 토론에 참여하고 국민들을 설득하는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아… 물론 이분들이 토론이나 설득 그런걸 잘 하는 분들이 아니므로 그것에 자신없어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걸 박근혜 정부에서 이루어 질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다음 리더를 뽑을 때는, 수첩보고 읽는 것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실용 혹은 중도의 탈을 쓴 극우 정치인을 좀 구별해내는 방향으로 사회가 진화나가면 좋겠다.
지금 국정화 논의에 대한 싸움도 물론 할 가치가 있지만, 좀 더 장기적으로… 상식과 논리와 토론이 통하는 정치, 사회를 추구하고 기대하는 일들이 나오면 좋겠다.

3. 좀 훌륭한 보수 지도자가 한명쯤 나오면 좋겠다.

Arguably, 김대중이나 노무현은 좀 더 개혁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정치가로서 나름대로 의미있는 presence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명박이나 박근혜는 그에 견주기 어렵다.
비록 나 같은 사람이 동의하기 어려운 정책을 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좀 제대로된 보수 정치 지도자가 나와서 그 입장을 효과적으로 대변하고 설득하는 일이 한번쯤 있으면 좋겠다.
맨날 자기 뜻에 반대하면 종북이니 좌빨이니 그런 유치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철학을 가지고 설득하고 토론할 줄 아는 사람.
만일 그런 사람이 나온다면, 나는 비록 그 사람의 정책적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치 발전을 위해서 그런 사람에게 투표할 의향도 있다.

적어도 지금은, 진보-보수의 싸움보다도, 상식-비상식 혹은 논리-억지의 싸움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진보-보수의 싸움으로는 진영논리 밖에는 남지 않게 되어 통합이 불가능하지만, 상식-비상식의 구도가 형성되면 진보와 보수가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민우의 학업

어제는 민우의 생일이었다.
이제 민우가 벌써 17살이 되었다!

민우는 유난히 얼굴이 어려보인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ㅎㅎ)
그래서 도무지 17살 같아 보이질 않는다.

최근 민우는,
학교의 workload가 커서 많이 힘들어했다.
하루에 3~4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일주일씩 보내야했던 적도 있었다.

결국 우리 부부가 step-in 해서, 민우의 aggressive한 class schedule을 좀 쉽게 만들어주었다.
Honor class 하나를 regular class로 낮추었다. (학교 교장선생님에게까지 사정사정 부탁을 해서 겨우…)

지난 9월에 첫 ACT를 보았는데, 처음 본것 치고는 아주 만족스러운 점수를 받았다. ^^

그렇지만, 적어도 학업에 관한한,
나는 민우가 자기의 능력에 꽉 차는 (혹은 넘치는) high ranking의 학교에 가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민우가 A급의 학교에 갈 능력이 되면, B+급의 학교 정도에 갔으면 좋겠다.
혹은 B급의 학교에 갈 능력이 되면, C+ 급의 학교에 가면 좋겠다.

나 자신이 비교적 ranking이 높은 학교들을 다니면서,
아… 저 친구가 이 학교에 오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행복했을텐데… 싶은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다.
가끔은 나 스스로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정말 학교생활을 하면서,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중요한 가치관들을 세워나가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살아가는 것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환경으로 가는 것이 제일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다행히도 미국은,
꽤 다양한 종류의 학교들이 있고, 그 학교마다 독특한 교육방침이나 커리큘럼등이 있는 경우가 많아, 좀 더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지않을까 싶다.

현재 민우는, Liberal Arts college 같은 데를 가고 싶어한다.
가서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한가지 문제는,
Liberal Arts 학교들이… 학비가 다들 많이 많이 비싸다. -.-;

기술의 윤리적 문제?

MIT의 technology review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다루었다.

(이미 읽은 분들도 있겠지만.)

소위, self-driving car를 만들때, 각각의 상황에서 어떻게 자동차가 작동하도록 만들어야 하는가?
(a)는 직진을 하면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회전을 하면 한사람만(+운전자)을 죽거나 다치게 하는 경우,
(b)는 직진을 하면 행인이 죽거나 다치고, 회전을 하면 운전자가 죽거나 다치는 경우,
(c)는 직진을 하면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회전을 하면 운전가가 죽거나 다치는 경우이다.

순전히 ‘공리적’으로만 생각하면,
a,b,c 모두 회전을 하는 것이 더 옳다고 이야기하기 쉽다.
왜냐하면 더 적은 사람이 다치게 되고, 혹시 운전자가 다치는 경우라 하더라도 운전자는 차 안에 있으므로 부상의 정도가 덜 할 가능성이 더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인위적으로 어떤 사람(들)을 선택적으로 다치게하는 것이 괜찮은 건가?
과연, 다른 사람대신 운전자가 죽거나 다치게되는 차를 소비자가 살까?
뭐 등등의 질문이 있게 된다.

Technology review에서 선택한 기사의 제목이 아주 자극적이다.
“Why Self-Driving Cars Must Be Programmed to Kill”

이루어지지않은 욕망 vs. 신앙적 침체

소위 예수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욕망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힘들어하는 것을, 신앙적 침체로 포장하는 경우를 참 많이 본다.

그 욕망이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닌 경우도 물론 많이 있다.
심지어는 그 욕망이 꽤 건강한 것인것 같아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건간에, 그 바람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그래서 마음이 힘이 드는데…
그것을 각종 신앙의 용어들을 사용해서 포장하고 기술하여,
(1)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정당화 하기도 하고
(2) 채워지지 않은 욕망에 대한 안타까움을 정당화 하기도 한다.

뽀대나는 직업을 가지고 싶은 욕망,
뭔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있고 싶은 욕망,
심지어는 어떤 종교적 성취를 이루고 싶은 욕망…

일단,
자신의 욕망을 너무 감추지 말고,
이러이러한 욕망이 있음을 좀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욕망의 어떤 부분이 자신을 집어 삼키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 욕망의 핵심에 들어있는 나를 깨뜨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것 없이,
그냥 vague하게… 욕망을 정당화한채,
각종 종교적 미사여구로 그것을 포장하고,
채워지지 않은 욕망을 신앙적 침체로 꾸미는 일을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파괴시킨다.

주님의 은혜가,
이런 나를 구원하시길 바랄 뿐이다.

New Job Transition (23)

지금까지 많이 job apply도 했고,
부지런히 linkedin 같은 데서 사람들도 찔러봤고,
몇군데 인터뷰도 했는데,
현재 아주 active하게 진행되는 곳은 딱 한곳이다.

phone interview 끝냈고,
on-site interview 끝냈고,
hiring committee 라는 곳에서도 통과 했고,
지난 금요일에는 그 회사 약간 높은 사람 한 사람과 따로 follow-up interview도 하나 더 했다.
hiring manager 말로는 중요한 review들은 다 끝난 거라고…
(사실, 이 사람이 나보다 더 안달이다. ㅋㅋ 내가 물어보지 않아도 지금 진행 상황이 어떻다고 수시로 연락해서 알려준다.)

생각같아서는,
여기 말고도 한군데쯤 더 진행되는 곳이 있으면 좀 더 마음이 넉넉하려니… 싶은데,
내가 2순위로 생각하고 있던 회사로부터는 영 연락이 잘 없다. 결정이 늦어지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안된 것인지.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내게 한번도 multiple offer라는 것을 허락해주신 적이 없었다.
꼭 그냥 딱 한군데만 갈 수 있게 해주셔서 별로 고민이나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냥 움직였었다.

그래도 어쨌든… 혹시 그 회사에서 offer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빨라야 앞으로 2~3주 후에나 offer가 finalize 될 것 같으니ㅡ
적어도 당분간은 더 백수를 해야할 듯 하다.

처음엔 백수로 있는 것이 많이 불안했고,
그 다음엔 백수로 있으면서 많이 공부했고,
그 다음엔 백수로 있으면서 많이 기도하고 묵상하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런 과정들도 많이 좀 정리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아직은 열심히 job search하고, 계속 apply도 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