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함과 하나님의 인도

가끔,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가슴 철렁하도록 미숙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20대 후반에,
도대체 무슨 신앙과 삶과 세상에 insight가 있다고…
마치 세상을 다 아는 것인냥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을 기억한다.

shallow한 passion과 더 shallow한 지식으로,
쉽게 모든 것을 재단하려고 했던 것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만일,
그때 내 생각이 정말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 속에서 현실로 이루어졌다면…
어휴… 정말 가슴 철렁한 일이다.

매 순간의 고민과 생각은 소중한 것이지만,
그 미숙함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이자 인도하심이 아닐까 싶다.

아마 지금으로부터 10년, 20년 후에는,
지금 내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회상해볼 수 있기를 정말 바란다.

무능함

무능함이 죄가 될 수 있을까?
쉽게 할 수 있는 대답은… “아니오”일 것이다. 무능함이 어떻게 죄란 말인가.

그런데,
내 삶을 돌이켜보면, (가정, 직장, 인간관계, 섬기는 일들…)
무능함을 죄로 여기는 경우를 흔히 경험한다.

가령,
직장에서 어떤 사람이 심각하게 무능하다고 생각해보자.
그래서 그 사람은 심하게 위축되어 있고, 그래서 더더욱 일을 더 잘 못한다.
그 사람이 일을 잘 못하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많은 고통을 겪는다.
주위의 사람들이 일을 더 해야하는 경우도 있고, 일을 다 해내지 못해 함께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신의 무능함으로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큰 해가 가해지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더더욱 무능함의 늪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어가기만 한다. 그럴 수록 주변 사람들의 고통은 더더욱 심해지기만 하고.

자,
이럴때, 이 사람의 무능함이 죄일까?
이 사람의 무능함이 죄가 아니라면, 자신의 무능함에 대해서 스스로 움추리는 그 자세는 죄일까?
혹은, 주변 사람들의 자신으로 인한 고통에 대해 sensitive하지 못한 것은 죄일까?
그 무능함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사람의 positioning이 죄일까?
그렇지 않으면… 그저… 깨어진 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무능함을 함께 억울하게(?) 짊어져야 하는… 어그러진 세상을 비난해야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사람의 무능함을 죄로 여기는 것이 죄일까?

한가지 예를 그냥 들었지만,
인간 관계 속에서, 친구 사이에서, 직장에서, 기독교 단체에서도, 심지어는 가족 간에도 이런 일들은 있다.

그리고,
좀 더 큰 scale에서 보면,
가난한 이들을 사회적으로 도와주는 것에 대해서도,
그것이 그 가난한 이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인지, 사회에 책임이 있는 것인지 하는 debate을 해볼수도 있겠다.

물론,
무능함은 죄가 아니다.
무능한 이들은, 유능한 사람들이 손을 잡아 일으켜 함께 가야하는 이웃이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세상이, 얼마나 망가져 있으면….
무능함이 마치 죄인것 같이 생각되게 되었단 말인가!!!

이웃, 또 다른 우리.

사랑

“사랑”의 가장 기본적인 본질을 어떻게 정리해볼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을 ‘자기 희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게, 내 가족, 사람들과의 관계, 가치 등등을 생각할때,
사랑 = 자기희생 으로 거의 등식화 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한편 꽤 잘 정리한 것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다. ^^

그렇지만, 사랑을 자기 희생이라고만 생각할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요구하시는 사랑은 설명이 잘 되지 않는 것을 발견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사람을 깊이 사랑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 나를 희생해서 많은 것을 해주고자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 사람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바라는 것이 그 사랑의 본질 안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대상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바라는 것은, 이기적인, 그래서 버려야하는 욕심이라고만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랑을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 역시,
그분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내 모든 것을 던지는 것 (헌신) 이외에도,
그분을 원하고, 그분을 기뻐하고, 그분과 대화하고 싶어하고, 그분을 만나고 싶어하는… 그야말로 하나님에게 나와 함께 있어달라고 매달리는 그런 것이 내게 정말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단지 하나님과의 관계 뿐 아니라,
내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민우와의 관계에서도,
부모님, 동생, 가족, 친구,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이들, 내가 사랑하는 가치, 내가 사랑하는 모임 등등에서 모두.

지금 이 나이 정도면,
인생의 절반은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텐데,
나는 아직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고 살고 있는 듯 하다.
 

Over-Communication

나는,
한 말을 또 하는 것, 들은 이야기를 또 듣는 것을 참 잘 참지 못한다.

한참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는데,
누가 나를 붙들고, 이미 알고 있는/듣고 있는 이야기를 5분씩 장황하게 할때면…
어휴… 정말 복창이 터진다.
(대개는 그렇게 대화를 시작한 시간으로부터 그런 대화를 끝내는 시간을 시계로 정확하게 잰다. -.- 어휴… 이번엔 자그마치 6분 42초나 걸렸네!!! 이런 식이다.)

내가 이런 short-temper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
나는 내가 한 말을 또 하는 것도 극도로 조심하는 성향이 있다.
한번 이야기하는 것을 또 한번 하는 것은, 상대에 대하여 큰 실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내가 한번 이야기한 것을, 상대가 다 이해하지 못했거나, 기억하지 못할 경우에는,
크게 당황하는 경우를 경험한다.

“그거 3주 전에 전화로 다 이야기했고, 두주전 이메일로 한번 더 나눈건데, 기억 못하세요? “
 
그런데…
그렇게 over-communication을 피하고자하는 내 의도에는,

1. 내가 연관된 대화 /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화의 내용은 상대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선
2. 나와 같은 관심사 / 생각의 시작점에 있지 않은 사람들에대하여 배려하지 않음
3. 사람과의 관계보다는 일의 효율성에 훨씬 더 큰 비중을 두는 사랑없음

등등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나를 위하여, 나와 함께 하는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한편으로는 효율적인 communication을 위하여^^)
over-communication을 더 많이 생활화 하는 것이 필요한 듯 하다.

기쁨과 사람

어떤 사람을 보면서 기쁜 것은,
그 사람이 가져다주는 유익 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을 그저 사랑하기 때문일까?

(나는, 지난 주말… 참으로 기뻤다. ㅎㅎ)

첫번째 사진은,
우리 부모님께서 손주 (민호)를 stroller에 태우고 산책을 하시며 기뻐하시는 모습 

두번째 사진은,
지난주말, 뉴욕에서 몇몇의 간사들과 함께 했던 모임 

 

표정

요즘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예비선거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래서 후보 토론회 방송과, 그것을 보도하는 뉴스를 많이 접하게 된다.

내가 요즘 인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후보들이, 특히 Mitt Romney가 상대 후보가 자신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할때 짓는 표정이다.
이 표정이 정말 마음 에서 우러나는 표정일까?
물론 아닐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약간 smile 하는 표정, 그러나 진지한 표정을 지음으로써, 이를 통해서 많은 긍정적인 message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Romney라면, 특히 Gingrich 같은 사람이 말도 안되는 x소리로 떠들고 있을때에는, 표정이 울그락 불그락 해질 것 같은데… ^^

한편 가식을 싫어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 respect 라는 자세를 가지는 의미에서,
그리고 또한 궁극적으로 내 message와 내 의사를 제대로 전달한다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내 shallow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것은 성숙의 표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Something I need to work on really hard…

참고로 나는 Romney의 지지자는 전혀 아니다. 그리고 Romney가 매우 성숙하다는 식의 argument를 하는 것도 아니다. Romney가 얼마나 ‘성숙한’ 사람인지는 알 수 없으나, Romney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성숙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가 매우 잘 refine된 정치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USA today에 나오는 candidate match game을 해보면, 나는 도저히 공화당 후보를 지지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나온다. ㅎㅎ

하루 더?

어제를 다 지내고 생각해보니,
어제는 ‘하루 더’ 있는 날이었다. ^^

2월 29일은 매년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야말로 보너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일 텐데…

그 하루를 시작하면서,
“아… 오늘 이렇게 보너스로 주어진 시간을 정말 의미있게 보내야겠다”
고 생각했다면…
아마 어제 나는 다소 다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지 않았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매일의 삶은 그저 내게 은혜로 주어진 것이다.
정말… 그저… 은혜로.

어제 그렇게 appreciate 하면서 살지 못한 분량을,
오늘이라도 좀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그리고… 최소한 이 사순절 기간 동안만이라도, 매일의 삶 한 순간 한 순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을 좀 더 해보고 싶다.
(세상에 나처럼 감사할줄 모르는 사람이 또 있을까… -.-;) 

사랑은….

Love Makes You Vulnerable.
사랑은 당신을 다치기 쉬운 사람으로 만든다.

사랑을 하면, 그 사랑하는 대상에게 나를 내어주기 때문에,
vulnerable 해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강해지려는 자세는,
그렇기 때문에 매우 이율배반적인 것.

그리고 또 한편,
어떤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척도는,
그 사람 앞에서 내가 얼마나 vulnerable 해지느냐 하는 것이 될수도 있다.

그 사랑의 궁극적 모습은…
다른 무엇 보다도 역시,
십.자.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처절하게 vulnerable 해지셔서,
그저 아무 저항도 없이 처형을 당하는 어린양의 모습으로 계신 하나님의 아들.

나는,
내가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vulnerable 해지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그 vulnerable 한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내가 vulnerable 하다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고 개선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지?

짧아진 출장

원래, 28일까지 출장을 다녀올 예정이었으나,
떠나기 바로 전날, 일정이 변경되어서 몇가지 일정을 취소하고 지난 금요일에 돌아왔다.

금요일 아침 9시 반에 SFO 공항 도착, (비행기 안에서 약… 3시간쯤 잤다.)
회사에 10시 반에 office 도착.
오전에 일하고,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지내고,
또 일하고,
오후에 미팅 하나,
잡일 몇개 처리하고,
민우 픽업해서 집에 와서는…

온 가족이 외식!!
사실은, 지난 2월 16일은, 나와 내 아내가 결혼기념일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첫데이트 기념일(!!)이다. 그날 비행기를 타고 휙~ 날라가는 바람에 그걸 지키지 못해서… 뒤늦게 그걸 축하. 스페인 식당에 가서 난생 처음 먹어보는 이상한 음식을 먹었다.  뭔지 잘 몰라 많이 시키는 바람에 배가 터지는줄 알았다. ㅋㅋ
(사실은 그게 16일인지 15일인지 정하기가 좀 애매하긴 하다. 15년전, 15일 밤 늦게 만나긴 했지만, 함께 있다가 용기가 없는 내가… 머뭇거리다가 자정이 좀 지난 시간에 고백을 하는 바람에… 그때야 데이트를 시작한 셈이므로…. ㅎㅎ)

그리고 나서 집에 도착하니 8시 반인가…
바로 쓰러져서 잠이 들어서는….
토요일 아침 10시반에 잠이 깨었다! 
(자그마치 14시간이나 잤다!!!!)

이제.. 오늘에야 제대로 원상복귀를 하는 셈인데…
아, 아직도 시차가 완전히 적응되지는 못한 듯 하다.

블로그 쉽니다. (2월 17일 – 28일)

오늘부터…
3월 첫째주말까지,
총 비행기를 타는 거리가 2만 마일이 넘을 것 같습니다.
(아마 3만마일은 안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블로그에 글을 정기적으로 쓰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단 28일까지는 정기적으로 글을 올리는 것은… 잠시 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