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1)

올해도 참 많은 깨달음과 감동과 숙제를 가져다준 집회였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소망을 발견하였다.

그 많은 것들중 일부를, 다음 몇번의 글을 통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얼마나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우선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참 벅차게 만들었던 것.

한인 디아스포라 청년의 10가지 기도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의 구속만이 인류 구원의 유일한 소망임을 고백하며 주님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이 구속의 은혜를 값없이 나에게 주셔서 나를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경배를 드립니다.

둘, 매일 정기적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성실히 가질 뿐만 아니라 이 묵상한 말씀을 적용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셋, 정기적으로 시간을 떼어 내 이웃과 조국과 한민족을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나에게 부담으로 주시는 적어도 한 나라 혹은 민족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적어도 1년을 그 나라를 위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넷, 내가 속한 지역 교회 속에서 지체의 원리에 따라 섬기게 하여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조건없는 아가페 사랑이 나의 섬김 가운데에도 담겨서 교회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섯, 전공분야를 공부하거나 연구함에서, 그리고 직업의 영역에서, 시간과 물질을 청지기처럼 사용하고, 성실함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전공의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이 선포될 방법들을 구하고 끊임없이 탐구하기를 원합니다.

여섯, 말씀의 절대적 가치를 따라, 치우침 없는 신앙생활을 항상 견지하고, 또한 절대적인 말씀의 기준을 따라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에 손해를 보더라도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일곱, 성서한국, 통일한국, 선교한국의 장래를 준비하기 위해 맡은 공부와 연구를 성실하게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남북의 모든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사회의 각 영역에서 거룩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금 성실히 공부하고 연구하여 준비하기를 원합니다.

여덟, 미국 사회 속에서 한국인 혹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미국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는 역할이 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미국의 도덕과 문화에 거룩함이 회복될 수 있도록 힘써 기도하고, 내가 속한 커뮤니티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홉, 이웃과 직장에서 한 학기에 적어도 한 사람에게 복음전도하는 삶을 살 뿐만 아니라 사회 정의에 관심을 두고,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겠습니다.

열,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고, 작은 예수로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내 성품과 삶과 섬김을 통해 선포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Growing up into Christ, Staff Edition – 5. 사람들을 징검다리 삼아 주님을 닮으십시오.

KOSTA를 섬기다보면, 참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현재 KOSTA를 섬기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과거에 KOSTA를 섬겼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설’과 같이 우리에게 내려오고 있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저 존경이나 감동의 수준이 아니라, 경외감마저 들기도 합니다.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KOSTA를 쓰시고 계시다는 중요한 sign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며 몇가지를 추구해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이렇게 존경할만한 분들중 ‘스타일’이 맞는 사람들을 찾아 그 사람을 따라해보도록 노력해보십시오.
저는 간사 초창기에는 어떤 선배님들의 말투조차도 따라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
그러나 이것은 때로 trial-and-error가 필요한 과정입니다.
따라하다보면 웬지 나와는 맞지 않는 것을 발견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분들을 찾아서 따라해볼수도 있겠지요.

둘째, 그러나 그 존경하는 사람들의 ‘한계’를 발견하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이것은 그 사람의 성격이 약점이 될 수도 있고, 논리의 헛점이 될 수도 있고, 경험의 부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두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그 사람을 절대화하지 않게되고요, 두번째는 그 사람을 뛰어넘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세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무엇이 혹은 누가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만들고 있는지 하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결국은 ‘무엇’은 복음이고, ‘누구’는 하나님이시겠지요.
그렇지만 너무 그렇게 쉬운 대답을 뽑아내기 전에, 좀더 깊이 관찰하고 생각해보십시오.

결국 우리는,
사람을 따르거나 닮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을 징검다리 삼아, 주님을 닮고 따르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KOSTA를 섬겼던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성숙시키셨던 것 이상으로,
아니, 적어도 KOSTA를 섬기면서 제가 성숙할 수 있었던 것 이상으로,
지금 KOSTA를 섬기고 있는 우리 간사님들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성숙의 기쁨을 누리시면 참 좋겠습니다!

원래는, 총 8-9번 정도로 나누어 쓸 분량을 준비했습니다만,
글이 길어지면서 자꾸만 ‘늙은이 잔소리’와 같이 되는 것 같아,
일단 여기까지로 줄이려고 합니다.

간사님들을 알 수 있게 된건,
제게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blessing 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Growing up into Christ, Staff Edition – 4. 삶 속에서 군살을 빼십시오.

새해 결심으로 ‘운동’을 일기장에 적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알고 있습니다.
하루 20분 운동을 위해서는 총체적인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QT는 어떻습니까?
하루 20분 QT를 제대로 하려면 이것 역시 lifestyle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KOSTA를 섬기는데에도 그런 lifestyle의 변화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제 경우에는 완전히 제 삶의 패턴이 바뀌어야만 했습니다.

자투리 시간까지도 알뜰하게 쓰고,
쓸데없이 web surfing 하는 시간이나,
시간을 많이 들이는 취미활동도 접어야 할수도 있습니다.

내가 꽤 essential 하다고 생각했던 내 삶의 요소를 단순화 시키는 일이 아마도 필요할 것입니다.

취미활동, 여가활동 등이 물론 죄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KOSTA를 섬기는 데에는 때로 그런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것 조차도 포기해야 할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성숙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요?

이런 혹독한 훈련과정을 거치면,
삶이 매우 건강해 집니다.
삶 속에서 ‘군살’이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관리를 하는데 있어서 참 많은 도움을 얻습니다. 이런 과정을 많이 반복하면, 정말 ‘시간관리의 달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 과정은 물론 고통스럽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정말 많이 바빠서 힘이 들때,
이를 악물고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견디어 보십시오.

정말 시간이 없어 힘이 들때는,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 정말 이렇게까지 저를 몰아가시깁니까. 네, 이거 한번 하는데까지 버텨보겠습니다”
푸념조로 기도하며 견디었던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똥배가 나온 마라톤 선수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당연히 없지요.
왜냐하면, 마라톤 선수는 훈련을 철저하게 할 뿐 아니라,
식사, 기호식품, 취미활동등 삶의 많은 부분…. 그야말로 lifestyle을 바꿉니다. 
그렇게 해야만 최적의 기록을 낼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훈련을 받고 나면,
그런 사람에게 동네 한바퀴 뛰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겠지요.

혹독한 시간관리 훈련, lifestyle 최적화 작업을 통해서,
우리가 말과도 경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적어도 제게는,
KOSTA가 그러한 큰 선물을 주었습니다. 

Growing up into Christ, Staff Edition – 3. 단순함을 통해 겸손함을 배우십시오.

KOSTA를 섬기다보면 도대체 이런 단순 노동이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그저 소모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 ‘뽀대’가 나는 일을 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내가 맡은 일은 뭔가 지나치게 dry 하거나,
육체적으로 힘들기만 하거나,
여러가지 일들이 복잡하게 꼬여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뭔가 ‘변방’ 혹은 ‘한지’에 내어 던져져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실망하기도 합니다.

내 IQ의 절반정도만 되더라도, 지금 하는 일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지만,
이처럼 드러나지 않는, 단순한 일을 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유익이 있습니다.
늘 자신을 드러내고자하는 우리의 이기적인 죄성과 싸우는 힘을 길러줍니다.

저를 아는 분들은,
제가 “겸손함” 이라는 성품으로 특징지워지지 않는 다는 것을 다 아십니다.
저는 특별히 겸손하지 못한 것이 제 아주 큰 약점 가운데 하나 입니다.

그러니,
제가 처음 이런 허드렛일들을 맡았을 때, 느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렇지만,
꾸준히 그 일들을 반복해가는 과정 속에서,
나를 드러내지 않는 법,
일을 통해 내 업적을 쌓는 것 보다 수혜자의 유익을 구하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도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법등을 훈련하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심지어는 가정에서도 이런 훈련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막장 노동’을 통해서,
겸손함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나를 드러내고자하는 치졸하고도 더러운 내 죄성과 치열하게 싸우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맺어진 열매들은,
분명히 여러분의 일상 생활에서,
다른 사역의 현장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Growing up into Christ, Staff Edition – 2.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주목하십시오.

일을 하다보면,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려는 노력을 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소중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중요한 자세이겠지요.

그렇지만,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유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내 능력이 다해가는 것을 경험하거나,
시간, 체력, 사람, 돈 등이 부족하거나,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 같이 느낄때…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며 도움을 구하게 될 것 같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경험하곤 합니다.

오히려 그런 부족함이 절실하게 느껴질 수록,
panic 상태에 빠져 그 부족함을 채우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깊은 절망에 빠지곤 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지난 26년간 우리의 능력이나 우리의 시간, 우리의 체력, 우리의 힘, 우리의 재물, 우리의 지혜로 여기까지 온 것이라면,
우리가 했던 모든 일들은 결국 헛된 것일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KOSTA를 이토록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것이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에 의해 이끌려 왔음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방향으로 완벽을 추구하지는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와 우리가 섬기는 KOSTA를 모두 한꺼번에 죽이는 일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 하지만,
우리의 최선으로 인해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임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조금만 눈을 열어,
우리의 지혜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하나님께서 놀랍게 일하시는 것을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십시오.

때로는 하나님께서 놀랍게 일하시고 계신데,
우리가 그저 우리 앞의 일에만 정신을 빼앗겨,
더 큰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훈련을 섬기면서 제대로 하게되면,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자세에도 큰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정말 성숙해지게 됩니다.
정말 손에 땀을 쥐도록 힘들어서 버티다가 하나님께서 왕창 그분의 일을 이루시는 것을 짜릿하게 경험하게 되면,
그것에 붙들려 사는 것에 깊이 빠지게 됩니다. 

혹은 반대로 말하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는 사역자가 되는 일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기대어 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일로부터 출발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당연하지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이 우리의 기대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우리의 기대를 완전히 묵사발시키시면서 당신의 일을 시작하시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은 항상 우리의 뜻과는 비교될 수 없읍니다!)

만일 우리가 섬기는 이 일이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주저앉는 일이 혹시 생기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능력이 모자르게 되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능력만으로 마치 이 일이 되는 것 같이 착각하게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밤을 새워 열심히 섬기는 것이 중요하지만,
때로는 과감하게 하나님께서 해주시도록 올려드리십시오.
빈 구멍을 채우는데 많은 에너지를 들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도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들이십시오.

우리는,
그저,
무익한 종일 뿐입니다. 

Growing up into Christ, Staff Edition – 1. 성숙을 목말라 하십시오

얼마나 많은 우리 후배 간사님들이 이 글을 보는지는 모르지만,
금년 주제를 묵상하며,
지금쯤 여러가지로 땀을 흘리고 있을 모습을 생각해보며,
우리 후배 간사님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음 몇번의 글을 통해서 좀 풀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KOSTA를 섬기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선물을 많이 받았습니다.
KOSTA를 섬기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었고,
저 같이 형편없는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KOSTA를 통해서 받았던 선물 가운데 빼 놓을수 없는 것은,
KOSTA를 섬기는 일을 통해서, 제가 많이 성숙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KOSTA만이 그런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은 물론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을 산다면 누구든지 그런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지금의 제 모습을 알고 있는 어떤 사람들은,
“애게, 성숙한게 고작 그 모습이야” 라며 웃을 수도 있겠지만,
15년전 제 모습은 지금의 제 모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유치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KOSTA를 섬기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루 하루 극기훈련을 하는 것과 같이 힘든 시기가 많았습니다.
마음이 무너지듯 아파서 고통스러워 하기도 했고,
섬기지 않았다면 하지 않았을 고민과 갈등도 많이 겪었습니다.
KOSTA 그만 섬기겠다고, 도저히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선배님들께 이야기했던 것이 적어도 3-4번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지만,
KOSTA를 섬기지 않았더라면 결코 성숙하지 못했을 성숙을 경험했습니다.

정말 고통스럽도록 힘든 그러나 기쁘고 보람있는 섬김의 기간들을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제게 주셨던 성숙이라는 선물을,
저는 제 후배 간사님들 모두가 저보다 더 풍성히 누리셨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혹시 지금 겪고 있을 어려움 속에서,
섬김의 끈을 고집스럽게 붙드시도록 기도하고 응원합니다.

섬김의 과정에서,
혹시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땜빵하고 넘기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섬기지 않으면 삶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열매를 간절히 목말라 하십시오. 

제가 우리 후배 간사님들을 아끼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제게 섬김의 과정을 통해서 혹독하게 훈련시키신 그 과정이 여러분에게도 역시 혹독하게 느껴지길 진심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악담이 아니라 blessing임은…
깨어진 세상 속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하나님 나라 백성만이 깨달을 수 있는 역설이겠지요. 

앞으로 몇번의 글에서,
어떤 성숙을 기대하고 추구할 수 있는지 하는 것을 한번 풀어보겠습니다.

I’m broken

처음 복음에 눈을 떴을때,

나는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었다.
내가 눈을떠 보게된 이것이 진리라면, 내 삶의 근원부터 모든 것이 달라져야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내가 스스로 편안하게 생각하던 내 모습이 내 진정한 자아가 아니었다.
복음의 밝은 빛이 어두운 나를 비추었을때, 나는 깨어진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후로 몇년동안, 그 깨어진 것을 고쳐가시는 주님의 일방적인 작업에 나는 정신없이 따라갔었다.
나중에 성경공부를 통해 배우게 된 것은, 그것이 ‘성화’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2011년 1월의 내겐, 그  역동성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있다.
나는 현재의 내 모습을 너무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내 모습을 지켜내는데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며 살고 있는 듯 하다.
It’s time for me to be renewed, refreshed, re-started…

하드코어 엔지니어


중학교 때 읽었던, 상대성 이론을 쉽게 설명한 교양서적 한 권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의, 아주 짧고 쉬운 책이었는데 저는 그 책을 몇 번씩 다시 읽으며 흥분했었습니다. 사물의 근본을, 세상의 이치를 밝혀내는 물리학에 저는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은 제가 제 아버지를 따라 의사가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저는 의사가 아닌 이공계를 택했습니다. 물리학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졸업했던 대학은 1학년을 마치고 2학년 때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하는 시스템을 택하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제가 원하는 전공을 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물리학을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꿈꾸었던, 세상의 근본적인 원리를 파헤치는 그런 위대한 학자가 될 자신이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생각했던 제 모든 생각이 참 미숙한 것이었지만, 그 당시엔 나름대로 심각하게 고민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나마 물리학과 매우 가까워 보이는, 그러나 ‘순수과학’이 아닌 ‘공학’의 범주에 드는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공학을 선택하면, 꼭 최고가 되지 않더라도, 밥을 먹고 살 것 같다는 생각해서 결정한 나름의 타협이었습니다.


그렇게 선택한 재료공학은 제게 매우 재미있는 학문 분야였습니다. 열심히 공부했고, 성적도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제겐, ‘순수과학’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그런 것이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사 과정 지도교수를 정할 때도 지나치게 실용적인 연구를 하는 실험실보다는 더 자연과학적 원리를 파헤치는 실험실을 택했습니다. 박사과정을 하는 중에도 그 원리를 파헤치는 것에 대한 강박은 계속 되었습니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내용으로 박사과정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고 중간에 논문 주제를 바꾸어 가면서까지 ‘현상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 몰입했으니까요. 제게 있어 공대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것은, 안정적인 밥벌이를 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순수과학을 하는 적절한 타협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제 생각은 실리콘 밸리에서 하드코어 엔지니어들을 만나면서 철저하게 깨어졌습니다.


제가 일하는 그룹의 랩 디렉터는 미국의 탑 스쿨 박사입니다. 이 사람의 주도 아래, DVD+RW 기술이 개발되었습니다. 학력으로나 경력으로나 소위 ‘스펙’이 좋은 사람이지요. 랩 디렉터인만큼, 아무래도 행정적인 일들을 많이 다루어야 합니다. 높은 사람들과 회의도 많이 있고요.  어느 날 퇴근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에 실험실에 들어가 보니 이 사람이 열심히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열중해서 여러 샘플들을 측정하고 있는 그에게 제가 왜 그러고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오늘 온종일 높은 양반들과 회의를 하느라 몸과 마음이 다 피곤해. 정말 지루한 회의를 하느라 지겨워서 혼났어. 그래서,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하다가 집에 가야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아서 말이야. 참, 아까 네가 이야기했던 고장 난 실험장비 있지? 내가 그거 좀 손봤어. 이제 잘 될 거야.”


이 사람에게 있어 실험은 스트레스 해소를 하는 ‘즐거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저희 그룹에는 이런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기 돈으로 몇백 불 하는 새 전자제품을 사서 분해를 한 후에 새롭게 알아낸 것을 나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학 때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 전기 자동차를 자기 손으로 직접 디자인해서 만들어본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집에 공작실(machine shop)을 두고 필요한 샘플을 자기 돈으로 만들어와서 회사에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 정말 뼛속 깊숙이 공돌이들/공순이들 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열정적으로, 그리고 재미있고 신나게 일하는 우리 그룹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느냐고 물어보면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 세상에서 쓰이는 게 신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물론 여러 가지 필요 때문에, 논문을 쓰는 일을 하기도 하고, 학회에 참석도 합니다. 저희 그룹에도 학계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사람들도 좀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있어 일하는 가장 커다란 동기는 발명(invention)입니다. 발명 자체가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열심히 배우고 다른 이들과 나누었던, 창세기의 문화명령에 근거한, 소위 ‘기독교 세계관’에 따르면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는 일 가운데 많은 일은 하나님의 창조활동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피조세계를 다스리라는 명령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류에게 피조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대리자(agent)가 되어 창조활동을 하라는 의미를 담으셨다는 것입니다. 가령, 플렉서블 디스플레이(flexible display: 자유롭게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를 세상에 만들고자 하는 하나님의 창조의지는, 그런 기술을 개발하여 발명하고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저와 같은 엔지니어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대학 때부터 그렇게 열심히 기독교 세계관 스터디도 하고, 책도 읽고, 친구들과 열띠게 토론도 하고, 그렇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도 했었는데, 막상 크리스천 엔지니어로 사는 제가 그것을 제 삶의 현장에서 충분히 깨닫고 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순수과학에 대한 막연한 헛된 동경에 사로잡혀, 그리고 기술을 개발해서 세상에서 쓰이게 하는 것이라는 공학의 원래 의미를 잊어버려, 그저 논문 쓰고 학회 가서 발표하고, 내 이름 내고 유명해지는 것에 목매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논문 쓰고 학회 가서 발표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적어도 엔지니어 대다수가 직업활동의 핵심과 목표로 삼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가 하는 일의 의미를 재발견한 이후, 저는 더 열심히 일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 때부터 마음에 두셨던, 전 피조세계에 하나님의 선한 창조가 가득 차게 되는 일, 그리고 예수의 삶과 사역과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구체화한 새 창조(new creation)를 이 땅에 구현하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저 자신을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제가 제 직장 생활 속에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구현해나가는 일에는 많은 실제적 어려움도 있고, 여러 가지 유혹도 있습니다. 회의가 있기도 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아 보일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직장 생활 속에서 그것을 더 배워가며, 지금 이 시점에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서 그리스도인 엔지니어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발견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흥분되도록 신나는 일입니다!

이 시대에 엔지니어로 열심히 일한다는 것

제가 자주 들르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제가 그곳에 글을 쓰거나 하는 형태로 참여하지는 않지만 거의 매일 들러서 올라오는
글들을 보곤 합니다. 그곳에는, 지금 대학생으로부터 제 나이 정도 되는 사람에 이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나눕니다. 대부분은
공대생/공학자/엔지니어입니다.

이들은 자신을 스스로 ‘미싱공’이라고 칭합니다. 그 논리는, 60-70년대 한국의 경제 성장이 ‘미싱공 언니’들의 노동착취를 통해
이루어졌다면, 21세기 초반 한국의 경제 성장은 현대판 미싱공인 엔지니어들의 노동착취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월화수목금금금’의 생활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45세면 다니고 있던 회사 나와서 뭐 하며 살지 막막해지는
현실은 40년 전 미싱공 언니들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푸념입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이겨보겠다고, 동생들 학교 보내겠다고 시골집을 나와서 상경, 공장에 들어가 하루 15시간씩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예전의 ‘미싱공 언니’들에 비하면 물론 지금 엔지니어들은 여러 가지 처우가 훨씬 좋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엔지니어들이
느끼는 박탈감이랄까요 그런 것이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저는 수년 전 KOSTA/USA 집회에서 손봉호 교수님께서 하셨던 한마디를 잊지 못합니다. 제가 그때까지 씨름했던 학문/직업세계와
신앙의 통합에 관하여 가장 명쾌한 그림을 그려주는 말이었습니다. 손봉호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후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이 땅의 모든 것들을 그분의 주권 아래 회복하시는 그때가 되면 (하늘나라에 가면), 그곳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주님과 함께 열심히 땀을 흘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노동의 기쁨이 그때는 회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도인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올 세상의 삶 (life to come)의 가치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삶과 사역과 선포와 죽음과 부활로 선포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가치, 새 창조가 이제 이 땅에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고 그 가치대로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사는, 전혀 다른 세계관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월화수목금금금’을 하며, 자신의 상황에 절망하는 21세기 초반의 엔지니어들에게,
예수께서 선언하신 이 새로운 세상, 새 창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 고민을 가지고 실제 삶을 살아내는 일은 이론적으로 단순하게 이야기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제가
대학생 때, 대학원생일 때 열심히 배웠던, 창조-타락-구속의 소위 ‘기독교 세계관’의 틀은 현실에서 적용하는 것이 너무 벅차게
느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과연 그것이 적용 가능한 이야기이긴 한 걸까 하는 좌절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결국, 그 세계관을
이야기했던 이들은 다들 교수님이 아니었던가. 정말 ‘세상’에서 뒹구는 공돌이-미싱공들의 현실에는 그저 맛있어 보이는 자린고비의
굴비는 아닐까.

제 나름대로 1980년대 후반 소위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것을 접하면서 그야말로 가슴이 벅차게 뛰는 경험을 했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이원론의 극복이라는 가치를 끄집어내서 살다 보니  심하게 세속화되어버린 저 자신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소위 ‘빡센’
세상을 접하면서 그 기독교 세계관(혹은 개혁주의 세계관)의 프레임워크가 정말 유효하긴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기도 하였고요.

물론 제 나름대로 이에 대하여 정리해가는 생각이 있긴 합니다만, 그리고 기회가 되면 이곳 eKOSTA 에서도 그런 내용을 나누며
많은 다른 분들의 생각을 듣고 싶기도 합니다만, 오늘의 글은 이 정도에서 애매하게 맺어보려고 합니다. (혹시 댓글 등으로 제
생각에 ‘딴죽’을 거시거나 추가 설명을 요구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그렇게 좀 더 이야기를 진행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제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것은, ‘회복된 그 세상에서 예수님과 함께 즐겁게 노동할 것이다.’라는 그 그림입니다. 도대체
지금 이 시점에 엔지니어로 열심히 사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고 어떤 분들이 제게 물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
살면서도 저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저 영원한 나라가 품는 가치 가운데에는 온전하게 회복된 노동도 있다고,
그리고 비록 여러 가지 현실이 여전히 어그러진 모습 속에 있지만, 나는 그 속에서 그 회복된 가치가 마치 지금 현재의 가치인 것
같이 살아내는 특권과 책임을 가진 사람이라고 그렇게 대답을 할 것 같습니다.

http://www.ekosta.org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작년이었던가요, 제가 어떤 지방에 가서 다른 교회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gpKOSTA를 마치고 제가 아는 어떤 분이
담임목사님으로 계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제게 주일 예배에서 간증해 달라고 하셨는데, 저는 제 간증을
하는 것을 늘 불편하게 생각할 뿐 아니라 간증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어서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께서 워낙 완강하게
말씀하셔서 울며 겨자 먹기로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형편없는 간증 동영상이 제 아내에게 입수된 것이었습니다. 제 아내는 그 간증을 듣더니 다시는 다른 곳에 가서
이렇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도 듣기 어려웠다나요.

그 간증의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습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했다.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 공허함이 있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그 공허함이
해결되었다.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잘했던 공부를 어렵게 하심으로써 내가 하나님 나라 백성다움을 갖추어나갈 수 있게 해
주셨다.’

제 아내가 문제로 삼은 것은 간증의 전반부였습니다. 소위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식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반감만 주기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제 아내의 생각이 맞습니다.

eKOSTA에서 제게 ‘직장생활’에 관한 글을 써 보라고 권유했을 때, 저는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직장 생활을 하는 여러 가지 고민과 기쁨과 좌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 이야기가 마치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와 같은 식으로 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깊이 하지 않은 채 글쓰기를 허락한 것 같다는 우려가 그 후에 닥친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미국에서 소위 ‘명문학교’로 일컬어지는 곳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직장’으로 여겨지는 곳에서
일하였고,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진 실리콘 밸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직장의 안정성에 대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시대를 사는 다른 분들에 비하면 꽤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하는 내용도 소위
‘첨단’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직장생활에서의 만족도도 매우 높습니다.

그런 제가 제 사는 이야기를 쓴다면 여러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겠지요. 이렇게 미리 언급해둠으로써, 제가 엘리티시즘을 추구하는 것이라든지, 혹은 제 자랑을 하려고 글쓰기를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은 것인데, 제대로 전달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얼마가 될지 모르겠으나, 이런 자기소개와 변명이 뒤섞인 애매한 글로 제 eKOSTA 글쓰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제
직장생활에 대한 글을 쓰면서, 제 스스로 제 생각을 정리해볼 기회를 얻기 원함도 있으나, 무엇보다 다른 분들의 충고와 조언,
질책과 코멘트를 듣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인터렉티브한 대화가 오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http://www.ekost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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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부터 eKOSTA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주에 하나… 적어도 두주에 하나 정도는 쓰겠다고 결심하고 시작했는데, 자꾸만 글쓰기를 미루게 된다.
앞으로는 가능하면 매주 월요일은 eKOSTA 글로 여기 내 블로그에 올리겠다고 결심하고 해야 스스로에게 채찍질하는 효과가 있을 것 같아…
일단 처음 두편을 여기에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