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기도팀의 기도 인도

금식기도 기도 인도

북한의 사람들을 위한 기도
먼저 북한의 사람들을 위하여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소망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우리 주님을 믿는다는 이유 만으로 짐승 처럼 학대 받고, 가난과 억압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극심한 가난과 굶주림의 고통 속에서 고통받는 그들의 울부 짖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지하 교회 성도들이 그 믿음의 싸움을 지켜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이 말도 되지 않는 악한 체제 속에서 이들의 영혼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악한 영적 세력을 대적하는 기도
다음은, 북한을 묶고 있는 악한 영의 세력을 대적하며 기도하시겠습니다.
그 땅의 백성을 강력하게 붙잡고 있는 어두움의 악한 영들, 권세, 세상의 주관자를 파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우상 숭배의 뿌리를 뽑아 주시고, 폭력과 미혹의 영, 불신과 부정의 세력을 멸하여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북한 동포들이 속박에서 놓임 받고,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살아나고 하나님의 빛  아래서 회복되기를 기도합시다.
기도드리시겠습니다.
남북과 국제 정치상황을 위한 기도
이제, 남과 북의 정치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혹 그렇지 않게 되더라도, 이들의 정책과 정치가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화해와 평화를 향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북한의 사회가 좀 더 열린 사회가 되어, 우선 이들에게 최소한의 먹을것과 필요가 공급되게 하시고, 더 나아가 사랑과 회복과 평화의 방향으로 나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남북한을 감싸고 있는 강대국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잘 조정되고, 국제 정치적 상황이 세심하게 인도되어,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남한 내에서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나누어져 있는 한국 교회가 북한을 품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정치와 정책이 남북의 화해를 위해 사용되기 보다는, 남북의 관계가 정치와 정책에의해 이용당하기만 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하나님께 올려드리시기 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회개의 기도
또, 함께 회개의 기도를 드리기 원합니다.
북한의 고통이 계속 되고 있는 데도 그것에 무관심한, 이기적이고 사랑없는 우리의 모습을 놓고 함께 하나님께 통회하는 기도를 드리기 원합니다.
오랫동안 서독교회가 동독을 품고 사랑하고 지원한 것이 독일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 처럼, 한국 교회와 한민족 디아스포라 교회가 진심으로 북을 품고 기도해며 사랑해야 하는데, 우리의 종교적 만족만을 위하고 있는 모습이 가득함을 회개합시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섬기는 교회가 되기 보다는, 돈을 사랑하고, 권력에 취하고, 자기 만족에 머무르고 있는 모습이 화해화 평화와 통일의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눈물에 관심이 없이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함께 눈물 흘리기 원합니다.
탈북자들을 우리의 형제로 사랑하고 이들을 돕는 일에 게을리했음을 함께 회개합시다. 
어쩌면, 이미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이 많이 준비가 되었는데, 우리 교회가 사랑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하나님께서 통일을 지연시기키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지 못하고 돈과 명예와 쾌락에 이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성서한국, 통일한국, 선교한국
한국의 통일이, 온 열방으로 하여금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는 일로 연결되도록 믿음으로 기대합니다. 크리스찬 한인 디아스포라로서 남한, 북한, 통일을 넘어 열방을 품고 주 앞에 바로서는 코스탄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온 세상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 우리를 흩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해 달라고, 잃어버린 영혼을 바라보시는 애통하는 마음을 느끼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각자 서 있는 자리가 주님 보내신 거룩한 땅임을 잊지 않도록, 삶의 모든 영역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내어놓고 주를 섬기는 선교적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미국의 4천개, 전 세계 7천5백개의 디아스포라 한인 교회가 복음의 공동체로 견고하게 서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교회가 없는 마을에 교회를 세워 주시고, 성경이 없는 곳에 성경을 전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서 한국이 되고, 하나님께서 평화를 허락하시는 통일한국이 되고, 그리고 전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선교한국이 되도록 해 달라고 함께 기도합시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저녁 기도의밤 기도 인도

감사

26년 전 소수의 사람들에게 복음의 불씨를 붙여주셔서, 지금까지 코스타를 통하여 주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시고 수많은 한인 크리스챤 디아스포라를 사방으로 흩으셔서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이 증거되게 하신 아버지의 놀라운 일하심에 감사드리기 원합니다.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는 주제를 통하여 진리와 비진리의 구별이 흐려지고, 거짓과 악함으로 가득찬 이 세대를 조명해 주셔서, 저희가 이 세상 가운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말씀 해 주신 것을 기억하면서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빛되신 하나님의 말씀이 저희 개인의 삶과, 공동체와, 한민족 가운데 있는 서로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경건하지 못한, 주님의 성품과 전혀 닮지않은 저희의 모든 어두움들을 밝히 드러내 주셔서 연약한 저희 안에 아버지의 성품과 사랑으로 채워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코스타 기간 예배와 찬양을 통하여 저희 안에 있었던 아픔과 상처들을 만져주신 하나님, 미국 땅에서의 곤고한 삶 가운데서 쓰러졌던 저희를 “괜찮다” 토닥이시고 격려하시며 다시 일으켜 세워주신 하나님, 저희들의 가정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금 하나로 연합되게 하신 일,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여 구주로 고백하도록 따듯하게 만나주신 하나님,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에게 부어짐 바 되어 하나님보다 늘 먼저였던 우리를 죽게하시고 하나님의 주권을 다시 선포해 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기 원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말씀하시며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예수님을 닮아가며 자라나길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코스타를 통해 우리에게 매순간 역사하셨던 성령님의 기름부으심과 하나님의 일하심을 감사드리며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회개
우리 각자의 십자가를 회피하고 말씀에 의지하지 않았음을 회개합니다. 수 많은 좋은 말씀들을 들었음에도 주님의 부르심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삶에 실천이 없었던 것을 회개합시다. 영광스러운 복음을 entertainment로 여겼음을 회개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기 보다는,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거나 기분을 좋게하는 종교행위들에만 집중했던 것을 회개합시다.
옆에 있는 친구들이 아파하고 영적으로 죽어감에도 함께 섬기며 돌보기 보다는 그 사람들에 대해 민감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정죄하였음을 고백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해, 기독교가 조롱거리가 되어 버렸음을 가슴을 치며 주님께 아룁니다.   
또한 다른 종교인들에게 겸손하게 다가가지 못했던 우리의 무례함을 주님께 고백하면서, 우리의 잘못으로 그들이 더욱 마음을 닫고 복음으로부터 떠나가도록 했던 것을 회개합시다.
그리고, 우리들은 너무나 큰 사랑을 값없이 받았음에도 세상에서 조금의 손해도 용납하지 못하며 살았음을 고백합시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결심

우리 코스탄들이 그리스도를 닮아 거룩해지길 기도하기 원합니다. 이 거룩해지는 성화의 과정 속에서 믿음과 행함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 그 분량만큼의 행함이 따르도록 결심하며 기도합시다.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고, 상처 받은 이들을 향해 긍휼의 마음을 갖길 원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하는, 선하고 의로우며 진실된 사람들로 모든 코스탄들이 거듭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우리는 여전히 게으르고 이기적인 죄성이 있습니다. 이 죄성은 우리의 힘이 아닌,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해결됨을 압니다. 다른 이들을 존중하고, 약자에대해 긍휼한 마음을 갖도록, 예수의 영이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합시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
중보기도 학생 헌신자들이 함께 만들었던 기도 인도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요청하시고 물어보셔서 여기 올립니다.
한인청년디아스포라의 10가지 기도를 위의 기도 인도문과 함께 했습니다.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10)

소위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개인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을 신앙의 중심에 놓고 사는 것 같다.
또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신앙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고, 거대 담론이나 세계관과 같은 것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중심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던가, 죄성을 싸워 이기는 것과 같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라남’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소위 ‘진보적’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거대담론, 가치, 하나님 나라 등과 같은 가치에 충실하려고 노력도 하고,
또 그것을 강하게 소리높여 외치긴 하는데,
막상 그러는 도중에 자신이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노력을 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이 외치는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과도한 적개심을 나타낸다거나,
겸손함, 자신을 돌아봄과 같은 소중한 가치가 등한시 되는 것을 많이 발견한다.
이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라남’을 무시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하는 사람들 조차 심하게 나누어져 있는 가슴아픈 현실 속에서도,
그 두 그룹을 하나로 묶는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를 닮으려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야할까.

나는 개인적으로,
기독교의 가치가, 세상의 정치 권력에 의해 정복당해버린 세태를 몹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기독교는 세상을 뒤집는 힘이어야 하는데,
좌,우 모두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강화하는데 기독교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일들은 잊어버리는 것이다.

특별히…
나는 최근 (나를 포함하여) 우리 간사들을 보면서,
두가지 정도 걱정을 해왔다.

하나는,
우리가 추구하는 어떤 가치가 소중한 만큼, 그 가치를 담아내는 우리의 인격, 우리의 성숙함, 우리의 너그러움, 겸손함등도 역시 중요한데,
우리의 가치에만 너무 몰입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때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우리와 다른 가치를 가진 사람들을 포용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이 있었고,
뽀족해지기는 하는데 넓어지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는 때가 자주 있었다.
어떤 이들을 보면서, 그 사람이 우리와 무엇을 공유하는가를 보기 보다는 그 사람이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를 먼저 보는 자세라고나 할까…

두번째는,
언젠가 부터…
순수함,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 겸손한 헌신 등을 따를 모델로 생각하고 흠모하기 보다는,
탁월함, 명쾌함, 유능함 등등을 추구하는 것과 같이 느껴지는 때가 늘어났다.
아무개는 이런 일도 잘 한대, 아무개는 이런 것도 다 알고 있대..는 식의.
누가 얼마나 눈물을 뿌리며 기도하는지, 누가 얼마나 사람들을 품고 사랑하는지, 누가 얼마나 겸손한지, 누가 얼마나 순수한지 하는 것등이 다소 가볍게 여겨지게 되는 것 같고…

아직도 스스로를 간사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는,
지난 일년간 이 주제를 묵상하면서,
내가 그리스도를 닮는 일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역의 유능함/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의 10분의 1의 노력 만큼도… 내 성숙에 쏟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성숙이라는 것은, 신학 지식을 더 쌓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고, 시대를 꿰뚫는 통찰을 더 깊이 갖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런 신학적 지식이나 통찰도 중요하긴 하지만…)

나를 뽐내고 드러내려는 내 죄된 본성과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라던가,
다른이들의 필요를 채우기 앞서, 내 필요만을 채우려고 다른이들을 이용하는 내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 통곡하는 것 등은….
너무 오래 잊고 살았었다.

내가 그렇게 잘못된 길로 달려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나서, 우리 간사들을 보니…
역시 그런 성향이 너무나도 깊게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올해의 주제가…
내가 선로를 이탈한 기차와 같다는 것을 발견하게 해준 것 처럼,
우리 간사 공동체 안에서도 collectively 그런 돌이킴이 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빠릿빠릿하지는 못해도, 온 몸을 던져서 우직하게 헌신하는 모습이 고귀한 것으로 여겨지고,
내 눈에서 눈물이 말라버린 것을 안타까워하며 금식하고,
내가 섬기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무슨 짓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을 끊임없이 주시도록 계속 무릎꿇고,
유능함보다 겸손함을 훨씬 더 cherish 하는…
그런 ‘스피릿’이 제대로 불타올랐으면… 싶다.

(KOSTA/USA-2011 후기를 끝맺으며 쓰는… 이 글이… 내게도 참 아프다.)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9)

몇년을 반복해서 만나면서도 그 순수함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급속히 변질되는 것을 보게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약간 각도를 달리해서 생각해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성숙해 가는 사람이 있고,
시간이 지나도 긍정적인 발전을 별로 발견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이것을 2×2 matrix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순수함 유지  순수함 잃어버림
계속 성장해감  성장 + 순수함  성장 + 변질
성장이 없음  정체 + 순수함  정체 + 변질

1. 성장하면서 순수함을 유지하는 경우
이런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 한 사람을 안다면, 그 한 사람을 안다는 사실 만으로도 평생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KOSTA를 통해서, 이런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다. 그리고 그분들을 통해서, 나도 역시 그렇게 되고자하는 깊은 소망을 갖게 되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진 셈이다.

2. 성장하긴 하지만 순수함이 변질되는 경우
과연 이런경우에 그 사람이 달라진 것을 성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사람에게서 성장이라는 부분을 찾는다면, 그것은 사역의 기술이나 지식이 늘어난 것일 것이다.
때로, 이런 사람들을 1번의 유형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런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참 많다.
개인적으로 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함정에 빠지기 쉬운 것 같다.
이런 이들의 성장은, 사람들에게 독이 되어버리고 만다.

3. 성장은 없는데 순수함을 유지하는 경우
흔히 ‘신실한 사역자’에게서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경우가 아닐까 싶다.
몇년 후에 보았는데도 그 상태가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경우.
한편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도 그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안타깝게 여겨지기도 한다.
대개는 종교적인 사람들에게서 이런 유형을 많이 발견하게 되는데, 순수함과 종교성이 결합을 해서, 정체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도 꽤 있다.

4. 성장도 없으면서 오히려 변질만 되는 경우
….
더할 나위 없이…. 가슴이 아픈… 경우이다…

이상 네 부류의 사람들을 그 빈도수로 보면,

(성장 + 변질) > (정체 + 변질) >> (정체 + 순수함) >> (넘사벽) >> (성장 + 순수함)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 주제를 생각하며, 나 자신을 돌이켜보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다.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8)

KOSTA에서는 두부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첫번째 부류는 뜨려는 사람이다.
그야말로 KOSTA를, 자신이 뜨는 장으로 활용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순수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아주 불편해 하는 부류의 사람들인데, 사실 이런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

두번째 부류는 띄우려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agenda를 가지고 KOSTA에 참여한다.
그래서 자신의 agenda를 가지고 참석한 사람들을 띄우고(agitate, excite) 싶어한다.
이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다시 세부류로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첫번째는, 
이분들은 이미 자신이 충분히 떴기 때문에 KOSTA 집회에서 뜨는 것이 자신에게 더 이상 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꿈꾸는 더 큰 scale의 사역이나 계획등에 KOSTA를 활용하고 싶어하는 경우이다.
두번째는,
아직 자신이 충분히 뜨지 않았어도, 자신이 꿈꾸는 사역이나 뜻의 성공을 위해 KOSTA를 활용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다.자신이 뜨려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건강해 보이지만, 결국 생각해보면 이것도 역시 자신의 agenda의 성공을 통해 결국 떠보려는 것일 수도 있겠다.
세번째는,
진실한 의미에서 KOSTAN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띄워지길 소망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 구분이 그렇게 늘 명확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누구든 약간씩 그 motivation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난 몇년동안 적어도 KOSTA/USA에서는,

1번의 유형은 함께 할 분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고,
2-1번의 유형은 제한적으로 함께 하려고 했던 것 같고,
2-2번의 유형은 꽤 환영하며 받아들였고,
2-3번의 유형은 무조건 받아들였지만, 찾기가 어려웠을 뿐 아니라, 찾는다 하더라도 이분들이 KOSTA에 관심이 없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KOSTA/USA가 취하고 있는 이런 입장은 적절한 것일까?

..

그리고,
사실 KOSTA에 참여해서 섬기다 보면,
참여하여 섬기는 사람들이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잘 보인다.
막상 각각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감추려고 한다거나, 다른 동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너무도 이게 잘 보인다. -.-;
그런데 그분들은 자신이 그렇게 쉽게 읽히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내 불순한 동기와 행동도,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잘 읽히는 것이겠지… 민망한 일이다. 쩝.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7)

소위 ‘이상주의자’라고 비판을 받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들이 좀 있었다.
(참고로 나는 나 스스로를 ‘이상주의자’라고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들을 이상주의자라고 label을 붙이는 것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을 ‘so-called 이상주의자’라고 부르겠다. 그리고 나는 그 ‘so-called 이상주의자’들과 같은 노선에 있는 사람도 아니다. ^^)

참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so-called 이상주의자’들이라고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대단히 현실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so-called 이상주의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교회의 독이라고 여기고 그들을 ‘박멸’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so-called 이상주의자’들은 그렇게 비판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품고 가려고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so-called 이상주의자’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어떤 의미에서 비현실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고,
이 ‘so-called 이상주의자’들은  자신과 입장을 다르게 하는 사람들과 공존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단히 현실적인 접근을 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합운동의 차원에서 이 ‘so-called 이상주의자’들의 전략으로부터 배울 것이 훨씬 더 많았다.

물론 두 그룹이 처한 상황이, 한쪽은 힘과 돈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한쪽은 힘과 돈이 없기 때문에 그런 입장들을 취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볼수도 있겠지만…

연합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품고 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된 발견이었다.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6)

내가 ‘성화’라는 주제를 다룬다면…
다음과 같은 plot으로 다룰 것 같다.

1. 성화의 롤모델
먼저 그리스도인의 성화의 모델, 그 성화의 기쁨 등을 image로 혹은 example로 제시해주는 것이 좋은 opening이 되고, 이것을 다룰 중요한 motivation이 될 것 같다.

2. ‘은혜’에 대한 깊은 이해
복음의 기초로부터 복잡한 개념들이 출발해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원칙이지만,
특별히 성화라는 주제를 다룰 때, 지금 세대에게는 ‘은혜’라는 개념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가장 relevant하게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은혜를 복잡한 개념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그 은혜가 얼마나 무지막지할만큼 감탄할만큼 위대한 것인가 하는 것을 깊이 다루는 것이 basis로 좋을 것 같다.

3. 온전함으로부의 부르심과 현재 모습의 절망적 모습
온전함으로의 부르심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위대한 것인가를 다루고, 그러나 그것과 대비되는 현재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하는 대비를 깊게 해볼 것 같다. 이때, 1번의 은혜의 개념을 충분히 융합시켜서 다루지 않으면 종교적 율법주의로 흐르기 쉽기 때문에 주의해야 할 것.

4. 성령
성화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은 crucial하다.
따라서 성령에 대해 많이 그리고 깊이 다루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성령에 대하여 설명을 할때, 성령에 대한 오해의 부분을 너무 깊이 다루기 보다는, 성령께서 성도를 온전케 하시는 일이 어떠한 것인지 하는 것을 많이 설명하고, 그 성령께 자신의 내어 맡기는 삶에 대해 다룰 것 같다. 성령께 순종하는 것, 성령의 열매 등등도 시간이 되면 다룰 수 있을 것이고.
그리고 이때, ‘성도의 견인’ 이라던가… ‘하나님의 열심’과 같은 개념을 함께 다룸으로써, 성화에의 궁극적 소망이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다시한번 강조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아마도 그리스도와 우리의 상호내주(mutual indwelling)을 좀 더 깊이 설명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5. 고난
성화에 있어 고난은 거의 필수과목과도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루시는 사랑의 방법으로서의 고난을 다룰 것 같다. 
우리 안의 죄의 뿌리를 뽑아내는 하나님의 열심. 고난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사랑. 그로부터 얻어지는 열매…
이 부분에 사실 꽤 많은 시간과 내용과 에너지를 할애할 것 같다.

6. 일상생활의 제자도/영성
어떤 이들은 제자도로 표현하고, 어떤 이들은 영성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결국 일상이 하나님나라 백성 답게 변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고찰을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때, 개인의 욕심/야망을 극복하는 이야기, 성품에서의 단점을 이겨내는 대한 이야기, 그리스도와 동행함(혹은 그리스도를 따라감)에 대한 이야기 등등을 주로 ‘예’를 들며 풀어나갈 것 같다.
이때, 특별히 성화의 과정을 겪어 나갈때, before and after의 picture를 보여주면서 그 과정의 궁극적 완성이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도 짧게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싶다.

7. 공동체적 성화
성화의 공동체성에 대해 다룰 것 같다.
이것을 너무 이론적이거나 무겁게 다루기 보다는, 함께 하는 것이 훨씬 더 쉽고 기쁘고 좋다는 impact를 주는데 노력을 할 것 같다.

8. 다시 은혜로
wrap-up을 하면서, 다시 은혜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그렇게 끝을 맺어야만 성화의 바른 motivation을 재확인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한 이해를 종교적으로 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율법주의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은혜가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것,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 은혜로 변화된 삶 이라는 것, 우리의 삶의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미 임했음을 선포하는 삶을 살게되는 것이라는 것등을 이야기하며 마무리를 하게 될 것 같다.

9, 맺는 결심
내가 고난을 겪더라도 그 가운데 얻어지는 성숙으로 인해 기뻐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내 성공을 포기하더라도 주님과 동행하여 성숙함에 이르는 것을 사모할 것인가
내 뜻과 생각을 꺾어 성령님에 순종하여 살며 성숙함에 이르기를 힘쓸 것인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도록 그분의 은혜에 나를 던질 것인가.
이런 부류의 다소 provocative한 질문들을 던지며, 성화는 그토록 깊이 사모하며 추구할 것임을,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심을 함께 선언하는 것이 맺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

사실 위의 내용들이, 지난 일년동안 내가 주제를 묵상하면서 내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이었다.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5)

좀 황당하고, 외롭기도 한 느낌이 있었다.

내가 늘 KOSTA에서 따르면서 배우던, 그야말로 우러러보던 간사 선배님들이 시카고에 거의 계시지 않았다. 
내가 KOSTA를 섬긴 이래로 이런 상황은 처음 겪었던 일이었다.

어쩌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그분들에게 달려가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꽉 막힌 것 같이 힘들도 답답할 때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분들이 계시지 않았다.

내가 만나본 사람중, 가장 열정적인 기도를 하시던 김O숙 간사님 생각이 참 많이 났다. 눈물 흘리시며 기도하시던 그 모습. 후배들을 (특히 여자 간사들을) 친동생처럼 품어주시고… 그렇게까지 겸손하실 필요(?)가 없는데… 과장되지 않은, 몸에 밴 겸손함이 늘 포근한. 여러가지 관계 등에서 stress 받을 만한 일들을, 그저 온 몸으로 흡수(!!)하시며 섬기셨던. 참석자가 거의 insult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사람을 품고 받아주셨던. 등록한 사람들 명단을 거의 다 외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놀랍게 기억하시던. 그분이 간사 모임 기도를 인도하면, 무릎 꿇고 기도하다가, 무릎에 멍이들때까지 기도하곤 했었는데…. 

내가 처음 어리버리하던 초년병때, 나를 ‘권짱’이라고 불러주시면서 이리저리 잘 안내해 주셨던 은O영 간사님 생각도 참 많이 났다. 마지막 시카고 오시던 해에, 기도하던 시간에, 너무 힘든 사람들 있으면 그 자리에 무릎 꿇고 기도하라는 인도자의 말에 따라, 조용히 KOSTA VOICE desk 옆에서 무릎 꿇으시던 모습이. 함께 eKOSTA 한다고 참 많이 함께 좌충우돌 했었는데. eKOSTA 글들을 묶어서 책도 냈었고. 

물론, 그 존재만으로도 영적인 분위기를 늘 압도하시는 황O성 간사님도,
내가 그렇게까지 서툴게 헤매더라도 차근 차근 나를 키워주셨던 강O인 간사님도,
그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KOSTA에 헌신하게 된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분들과 만나는 것이 좋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박사과정 공부하면서, 영적으로 많이 망가졌을때, 이런 분들을 한번씩 만나면서 내 모습을 추스리곤 했었는데.
그래서 간사모임 갈때마다, 이분들 만날 생각에 전날 밤에는 잠도 이루지 못했었는데…

지금도 KOSTA program이나, 운영 방식, 함께 나누고 있는 스피릿 등에…
이분들의 숨결과 손길이 그냥 ‘무명으로’ 배어 있는 것을 보면서,
참 이 선배님들이 그리웠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이런 선배님들과 함께 섬길 기회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말로 다 할 수 없는 blessing이었다.

그런데…
나는 우리 후배들에게 줄 것이 없는데…
이렇게 나는 많이 받고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는데…

일주일 내내, 빨간조끼들을 보면서 많이 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4)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중 대부분의 분들은, 내가 평소에도 깊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들이었다.
비록 모든 면에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이 풍성한 그런 분들이었다.

이분들과 말씀을 나누면서 생각하게 된 것.

‘성공’한 사역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그 사역의 (그리고 그 자신의) 바운더리를 넘어서기 어렵다.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역이 성공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을 생각을 하기가 어렵고, 따라서 자신이 그려놓은 바운더리 안에 갇혀버리게 되는 것 같다.
자신의 성공한 사역의 시각에서 다른 사역을 바라보는 잘못을 범하기 쉽고,
특히 이미 잘 되고 있는 사역이 있기 때문에, 위기나 도전이 다가올때, 이미 잘 하고 있는 것으로만 그 위기와 도전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 사역의 scope을 넘어서는 도전을 직면하게 될때에는, 그것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여 더 큰 위기를 자초하게 될수도 있는 것 같다.

또, 열심히 사역에 만족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역과 그 열매가 자랑거리가 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어떤 지역에서 일하시는 선교사님의 말씀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신다고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결국 그 내용은 자기자랑이었다. 가만히 들어보면, 너무나도 명백한데…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이 참 마음이 불편했는데… 막상 그렇게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자신은, 자신의 신념에 의해 속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사람들이 신기해서 그 하는 사역에 대해 물어보면 물어볼수록, 더욱 확신에 넘치는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그런 모습이 몹시 안타까워 보였다.

그리고, 누구든 자기가 섬기고 있는 사역과 자신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다른 사역이나 관심사를 평가한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꽤 insight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분들 조차도, 그 자기 사역중심성 이랄까… 그런 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참 많이 보았다.
가령 예를 들자면, 해외선교를 하는 사람은, 결국 해외선교가 모든 사역의 꽃봉우리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고, 캠퍼스 성경공부를 하는 사람은, 다른 모든 사역은 결국 캠퍼스 성경공부를 support하는데 사용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 같아 보였다. 연합사역을 하는 사람은, 연합을 위한 연합에 매달리고 있는 것 같아 보였고, 지성운동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운동의 대상자 이외에 다른 대상을 보는 것을 몹시 어려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많이 겸손하게 자신과 자신의 사역을 돌아보는 노력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분들은 이런 경향이 훨씬 덜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자기 사역중심성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해 보였다.

이것은 KOSTA에게 참 많은 것을 시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KOSTA를 섬기는 내게도 역시 또한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한편 이런 분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분들을 정죄하거나 낮게 평가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KOSTA도, KOSTA를 섬기는 사람들도, 이런 잘못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일들을 해야 할 것 같다.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3)

작년에는, 처음으로 빨간조끼를 벗고 뛰었던 해여서, 
적당히 내 자신을 빨간조끼중 하나로 인식하며 지냈던 것 같다.

그런데 금년에는,
내가 잘 알지 못하던 사람들도 꽤 있었을 뿐 아니라,
‘실무적’으로 내가 했어야 하는 일들이 거의 없어 정말 이제는 빨간 조끼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한참 일하고 있는 빨간 조끼들 사이에서, 매우 어색하고 뻘쭘한 때도 많이 있었고… ^^ 

그런데 한편,
이번에 많은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집회도 많이 들어가지 못할만큼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차로… 그림자가 되어 섬기는 이들을 돕도록 내 자리를 positioning 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어떤 의미에서, 내년에는, 좀 더 자연스럽게 shadow로 들어가게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스피릿을 잘 이어가며 섬기고 있는 우리 후배들이 말로 다 할 수 없이 자랑스러웠고…
빨간조끼들을 보며 참 많이 울었다.
우리 간사들 이야기를 하면서 총 5-6번쯤 울었다. 그중 두번은 기도를 하다가 울었고, 3-4번은 다른 분들과 간사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울컥 울음이 터졌었다.
이제 정말 ‘내 사역’ 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사역’이 되어버린 땀흘리는 섬김을… 매우 기쁘게 내려놓을 수 있구나… 하는 마음에 기뻤다.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2)

이번 시카고 집회에 참석하면서, 여러가지로 마음이 무거웠다.

매년 KOSTA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는 일은 늘 있었으나,
금년에는 특히 KOSTA의 여러 일들을 생각하면서, 한밤에 일어나서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었고, 밥맛을 잃었던 시간들이 집회가 가까이 다가오면서 있었다. 

중보기도팀에 있으니, 가서 기도를 좀 열심히 하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시카고 집회 장소에 가보니 상황이 그렇지 못했다.

그저 빈둥빈둥 하는 한이 있어도,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길고 지루한 대화를 나눈 일도 있었다.
짧지만 알찬 대화도 있었고,
어떤 분으로부터는 개인적으로 꾸중(?)을 듣기도 하였다.

하여간,
기도에 집중하기가 참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마 월요일 저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중보 기도실에서 기도 모임을 정리하고, 간사 모임에 들려보려고 식당 지하에 내려가고 있었다.
가는 길에, 왠지 모르게, 개인 기도실에 잠깐 들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뭐 기도를 하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했다거나 그런건 아니었고, 그저 개인 기도실에 가보고 싶어졌다.
좀 망설이다가, 어차피 가는 길이고 해서, 잠깐 개인 기도실에 들려 보았다.
그곳에는 어떤 여자 참석자 한분이 무릎을 꿇고 앉아 앞뒤로 상체를 끄떡끄떡 해가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가만히 그분이 기도하는 것을 보고 있는데… 왜 그렇게 내 마음이 따뜻해 지던지.

아… 저것이구나. 저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하늘과 땅을 잇고 있는 것이로구나.

나 같은 사람이 아무리 방방 뛰어도,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 일하고 계시는 것이구나.

매우 엉터리로 보내긴 했지만,
일주일동안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 참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