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정말 기도가 고프다.
내 진액을 짜내는 것과 같은 그런 기도가 고프다.

하나님을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갈망하며,
그분의 영광을 바라는 기도…
그런 기도가 고프다.

내가 사랑하는, 내가 사랑해야하는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내 마음에 담고 하나님 앞에 서는,
그런 기도가 고프다.

기도는,
물론 그냥 하면 되지만…

정말 내가 하고픈 그런 기도는,
내가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내가 하게 되어지는 것 같은데…

It’s not something I do,
but it’s something I get to do.

매 순간을 식사기도 하듯 살기

식사기도를 할때면
(제대로 식사기도를 할때 이야기다, 물론.)
잠시나마 음식을 공급해주신 공급자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다.

식사 자체가 내 노력으로 온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의한 것임을 인정하고 그 앞에서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겸손해 진다.

놓여진 음식의 맛을 음미하며 그 맛에 깃들인 하나님의 솜씨를 감상한다.

시쓰러운 알람 소리에 눈을 떠 아직 남아 있는 잠을 쫓을때,
아침에 바쁘게 민우를 깨우고 아침 준비를 하며,
내가 실험실에서 기계의 단추 하나를 누르며,
내가 평소에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긴 미팅을 가져야하는 순간에,
나와 생각이 다른 어떤 실험 해석에 대하여 내 생각을 표현하는 이메일을 쓸때,
점심 먹을 시간이 부족해서 샌드위치를 한손에 들고 일을 하며 식사를 때우려 할때,
오후에 잠을 쫓으려 커피 한잔을 들때,
민우를 픽업하기 위해 시간맞추어 나오기 위해 실험 계획을 짜 놓았는데 다른 사람이 내 앞에서 미적 거리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때,
예상했던 business meeting이 연기되어 허탈해졌을때,
민우 픽업 시간에 늦지 않으려 부랴부랴 운전을 하며 I-280을 달릴때,
저녁시간 급하게 차린 식탁에 따뜻한 현미밥이 막 얹어지는 순간,
저녁에 밀린 일들을 처리하다가 잠깐 인터넷 사이트를 뒤질때,
밀려오는 피곤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때…

모두 한 순간 한 순간…
식사 기도 하듯 그렇게 살고 싶은데 말이야…

블로그

블로그에 글을 매일 하나씩 쓰기 시작한지 거의 2년 가까이 되어간다.
대충 1년 10개월쯤 되지 않았나 싶다.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내 생각을 좀 더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 내 생각을 좀 더 알려야 하는 사람들과 내 생각을 나누고자 한 것이었는데…

요즘은 public space에 있다보니,
누가 들어오는지도 잘 모르겠고…
누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내가 정말 마음 속에 두고 있는 생각이나 말들을,
속 시원하게 풀어낼 수 없다는 한계를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언제까지 이걸 계속하는 것이 좋을까…

100,000 마일

내가 운전하는 차가 드디어 100,000 마일을 넘어섰다!
100,000 마일이 되는 순간, 출근길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던중에 cell phone으로 얼른 한방 찍었다.
(앞으로 딱 100,000 마일만 더 타볼 예정이다.^^)

이차를 처음 샀을때, 4만마일이 조금 넘은 5년된 중고차였고,
차를 살 당시에는 우리의 balance가 마이너스였고…  돈이 없어서 정말 큰 무리를 해서 구입을 한 것이었는데…

그동안 안전하게 운전하게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celebrate and appreciate every little detail in my life… “촉촉한 사람 되기”의 작은 실천 ^^)

내가 받은 이메일 하나

내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때 알았던 한 분이 이메일을 보내오셨다.

연구원으로 일하시다가… 지금은 메노나이트 목사님이 되셔서 버지니아 작은 마을에 살고 계신데…

이 이메일을 읽으며 참 많은 것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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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오승 형제

 

나는 지금도 오승형제를 생각하면 ETRI 3연구동을 생각합니다.

그립고 순수했던 날들이 그곳에 있었지요.

젊디젊은 청춘들이 꿈을 가득 가지고 있었던…그런데 지금 그 꿈들이 모두 영글어서 열매를 맺고 그 열매들이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런저런 모습으로 귀하게 쓰여지고 있음을 봅니다.

기억나나요? 내가 오승형제 거의 졸업 무렵에 한번 전화했던거…MIT 졸업을 얼마 남기고 있던 때였을겁니다. 그리고는 종적을 감추었지요. 연락도 안되고…그 후에 한번 더 그 전화로 전화를 했더니 전화가 끊겼던가 했습니다.

그랬더니 서부로 개척하러 갔던 것을… ^^

그 때 내가 메노나이트 신학교를 다닌다고 말했지요. 이곳 버지니아 해리슨버그라고 하는 곳에서 2001년에 와서 2006년에
교회를 시작했지요. OO자매에게 아직은 교회 교회 홈페이지를 만드는 중이니 홈페이지는 알려주지 말라고 했는데 건축중이어서 아직은
이런저런 치울 것도 많고 올려야 되는 글은 많은데 다 올리지 못하고…그럽니다.

테크니션으로 일을 합니다.

이곳은 미국 시골입니다. 그동안 선교헌금에 의지하여 사역을 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작년 10월부터
일을 합니다. 셀폰을 개발하고 인터넷 트랜시버 특허를 가지고 있는 공학박사가 시골의 작은 회사에서 전자장비를 고치고 있는
테크니션의 삶을 세상의 눈으로보면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온 것이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감히 주님께서 천국
보좌 버리시고 지상의 낮고 낮은 곳에 내려오신 것을 묵상하면서 감사합니다.

지금 다시 일하러 가야 하는 새벽입니다.

다녀와서 다시 연락할께요.

전화 언제든지 한번 주세요. 아니면 내가 하던지…

OOO  형제 드림

헛점을 드러내는 섬김

최근 여러가지 일로 힘들어하시는 어느 선배님과 전화 통화를 했다.

그 선배님이 자신의 심경을 담은, 꽤 emotional한 이메일을 지난주에 보내셨고,
내가 그 이메일에 역시 꽤 emotional하게 답을 했었다.

그 선배님께서 내게…
자신이 여러가지 일로 많이 마음이 무겁고 힘들어서…
그 이메일을 쓰던 날 밤에 많이 감정이 격해져 있었다, 그 이메일을 보내고 많이 후회했다며 내게 걱정하지 말고 힘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서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 감정적인 어려움, 내부에서 해결되지 못한 anger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지난 15여년동안,
정말 내게 따르고 본받고 싶은 모범이 되어주신 그 선배님의 그 말씀을 들으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같은, 참 보잘것 없는 후배에게, 자신의 부족한 면을 투명하게 보여주시면서…
이해를 구하시는 모습이 정말 감사했다.

나는 오히려 내가 그 선배님께 걱정을 끼쳐드렸을 것 같아 염려가 되어…
죄송하다… 걱정 하지 마시라… 열심히 잘 하고 있다… 등등의 말씀을 드리려 했는데,
그 선배님께서는 그렇게 선수(?)를 치신 것이다.

그 선배님의 따르고 싶은 또 다른 모습을 경험했다.
나는… 정말… 아직 멀었다.

촉촉한 사람 = 부드러운 사람

촉촉한 사람이 되기 라는 내 새해결심은,
작심 삼일 수준으로 망가지고 있다. ^^

다시 결심을 추스려야 할 듯.

한가지 생각한 것은,
촉촉한 사람이 되는 중요한 key는 부드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부드러운 사람이란, malleable 한 사람, 즉 쉽게 변화되는 사람을 의미한다.

지난 5년 정도의 시간을 돌이켜 보면,
내 내면이 정말 변화되었던가.
그리스도와 동행하기 때문에 가능한 그런 변화가 내 안에 있었던가.

어쩌면,
이 질문이 나를 on-track에 있게 하는 key question이 아닐까…

대형교회를 변호하자면…

아마 약 10년쯤 전의 내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소위 ‘대형교회'(Mega-Church)에 대해 내가 몹시 비판적이었음을 알것이다.

세월이 지나 무디어 진 것일까, 아니면 몇년쯤 전에 내가 스스로 선언한 ‘이상주의 포기’의 일환일까.

최근 사랑의 교회 예배당 건축과 관련하여 신문 기사들도 읽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대형교회에 대하여 그렇게 비판적인 자세를 갖는 것에 대한 비판을 좀 해보게 되었다.
(지난 연말 Tony Campolo의 Mega-Church에 대한 시리즈 commentary가 많은 insight를 주었다.)

Tony Campolo가 이야기한, 대형교회들에 대한 defense는 다음과 같았다.
(미국의 이야기이므로 한국은 좀 다를수도 있겠다.)

1. 일반적으로, 대형교회들은 작은 교회들에 비하여 더 많은 percentage의 재정을 자기 교회 외부로 사용한다. (선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구제 등)
그것은 대형교회가 갖는 재정구조의 효율성 때문에 그렇다.

2. 대형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이 하는 헌신의 정도가 일반적으로 작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보다 더 크다. (이 부분은 한국에 그대로 적용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인당 헌금액수, 일인당 선교와 지역봉사 등에 사용하는 시간등의 통계자료에서, 대형교회는 작은 교회를 압도하였다.

3. 대형교회는 더 생동감이 있다. 많은 작은 교회들은 지루하다(boring) – Tony Campolo가 그렇게 이야기 한 것이다.  내 말이 아니고. ^^
대형교회는 사람들의 context에 더 relevant하게 다가간다.

이런 Tony Campolo의 comment에 추가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를 더 생각해 보았다.

1. 흔히 우리가 대형교회를 비판할때 하는 말은…. ‘모범을 보여야할’, ‘지도적 위치에 있는’ 등등의 말이다. 그러나, 나는… 대형교회가 모범을 보여야할 혹은 지도적 위치에 있다는 argument에 동의하기 어렵다.
대형교회는 물론 출석하는 교인의 수가 많으니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이 가진 신학이나 이들의 교회운영 방식이 필연적으로 시대를 선도해나가는… 혹은 차세대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대형교회는, 현 시대의 need에 충실하도록 움직이는 것이 더 바람직할수도 있다.
대형교회에게 생명력을 공급해주는 body는, 그리고 일반적으로 교회에 생명력을 공급해주는 body는… 소수가 모인, 좀더 앞선 가치를 추구해나가는, 큰 교회가 하기 어려운 실험을 과감하게 할 수 있는, 작은 교회가 아닐까 싶다.

2. 그나마 많은 경우, 대형교회들은 일반적인 동시대의 교회들에 비해, 여러가지로 건강한 경우가 많다. 재정에 대해서나, 신학적으로나.
물론, 가령 한국의 대형교회들을 보면, 이들 대형교회들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들 대형교회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동시대 교회들이 함께 짊어지고 있는 문제가 아닐까.
대형교회는, 다수가 모인다는 그 특성 상, 시대를 한단계 더 앞서 읽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이 어려울수 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이 이정도라도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칭찬해주어야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하면, 많은 경우 대형교회들의 문제는, 대형교회가 비난을 받을 것이라기 보다는, 동시대의 모든 교회들이 함께 비난을 받을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냥…
나름대로 짧은 생각을 한번 정리해 보았다.

또 한번의 KOSTA 간사 모임

오늘 밤부터
LA에서 또 한번의 KOSTA 간사 모임이 있다.

이번에는 여름의 conference 준비를 위한 본격적인 사역모임이다.

대학원생이던 시절,
간사 모임에 참석하기 전날 나는 잠을 제대로 이룬 적이 없었다.
그 만남에 대한 기대와 흥분 때문이었다.

그렇게 밤잠을 설치고 간사 모임에 참석해서는,
밤새 이야기하고, 울고, 기도하고, 토론하며 또 다시 밤을 새우곤 하였다.

나름대로 참 열심히 했었는데…
이제 후배들이 그렇게 마음껏 섬길 수 있도록…
정말 마음껏 낮아지는 섬김을 다 할 수 있도록…
그 장을 마련해주는 책임이 몹시도 무겁게 느껴진다.

오늘 밤에도…
제대로 잠을 이루긴 글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