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을 숨막히게 하는 신념

어떤 사람과 이야기하다보면,
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이 딱 잘못된 것은 없는데,
그 사람의 강한 신념이 듣는 내게 매우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사람의 신념의 어떤 부분이,
주위 사람들을 숨막히게 하는 것일까.

다원주의자들은, 그 사람에게 부족한 것이 포용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계몽주의자들은, 그 사람에게 부족한 것이 교양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 그 사람에게 부족한 것은 겸손이 아닐까.

내 가족을 포함하여,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내 신념에 의해 숨막혀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비관주의의 뿌리는 방관?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는, 작은 start-up company 이다. 엔지니어 몇명이 모여서 만든 회사이다. 이런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주변에서 ‘start-up company’가 얼마나 risky 한가 하는 것에 대하여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 사람들의 거의 전부는, start-up company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거나, 현재 start-up company를 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KOSTA를 섬기며 일하다 보면, KOSTA에 대한 여러가지 비판을 듣는다. KOSTA에 소망이 없음을 내게 적극적으로 설득하려는 사람들도 만난다.

내가 만난 그런 사람들은 모두 KOSTA를 경험하지 못했거나, 현재 KOSTA를 섬기는 일과는 아주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다.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
한국 사회에 대한 비관론을 펴는 사람들,
복음주의 교회에 대하여 어두운 그림을 펼쳐놓는 사람들…

이런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그 가치에 온몸을 던져 헌신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내가 자주 내어놓는 비판이나 평가는,
그런 이들의 것과 과연 다른 것일까.

CES에 다녀와서

지난 주말(금-토)에는 CES에 다녀왔다.
CES는 Consumer Electronics Show의 약자로 각종 전자제품을 전시하는 일종의 전시회이다.
이번에는 대략 12만명 정도가 참석했다고 하는데…
피부로 느끼기엔 그보다 더 많았다.

3G communication이 다 사실상 마비 상태였고, cell phone도 통화를 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하루에 거의 10마일씩 걸으며 이곳 저곳을 다니며 관람도 하고, 특히 우리 회사일과 관련해서 여러 나라에서온 여러 회사의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아침 7시경부터 밤 9시정도까지 계속되는 각종 일정들을 소화해내느라 정말 정신이 없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참 많은 것을 느끼긴 했으나, 그 내용을 자세히 다루는 것은 회사 기밀에 해당할 수 있을 것 같아 이곳에 쓸수는 없다.

그러나…
정말… 정말… 이렇게 내가 회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가슴속 깊이 담았던 주말이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려 하는가?
생존을 위해?
돈을 위해?
security를 위해?
인정과 존경을 받기 위해?
자아 성취?

내가 이 일을 하려하는 것에 대하여,
정말 내 영혼 깊은 곳에서 다시 물어보아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는 걸까?

하나님을 위해서 살기 보다 하나님과 함께 살기

내가 처음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눈을 떴을때,
나는 매우 ‘감성적’인 사람이 되었었다.

길을 가다가 꽃이 아름다워서 그 꽃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하나님과 대화했던 내 모습을 기억한다.

어쩌다 날씨가 좋으면 기숙사 뒤쪽의 작은 야산에 올라가 하늘을 향해 “하나님 날씨 오늘 훌륭합니다~” 라며 고함을 치기도 했었다.

지금의 나는,
그런 모습으로 부터 참 많이 벗어나 있다.

길을 가다가 꽃을 보면,
그 꽃이 길에 피게된 경위를 생각하거나…
환경 문제를 고민하거나…
길에 핀 꽃 하나와 같이 연약한 사회의 약자들을 위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생각한다.

그저 그 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한다.

나는 참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살지만, 주님과 함께 사는 일을 자주 놓친다.

새해에는,
주님과 함께 사는 기쁨을 많이 회복하려고 한다.

사명이 기쁨을 앞서지 않도록

감기 몸살에 걸려 골골 하다가도,
해야할 일이 있으면 정신이 번쩍 드는 경험을 자주 했었다.
(이제는 20대와 같이 체력이 되지 않으므로 그렇게 까지 dramatic 하지는 않지만…)

나는 매우 목표 지향적이고 mission-driven 이다.

내가 헌신한 가치에 충실하게 살고자 부족하지만 노력하고 있고, 그러한 사실을 때로 자랑으로 여긴다.

그.러.나.
금년에는 자주…
내가 해내야 하는 사명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갖는 기쁨을 앞서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

내가 해야하는 일을 성취하는 기쁨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누리는 기쁨이라기 보다는 자아성취의 기쁨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은,
성령 안에서 누리는 풍성함이 아니던가!

심지어는,
내가 해야하는 일을 다 해내지 못하더라도 내게 주어지는,
세상의 어떤 것도 나로부터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이 아니던가!

금년에는,
자아성취가 가져다주는 superficial한 기쁨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진실한 기쁨을 더욱 누리고자 한다.

고민하기 앞서 기도하기

문제를 만나면,
나는 흔히 그 문제를 깊이 분석한다.
그리고 분석한 내용을 다각다로 곱씹어 보고 그것에 맞는 전략을 짠다.

그러는 과정에서,
어떤 대응 반응의 결과(consequence)가 어떻게 될것인지 머리속으로 simulation을 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여러가지 simulation 결과가 좋으면 그것을 전략으로 채택하여 추진한다.

그.러.나….
금년에는… 자주….

어떤 문제를 만났을때,
그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시도를 더 하려고 한다.
문제를 가지고 내 동굴로 들어가서 고민하기에 앞서,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한다.

내 직관과 논리를 최대로 활용하되,
그 한계를 인정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인도하심을 구하고자 한다.

비판하기 앞서 진가를 인정하기

나는…

옳고 그름이라는 가치에 집중하여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다보니,
어떤 사람이나, 현상이나, 단체등을 보면 그 진가를 인정하고 (appreciate) 그것으로부터 배우려는 자세를 취하기 보다는 그 사람/현상/단체를 비판하고 그 가치를 판단하는데 내가 익숙해져 있음을 본다.

내가 대화하는 것을 불편해 하는 직장 동료 한 사람을 예로 들면,
그 사람의 가진 장점이 있고, 그 장점을 내가 appreciate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취하는 어떤 자세나 입장이 끼치는 악영향을 크게 본 나머지 그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내가 취급해 버리고 있는 것을 본다.

어떤 사람이 가진 가치들 가운데 어떤 하나가 도무지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사람 전체를 ‘적’으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심호흡을 하고,
그 사람/현상/단체에 깃들인 하나님의 손길을 보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그 사람/현상/단체를 비판하기에 앞서, 그 사람/현상/단체가 가지는 긍정적인 면을 먼저 깊이 감상(appreciate)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

appreciate 하는 일 없이 criticize 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자 한다.

촉촉한 사람이 되기

나의 new year’s resolution은,
“촉촉한 사람이 되기” 이다.

나를 아는 어떤 사람에게,
권오승 이라는 사람을 기술하라고 하면 어떤 모습으로 그릴까?

적어도,
따뜻하다, 포근하다, 내 약점을 쉽게 털어 놓아도 될 것 같다… 등등의 표현은 거의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왜 그럴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지나치게 분석적이거나 비판적인 이유가 한몫하지 않나 싶다.
(그렇지만 대단히 논리적이라기 보다는 직관적일 때가 많은데…)

또한,
나 자신과 다른이들에게 여유를 주고 기다리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채찍질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관계나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가치와 목표에의해 drive 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의 모습이 과연 지금 내 모습과 같이 그렇게 dry 한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내 삶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소유하고 누려야할 풍성함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2010년은,
여러가지로 내가 ‘촉촉한’ 삶을 살기에 어려운 여건들에 둘러 싸이게 될 것 같다.
회사일도 그렇고, KOSTA 관련된 일도, 섬기고 있는 성경공부도, 기타 여러가지 인간 관계들도…

그렇기에 더더욱 촉촉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내가 많이 치우쳐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일년뒤 내 모습이 지금보다 많이 ‘촉촉해져’ 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