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지는 관심, 커지는 갈등 (마가복음 3:7-35)

민정은 작년에 새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지난 일 년동안, 매우 큰 기쁨으로 삶의 여러 부분들의 우선순위를 재점검하고 인생의 방향과 목표, 삶의 자세등 모든 것을 새롭게 알게된 가치들에 맞추어 나가고 있다. 여러가지 삶의 영역가운데 결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특히 민정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흔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조건에 맞추어 배우자를 선택한다던가, ‘한눈에 사랑에 빠지는것과 같은 감각적인 사랑을 추구하기 보다는,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함께 이땅에서 나그네된 삶을 살아가는,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하는 아름다운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 민정은, 학벌이나 경제적인 여건으로는 세상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성실하고 사려깊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한 사람과 결혼을 전제로 교제중이다. 그러나 장로님이신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 부딛혔다. 신앙은 없지만, 나머지 조건을 다 갖춘 어떤 사람과 한번 만나보라며 권유도 하신다.

민정에게는, 복음이 이미 너무 소중한 가치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도저히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일 수 없다. 민정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커져가고 있는 소중한 가치들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듬 (7-12)

1. 예수님을 보러 온 사람들이 온 지역을 지도에서 찾아보라.(7-8) 주로 갈릴리 지방에서 사람들이 왔던 마가복음 전반부와 어떻게 대비가 되는가?

 

이는 바로 전에 나오는 종교지도자들의 모습과 어떻게 대비가 되는가? (6)

 

2. 예수님께서 몰려든 군중들에게 하셨던 일들을 어떻게 기술되고 있는가?

 

3. 7-12절에서, 예수님의 사역이 팽창하게 되는 것을 다음의 두 영역에서 살펴보고 정리해보라.

  • 사람들 속에서의 인지도
     
  • 영적인 영역에서의 인지도

 

 

열두제자를 뽑으심 (13-19)

 4. 사역의 확장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예수님께서 더 유명해 지시면서 아마도 이 사역을 함께할 사람들이 필요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열 두제자를 뽑으시는 모습에서 다음의 내용들을 정리해 보라

  •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장소

  • 예수님의 제자들을 부르시는데 있어서 예수님의 역할

  •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반응

  • 제자들이 했던 일  (제자들을을 부르신 목적)

 5. 위의 내용들을 바탕으로 제자도 (Discipleship) 의 중요한 요소들을 정리해보라.

  

당신은 예수님을 어떻게 따르고 있는가? 정리된 제자도의 요소들은 당신의 삶 속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

 

예수와 바알세불 (20-30)

 6. 예수님을 관찰하고 있는 서기관들 (scribes, teachers of the law)은 어디에서 왔는가? (22)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7. 서기관들과 예수님의 논쟁의 내용들을 정리해 보라. 서기관들의 주장(22)은 무엇이고 예수님의 주장(23-26)은 무엇인가?


 

8.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거스르는 죄에 대하여 강하게 경고하신다. (28-29) 서기관들의 말, 행동, 취했던 자세는 어떤 의미에서 성령을 거스르는 죄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가?

  

 

9. 이 본문의 논쟁에서, 예수님께서 기술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의 본질은 무엇인가? (27) (바알세불 Beelzebub의 문자적 의미는집주인이라는 뜻 으로 예수님께서 27절에서 강한 집 주인의 비유를 드신 것은 청중들에게 쉽게 이해되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에서, 어떻게 이 사역의 본질을 행하셨는가? 행하고 계 신가? 혹은 행하시기를 기대하는가?

  

 

예수님의 가족 (21, 31-35)

 10. 예수님의 이름이 많이 알려지고 사람들이 모여들자 예수님의 가족들(어머니와 형제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하는가? (21)

  

 

11 예수님의 가족들의 예수님에 대한 자세는 그 당시 예수님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자세(7-10)와 어떻게 대비가 되는가?

  

 

12.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가족관계 자체를 부인한 말씀은 결코 아니다. (성경의 다른 구절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여전히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셨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 19:26-27)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임으로 함께 누리게되는 영적인 가족관계가 중요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전파되는 하나님 나라와 그 반대 세력의 충돌이 있을 때, 예수님에게 있 어서 영적인 가족은 더욱 중요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마가는 의도적으로 예수님이 사람들과 함께 집안쪽 (inside)’에 있 고, 예수님의 가족들이 집바깥쪽 (outside)’에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함께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진정한 영적인 가족으로 느껴진 경험이 있으면 나누어보자. 그 사람들의 어떤 점이 영적인 가족이 되게 하였는가? 본문에서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영적인 가족이 되는가?

 

정리

13. 하나님 나라는 모멘텀을 얻어 더욱 힘차게 선포되고 있고, 예수님을 따 르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예수님의 사역도 더 체계화하고 있고, 그에 따른 반대도 더욱 거세어지고 있다.  오늘 본문에서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어떤 것인가?

 

 

14. 당신이 개인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겪고 있는 갈등과 충돌은 어떤 것들인가? 오늘 본문은 당신의 상황에 어떤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가?

 

그리운 고향(?)

어제 저녁은, 어찌된 일인지 시간이 좀 났다.
사실 시간이 났다기 보다는 열심히 해야할 많은 일들을 미루어두고 빈둥거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리 저리 web surfing을 하다가,
내가 박사과정중에 했던 분야의 ‘유명한’ 사람들을 찾아보았다.

내가 공부했던 분야는, 말하자면 좀 오래된, 그러면서도 기초적인 그런 분야인 탓에,
현재까지 그쪽에서 active하게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나오는 논문도 그렇게 많지 않고.
그렇지만 거의 매니아 수준으로 여전히 그쪽의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web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아…
뭔가 참 반가웠다!

그래, 정말…
이런 것들이 있었지…

내가 다시 대학원생이 된다면 이런 것들은 이렇게 좀 더 해볼텐데..
하는 여러가지 생각이 정말 엄청 쏟아지듯 내 머리속을 채웠다.

생뚱맞게도, 그쪽 분야에서 내가 꼭 해보고 싶었던 실험과 연구가 다시 생각이 나기도 했고…
시간이 좀 있으면 그런 것도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내 박사 논문에서 내가 제대로 다루지 못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도 괜히 다시 remind 되었다.

그런걸 보면,
나는 그렇게 실험하고 연구하고 논문쓰는 일을… 힘들어 하면서도 참 즐겼던 것 같다.
학회에 가서 사람들과 interact 하면서 정보를 얻는 것도 참 재미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흥미를 잃거나 그런 건 아닌데.
뭐 괜히 좀 생뚱맞은 그리움이랄까… 그런 것들이 한동안 나를 사로잡았다.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

내가 달리기 정기적으로 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처음엔 0.5 마일도 계속해서 제대로 달리지 못했는데, 요즘은 6-7마일을 한번에 뛰는 것이 그저 어렵지 않은 수준이 되었다.
시간이 좀 많으면 한번에 6-7마일, 시간이 없을 때는 3-4마일 정도 달린다.
6-7마일은 대개 1시간-1시간 10분 정도 걸리고, 3-4마일은 30분-40분 정도 걸린다.

일주일에 20마일 정도를 달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그 목표를 채우는 때는 물론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참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를 클릭해 보면 지난 화요일에 내가 달린 기록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밖에 모르던 내가 왜 이렇게 달리기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 혼자 달리는 그 시간이 내겐 최고의 교육시간이다.
대개 나는 audio book이나, 밀렸던 설교, 여러가지 강의자료 등을 들으며 달리기를 하는데…
이렇게 ‘공부’를 하면서, 생각을 하면서 달리는 시간이 내겐 참 알차게 느껴진다.
요즘은 조금만 공을 들이면, 아주 훌륭한 각종 강의 자료들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어서 참 좋다.

둘째, 건강에 도움이 된다.
달리기를 하면서 천식 증상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기후변화 탓도 있겠지만, 정말 규칙적으로 달리기를 하면서 천식으로 고생하는 시즌이 이제 거의 없어졌다.
천식 덕분에 운동을 생활화하게 되었으니, 천식이 내겐 오히려 blessing이 된 셈이다.
조금이라도 바빠서 운동을 게을리하면, 나는 쉽게 체중이 늘고 체력이 떨어진다. 정말 열심히 관리하지 않으면 체력을 유지하는 것도, 체중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셋째, 많은 생각을 하는 시간이 된다.
가끔은 강의/설교/오디오북 듣는 것을 하지 않고, 그냥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달리기도 한다.
내 일상에 대한 묵상/생각을 하기도 하고, 회사 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실험 결과를 해석하기도 하고, 말씀 묵상을 하기도 한다. 가만히 앉아서 한시간 어떤 생각에 몰두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한시간 달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정말 참 많은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혹시 내가 설교나 크리스천 세팅에서의 강의를 한꺼번에 많이 준비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경우에도 대개 내 message 준비는 이렇게 달리면서 이루어진다. 읽었던 책, 묵상했던 내용, 성경 말씀 등을 바탕으로 달리면서 그 얼개를 짜고 살을 붙이는 작업을 한다. 달리기가 끝나고 달리면서 생각했던 것을 정리하면, 매우 자주, 내가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내었을 내용보다 더 좋은 내용의 message가 나온다.
막혔던 실험이나 회사 일에 대한 것도 달리면서 insight를 얻는 경우가 매우 많다.
가끔은, 내가 달리는 시간에는 회사에서 내게 시간당 임금을 두배쯤 줘야겠다고 혼자서 생각한 경우도 있다. ^^
달리는 시간은 내게 대단히 생산적인 시간이다.

이번주에는, 월요일, 화요일에 달리기를 할 기회가 있었고, 아마 시간을 잘 쪼개면 내일(금요일)에 한번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번주에도 20마일을 채우는 것을 이미 틀렸다. 쩝.

생명과 종교의 충돌 (마가복음 2:18-3:6)

어느나라 옛 궁전 광장 한쪽에 서 있는 병정 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은 그냥 평범한 광장의 일부인데도 그 호위병은 시간 맞추어 임무 교대도 하며 계속해서 자리를 지켰다.
왜 그곳을 그렇게 지키고 있느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을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그 병정은 왜 아무것도 없는 광장의 한쪽을 그렇게 지켜야만 했을까.

이전에 그 나라의 왕이 자신이 키우던 예쁜 장미꽃 하나를 그 자리에 심었고
그 장미꽃 주변을 예쁘게 꾸몄다
. 사람들이 그 장미꽃과 주변 장식을 훼손하는
것을 막고
, 왕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병정들이 시간 교대를 해가며 그 곳을 지켰다. 시간이 흘러 장미꽃은 시들어 죽고, 그 주변의 장식들도 모두 없어졌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장미꽃을 지키던 병정은 계속 서있게 되었고, 이전에 하던대로 시간 교대를
해가며 그 자리를 지켰다
.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는 그 왕의 장미꽃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게 되었지만 그 자리에서
병정은 계속 임무교대를 하고 있었다
. 이제 그곳을 지키는 병정은 과연 무엇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것인가.

 

0. 다음의 항목들은 종교적 and/or “복음적”인가? 당신의 생각을 점수로 표시하여보라.(scale of 1-5)
(
무관하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의견은 comment에 적어보라)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기 : 종교적(     )     복음적(     )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기 : 종교적(    
)     복음적(     )


바른 정치를 위해 헌신하기 : 종교적(    
)     복음적(     )


소득의 일부분을 헌금하기 : 종교적(    
)     복음적(     )


성경공부 하기 : 종교적(    
)     복음적(     )


데이트하기 : 종교적(    
)     복음적(     )


기말고사 준비를 위해서 공부하기 : 종교적(    
)     복음적(     )


매일
QT
하기
: 종교적(    
)     복음적(     )


신앙과 과학의 문제로 믿지 않는 친구들과 토론하기 : 종교적(    
)     복음적(     )


교회 친구들과 함께 MT 가기 : 종교적(    
)     복음적(     )


학교 친구들과 함께 MT 가기 : 종교적(    
)     복음적(     )




1. “
종교적(religious)”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당신의 느낌은 어떠한가?
당신은 스스로를 종교적으로 여기는가? 종교적임(religiousness)을 당신의 말로 설명해보라.

 

헌것과 새것
(2
18-22)

2.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같은 종교적인 사람들은 일주일에 두번 이상, 물도 마시지 않는 금식을 하였고,
금식은 기도와 인내를 배우는 중요한 행위가운데 하나로 여겨졌다. 당시 하나님을 잘
따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은 금식에 충실했다
. 예수님에게 금식에 관한 질문을 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금식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졌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가? (2 18)

 

3. 예수님의 세가지 비유를 살펴보라.
(19-22
) 다음은 각각 무엇을 상징하는가?

  • 혼인잔치에 온 손님, 신랑, 신랑 을 빼앗김
  • 생베조각,
    낡은 옷 
  • 새 포도주, 낡은 가죽 부대

 

안식일 논쟁
(23
– 28)

4. 예수님과 그 일행이 안식일에 밀맡을 지나는
것을 바리새인이 보았다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다
. (23-24) 사람들이
많이 있을 회당 같은 장소가 아닌
, 밀밭에 있는 예수님과 일행들을 목격하고 질문을 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바리새인은 왜 이 장소에 있게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가?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바리새인의 모습에서 나타난
열성적인 종교인의 특징을 생각해보라.

 

5. 바리새인들이 제기한 문제와 예수님의 응답의
내용을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정리해보라
.

  • 종교적 행위의 동기
  • 종교적 원칙과 기본정신
  • 종교적 행위와 그것을 행하는 사람과의 관계

  

손이 오그라진 사람을 고치시다
(3
1-6)

6. 오늘 본문의 처음 단락 (2 18-22), 두 번째 단락 (2 23-28), 그리고 세번째 단락 (3 1-6)에 나타난,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여 보라. 어떻게 이 사람들의 의도와 행동이 발전하고 있는가? 3 1-6절에서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7. 안식일에 치료를 하는 행위는,
생명 의 위협이 있는 경우에 한해 랍비들에 의해 하는 것만 허용되었다. 본문에 나와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분명히 생명의 위협이 있는 경우는 아니었다
.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께서 하셨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라.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율법의 재해석을 요구하는 상황에 닥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행동하시는가? (3,
4-5
)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종교적 행위의 원칙은 무엇인가?

 

8. 예수님께서, 마음이 굳어 있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느끼셨던 감정은 어떤 것이었는가? (5)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이러한 감정을 언급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마가복음의 초반부에, 예수님의 이러한 감정을 마가가 기술한 배경, 그러한 감정의 대상, 그러한 감정의 원인 등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라.

 

9. 안식일에 치유사역을 하신 예수님을 본 이후에,
예수님을 없앨 모의를 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이 두부류의 사람들의
배경을 볼 때
, 이 사람들이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놀라운가?

 

정리

종교(宗敎)의 한자의 의미는으뜸되는 가르침이다.
즉 종교란 삶에서 으뜸되는 가르침으로 삼아 삶과 세상을 이해하는 기준으로 삼는 원리이다. 그러나 그 종교의 형식이 생명의 힘을 막거나 제한하는 것이 될때, 종교 적이라는 것은 죽어있는
형식을 따르는 자세를 표현하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 종교 적 형식이 생명의 원리를 강화시킬 수 있으나,
오히려 생명의 원리를 제한하고 부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참된 생명의 문제를 다루는
성경적 기독교에 있어서는 이것이 더욱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

 

10.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새로 가지고 오시는 새로운 파라다임에 관하여 어떤 특징을 말해주고 있는가?

 

11.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신념의 잣대로 재려고 했을 때
, 예수님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의 능력을 잴 수 없었다. 우리 주위에서, 죽어있는 종교성의 잣대로 생명을 담을 수 없는 일들을 본 적이 있는가?
예를 들어보라.

 

당신의 종교성이, 당신 안에 있는 생명을 죽이고 있는 것들을 어떤 것들이 있는가?

가만히 앉아서 들을 수 없었던 설교 + NTW에 대한 강연 링크

주말에,
민우가 교정을 위해서 이빨을 빼는 바람에…
민우가 주로 ‘집에서 조용히’ 있는 모드였다.
덕분에 나도 가만히 computer 앞에 앉아서 이런 저런 강의/설교 등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는데. ^^

http://www.wheaton.edu/wetn/flash-chapel/chap09-10/100416Wright.html

위의 짧은 설교를 들으며…
아… 진짜… 바로 이거다.
바로 이게 내가 흥분하고 감동하는 그거다…
싶었다. ^^

http://www.wheaton.edu/media/BITH/100416WalshKeesmaat.html

위의 skit 형식의 presentation은,
Brian Walsh와 Sylvia Keesmaat이 한 것인데…
이런 message를 이명박 장로님께 좀 들려드리고 싶다. -.-;
(물론 내가 들어야 할 message 이기도 했지만.)

그나저나,
최근 Wheaton college에서 N.T.Wright을 모시고, 그의 신학에 대한 포럼이랄까 그런 것을 열었는데,
몇개 들어보니 참 도움이 되었다.

http://www.wheaton.edu/wetn/lectures-theology10.htm

흔히 ‘보수진영’에서 다짜고짜 NTW가 이단이라느니… NTW는 성경을 안믿는다느니… 하는 억지가 아니라,
실제 그의 신학적 입장을 때로는 aggressive하게 test 하고 argue 하고 dialogue 하는 모습이 보기에도 좋았고, 나같은 문외한에게 도움도 되었다.

역시 내가 아는게 부족하구나 하는 것도 많이 느꼈고…
아… 조금만 시간이 더 있으면…
혹은… 아… 조금만 더 어렸더라면…
더 이런것도 훨씬 더 열심히 공부해볼텐데 싶은 생각도 들었다. ^^
(뭐 그러나… 어르신들이 보기에 나는 아직도 병아리 수준일테니… 지금 내 수준에서 열심히 배우며 살아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