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TA/USA-2010 conference를 마치고 (6)

기도

이번 집회기간 중에는,
기도 디렉터라는… 어울리지 않는 job assignment를 받아 섬겼다.
내가 기도의 깊이가 깊은 사람이 아닌데… 어찌 기도를 ‘담당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번에 기도를 더 할 수 있었던…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더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blessing 이었다.

기도하면서,
내가 얼마나 기도의 깊이가 얕은 사람인지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또한… 나 같은 사람의 기도도 얼마나 풍성해질 수 있는지 하는 가능성도 보았다.

함께 했던 기도헌신자 그룹이 정말 무척 멋진 형제 자매들이었다.
늘 집회기간 마다 내 마음 속에 있었던 빨간조끼 간사님들의 자리중 많은 부분을 이번에는 이 학생 헌신자 그룹이 차지했다.  괜히 양쪽 다 에게 미안한 느낌… (외도를 한 느낌이 이런 것일까… 싶었다. ㅋㅋ)

또, 함께 기도할 수 있었던 K모 간사님으로부터,
“매 순간 순종하며 기도하기”의 진수를 보며 배울 수 있었다.
나 같이 교만한 사람이 흉내내기 참 어려운…

기도에의 소망과 열망이 더 커졌다.
집회 시작 두어주 전부터 하나님께서 기도를 엄청 시키시더니만…
기도에 대해 무지한 내게 이런 가르침을 주시려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애쓰신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라고 했던 예수님의 제자들의 요청은, 바로 내가 주님께 드리고 싶은 요청이다.

KOSTA/USA-2010 conference를 마치고 (5)

땅끝

땅끝에 대한 내용을…
영역주권론적 차원에서 다루고자 했던 시도는 사실상 거의 실패했던 것 같다.
땅끝을 그렇게 이해하는 시도를 해보려고 주제문도 그렇게 많이 강조를 했고, QT 본문등도 그렇게 짜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어쩌면 땅끝을, 영역주권론적 차원에서 다루고자 했던 시도 자체가 무리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땅끝을 지리적인, 복음전도의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너무 좁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적어도 복음전도의 의미에서의 땅끝은 제대로 전달이 되었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 생각이 갈린다.

이론적인 탄탄한 기초를 제공하기에는 부족했다고 보여지지만,
집회에서 그런 이론적 기초를 제공할 필요가 반드시 있겠느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만일 복음과, 디아스포라로서의 민족의 개념을 건강하게 제대로 다루었다면 복음전도로서의 땅끝의 개념이 자연스럽게 모멘텀을 얻어 연결되어갈 수 있었을 텐데… 특히 민족의 개념을 다룰 때 이 흐름을 끊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결국 땅끝 이라는 개념이 제시되는 때에는,
conference가 절정에 이르러, 복음과 민족의 개념이 결국 땅끝으로 수렴되는 형태가 되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KOSTA/USA-2010 conference를 마치고 (4)

민족

이번 시카고 집회에서 다루었던 민족의 개념은 다소 실망스러운 감이 없지 않다.
언젠가 이 블로그에서 쓴 글에서 나누었지만, 민족 이라는 개념 자체가 고전적인 의미로 주어졌을 때, 젊은 세대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매우 부정적이다. 특히 외국에 있는 한국인들, 한인 디아스포라에게 한국 안에서 바라보는 민족의 개념을 깨워 맞추려하면 잘 들어맞지 않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번 집회에서는 그러나 그 민족의 개념을 확장된 개념으로, 디아스포라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다루지 못한 것이 참 안타까웠다. (jjKOSTA의 황지성 간사님의 강의만이 이 부분을 좀 다루었다고나 할까. 다른 강의에서도 그렇게 다룬 것이 있는지는 아직 다른 강의들을 review 할 시간이 없어서…  사실 집회에서 진행되는 message를 제대로 들은 것이 거의 없다 시피 하다. 정말 부지런히 들으면서 review 하고 있는데… 아.. 시간이 벅차다. -.-;)

확장된 민족의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한, 복음적 차원에서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그런 의미에서 고전적 의미에서 민족의 개념을 들이대면서 통일을 이야기하면 잘 아귀가 들어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디아스포라의 개념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으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나오기 어렵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다만 흥미로웠던 것은,
소위 ‘요즘 젊은 세대’들이, 통일과 민족에 대하여 나누어진 내용들을 오히려 ‘신선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통일이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어요 식의 반응.

한편 난감하기도 하고,
그러나 한편으론 그렇게 통일에 대한 이야기가 주어진 것이 참 다행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KOSTA/USA-2010 conference를 마치고 (3)

복음

지난 두어달 동안 내가 많이 ‘확장시켰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복음의 개념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점검을 하고 있던 차였다.

현대 기독교에서 아주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복음을 사유화(privatization)하려는 시도에 있다고 여기고,
복음의 공동체성, 복음이 가지는 거대담론 등에 매우 깊이 빠져 있었다.
영혼 구원에 머무르지 않는 구원, 전 피조세계의 회복을 의미하는 구원의 의미에 대해 꽤 많이 곱씹으며 나름대로 연구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두어달 동안에는 내가 취하고 있던 그 접근법을 여러각도로 재점검하고 있던 차였다.
복음이 사유화(privatization)된 것은 복음의 공동체성이 강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수도 있지만, 복음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개인화(personalization)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전 세계를 구원하시는 복음의 속성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복음은 결국 개인적(personal)인 속성이 그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었다.

한동안 빠져 있었던 N.T. Wright에 대해서도, 결국 그분이 이야기하는 ‘righteousness'(의), ‘justification'(의롭게 됨)의 개념을 내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리면서 다소 혼란을 겪고 있던 차였다.

그러던 차에…
이번 집회에서 다루어졌던… old gospel, penal substitution을 강조하는… 보혈의 공로로 구원얻는 그 복음, 그 복음으로 인해 새로운 삶을 살게되는 그 복음을 나는, 다시 한번 주목하여 바라보게 되었다.
말씀 묵상을 통해, 설교를 통해… 그리고 내가 곱씹는 사색과 사고를 통해…
내가 얼마나 죄인이었던가, 그런데 그 죄인에게 주어지는 십자가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이었던가 하는 것에 다시 깊이 주목하여 잠기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내가 어쩌면…
그렇게 복음의 공동체성을 강조하려 했던 것, 거대담론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 등은…
정말 복음의 core라기 보다는 그보다 더 넓은 영역을 복음에 넣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내 개인에게 주어진 구원의 감격에 대해 망각한 채,
사변적이고… 소위 ‘세상의 이상주의에 아부하는’ 방식으로 복음을 접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인데…
마치 그것을 내가 이루려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Tim Keller나 Don Carson 같은 사람들이…
이러한 움직임을 new legalism이라고 지칭했던 것이 어째 마음에 와 닿았다.

(그렇다고 복음의 공동체성이나 거대담론등을 포기했다는 것을 결코 아니다. ^^)

KOSTA/USA-2010 conference를 마치고 (2)


집회를 모두 마치고,
대부분 정리를 끝낸 후에, 이제 마지막으로 ‘배너’를 내리기 전에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간사님들.

그날 저녁,
새벽 3시경까지 계속된 evaluation meeting을 마치고,
기도인도를 하면서,
나는 울음을 터뜨리는 주책을 부렸다.

여러가지 사연과 사정이 많았던 올해,
그 와중에도 순수하게 섬기는 우리 간사님들을 생각하니 벅찬 감정을 억누르기 어려웠던 것이었다.

이들의 땀에 젖은 얼굴에서,
하나님 나라를 본다.

KOSTA/USA-2010 conference를 마치고 (1)

96년부터 참석하기 시작했으니,
질릴만도 한데…
도무지 질리질 않는다.

아니, 질리긴 커녕 매년 배우는 정도가 커진다.

금년에도 역시, 말로 다 기술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배웠다.
아니, 금년에는 다른 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앞으로 몇번의 글을 통해서 내가 KOSTA/USA-2010을 통해서 (단지 conference뿐 아니라 지난 1년동안 계속되어온 모든 일들을 통해서) 배우고 깨닫게 된 것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러나… 정말 제대로 다 정리해 낼 수 있을까.

KOSTA/USA-2010 conference

이제 내일 새벽이면 또 다시 KOSTA conference를 위해 비행기를 탄다.
한편 말로 다 할 수 없을만큼 무겁고 부담되는 마음과…
다른 한편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있다.

도피하고 싶을만큼 무거운 영적 부담감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하나님을 더 붙들어야 겠다는 절박함도 있다.

정직하게 스스로 물어야할 질문들을 묻지 못했다는 자책이 크지만,
형편없는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싶다는 목마름 역시 크다.

사람에 대한 깊은 절망들로 마음이 무겁기도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말로 다 할수 없는 소망으로 가슴이 뛰기도 한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가르쳐 주실까.
어떤 당신의 모습을 매리우드와 휘튼에서 나타내 보여주실까.

우리가 이렇게 모이는 것이
한달후, 1년후, 5년후, 10년후, 20년후 …

저 굶어죽어가는 북한의 동포에게,
소망을 잃어버린 한국의 학생들에게,
촛점없는 눈으로 구걸하는 San Francisco의 homeless 들에게,
복음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오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해버린 인본주의의 우상에 눌려있는 캠퍼스의 학생들에게,
돈을 위해 영혼을 팔고 있는 수 많은 직장인들에게,

어떤 소망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묻고 싶은 나의 기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