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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을 하는가 vs. 무엇을 위해서 하는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성숙한 사람일수록,
무슨 일을 하는가 하는 것보다 무엇을 위해서 일을 하는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간난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생각해보자.
엄마는 간난아이에 대한 무한한 사랑 때문에,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가 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
아, 지금 나는 젖먹이는 일을 하고 싶은데 기저귀를 갈고 있다니… 하는 불평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엄마로서의 identity가 무슨 일을 하는가 하는 것에 있지 않고,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가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

나는 섬기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가 하는 것보다, 무엇을 위해서 하는가 하는 것을 많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내가 만일 아빠로서,
아… 나는 내 아내가 지금 기저귀를 가는 일을 했으면 좋겠는데… 내 아내는 기저귀를 가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고, 게다가 기저귀 갈때 가장 행복해 하는 것 같은데…
라고 하면서 젖먹이고 있는 아내를 안타깝게 바라본다면…
나는 어쩌면 아빠로서, 그리고 간난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남편으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밤에 아이가 울면…
아빠가 되었건 엄마가 되었건… 졸린몸을 일으켜 세워 젖병을 찾아 물리고, 기저귀를 봐주고, 토닥거리며 재워야 한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기저귀를 가는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거나, 젖을 먹이는 사람으로 세워졌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더 잘 키우기 위해, 지금 기저귀를 갈아야 할때인지, 젖병을 물려야 할 때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리고 여러가지 기저귀에 대해서 연구도 하고, 젖꼭지 모양을 유심히 살피는 일들도 해야하지만…
그것은 젖을 잘 먹이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이다.

스스로를
‘사역자’라고 생각하는 후배들에게…
특히 리더들에게…
요즘… 많이 해주고 싶은 말이다.

See you later, Rev. John Stott!

John Stott 목사님께서 주님의 품에 안기셨다.

내게도 그분은 영적인 영웅이셨고…
내가 주변에서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들께 여쭈어보면 거의 대부분이 자신의 신앙에 가장 깊은 영향을 끼친 분 가운데 한분으로 꼽는 John Stott 목사님.

Christianity Today에 난 기사는 다음과 같다.
http://www.christianitytoday.com/ct/2011/julyweb-only/john-stott-obit.html

20세기를 “복음주의의 세기”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큰 일을 하신 분이셨는데…

John Stott와 복음주의의 세대가 지나감을 보며,
그 큰 빈자리를 과연 남겨진 사람들이 채울 수 있을까.

20세기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복음주의의 깃발을 들었던 그것이 정말 소중하고 가치있는 일이었던것 같이,
이제는 21세기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깃발을 드는 일이… 이제 가시적으로 나타나게 될까.

아마 John Stott 목사님도, 매우 eagerly, earnestly 그 새로운 깃발의 도래를 그곳에서 기대하시며 바라보고 계시진 않을까. 

설교?!

한동안 ‘설교’형식의 message를 하지 않으려고 계획하고 있었고,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

최근 갑자기 몇개가 잡혀서,
근처 교회 청년부 리더 수련회, 또 다른 교회의 청년부 수련회에서 설교/세미나/message를 하게 되었다. 

나는 물론, 전문(직업) 설교가가 아니고,
설교에 대해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솔직히 설교를 잘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가끔 이렇게 message를 전할 기회가 되면,
묘한 흥분과 기대에 휩싸인다. 

별것없는, 소망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놀랍다는 고백을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긴~ 여행

지난 주말에는,
뉴저지에 다녀왔다.

간사들 몇명이 모이는 작은 모임이었지만,
꼭 가고 싶은 마음이 큰… 그런 모임이었다.

왕복 비행기표가 자그마치 600불이나 하기에,
너무 부담이 되어서 사지 못하고,
대신 차로 약 1시간 반 떨어진 곳에있는 작은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비행기표가 약 200불 가량 싸게 되었다. 대신 금요일 오후 회사를 비워야 했으나…

금요일
금요일 오후 1시반, SJC 공항 출발예정이었으나, delay되어 2시 반정도에 출발하였다.
ORD에서 갈아타야하는데, 비행기가 delay되는 바람에… connection을 놓쳤다.
ORD 근처의 호텔을 하나 잡고, 거기서 하루 묵었다.
시차 때문인지 중부시간으로 밤 1시가 거의 되어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토요일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침 5시 반쯤 일어나서… 공항으로 향했다.
ORD에서 결국 우여곡절 끝에 아침 8시경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ABE 라는 공항에 오전 11시 30분쯤 도착했다.
운전을 하고 모임 장소까지 가니 오후 1시 반 정도 되었고…
그로부터, 기도와 회의를 반복하다가… 밤 11시 반 정도에 ‘공식적인’ 회의를 마감하였다.
그리고 약 새벽 2시 반까지 추가의 ‘비공식적’ 대화들…

일요일
그리고는 샤워를 하고, 차를 다시 타고.. 박카스 한병을 마시고는… ABE 공항으로 다시 왔다.
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4시.
렌트카 안에서 약간 졸다가… 5시에 공항으로 들어가서 아침을 사먹고는,
7시에 ORD로 행하는 비행기를 탔다.

아침 8시 조금 넘어서 ORD에 도착했는데,
SJC로 가는 다음 비행기가 또 2시간 정도 delay되었다.
거의 오후 1시나 되어야 ORD-SJC 비행기가 뜬다고…
자리에 앉아서 졸다가, 공항 구경하다가… 조금 있으니… 비행기가 over-booking 되었다고… 자리를 양보하면 300불 짜리 travel voucher를 주겠다고 방송을 해왔다.
재빨리 가보니… 1시간만 더 기다리면 LAX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SJC에는 저녁 7시 반쯤 도착하는 것으로 하고. 어차피 늦은거… 그래서 그 offer를 accept 했다.

그런데… 이번엔 LAX 가는 비행기가 또 한 시간 정도 delay 되었다!
그래도 LAX에서 layover 하는 시간이 약 3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으므로 괜찮았다.
LAX 가는 비행기를 결국 오후 2시 반쯤 타게 되었고,
LAX에서 두시간 정도 기다린 후에 SJC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SJC 공항부터 우리집까지는 또 40분 정도.
집에 도착하니 저녁 8시 반이었다.

밤 10시쯤 잠자리에 누웠는데…
그 전날 중부시간 새벽 5시 (서부시간 새벽3시) 이후 처음 누워보는 것이었다!
43시간 만에 누워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정말 엄청 무리를 한… 여행이었지만,
마음에 소망과 기대가 한 가득이다.

이런거… 또 하라면… 몇번이라도 또 할 수 있을 듯 하다!!! ^^

Our Demo Unit

내가 시카고에 가 있는 동안,
우리 회사 사람들은 멋진 demo unit들을 만들어 냈다.

plastic 필름 위에 전자회로를 만들어서 디스플레이를 만든 것이다.
게다가 세계 최초로 Roll-to-Roll 이라는 획기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만든 것이다.
우리 팀 사람들이 자랑스럽다!

우리가 만드는 display는 옷 위에 붙여서 사용할 수 있는…
말하자면 손목시계같은 형식으로 디스플레이를 붙일 수 있는 모델인데,
아직은 그렇게까지 작게 만들지는 못했다.
첫번째 사진은, 우리 그룹 사람들이, 크게 만들어놓은 demo unit을 손목에 대보면서 ‘손목시계형 디스플레이’로 쓸만하다고 장난을 치는 모습.

사진을 잔뜩 찍으면서 즐거워하면서도,
사람들이 사진 몇개는 내게 이메일로 보내주어서, 시카고에서도 이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지난 11일이었던가… 에는 우리 그룹 사람들이 다 함께 거하게 햄버거 파티를 하기도 했다.
비싼 음식도 아니었는데 어찌나 사람들이 좋아하면서 즐기던지…

우리 그룹 사람중 한 사람의 facebook에는 이 demo unit을 가지고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는데,
이 display unit에 내 이름을 tag 해 놓았다. 이 display unit 뒤에 내가 있는 것이라나… I’m so honored.

참고로 맨 마지막 사진은, 우리 lab director (반바지 입은 사람)이 나온 것인데,
이 사람은 회사에 이렇게 입고 출근하고, 이렇게 입고 일하고.. 그런다.
이분에 비하면, 나는 매우 말쑥할 뿐 아니라, 패션 감각이 출중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ㅎㅎ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10)

소위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개인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을 신앙의 중심에 놓고 사는 것 같다.
또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신앙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고, 거대 담론이나 세계관과 같은 것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중심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던가, 죄성을 싸워 이기는 것과 같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라남’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소위 ‘진보적’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거대담론, 가치, 하나님 나라 등과 같은 가치에 충실하려고 노력도 하고,
또 그것을 강하게 소리높여 외치긴 하는데,
막상 그러는 도중에 자신이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노력을 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이 외치는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과도한 적개심을 나타낸다거나,
겸손함, 자신을 돌아봄과 같은 소중한 가치가 등한시 되는 것을 많이 발견한다.
이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라남’을 무시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하는 사람들 조차 심하게 나누어져 있는 가슴아픈 현실 속에서도,
그 두 그룹을 하나로 묶는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를 닮으려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야할까.

나는 개인적으로,
기독교의 가치가, 세상의 정치 권력에 의해 정복당해버린 세태를 몹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기독교는 세상을 뒤집는 힘이어야 하는데,
좌,우 모두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강화하는데 기독교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일들은 잊어버리는 것이다.

특별히…
나는 최근 (나를 포함하여) 우리 간사들을 보면서,
두가지 정도 걱정을 해왔다.

하나는,
우리가 추구하는 어떤 가치가 소중한 만큼, 그 가치를 담아내는 우리의 인격, 우리의 성숙함, 우리의 너그러움, 겸손함등도 역시 중요한데,
우리의 가치에만 너무 몰입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때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우리와 다른 가치를 가진 사람들을 포용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이 있었고,
뽀족해지기는 하는데 넓어지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는 때가 자주 있었다.
어떤 이들을 보면서, 그 사람이 우리와 무엇을 공유하는가를 보기 보다는 그 사람이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를 먼저 보는 자세라고나 할까…

두번째는,
언젠가 부터…
순수함,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 겸손한 헌신 등을 따를 모델로 생각하고 흠모하기 보다는,
탁월함, 명쾌함, 유능함 등등을 추구하는 것과 같이 느껴지는 때가 늘어났다.
아무개는 이런 일도 잘 한대, 아무개는 이런 것도 다 알고 있대..는 식의.
누가 얼마나 눈물을 뿌리며 기도하는지, 누가 얼마나 사람들을 품고 사랑하는지, 누가 얼마나 겸손한지, 누가 얼마나 순수한지 하는 것등이 다소 가볍게 여겨지게 되는 것 같고…

아직도 스스로를 간사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는,
지난 일년간 이 주제를 묵상하면서,
내가 그리스도를 닮는 일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역의 유능함/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의 10분의 1의 노력 만큼도… 내 성숙에 쏟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성숙이라는 것은, 신학 지식을 더 쌓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고, 시대를 꿰뚫는 통찰을 더 깊이 갖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런 신학적 지식이나 통찰도 중요하긴 하지만…)

나를 뽐내고 드러내려는 내 죄된 본성과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라던가,
다른이들의 필요를 채우기 앞서, 내 필요만을 채우려고 다른이들을 이용하는 내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 통곡하는 것 등은….
너무 오래 잊고 살았었다.

내가 그렇게 잘못된 길로 달려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나서, 우리 간사들을 보니…
역시 그런 성향이 너무나도 깊게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올해의 주제가…
내가 선로를 이탈한 기차와 같다는 것을 발견하게 해준 것 처럼,
우리 간사 공동체 안에서도 collectively 그런 돌이킴이 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빠릿빠릿하지는 못해도, 온 몸을 던져서 우직하게 헌신하는 모습이 고귀한 것으로 여겨지고,
내 눈에서 눈물이 말라버린 것을 안타까워하며 금식하고,
내가 섬기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무슨 짓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을 끊임없이 주시도록 계속 무릎꿇고,
유능함보다 겸손함을 훨씬 더 cherish 하는…
그런 ‘스피릿’이 제대로 불타올랐으면… 싶다.

(KOSTA/USA-2011 후기를 끝맺으며 쓰는… 이 글이… 내게도 참 아프다.)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9)

몇년을 반복해서 만나면서도 그 순수함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급속히 변질되는 것을 보게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약간 각도를 달리해서 생각해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성숙해 가는 사람이 있고,
시간이 지나도 긍정적인 발전을 별로 발견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이것을 2×2 matrix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순수함 유지  순수함 잃어버림
계속 성장해감  성장 + 순수함  성장 + 변질
성장이 없음  정체 + 순수함  정체 + 변질

1. 성장하면서 순수함을 유지하는 경우
이런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 한 사람을 안다면, 그 한 사람을 안다는 사실 만으로도 평생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KOSTA를 통해서, 이런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다. 그리고 그분들을 통해서, 나도 역시 그렇게 되고자하는 깊은 소망을 갖게 되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진 셈이다.

2. 성장하긴 하지만 순수함이 변질되는 경우
과연 이런경우에 그 사람이 달라진 것을 성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사람에게서 성장이라는 부분을 찾는다면, 그것은 사역의 기술이나 지식이 늘어난 것일 것이다.
때로, 이런 사람들을 1번의 유형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런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참 많다.
개인적으로 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함정에 빠지기 쉬운 것 같다.
이런 이들의 성장은, 사람들에게 독이 되어버리고 만다.

3. 성장은 없는데 순수함을 유지하는 경우
흔히 ‘신실한 사역자’에게서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경우가 아닐까 싶다.
몇년 후에 보았는데도 그 상태가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경우.
한편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도 그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안타깝게 여겨지기도 한다.
대개는 종교적인 사람들에게서 이런 유형을 많이 발견하게 되는데, 순수함과 종교성이 결합을 해서, 정체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도 꽤 있다.

4. 성장도 없으면서 오히려 변질만 되는 경우
….
더할 나위 없이…. 가슴이 아픈… 경우이다…

이상 네 부류의 사람들을 그 빈도수로 보면,

(성장 + 변질) > (정체 + 변질) >> (정체 + 순수함) >> (넘사벽) >> (성장 + 순수함)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 주제를 생각하며, 나 자신을 돌이켜보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다.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8)

KOSTA에서는 두부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첫번째 부류는 뜨려는 사람이다.
그야말로 KOSTA를, 자신이 뜨는 장으로 활용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순수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아주 불편해 하는 부류의 사람들인데, 사실 이런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

두번째 부류는 띄우려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agenda를 가지고 KOSTA에 참여한다.
그래서 자신의 agenda를 가지고 참석한 사람들을 띄우고(agitate, excite) 싶어한다.
이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다시 세부류로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첫번째는, 
이분들은 이미 자신이 충분히 떴기 때문에 KOSTA 집회에서 뜨는 것이 자신에게 더 이상 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꿈꾸는 더 큰 scale의 사역이나 계획등에 KOSTA를 활용하고 싶어하는 경우이다.
두번째는,
아직 자신이 충분히 뜨지 않았어도, 자신이 꿈꾸는 사역이나 뜻의 성공을 위해 KOSTA를 활용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다.자신이 뜨려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건강해 보이지만, 결국 생각해보면 이것도 역시 자신의 agenda의 성공을 통해 결국 떠보려는 것일 수도 있겠다.
세번째는,
진실한 의미에서 KOSTAN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띄워지길 소망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 구분이 그렇게 늘 명확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누구든 약간씩 그 motivation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난 몇년동안 적어도 KOSTA/USA에서는,

1번의 유형은 함께 할 분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고,
2-1번의 유형은 제한적으로 함께 하려고 했던 것 같고,
2-2번의 유형은 꽤 환영하며 받아들였고,
2-3번의 유형은 무조건 받아들였지만, 찾기가 어려웠을 뿐 아니라, 찾는다 하더라도 이분들이 KOSTA에 관심이 없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KOSTA/USA가 취하고 있는 이런 입장은 적절한 것일까?

..

그리고,
사실 KOSTA에 참여해서 섬기다 보면,
참여하여 섬기는 사람들이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잘 보인다.
막상 각각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감추려고 한다거나, 다른 동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너무도 이게 잘 보인다. -.-;
그런데 그분들은 자신이 그렇게 쉽게 읽히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내 불순한 동기와 행동도,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잘 읽히는 것이겠지… 민망한 일이다. 쩝.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7)

소위 ‘이상주의자’라고 비판을 받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들이 좀 있었다.
(참고로 나는 나 스스로를 ‘이상주의자’라고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들을 이상주의자라고 label을 붙이는 것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을 ‘so-called 이상주의자’라고 부르겠다. 그리고 나는 그 ‘so-called 이상주의자’들과 같은 노선에 있는 사람도 아니다. ^^)

참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so-called 이상주의자’들이라고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대단히 현실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so-called 이상주의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교회의 독이라고 여기고 그들을 ‘박멸’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so-called 이상주의자’들은 그렇게 비판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품고 가려고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so-called 이상주의자’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어떤 의미에서 비현실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고,
이 ‘so-called 이상주의자’들은  자신과 입장을 다르게 하는 사람들과 공존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단히 현실적인 접근을 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합운동의 차원에서 이 ‘so-called 이상주의자’들의 전략으로부터 배울 것이 훨씬 더 많았다.

물론 두 그룹이 처한 상황이, 한쪽은 힘과 돈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한쪽은 힘과 돈이 없기 때문에 그런 입장들을 취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볼수도 있겠지만…

연합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품고 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된 발견이었다.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6)

내가 ‘성화’라는 주제를 다룬다면…
다음과 같은 plot으로 다룰 것 같다.

1. 성화의 롤모델
먼저 그리스도인의 성화의 모델, 그 성화의 기쁨 등을 image로 혹은 example로 제시해주는 것이 좋은 opening이 되고, 이것을 다룰 중요한 motivation이 될 것 같다.

2. ‘은혜’에 대한 깊은 이해
복음의 기초로부터 복잡한 개념들이 출발해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원칙이지만,
특별히 성화라는 주제를 다룰 때, 지금 세대에게는 ‘은혜’라는 개념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가장 relevant하게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은혜를 복잡한 개념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그 은혜가 얼마나 무지막지할만큼 감탄할만큼 위대한 것인가 하는 것을 깊이 다루는 것이 basis로 좋을 것 같다.

3. 온전함으로부의 부르심과 현재 모습의 절망적 모습
온전함으로의 부르심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위대한 것인가를 다루고, 그러나 그것과 대비되는 현재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하는 대비를 깊게 해볼 것 같다. 이때, 1번의 은혜의 개념을 충분히 융합시켜서 다루지 않으면 종교적 율법주의로 흐르기 쉽기 때문에 주의해야 할 것.

4. 성령
성화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은 crucial하다.
따라서 성령에 대해 많이 그리고 깊이 다루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성령에 대하여 설명을 할때, 성령에 대한 오해의 부분을 너무 깊이 다루기 보다는, 성령께서 성도를 온전케 하시는 일이 어떠한 것인지 하는 것을 많이 설명하고, 그 성령께 자신의 내어 맡기는 삶에 대해 다룰 것 같다. 성령께 순종하는 것, 성령의 열매 등등도 시간이 되면 다룰 수 있을 것이고.
그리고 이때, ‘성도의 견인’ 이라던가… ‘하나님의 열심’과 같은 개념을 함께 다룸으로써, 성화에의 궁극적 소망이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다시한번 강조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아마도 그리스도와 우리의 상호내주(mutual indwelling)을 좀 더 깊이 설명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5. 고난
성화에 있어 고난은 거의 필수과목과도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루시는 사랑의 방법으로서의 고난을 다룰 것 같다. 
우리 안의 죄의 뿌리를 뽑아내는 하나님의 열심. 고난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사랑. 그로부터 얻어지는 열매…
이 부분에 사실 꽤 많은 시간과 내용과 에너지를 할애할 것 같다.

6. 일상생활의 제자도/영성
어떤 이들은 제자도로 표현하고, 어떤 이들은 영성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결국 일상이 하나님나라 백성 답게 변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고찰을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때, 개인의 욕심/야망을 극복하는 이야기, 성품에서의 단점을 이겨내는 대한 이야기, 그리스도와 동행함(혹은 그리스도를 따라감)에 대한 이야기 등등을 주로 ‘예’를 들며 풀어나갈 것 같다.
이때, 특별히 성화의 과정을 겪어 나갈때, before and after의 picture를 보여주면서 그 과정의 궁극적 완성이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도 짧게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싶다.

7. 공동체적 성화
성화의 공동체성에 대해 다룰 것 같다.
이것을 너무 이론적이거나 무겁게 다루기 보다는, 함께 하는 것이 훨씬 더 쉽고 기쁘고 좋다는 impact를 주는데 노력을 할 것 같다.

8. 다시 은혜로
wrap-up을 하면서, 다시 은혜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그렇게 끝을 맺어야만 성화의 바른 motivation을 재확인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한 이해를 종교적으로 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율법주의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은혜가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것,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 은혜로 변화된 삶 이라는 것, 우리의 삶의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미 임했음을 선포하는 삶을 살게되는 것이라는 것등을 이야기하며 마무리를 하게 될 것 같다.

9, 맺는 결심
내가 고난을 겪더라도 그 가운데 얻어지는 성숙으로 인해 기뻐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내 성공을 포기하더라도 주님과 동행하여 성숙함에 이르는 것을 사모할 것인가
내 뜻과 생각을 꺾어 성령님에 순종하여 살며 성숙함에 이르기를 힘쓸 것인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도록 그분의 은혜에 나를 던질 것인가.
이런 부류의 다소 provocative한 질문들을 던지며, 성화는 그토록 깊이 사모하며 추구할 것임을,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심을 함께 선언하는 것이 맺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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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위의 내용들이, 지난 일년동안 내가 주제를 묵상하면서 내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