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교회

최근 몇달동안,
‘지역교회’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다.

나름대로 현재까지 정리한… 나름대로의 ‘지역교회론’을 풀자면 다음과 같다.

지역교회는 다음의 두가지만 만족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첫번째는,
우주적교회/보편적교회 (Universal Church, Catholic Church)의 일부로서 지역교회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에는, 사도의 전통에 따른 신앙고백, 선교적 사명 같은 의미들이 당연히 포함되게 되거니와…
또한 지역교회 = 교회로 일컬어지고 있는 현대의 심각한 왜곡을 피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두번째는,
‘가족’이 되는 구성원이다.
어떤 의미에서 한 교회의 지체가 된다는 것은, 결혼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혼인이라는 언약으로 엮어진 가족/부부는, 
인간으로서 추구할수 있는 모든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 
처한 상황 속에서 제한된 가치에 더 무게를 두게된다.
그러나, 그렇게 선택한 가치도, 가족/부부라는 관계보다 더 우선할수는 없다.

함께 ‘지역교회’를 구성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우주적교회의 신앙고백이라는 넓은 틀 안에서, 내가 저 사람이라면 함께 살아보겠다… 내가 저런 그룹의 사람들이라면 함께 살아보겠다… 라고 결심을 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새로 지역교회 공동체에 참여하는 사람도 그렇게 ‘한몸’이 될 것으로 헌신해야하지만,
그렇게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는 기존의 지체들도, 그렇게 새로 함께하는 그 사람과 이제는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함께 하는 결정이라면… 그것이 우주적 교회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지금까지 내가 머물러있던 가치를 포기할수도 있는 것을 의미한다. – 그것이 ‘선교적 교회’가 되었건, ‘성경공부 많이 하는 교회’가 되었건, ‘새벽기도 매일 하는 교회’가 되었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소위 교회의 비전에 동의하여 함께 지역교회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고 본다. 함께 하는 사람들과… 그렇게 함께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지역교회 공동체를 만드는 동기이자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두번째 point는… 사실 많은 내용을 포함한다. 이 짧은 글에서 다 다룰 수 없을 것 같지만…. 일단 이렇게 간략하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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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큰 교회도 다녀 보았고,
한국에서 작은 개척교회도 다녀 보았고,
미국에서 비교적 규모가 좀 되는 한인교회도 다녀 보았고,
미국에서 작은 한인 개척교회도 다녀 보았고,
미국교회도 다녀 보았고…

내게… 그래도 나름대로 이런 저런 경험이 꽤 많다는 것을 realize 했다.
이런 경험이, 나와 함께 하는 다른이들에게 복된 것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

자신 안에 갖혀버린 똑똑한 사람

똑똑하면서 무식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사실, 매우 명석한 사람들 가운데, 의외로 무식한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 이유는,
명석한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논리가 매우 치밀한 경우가 많고,
적어도 자신이 경험하는 세상을 그 논리로 잘 설명을 해내게 된다.
따라서, 자신이 생각한 논리를 둘러싼 사고체계를 만들게 되고, 그것을 다시 여러 상황에 적용시켜가며 자신의 신념을 굳혀가게 된다.
그러다보면, 다른이의 생각이나 생각의 흐름등을 ‘공부’할 생각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사고체계 안에 자신을 가두어버린채 만족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치밀한 논리를 갖는다 하더라도,
헛점이 있기 마련이고…
이미 다른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놓은 것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음에도 그 기회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그 명석한 사람은 자신만의 ‘생각의 섬(island)’를 만들어 놓은채 거기에 거하는 로빈슨 크루소가 되어버리게되어… 
세상과 호흡하지 못하는 똑똑한 그러나 무식한 사람이 되어버릴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똑똑/명석한 사람인가 하는 것은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평가해줄 문제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런 부류의 잘못을 참 잘 범하는 것 같다. 

주말…

어제부터 아내가 동부로 ‘출장’을 갔다.
주일 밤에 다시 돌아오는 일정이다.
최근 많이 바빠서, 저녁 늦게 돌아오면서도 저녁도 제대로 못먹고 올때도 많았는데,
차라리 그렇게 가서는 좀 밤에 잠도 잘 자고 쉼의 기회가 되면 좋겠다.

오늘 밤에는,
한 친구가 한국에서 우리집에 찾아온다.
주말을 나와 함께 보내고 월요일 아침에 떠나게 되는데…
이 친구는 최근 개인적으로 아주 힘든 일을 겪었다.
아마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되는 추석 휴가를 오히려 피해서… 
미국에 오게된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그 힘든 일들이 좀 해결인 된 것인지…
내가 이 친구와 시간을 보내면서 어떤 도움을 주게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 주말…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저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예전에 대학원시절에,
이 친구가 힘든 일을 겪었을때,
함께 손을 잡고 기도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이 친구는 오랫동안 그일을 기억했었는데…

20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그런 시간을 갖게될 수 있을지… 

중재자

최근에는,
여러가지 이해당사자의 중재자로 서게되는 일이 많아지게 되었다.

절.대.로.
내가 그런 일을 잘 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다거나,
well-balanced perspective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일을 잘 할 소양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늘 “어딘가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되는 일이 더 내게 잘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선동가나 그것을 계획하는 이론가, 혹은 참모… 하다못해 홍위병이나 친위대 등등의 역할이 내게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서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거나,
서로 상대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해서 가지고 있는 오해나 선입견을 풀기위해…
양쪽을 오가면서 상대방의 ‘선한 뜻’을 잘 설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내 성품과 잘 맞는 일도 아니고, 게다가 회사 일과 관련된 중재는 내 부족한 영어로 사람들을 만나 설득하고 격려하는 일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내게 stress 만빵(!!) 이다. ^^

그래서인지,
아침 7시 40분쯤 office에 출근해서는,
가만히 앉아 기도를 하는 시간이 내게는 더 중요하게 생각되어진다.

기도를 하다보면,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 하나 사람 만드시려고,
너무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시다는 생각에,
하나님께 참 민망하고 죄송하다. ^^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만일 10년쯤 전이라면,
내가 잘하는 일도 아니고 내게 맞지도 않는 일을 죽자사자 열심히 해야하는 상황에서 받는 stress 때문에 위장병도 생기고.. 고생 많이 했겠지만,
지금은 그래도 묵묵히 그런 일들을 하게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속에서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는 와중에 내가 성장해가는 것을 ‘즐기게’ 되는 것을 보면…
그나마 나이를 아예 허투루 먹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다. 

Moody한 사람과 일하기

우리 회사의 어떤 사람은, 매우 moody 하다. ^^
여러가지 상황에 따라서 기분이 많이 달라지고, 그 달라진 기분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것이나 심지어는 decision making을 하는 것도 많이 달라진다.

요즈음… 한참…
내가 그 사람을 도와서 어떤 일을 진행시키려고 하는데,
참 이 부분이 쉽지 않다.

어제 밤에도 늦게까지 이 사람과 email communication을 하면서,
어떻게든 이 사람을 도우려고 많이 노력을 했는데…
글쎄, 오늘 아침에 어떨지 한번 봐야겠다.

이 사람은 자꾸만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종합적인 판단이 아닌, 기분에 따른 판단으로…)
나는 그 사람을 격려하면서 ‘우리가 함께 잘 해보자,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힘을 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러나 막상 그 사람과 이메일 대화를 끝마치고 나서는… 내가 힘이 빠졌다.

그래서 혼자 좀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는데,
뭐랄까…
참 묘한 소망을 주셨다. ^^

이 hurdle이 매우 높아보이긴 하지만, 이것을 넘어섰을때 결국은 내가 일을 되게 하는 것 뿐 아니라,
이 사람도 함께 섬기게 되는 것이라는 소망이었다.

moody한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이 힘든 이유는,
그 사람이 consistent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절대로… 늘… consistent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분의 지혜를 따르는 것이,
나를 둘러싼 inconsistency와 싸워나가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간사 수양회를 마치고

정말 오랜만에 간사들이,
수양회 다운 수양회를 했다!

일하는 얘기 별로 하지 않고,
함께 말씀 듣고, 소그룹 모임하고, QT 하고, 기도하고, 또 camp fire도 하고…
그야말로 수양회였다.

준비팀이 아주 탄탄하게 잘 준비했고 현지의 간사들이 여러가지로 애를 많이 썼다.

아마 내 개인적으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참석자로 수양회에 참석한 것은,
95년 이후로 처음이 아닌가 싶다. ^^

황 간사님의 말씀은,
그야말로 황 간사님의 진수를 보여준 것이었다. ^^
아… 저래서 저분이 황 간사님이구나… 싶은…
그리고 저런 마음과 영성이 KOSTA를 shape up 하는데 contribute 된 것이구나. 하는 것은 볼 수 있었다.
주일 저녁, 아니 월요일 새벽 2시 경이었던가… 황 간사님은 숙소로 들어가시면서…
그냥 쉽게 가지 못하셨다.
20년-30년 후배들과 함께 말씀을 나눈 것이 이분에게도 몹시 흥분되는 경험이셨던 것 같아 보였다.
주일 저녁 설교 전에는, 식사도 거르시면서 방에서 기도하셨었는데…
먼길을 비싼 비행기표 내고 오셔서, 불편한 숙소에서 고생 많이 하시면서, 끼니도 거르시며 기도하시고는..
혼신의 힘을 다해 설교를 하셨는데… 
이분은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이 마음에 참 좋으셨던 것이다. 그야말로 이분이 누구를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것인지 그 표정에서 그냥 읽을 수 있었다.
후배들에게 황 간사님 특유의 어투로 격려와 질책(?)을 해 주셨다.
본질에 충실하라는 것, 그리고 우리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하라는 것.

나도,
참 많이 울면서 기도했다.
내 inadequacy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기도했고,
내 능력으로 일하는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을 회개하며 기도했다.
우리에게 맡겨진 사람들이 너무나도 소중한데, 그 사람들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고 죄송해서 가슴을 치며 발을 동동 구르며 기도했다.
정말… 참 많이 울었다.

이제는 나보다는 민우나이에 더 가까운 후배 간사들도 꽤 있었다.
그 소중한 후배들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내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는지.

뭐랄까…
내 어깨에 있었던 짐들이…
이제는 후배들의 어깨에 지워져 있는 것을 좀 더 발견 할 수 있었다.
나도 때로 그 짐이 힘들어서 참 버거워하기도 했고,
그 때문에 주님께 더 매달려 기도할 수 밖에 없었는데…
나와… 내 세대의 섬기는 사람들에게 주셨던 그 은혜보다 더 큰 은혜를 주님께서 이 후배들에게 주시길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 오진이의 주일 설교는,
‘교수님’ 다운  설교였다. ^^
내년의 주제에 관해서 매우 분석적이면서도 논리적인 설교로 아침 설교로 좋았다.
내 동생의 설교를 나도 난생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는데,
가족이 듣기에도 깨달음과 감동이 있었다면, 꽤 좋은 설교였던 것 같다. ^^

 

간사 수양회

내일부터 월요일까지,
코스타 간사 수양회가 시애틀에서 있다.

올해도… 나는 또 다시 이 모임에 참석한다. ^^
언제부터인가 9월 첫째주말이 되면 당연히 이렇게 가는 것으로 알게 되었는데…

특별히 이번 모임에서,
많은 소망을 발견하고 싶다.

세상이 어둡게 느껴지면 질수록…
하나님께서 연약해보이지만 순수한 사람들을 세우셔서 일하시는 것에 소망을 걸 수 밖에 없는 것인데…

매년 9월첫째 주말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가슴 벅찬 소망을 주체하지 못했던 것 처럼,
올해도 그런 벅찬 소망을 깊이 경험했으면 한다. 

정답과 리더십

미숙한 리더가, 
‘정답’과 관련해서 범하는 몇가지 실수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1. 미숙한 자신의 결론이 정답이라고 우기는 것
2. 자신과 다른 의견은 정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3. 자신의 사고체계, 생각의 방식으로만 정답이 얻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4. 의사결정을 할때, 정답이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모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