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13 새해 바람 (14)

약자를 위한 복음, 약자의 복음.

예전에 이 블로그에 짧게 쓴 글인데 eKOSTA에서 가져가서 거기에도 올랐던 글의 제목이다.

그 글을 쓴 이후 나는, 약자의 복음과 약자를 위한 복음의 차이를 많이 곱씹어서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나는 약자의 복음을 믿고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약자를 위한 복음을 믿고 있는지.

또 나는 약자의 복음을 주장할 위치에 있는 것인지, 약자를 위한 복음을 주장할 위치에 있는 것인지.

혹은 더 근본적으로,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은 약자를 위한 복음인지 그렇지 않으면 약자의 복음인지.

아직 이것에 관해 생각이 다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한가지 내게 분명해진 것은 이것이었다.

나는 약자의 복음을 주장하는 것 같이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약자를 위한 복음을 주장하고 있었다.

사실 이 두가지가 이렇게 이질적으로 구별될 수 있는 것인지도 확실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내가 흔히 생각없이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이야기했던 방식은 이런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약자를 사랑하신다. 어떤 의미에서 약자를 편애하신다. 그러므로 그런 약자를 위해 이렇게 이렇게 섬기고 사는 것이 복음의 뜻이다. 흔히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싸구려 pseudo-gospel은, 이런 이런 이유에서 성경의 복음과 다르다. 이것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맞추어 헌신해서 사는 것이 우리의 부르심이다.”

음…

얼핏 보면 꽤 설득력있는 것 같이 들리는데…

막상 내가 주장하는 복음을,

약자들이 따라올 수 없는 윤리강령이 되어버린 경우가 많았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울 힘조차 잃어버린 사람들,

세상에서 낙오되어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내가 이야기하는 ‘복음’을 들으면…

오히려 더 많이 절망하게 될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렇게 헌신할 기운조차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헌신하지 않으면 복음을 제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약자를 위한 복음을 이야기하지만,

막상 그 내용에서 약자가 철저히 배제되는 것이다.

은혜, 사랑, 초월성, 인격성 등과 같은 것이 결국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