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Fair

우리 목사님께서 추천해주신, 사순절 묵상 자료를 가지고 매일 말씀 묵상을 하고 있다.
http://ccca.biola.edu/lent/#

삶을 살다보면,
정말 fair 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 많다. 정말 많다.

fair 하지 않은 것중에 정말 분통이 터지는 것은,
내가 A와의 관계 속에서 내가 unfair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A가 오히려 나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unfair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허얼… 이건…

그걸 객관적으로 풀어서 과연 누가 더 unfair한 불이익을 받고 있느냐 하는 것을 따지는 것이, 때로는 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으나, (그리고 가능하면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많은 경우 unfair하냐 fair하냐 하는 실타래를 푸는것 자체가 대단히 어렵거나 불가능할 때도 있다.

죄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궁극적 공격이다.

죄를 지은 인간은,
그 하나님에대해 그런 공격을 퍼부으면서, 그런 공격을 했으면서도,
하나님께 대해 fair하지 않다고 항변하곤 한다.

그런 꼬여있는 관계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래… 너희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그 unfair한 것을 모두 다 담당해주마.
하시며 묵묵히 십자가를 지신다. 정말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 같이, 그것을 저항없이 받아내신다.

어제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누가복음 본문이였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는 그 상황 속에서,
고통을 받으시고 모욕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인류 역사상 모든 unfairness를 홀로 몸으로 다 담당하시는 메시아를 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fairness의 논란 자체를 그렇게 종식시켜 버리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처형시켰는데… 그 앞에서 fairness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져버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fairness 논쟁 자체를 negate시키는 복음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닥친 unfairness를 받아낼 근원적 힘을 갖게 된다.

인간 관계 속에서,
사회 생활 속에서,
내게 닥친 unfairness를, 십자가에 달리신 메시아를 보며 담아내어보려 해본다.

내가 목사님이 되지 않는 이유 (3)

여태까지 지내오면서,
심각하게 신학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몇번 했었다.

그리고,
신학교를 가는 것과 무관하게,
전임사역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내가 어제 적었던 몇가지 가이드라인을 생각해 볼때,
내가 목사가 되는 것 보다는 평신도로 사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리스트를 다시 적어놓고 보니,
더 이상 valid 하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신학교를 가서 목사가 되어야 하나?

음…
뭐 물론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으나,
적어도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인도해오신 여러가지를 볼때,
지금 갑자기 목사님이 되는 것 보다는 지금과 같이 계속 평신도로 사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20대 때에는,
과연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뜻이 무엇인가 그런것 가지고 많이 씨름했지만,

지금은,
내가 무엇이 되건, 무엇을 하건,
그냥 하나님 사랑할수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게 되었다.

적어도 지금의 내게는,
이렇게 직장 생활 하면서,
평신도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가지 길인 것 같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뭐 나 한 사람이 뭐 하느냐 하는 것 때문에 그분의 일을 그르치시는 분도 아니시고…
난 그냥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 뿐이다.

작은 시리즈 (후속편 ^^)

동네의 작은 한 교회에서,
수요일 점심마다 하던 시리즈 강의는 일단 멈추게 되었다.

첫번째는 하나님 나라,
두번째는 기독교 윤리에 대한 간략한 introduction을 하는 수준으로 했는데,
어제 그 교회 목사님과 통화를 나누고는,
일단 멈추기로 했다.

아마 듣는 사람들이 좀 어려워했던 것 같다.

음…
내가 정말 사람들의 관심을 충분히 담아서 해야할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눈높이를 무시한 채, 어려운 이야기를 쏟아내었던 것이다.

쩝…
거기 계셨던 분들에게 죄송하고…

이 블로그 독자중 몇분은,
혹시 오늘 거기 오시려고 하실 수도 있겠는데…
오늘 저 거기서 강의 안해요~ ㅎㅎ
그래도 가서 점심식사 하시고, 좋은 교제 나누세요~

@ 사실은,
오늘 강의를 하지 않는다는게 완전 복음이었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Morgan hills에 있는 foundry에 가서 일을 해야하는 일정을, 무리하게 오후로 미루어놓은 상태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내 일정을 좀 봐주시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ㅎㅎ

내가 목사님이 되지 않는 이유 (2)

지금껏, 내가 목사가 되지 않은 이유들은 다음과 같았다. (at least, so far…)

1.훌륭한 목사는 많은데, 훌륭한 평신도는 많지 않다
지금도 여전히 이 statement가 valid 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요즘은 그 추세가 좀 역전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훌륭한 평신도가 많지 않다는 것은 여전히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훌륭하지 않다는 거다. -.-;
내가 평신도가 되든 목회자가 되든 간에, 내 존재가 내가 속한 쪽에 그리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2.나는 목사로서의 ‘은사’가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내게 이야기해주기에, 나는 ‘가르침’의 은사는 어느정도 있는 것 같다. (그나마 그것도 회의가 들때가 많이 있다.)
그런데, 나는 정말 ‘목회’의 은사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일반적으로 공감능력도 많이 떨어지고, sympathy, empathy가 별로 없다.
말하자면, 별로 사랑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내 생각에, 목회자의 job을 생각할때,
Pastoring의 일부로서 teaching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teaching의 follow-up으로서 pastoring을 한다거나,
teaching과 pastoring을 두가지의 다른 사역으로 보는 것은, “Pastor”가 가져야 할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목사(Pastor)로서의 재능과 자질이 없다고 생각한다.

3. 나는 목사로서 더 준비가 되어있기 보다는 평신도로 더 준비가 되어있다.
내게 여러가지로 큰 영향을 미치신 한 선배님에게,
진지하게 내가 목사가 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여쭈어본 적이 있었다.
(그분은, 보스턴의 M 대학에서 박사를 받으시고, 한국 K학교의 기계과 교수로 당시에 계셨었다.)
그분은 내게 말씀해 주셨다.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수준의 목회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다. 그렇지만, 네가 할 수 있는 수준의 평신도의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 당시 나는 그 말씀에 그렇게 깊이 동의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네가 할 수 있는 목회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에 동의 하지 않았다. (내가 하면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므로)
그런데 요즘은,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의 평신도의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해도 잘 할 수 없으므로)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분이 잘 보셨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여태껏 내가 살아왔던 삶의 궤적 속에서 일하셨던 하나님에 주목하여 생각해 볼때, 내가 목사가 되는 것 보다는 평신도로 사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내가 목사님이 되지 않는 이유 (1)

요즘은 좀 덜하긴 한데,
한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왜 당신은 목사님이 되질 않느냐고 묻곤 했었다.

나는
뭐 목사는 아무나 하나요
라며 웃으며 받아내곤 했지만,
사실 내가 목사가 되지 않은 이유는 꽤 여러가지가 있다.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내가 존경하는 어떤 목사님께서,
나보고 자신의 후임으로 그 교회 담임 목회자가 되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보셨다.

물론, 뭐 농담으로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한편으론 나를 좀 격려해주시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내가 왜 목사가 되지 않느냐 하는 것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유명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글쎄…
이렇게 이야기하면 또 나이든 사람 코스프레한다고 뭐라고 하겠지만서두..

내가 예전에 신앙생활을 할때,
내가 만났던 선배들은,
소위 ‘유명해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분들이 많았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아니… 저런 정도의 재능과 은사가 있으면 뭔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한번 멋지게 해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 중에서,

그렇게 하면 유명해지는 수가 있어. 나는 유명해지는 것을 감당해낼 수 없을 것 같아. 유명해지면서 동시에 건강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라며 자신이 유명해지는 것을 많이 경계하는 자세를 갖는 분들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이야기하는 것을 거의 듣지 못한다.
오히려, 각종 facebook 같은 것을 통해,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공개하고, (혹은 자랑하고)….
그것을 세상과 소통하는 방편으로 삼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예전에는 참 건강하고 괜찮았었는데,
그렇게 유명해지면서 그 순수함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사람들을 보게 되기도 한다.

나는,
이 시대에,
건강하게 섬기고자하는 사역자들이,
참으로 두려워해야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유명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반드시 목회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평신도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의미에서,
facebook에서 자신의 사역 자랑을 하는 사람들의 영적 건강이 참으로 걱정되기도 한다.

인터넷 한 구석에서이지만,
이렇게 블로그를 하며 내 생각을 늘어놓는 나도 역시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작은 시리즈

우리 동네의 어느 교회에서는,
수요일마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점심시간에 식사를 제공하고 간단한 찬양과 메시지를 하는 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듣자하니, 참석하는 사람의 절반 정도만 그 교회 교인이라고 한다.
자기 교인 챙기기에만 열중하지 않는 그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그런데,
그 수요일 모임에서,
시리즈로 말씀을 좀 나누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많이 고민하다가…
지난주부터 약 5-6주 짜리 시리즈를 하나 시작했다.

한번 메시지가 길어야 20분, 짧으면 15분 정도 되어야 하므로,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하기 어렵고,
참석하는 사람들이 치열하게 공부하러 온다기 보다는,
점심에 좀 말씀듣고 쉬려고 오는 것 같아 보여서…

쉽고, 간결하면서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들을 좀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 직장 생활, 일상, 세상 등등에 대해…
이제 두주째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데,
진지하게 듣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냥 앉아서 조는 사람들도 있다. ^^

참석자들은,
동네 회사들에 다니는 엔지니어들이 대부분이다.
대개 30대에서 50대까지 연령분포, 남자가 거의 대부분.

내 기대는,
뭔가 대단한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이런 기회를 통해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요즘 회사일이 정말 완전 뚜껑 열리게 바쁜 와중에 저지르고 있는 일이라…
살짝 후회하고 있는데… ㅎㅎ
좋은 만남이 있게되길 기도하고 있다.
적어도 한두 사람만이라도 좀 제대로된 고민을 하도록 이끌어 낼 수 있다면…

다들 날카로와져 있는데…

회사에서 여러가지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지난주에도 토요일 밤까지 사람들이 달라붙어 일을 해서, 토요일 자정 비행기로 우리 팀에서 한 사람이 샘플을 들고 아시아행 비행기를 탔다.

아마 이번주에도 누군가가 또 그렇게 밤 비행기를 타게 될 것 같다. (hopefully it’s not me-.-;)

회사에서 소위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일이 잘 되지 않아서 힘들때도 있고, 일이 너무 잘 되어서 힘이 들때도 있다.
지금은 그 두가지가 약간 섞여 있는 상태이다.
갑자기 우리 팀에서 개발한 product에 대한 demand가 너무 커져서 (good)
생산량을 많이 늘려서 진행을 해야하는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bad)

내가 보기엔,
우리 팀에서 소위 ‘internal customer’에게 공급해줘야 하는 volume에 대하여 정확하게 communicate하고 예측하지 못한 우리 보스의 잘못이 크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팀 멤버들이 다 같이 고생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보스는 오히려 짜증과 화를 내면서 사람들을 조이고 있다.
아마도 한편 쑥쓰럽기도 하고, 한편 미안하기도 한 것을 이런 식으로 돌파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 덕분에,
팀 전체 사람들이 다들 얼굴 표정이 어둡다.
일이 많아서 다들 허덕거리고 힘들어 한다.
서로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이는 일들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주로 하는 일은,
돌아다니면서 실없는 농담을 하는 일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번 목표는 이루기 어려울 것 같다고 걱정하는 ‘젊은’ 엔지니어들에게,
I’ve seen much worse 라며 격려는 해주는 일이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잔뜩 받아 힘들어하는 보스에게,
원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이터들을 미리 뽑아서 가져다 주는 일이다.

그런데,
나도 사람인지라…
그렇게 하고 나면 하루가 참~ 길다.
그리고 많이 지친다.

앞으로 적어도 3주 정도는 이런 식이 될 것 같은데…

취미활동

요즘 보면,
사람들이 흔히 하는 ‘취미생활’이 장난이 아니다.

자전거를 좀 탄다 하면…
완전히 full gear를 다 갖추고, 몇천불짜리 자전거를 사는 일이 흔하다.

달리기를 좀 한다 하면…
몇백불짜리 신발을 사고, 정기적으로 트레이닝을 하고, 일년에 몇번씩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이 꽤 있다.

리스트는 한도 없다.
음악을 좀 안다 하면, 전문가 뺨치는 깊은 음악에 대한 이해를 갖기도 하고,
사진을 좀 찍는다 하면, 그것에 거의 모든 여가 시간을 다 투자하기도 한다.

나는,
취미생활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 처럼, 취미생활이 ‘달리기’인 사람에게는…
좀더 ‘인간적인’ 취미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그러나…
현대인이 그토록 취미생활에, 혹은 자신의 어떤 특정 관심분야에…
그렇게 매달리는 것은,
혹 하나님께서 채우셔야하는 빈자리를 그것으로 채우려는 시도의 일부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끔,
그런 취미활동이 자신의 ‘영적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항변하는 이야기들을 좀 듣긴 하지만,
그런 취미활동이,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하는 이야기들을 듣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말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그분을 마음에 계속 품고 살고,
그분의 기쁨에 대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관심이 있다면…
정말 그렇다면…
그래도 여전히, 현대인들이 그렇게 하는 것 처럼…
취미생활에 그렇게들 빠져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