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nt – 내 묵상 (8)

적어도 학생-청년들에 관해서는,
Missional 하게 살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삶 전체를 ‘여정(journey)’로 보지 않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거쳐가는 과정(pathway)’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좀 과장된 예를 들어보자.
나이가 들어서, 결혼을 해야한다는 온갖 압력과 핍박에 시달리는 ‘교회 누나 / 교회 오빠’들을 보면, 많은 경우, 결혼만 하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좋은 가정이라는 목표를 이루기위한 과정으로 생각한다.

신앙의 중요한 장래 목표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자신의 중요한 욕심)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현재 신앙활동들이 정리된다.
그리고 그 장래목표를 이루기위한 것 이외에 다른 것들에 쉽게 마음이 가지도 않고 그것들은 ‘부수적인’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그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 다른 것들은 미루어 놓는다.

결혼만 하면 헌신할께요, 졸업하고 나서 성경공부 하죠, 취직만 하면 그때 신앙을 좀 가져볼까요… 식이다.

신앙이 목표에 돌진하기위한 거쳐가는 highway와 같이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설정해 놓은 목표들이… 거짓 신앙에 의해 정당화된 자기 욕심들이니…
그 목표에 도달하면 허탈해져서 그 다음 목표를 설정하게 되고…
결국 신기루를 쫓아 매진하며, 부르심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게되는 것이다.

이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
거짓 신앙에 의해 정당화된 거짓 욕심을 버리도록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highway로 생각하며 달려가고 있는 길 자체가 우리 인생의 목적이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어쩌다가 여러가지 아픔을 가지고 나를 찾아오는 후배들에게 나는.
지금 이 아픔의 과정을 겪어 가면서,
이것을 극복해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 과정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목적이 되어야 한다. 고 이야기해주곤 한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단순화된 어떤 목적을 이루기위해 highway를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해가는 journey 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가지고 창세기 본문을 잘 강해한다거나 하면, 이 부분을 참 잘 이야기해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출애굽기 같은 것도 이것을 다루기에 꽤 괜찮았을 테고…
신약 서신서에 나타난 신약 공동체의 모습들 속에서도 이런것을 다루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혹은 다니엘에서도 찾아볼수 있었을 것 같고.

나는 사실,
missional한 이야기를 다루는 첫 step으로써, 코스타가 이 부분에 한해 좀 focus해서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긴 했었다.
그렇게 하면 청년-학생들에게 좀 더 tangible한 방식으로 missional한 으로의 bridge를 놓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뭐 그냥 나만 혼자 했던 생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