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간 글쓰기 쉽니다.

미국 southwest 지역 순방 출장 일정입니다. ^^
저녁에 시간이 조금 날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일단 글쓰기를 삼일간 쉽니다.

글을 쓰고 싶은 이야기는 아주 많이 쌓여 있는데,
생각을 글로 옮겨내는 과정을 차분히 앉아서 할 여유가 나질 않아서 말입니다.

삼일 후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

동료가 해고 당하다

technician들은 대개 engineer들과는 달리 ‘임시직’으로 고용한다.
그렇게 고용해서 한동안 써 보다가 괜찮다 싶으면 그중 일부만 ‘정규직’으로 바꾸어준다.
engineer들이 대개는 ‘고 연봉’을 누리는 반면, technician들은 그것보다 많이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

우리 팀에 technician이 한 사람 있었다. (이름을 D라고 하자)
베트남에서 이민 온 사람인데, 나이는 30대 후반정도.
꽤 성실하게 일해왔던 사람이다.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부터 계속해서 비정규적 technician으로 일하고 있었고,
두주 전에는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었다.
이 친구는 아주 많이 좋아했다.
드디어 여러가지 benefit들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내 manager로부터 점심 시간에 급한 text message를 받았다.

“D가 background screening에 fail 했다. 오늘 오후 3:45분에 이 친구는 fire당하게 된다. 당장 D를 만나서 지금까지 그 친구가 해왔던 기록들, 여러가지 part의 inventory들을 다 수집해라. 그리고 특별히 무슨 process에 특이사항이 있는지도 알아놓아라. 단, D를 포함해서 누구에게도 이 친구가 3:45pm에 fire된다는 사실을 말하면 안된다.”

나는 많이 충격을 받았지만,
일단 해야하는 일은 해야하겠기에 급하게 실험실로 달려갔다.

D가 최근에는 주로 나로부터 여려가지 instruction을 받고 일을 해왔기 때문에,
내가 이런 저런 사항을 물어보고 자료를 모으는데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 친구는 월요일에는 이런 걸 좀 더 시도해 보아야하겠다…
새로 이런 것들을 더 order해야하겠다….
뭐 그런 여러가지 plan들을 자꾸만 이야기했다.

나는 뭐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워서,
그래… 그런데 일단 주말엔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잘 쉬어라…
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러곤 어깨를 두드리며 See you…. 라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 후에 정말 이 친구는 3:45pm부로 fire 되었다.
나는 그렇게 어깨를 두드리고 see you 라는 인사를 나눈 이후로 이 친구를 다시 보지 못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잘 들어보니,
이 친구가 resume에 거짓말을 좀 한 모양이다.
background check을 했는데 그게 다르다는 것이 걸려서 바로 fire당한 것이었다.

아마 많이 무겁고 어려운 한주를 시작하고 있을 D가,
마음의 안정을 좀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능력보다 출세하지 않기

내가 몇년전부터 가져왔던 바람(?)은 능력보다 출세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능력보다 출세한 사람들이 그 출세 때문에 망가지는 것을 너무 많이 봤고,
나 자신의 건강함을 유지하기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전 글에서 잠깐 언급을 했지만,
지금 이 직장으로 오면서, 이전의 직장보다 조금 낮아졌다.

따지고 보면 뭐 그리 대단한 건 아닌데… 그리고 매일 일하면서는 별로 차이를 느끼지도 못하겠고…

그런데 지난주에 새로 알게된 것은,
이 직장에서는 승진(promotion)을 하는데 self-nomiate 할수 있는 제도가 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의 scope으로 보나 내 예전 직장에서의 일들로 보나…
promotion을 apply하는 것이 좋겠다고 manager와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살짝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 높아지는 것에 목매지 않기 위해서이다.
내가 스스로 그렇게 내 능력보다 높아지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었는데…
이런 기회에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는게 부끄러워졌다.

일을 하는데 꼭 필요해서,
어쩔수 없이 promotion을 해야하는 경우라면 어쩔 수 없지만,
단순히 그저 조금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title을 바꾸어 달고 싶은 욕망 때문에,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내게 건강하지 못하다고 느껴졌다.

요즘 계속해서,
내가 생각보다 높아지는 것에 많이 오염되어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밥 주는 회사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으로 옮긴 후에,
나는 사실상 거의 세끼 다 회사에서 먹는다.

많은 사람들이 알듯이,
우리 회사는 꽤 식사의 퀄리티가 좋다.

아침에도 그냥 민우 아침만 얼른 차려서 주고,
민우를 학교에 대려다 주고,
그리고 회사에와서는 운동을 하고, 아침을 먹고 하루를 시작한다.
점심도 물론 회사에서 먹고,
저녁도 회사에서 먹거나 아니면 회사에서 뭐 하나를 픽업해서 집에 가지고 와서 좀 늦게 먹는다.

그것뿐 아니라,
계속해서 회사에서 espresso / latte를 만들어 먹고,
과일이나 snack도 먹는다.

내 생각엔,
나처럼 꼬박꼬박 회사에서 잘 챙겨 먹는 사람은 하루에 보통 40불 어치는 먹는 것 같다. ^^

그런데,
이렇게 함으로써 회사에서 이렇게 밥을 다 주지 않는 경우와 비교해보면,
안되더라도 한시간 이상은 회사에서 더 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자…
여기서 계산.

연봉 10만불 받는 사람의 경우,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여려가지 benefit (의료보험, 401k 등등)과 기타 다른 overhead등을 다 포함해서,
회사에서 연봉 10만불짜리 직원 하나를 쓰는데 13만불 정도는 든다고 대충 estimate 해보자.

일년에 13만불이면 hourly salary가 63불쯤 된다.
어떤 사람이 40불 어치 회사에서 매일 먹고, 대신 한시간씩 회사에서 더 일을 하게 된다면, 회사로서는 밥을 제공함으로써 10만불 연봉 직원 한 사람당 하루 23불의 이익이 더 나게 되는 셈이다.

연봉 15만불짜리 직원의 경우에는, 그 이익의 폭이 더 커진다. 왜냐하면 연봉이 높다고 더 많이 먹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ㅎㅎ
(하루 거의 연봉 15만불짜리 직원 한명당 40~50불의 이익이 더 나는 것이다.)

소위 ‘고액 연봉자’가 많고, 대부분의 직원이 exempt employee(시간외 근무수당이 없는 직원)인 회사는,
이렇게 밥도 주고 espresso machine도 사주고, 여러가지 과일도 주고…
이렇게 하는게 회사에 훨씬 더 남는 장사이다!

피천득의 인연

피천득의 <인연> 수필을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것이 언제였더라.
중학교 때 였던가, 고등학교 때 였던가.

나는 그때 그걸 읽으며 참 가슴이 찌릿 했었다.
특히 맨 마지막에
“아사코와 나는 세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로 마무리 짓는 것이 정말 좋아서, 그 맨 마지막 부분은 아예 홀딱 외고 말았다. ^^

그런데,
우연히 그저께 인터넷에서 다른 내용을 좀 찾다가 피천득의 인연이 떠서 그걸 다시 읽어 보았다.
참 좋은 글인데, 뭐 예전에 느꼈던 그 싸~한 기분이랄까 그런건 별로 살아나질 않았다.

그리고는 피천득 선생이 언제 그 글을 썼는지 확인해 보았다.
보니, 60대 초반에 이 글이 발표되었다!

한때 음악을 정신없이 들으며 많이 좋아하기도 했고,
한때 이런 글들을 읽으며 감상에 젖기도 했고,
대학로 연극을 보고나선 혼자 괜히 쓸쓸히 걸으며 여려 생각들을 하기도 했는데…

지금 나는,
그런걸 즐길 여유도 마음도 정서도 남아있지 않았네.

피천득 선생은 60대 초반에도 이런 글을 썼는데,
나는 아직 50도 되지 않아서 이렇게 다 삭막해져 버렸네.

어린 시절,
피천득의 <인연>을 읽으며 가슴 싸~한 감상에 젖었다면,
이제 지금,
피천득의 <인연>을 읽으며 왠지 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아쉬움에 살짝 젖어본다.

벅차다!

새 직장 (뭐 이제 더 이상 새 직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지만 ㅋㅋ) 에서는, 일이 참 많다. ^^

음… 뭐 일이 많은 거야, 이 동네 직장인들이 다 그렇지만,
여기는 좀 독특하게 많다.

예전에 A 회사에 다닐 때에는, 하나의 project의 어떤 큰 부분 하나를 떠 맡아서 하는 역할을 했었다.
그 후 L 회사에 다닐 때에는, 하나의 project의 여러 부분을 맡아서 하는 역할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회사에서는, 여러개의 project의 여러부분을 맡아서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project 하나만가지고 하는데에도 허덕거리고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런 project를 완전 나 혼자서 여러개를 하고 있으니…

physically 회사에 있는 시간을 예전보다 약간 더 짧을 수도 있겠으나,
워낙 여러개의 project를 동시에 하다보니 머리 속이 완전히 터질 지경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구멍이 생긴다.
한시간 미팅을 하는동안에도 사방에서 text가 오고, 전화가 오고, email이 오고… 난리다.

예전에도 회사 다니면서, 공부하면서…
아… 이건 좀 벅차다 싶을때가 많이 있었지만,
지금 이건 좀 차원이 다른 것 같다. -.-;

집에 돌아오면,
정말 머리쓰는 일은 하나도 할 여력이 남질 않는다.

뭐 그래도 열심히 해보는거지…

My Pastor

내가 마지막으로,
‘목회자’를 가졌던(?) 것은 92~3년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지금은 LA에 계신, 한국말이 서투른 한 전도사님이 내가 다니던 교회의 목회자였다.
그분의 허름한 단칸방 셋집에 가서 성경공부를 하기도 했고, 그분은 나 하나를 위해서 그 당시 대학원 기숙사에 아침 일찍 오셔서 나와 QT를 하고 아침밥을 함께 먹어주셨다. (사실은 그 기숙사 학생들이 함께 QT모임을 하자는 것이 취지였으나, 대부분의 경우 나 혼자 나왔었다.)

그리고 그때 즈음에,
정말 genuine하게 내 영적인 성장, 그리고 내 영혼의 상태에 관심을 가졌던 형들과 친구들이 소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내게는 ‘목회자’가 한번도 없었다.
물론 교회에 계속 다녔고, 그 교회에 목사님들이 계셨지만,
그분들은 대부분 나를 활용할 resource로 여겼고,
내가 무슨 생각과 고민을 하는지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분들은 그냥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들이었지, 나를 ‘목양’하는 분들은 아니셨다.

목사님뿐 아니라, 그냥 다른 선후배 동기들도 대부분,
내게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나를 찾아 오는 사람들이었지,
내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내 고민과 생각과 마음의 상태와 영혼의 건강이 어떠한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정말 별로 없었다.

내게 ‘목회자’의 역할을 했던 분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게 쓴 소리도 선뜻 할 수 있는 형도 있었고,
내가 정말 어떻게 사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서 내 안부를 묻는 친구도 있었다.
함께 동역하던 분들중에서도, 정말 나를 염려하고 기도해주는 분들이 계셨다.

그렇지만, ‘목사님’들은 내 영혼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목회자’ 없이 25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지난 토요일,
내 아내와 함께 우리 목사님의 댁에서 오후 다과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된 내용은 내게 하는 ‘쓴 소리’들 이었는데, 뭐 우리 목사님이야 나를 잘 알고 계시므로,
매우 정확한 진단이 많이 있었다.

나누었던 이야기들도 참 감사했고,
따뜻한 분위기나 목사님/사모님의 마음 씀씀이도 참 감사했지만,
무엇보다 감사했던 것은,
내게도 25년만에 ‘목회자’가 한분 생긴 것이로구나 하는 realization이었다.

선한(?) 소망까지도 이루어주시지 않는 하나님

늘 신앙에 기복이 있기 마련이기에,
내가 한참 ‘좋을 때’ 생각하고 결심한 것이 내 신앙의 전부는 당연히 아니다.

그렇지만,
내 신앙이 한참 뜨거운 시기를 지내고 있을 때엔,
정말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바람으로 이렇게 외치곤 한다.

돈도, 명예도, 성공도, 안락함도 정말 필요 없습니다.
정말, 정말, 제가 주님 더 알게 해 주십시오.
제게 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마지막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밖에 남아 있지 않을때,
그 손가락으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쓸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뭐 대충 이런 것이다.

기도를 깊이 하게 되거나, 말씀 속에서 깊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거나,
아니면 그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그분의 사랑을 유난히 깊이 느끼게 될때 하게되는 고백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내 선한(?) 소망 조차도 이루어주지 않으신다. ^^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소망을 후딱 이루어주지 않으시는 것이 그분의 깊은 사랑이다.
왜냐하면,
가끔 내가 그런 기특한 고백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내 실제 모습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선한 소망도 그럴진대,
하물며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나의 일상적인 다른 소망은 오죽하랴!

내 소망을 들어주시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한다.

어제 아땅님의 comment에 대한 답 (좀 길어서 여기 본글에 올립니다.)

네,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콕 찝어 주셨습니다!
저는 말씀하신 것에 아주 깊이 동의하고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제가 복음 안에서 누려왔던 것들이 너무도 벅차고 커서,
이걸 pass-on 하지 않고는 정말 빚진 것 같아 마음이 많이 눌리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게 좀 적절히 균형을 맞추어야하는 것이겠지요?

제 룸메이트(^^)도 제게 왜 그렇게 조급해하느냐고 그러더군요.

복음 안에서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말 제가 참 보잘것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점점 더 깨닫게 되는데요…

제가 철이 없을 때에는,
정말 제가 잘나서 복음에 대한 이해도 깊게 가지게 된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점점 철이 들면서, 저 같은 사람은 정말 예수 믿는게 체질이 아닌 스타일이라는걸 많이 깨달았습니다. ^^

저 같은 사람도 이렇게 복음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면 왜 아주 많은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이렇게 깨닫고 누리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 제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정말 대책없이,
연약하고 보잘것 없는 인간에게 그분의 귀중한 보배의 말씀을 맡기시는 모험(?)을 하시는데,
혹시 내게 맡기신 것 정도마저도 내가 잘 pass-on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뭐 그런 마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이 들곤 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그거 하나님께서 하시는 거야… 그러겠지만,
저 같은 사람은 예수 잘 믿는 체질이 아니어서 그런지 그렇게 그냥 쉽게 좋은 믿음으로 넘어가지지가 않는 모양입니다.

제가 대학때 가끔 아주 뜬금없이 저를 불러서 복음과 한국문화와 통일과 기도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던 형.
자존심 세고 고집 많고 잘난척 하는 대학생인 저를, 자기가 사는 셋방에 불러서 먹이며 성경공부를 시켜주었던 어떤 전도사님,
저와 같은 별로 중요하지 않는 학생 한 사람만을 위해서 귀중한 한나절 시간을 지내며 복음과 학생과 민족과 운동에 대해 여러 생각을 나누어 주셨던 어떤 선배님,
별볼일 없는 학생들이 모여서 하는 작은 성경공부모임에 오셔서 자신이 삶으로 묵상해낸 성경말씀을 풀어서 설명해주셨던 스승님,
그 외에도… 제게 큰 영향을 준 책을 쓰신 분들, 저를 많이 깨뜨린 설교를 해주신 분들…
뭐 정말 그렇게 늘 삶 속에서 주변의 누가 되었건 그 사람들을 키워내려고 노력하셨던 믿음의 선배님들을 지금도 많이 기억합니다.

그렇게 제게 복음이 전달되었다면,
저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복음을 전달해 주어야 하는데…
그저 교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제 삶이라는 그릇에 복음을 담아 전달해 주어야 하는 것일텐데…

그저 뭔가가 제게서 딱 막혀버렸다는 생각을 할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뭐 제가 부족하니 이런저런 고민을 해보는 것이겠습죠….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