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건 아니다

지지난 주말 내가 했던 ‘설교’들을 들어 보았다.
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우선, 정말 말을 많이 버벅거렸다.
이건 내가 점점 한국말과 영어를 둘 다 잘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러서 주로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사실 이렇게 한국말로 설교를 하거나 강의를 해야할 경우에 나는 대개 한주정도 영어 쓰는걸 좀 자제하고 내 언어 모드를 한국어 모드로 전환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그런데 이번엔 회사일이 좀 만만치 않아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랬더니만… 허걱… 완전 말을 많이 버벅거렸다.

그리고, 정말 설명을 잘 못했다. -.-;
원래 하고자 했던 내용을 절반정도로 줄여서 전달 하려고 하다보니,
논리가 이상하게 압축이 되어버려서,
듣기에 조금 이상하게 들리는 부분이 많았다.

이런 건 꼭 이렇게 설명해야지… 하고 머리 속에 생각해 둔 것들이 있었는데,
막상 할때 시간에 쫓겨서 그걸 차분히 이야기해내지 못했다.

한동안 뻔질나게 설교 비슷한 것들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부드럽게 잘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워낙 가끔 한번씩 하다보니, ‘감’을 잃어버려서 확~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아이고… 이걸 어째…

Disruption

Silicon Valley에 있으면 disruption이라는 말을 무지하게 많이 듣고, 무지하게 많이 쓰게된다.
한국말로는 ‘붕괴’와 같은 사전적 의미가 있는데…
innovation이 대단히 커서 기존의 질서를 붕괴시키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진정한 의미의 ‘innovation’은 늘 disruption(붕괴)를 가지고 왔다.
완전히 새로운 일이 벌어지면, 기존의 질서 속에서 ‘편안하게’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지금 꽤 disruptive한 technology를 만들기위해 일하고 있다.
최근에는 내가 진짜 하는 일에 대해서 이 블로그에서 별로 쓰지 못했는데,
언제 좀 날잡아서 한번 써볼까 생각중이기도 하다.

어쨌든…
만일 지금 내가 하는 일이나, 우리 회사가 하고 있는 일들이 지금 생각하는대로 제대로 되기만한다면,
정말 이건 완전 disruptive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럼 그런 disruption(붕괴)의 피해자는 누가 될까?

내가 머리 속으로 이리저리 시나리오들을 머리 속에서 돌려서 생각을 해보면,
어쨌든 간에 지금 현재 의료서비스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될 것 같다.
의사, 간호사, 보험회사, 병원, 제약회사, 의료기기회사 등등.

물론 우리가 현재 의료서비스분야의 모든 사람들을 다 ‘망하게’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렇게 할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제대로 된다면 그 industry전체가 정말 크게 변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나는 어렸을때의 꿈이 의사였다. 아버지가 의사셔서 그냥 그걸 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학군이 좋지 않아서, 그 당시 막 생긴 (그래서 들어가기 쉬웠던) 과학고등학교 시험을 봐서 덜컥 되는 바람에 의사가 아닌 이쪽으로 빠지게 되었는데….
어제 문득 생각해보니… 내가 넓게 보면 그쪽에서 일을 하게 되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 아내도 의료쪽에서 일하고 있고,
내 동생도 의료쪽에서 일하고 있고,
내 아버지도 의료쪽에서 일하셨는데…
나는 막상 그쪽의 stability를 엄청 헤집어 놓을 만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살짝 불편(?)하게 느껴졌다.

신앙과 세상

기본적으로,
신앙은 세상을 잘 살도록 도와주는 힘이 아니라, 세상과 싸우도록 하는 힘이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세상에서 잘된 이야기가 간증이 될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세상과 싸운 이야기가 간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신앙으로 세상을 잘 사는 이야기는 결국 세상에 순응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세상으로 세상을 이기는 이야기는, 결국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 열심히 해서 세상에서 잘되는 것을 스토리라인으로 가지고 있는 신앙인들은,
결국 자기 자신을 믿고 있는 것일게다.

선배들에 대한 찬양

어느 단체이든 그룹이든지 간에,
그 그룹을 이끄는 혹은 이끌었던 사람들을 높이는 일들을 많이 만난다.
자기 선교단체 선배들을 높이는 일들,
자기 교회 목사님을 높이는 일들,
자기 업계의 성공한 원로를 높이는 일들…

대부분 그렇게 하는 이유 깊은 동기는,
자신을 높이기 위함이다.

그 선배를 높임으로써 자신이 속한 그룹을 높이는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그룹에 속한 자신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사람을 높이며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모습은 참으로 안습이다.

부흥의 시기와 침체의 시기

부흥의 시기에는 양적 팽창이 이루어지는데 반해, 침체의 시기에는 양적 수축이 이루어진다.
부흥의 시기에는 세상을 변혁하려는 에너지가 크지만, 침체의 시기에는 세상과 대조가되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부흥의 시기에는 넓어짐이 중요하다면 침체의 시기에는 깊어짐이 중요하다.

부흥의 시기중에 발생한 어떤 문제는 침체의 시기를 촉발시킨다.
그리고 침체의 시기에 새로 발견한 어떤 모티프가 부흥의 시기의 중요한 토대가 된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부흥기의 번성은 침체기의 열매이고 침체기의 몰락은 부흥기의 결과이다

간사 모임 message

지난 주말,
K 모임 간사모임에서 세번의 message를 했다.

정말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래서 아주 욕심껏 준비를 하다보니 양이 너무 많아져서 그걸 줄이는데 애를 먹었다.
많은 양을 정해진 시간에 하려다보니 농담도 빼고, 예화도 대폭 빼고… 꽤 딱딱한 message가 되어버렸다.그런데 그렇게 하고도,
“아… 이 얘긴 꼭 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되는 것들이 한두개가 아니다.

아마 기회가 되면
조금 더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이 블로그에서도 그 내용중 일부를 써보려고 한다.

이번에 message들을 준비하면서,
‘침체의 시기를 사는 하나님 나라 백성됨’에 대해 나름 생각을 더 정리해볼 기회가 되었다.

잘 들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
바라기로는 내 부족한 이야기가 간사들에게 그래도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면…

부흥기와 침체기

지난 며칠은 이번 주말에 해야할 설교준비를 하느라 다소 정신이 없었다.
아마 가기 직전까지 정신이 없을 예정. ㅋㅋ

이번 주말에 만나는 사람들은, 정말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 참 많은 사람들이다.
솔직히 말하면 해주고 싶은 말이 많다기 보다는 해주고 싶은게 많다고 해야할것 같다.
그래서 설교가 자칫 막~ 길어지려는걸 열심히 control 하고 있다.

부흥기를 지난, 침체기를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침체의 시기를 사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야기와, 침체의 시기를 사는 ‘사역자’ 혹은 ‘리더’들에 대한 이야기…

주말에 K 간사 모임에 다녀옵니다.
그리고 하루 더 휴가를 내어서 동생네도 들렸다 옵니다.
다음주 수요일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꾸벅~

일본 수학문제집

나는 수학을 특출나게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뭐 이과를 선택하고 공대에 가서 학교공부를 다 따라할 수 있었으니 수학을 못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진짜 수학문제 잘 푸는 친구들에 비하면 그냥 초라한 수준이었다. ^^

그런데 그냥 일반적인 수학 교과서나 참고서/문제집들이 그냥 좀 식상(?)하다고 느끼던 친구들이, 동경대 입시 준비용 참고서라고 해서 일본 수학 문제집을 구해서 푸는 일들이 있었다.
그때 친구들에게서 그런걸 빌려서 몇 문제 풀어보면서 완전 신세계를 경험했었다.
히야… 어떻게 이렇게 문제를 잘 만들었을까.
일단 문제의 수준이 정말 달랐고, 그게… 구질구질하게 문제가 어려운게 아니고, 아주 깔끔하게 어려웠다. ^^
참… 문제를 실제로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면 쉬울텐데… 하여간 푸는 느낌이 그랬다.
문제를 끙끙거리며 풀고나면 쾌감과 전율이 몰려왔고, 혹시 문제를 잘 못풀더라도 그 답을 보고나면 감탄이 나왔었다.

그런데 내 수준에는 그냥 한국 참고서가 맞았다. 한국 참고서 잘 풀어서 공부하면 그거 가지고 그냥 어느정도 수학 점수 받을 수준까지 공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끔 왕창 어려운 문제를 접할때의 묘한 쾌감같은 것은 한국 참고서에서 잘 만날 수 없었다.

나는 그 어려운 일본 수학문제집을 다 풀어가며 공부할 수준은 되지 않았지만,
그걸 푸는 쾌감이 뭔지 그래도 좀 알았고…
그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내는 친구들이 느낄 그 희열을 그래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부럽기도 했고.)

나는 그런 의미에서, 내 수준을 넘어서는 그 일본 수학문제들을 풀어볼 기회가 있었다는게 참 감사하다. 수학에 대한 내 상상력과 흥미를 그런 것을 통해서 더 키우고 지킬 수 있었다.

나는 현대 기독교가 어려운 일본 수학문제를 푸는 것과 같은 경험들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domesticated되어있는 기독교는 상상력도, 흥미도 없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도전을 해보는 야성도 없다.
그저 멜랑콜리하고 가벼운 감동을 주는 이야기기로만 기독교가 채워지는 거다.
그러면 기독교인이되는 재미가 없어진다.

토니 캠폴로가 이런 말을 했었다.(정확하게 기억은 안나는데…)
“The reason why young people are leaving Christianity is NOT because it’s too hard. It’s because we made it too easy”
나는 그 말에 완전 공감한다.

갑의 논리와 을의 논리

지금 우리 회사에서는 performance review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나도 당연히 그 자료들을 모으고 document를 쓰고 있는데…

어제 내 manager와 이야기를 하다가 생각해 낸게,
나는 소위 ‘vendor’라고 부르는 하청업체들과 일을 많이 하니까,
내가 얼마나 잘 하는지 하는 평가를 그 업체들에게 부탁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물론 그 평가의 내용이 우리 회사의 ‘공식적인’ performance review에 포함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내가 그 하청업체들과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들어본다는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관여하고 있는 회사 몇개에 지금 일하고 있는 project에 대한 그 사람들의 생각과 함께,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하는 review/평가를 부탁을 했다.
그리고 내게 사전에 상의하지 말고 내 manager에게 그 review를 보내라고 부탁했다.

나는 한편으로는 이 일을 하면서 함께 그렇게 일하는 회사들에게 잘 대하려고 정말 엄청나게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 회사들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를 해줄지 궁금하다.

‘갑’이 ‘갑’이 되는 이유는, ‘갑’이 ‘을’을 평가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평가는 ‘을’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을’이 ‘갑’을 평가한다는 것은 살짝 exciting한 일인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쓰고나서… 난 참 좋은 갑이야…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참 꼴불견일거다.

갑은, 갑이되는 그 자체로 폭력이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갑이 되려고 노력해도, 갑인 이상은 좋을 수가 없는 거다.
갑으로서 더 영향력이 있으니까 선한 영향력을 더 확산 시켜야지… 라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는건 여전히 갑의 논리이다.

갑이 갑의 논리에 머물러 있는 한,
결코 좋은 갑이 될 수 없다.
갑이 갑의 을의 논리로 상황을 이해하려 할때에야 비로소 아주 약간의 희망의 빛이 있는 거다.

어제 내가 해보기로 한것을 가지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사랑할 수 있다면 행복한거다

민우가 겨울방학을 마치고 어제 다시 돌아갔다.
민우는 학교공부가 무척이나 재미있다고 한다. 자기가 듣고 싶은 과목을 이번학기에 듣는다고 잔뜩 흥분되어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기말고사, final peper 그런 것들은 스트레스 였던 것 같다.
집에와서 며칠은 정말 무지막지하게 잠만 잤다.
그리고 나선 집에 와서 먹고 싶었던 것들 – 주로 아주 단순한 한국 음식들-을 잔뜩 먹고 갔다.
된장찌게, 차돌배기 구이, 미역국에 조랭이떡 넣은 것, 호박전, 곰탕, 김치, 짜장면…
그리곤 California에 많은 버블티, crepe 같은 것들

민우는 가기 전날 까지도 완전 게으름뱅이 모드였다. 그래서 짐도 잘 안 싸고 있다가 가기 전날 잠을 쬐끔만 자면서 짐을 싸가지고 갔다.

잠이 덜깬 아이를 공항에 내려주면서 꼭 껴안고 사랑한다고 해 주었다.
민우는 나보다 조금 더 길게 나를 안고는 놓지 않았다.
(엄마는 일 때문에 집에서 포옹을 하고 나왔다.)

민우는 괜찮은 것 같은데,
나는 괜히 마음이 싸~ 해지면서 눈물이 고였다.

지금 내 나이가 거의 50이 다 되어 가는데,
어쩌다 한국에 출장이라도 가서 부모님 댁에 들려 지내다가 나올때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나처럼 딱 그러신다.

나는 우리 부모님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뭐 나를 많이 사랑하신다는걸 머리로야 이해하지만.

인스탄트 짜장밥 같은 것들을 가방이 터지도록 넣고는 그걸 들고 사라지는 민우는,
내가 얼마나 민우를 사랑하는지 잘 모를거다.
내가 우리 부모님의 사랑을 잘 모르는 것 처럼.

그래도 내 아이를 사랑한다는건 그것으로 참 큰 행복이다.